우리가 기거하는 집집마다 각자 삶의 형태와 이야기가 있다. 가족도 구성원도 제각각인 다섯 가구, 홈이자 하우스인 생활의 터전에 깃든 각양각색의 사정을 들어봤다.

Aerial View of New Houses in Northern Illinois. Town Houses in new develop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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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 가구
#하동 시골집 #젊은 귀촌 #사이좋게 빈둥거리기

봄맞이 옷장 정리를 하다가 생각에 잠겼다. 큰맘 먹고 산 더로우의 검정 롱 코트, 스텔라 매카트니의 헤링본 재킷, 아크네 스튜디오의 바이커 점퍼를 꺼내 봄바람 쐬게 해주던 참이었다. 옷장 구석에 처박혀 있다가 2년 만에 겨우 탈출한, 한때 나를 설레게 했던 녀석들을 보며 나의 일상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렇다, 나는 ‘가격 미정’의 패션 월드를 떠나 엉뚱하게도 이 작은 시골 마을에서 빈둥대고 있는 것이다!
그 시작은 남편이 던진 하나의 질문이었다. “우리가 꼭 서울에서 살아야 할까?” 그 뒤로 결정적 문장이 따라왔다. “우리 삶의 형태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어.” 정년이 보장된 탄탄한 회사에 다니던 남편은 어느 날 정년을 앞둔 OB들을 보며, ‘나 역시 저렇게 늙어 아파트 한 채 갖게 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창의적인 생각 따위는 할 줄 모르는 중늙은이가 되어 죽을 날을 기다리려나 싶어 섬뜩해졌다고도 한다. 대학 졸업 후 10년 동안 잡지사 패션 에디터로 나름 충실하게 살아가던 나는 그즈음 열정이 시들어 다음 스텝을 고민하던 차였다.
이토록 일에 몰두하다가 나이가 들어 직업을 잃고 나면 우리 둘 다 빈껍데기만 남게 되는 건 아닌가 두려웠다. 우리는 늙어서도 할 수 있는 일, 즉 직장이 아닌 직업을 찾길 원했다. 무엇보다 좀 적게 일하고 덜 벌고,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고 적게 소비하는 삶을 그렸다. 뭐랄까, 한번쯤 인생의 판을 통째로 엎어보고 싶었달까?
그리하여 2년 전 여름, 각각 사직서를 내고 1년 동안 국내여행을 시작했다. 우리가 살 곳을 찾기 위한 긴 여정. 충청도에서 완도까지 수십 개의 집을 구경했다. 이 집은 이래서 싫고 저 집은 저래서 싫어, 조금씩 지쳐가던 중, 지리산 자락 작은 마을에서 우리의 집을 만났다. 별 이유도 없이 맘에 쏙 들던 작고 낡은 집. 당장 계약하고 짐 싸서 내려와 숙소 생활을 하며 집 고칠 사람을 찾고, 설계해 허가를 받고, 팔을 걷어붙이고 함께 고치는 데 반년이 걸렸다. 우리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가끔 웃는다. 어찌 그토록 무모할 수 있었는가, 하면서.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역시 먹고사는 문제다. 당장 최소한의 수입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가 마련한 장치는 아래채를 독채 민박으로 빌려주는 일이다. 이 작은 마을 구석에 누가 찾아올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쉼을 필요로 하는 이들은 많았다. 도시인들이 이곳에 숨어들어 지친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쉬다가 돌아간다. 남편이 만든 물건과 함께 귀여운 시골 물건을 모아다가 온라인에 5일장도 여는데, 그것또한 소소한 수입이다. 사람들의 두 번째 궁금증은 거기서 둘이 하루 종일 뭘 하느냐는 것. 기대했다면 미안한 말이지만, 별것 없다. 민박 예약이나 5일장 구매 연락을 기다리고, 식재료를 배분해 식사를 준비하며, 남편은 물건을 만들고 나는 가끔 글을 쓴다. 마당의 꽃과 나무를 가꾸고 조그만 텃밭을 일군다. 산책을 하고 툇마루에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한다. 저녁이 되면 뉴스나 야구를 보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 알람 없이 눈 떠질 때까지 자고, 잠이 깨면 일어나 커피를 마신다. 말 그대로 별일 없는 생활이다.
이대로라면 굶어 죽지 않을까 불안해하던 첫 겨울이 지나고, 봄이다. 매일 아침 봄이라는 계절에 찬사를 보낸다. 작년 11월 화단에 심은 구근이 땅속에서 모진 추위를 이겨내고 5개월 만에 새하얀 튤립을 피웠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내가 태어나서 경험한 가장 강렬하고 아름다운 신비 체험이다. 그뿐인가, 겨우내 죽은 줄만 알았던 수국의 앙상한 가지는 어젯밤 내린 봄비를 보약 삼아 오늘 아침 새싹을 틔우고, 목련나무는 제 있는 모든 힘을 다해 꽃망울을 펑펑 터뜨린다. 초보의 눈에는 잡초들의 성장마저 감탄스럽다. 만약 어떤 이유에서든 우리가 이곳에서 살아남는 데 실패한다면 그땐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서울로, 어쩌면 다시 도시로 가게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아직 젊으니 괜찮다는 입장이다. 둥지를 떠나 스스로 선택한 대로 삶을 설계해보았는데 뭔들 못하겠는가, 박력 넘치는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도 여기서 빈둥거린다. 사이좋게, 가끔씩 불안해하며. 글|김자혜(프리랜서)


#4인 가구
#밴드 멤버들 #적산가옥

나를 포함한 네 명의 남자들과 큰 강아지 루피는 2년 가까이 함께 살고 있다. 집은 구한말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식 적산가옥으로, 용산 갈월동 일본인 집단주거지 주택 중 하나다. 적산가옥은 일반적인 집의 구조와 다르다. 일본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전통 주택과 비슷하달까? 집 1층의 평면도를 보자면 정사각형 모양의 큰 집 안에서 십자로 배열된 미닫이문이 공간을 거실, 부엌, 큰방과 작은방, 이렇게 네 군데로 나누는 모양새다. 미닫이문으로 연결된 공간들. 그 말은 문을 열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일을 반복하는 것만으로, 집 안에서 360도 회전을 계속할 수 있다는 소리다. 큰방에서 부엌으로 가려면 작은방을 거치거나 거실을 거쳐가야 한다. 이런 집에서 둘은 1층의 방을, 또 다른 둘은 2층의 큰방을 함께 사용하며 산다.
처음 이곳에 입주했을 때는 잔뜩 들떠 있었다. 이 집 식구 중 셋은 유기농맥주라는 밴드를 함께하는 사이다. 우리는 ‘공동체 생활’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종종 입에 올렸고, 한집에서 이런저런 작업을 할 생각으로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함께 사는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 매력적이라고 여겼던 오래된 집 건물부터 난관이었다. 기록적으로 추운 어느 겨울 날, 보일러가 작동을 멈췄다. 변기물이 얼어붙을 정도였다. 집에 들어와보니 친구들이 수건을 뜨겁게 적셔 보일러 관을 녹이는 중이었다. 나는 말없이 휴대폰으로 보일러 관 위의 조명을 비추어줬다. 동파 예방을 위해 온수를 좀 틀어놓고 외출했다 돌아온 날에는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고, 집주인이 대강 바른 페인트가 껍질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런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순간 운 나쁘게 집에 있던 사람이 낑낑대며 고군분투했다.
집의 이런저런 요소들은 사라지거나 교체됐다. 시야를 차단해줄 만큼 두툼한 유리로 된 미닫이문은 어느 순간 유리 없이 나무틀만 남아버렸다. 종종 공연 후 친구들이 놀러 와 술을 마실 때마다 꼭 유리가 깨지거나 사라진 탓이다. 결국, 작은방에서 자려고 누운 친구의 눈에 나무 문틀 너머로 큰방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 상황이 연출됐다. 말이 문이지, 문도 아니다. 최근 PTA의 음악 다큐멘터리 <주눈(JUNUN)>을 큰방에 모여 다 같이 본 적이 있는데, 먼저 자겠노라 작은방으로 들어간 친구는 결국 누운 채로 저 멀리 바라보이는 다큐를 끝까지 감상했다. 누워있던 그 친구는 다큐가 끝나자 맥주를 들고 다시 건너왔고, 우리는 다큐에 취해 술병을 들고 춤을 춰댔다. 루피도 날뛰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만취해서 잠이 들었다. 어느 순간 우리 생활은 이런 식이 되었다.
함께 살아보니, 우리는 생각만큼 서로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어떻게 서로에게 관여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여럿이 사는 집이니 친구들이 자주 찾아왔는데, 대부분 거실에 모여 앉아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2층 방을 쓰는 나는 아래에서 툭하면 소란스러운 소리가 밤새 울려 도통 잘 수가 없었다. 친구들을 욕하기 시작했고, 적산가옥의 공간 구조를 탓했다. 이 집의 특이한 공간 구성 방식이 우리 삶에 계속해서 큰 영향을 주는 듯했다. 좋든 싫든 2년간 이곳에서 수많은 상황에 놓였다. 함께 사는 네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거나 혐오했고, 보듬어주다가도 속으로 욕했으며, 집을 나섰다가 돌아오기를 되풀이했다. 함께 살기 시작하며 공식적으로 정한 생활의 규칙은 희미해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짙은 영향을 주고받는 일들이 그 규칙을 대신했다.
언젠가 친구들과 둘러앉아 이런 주제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공동체란 꼭 한지붕 아래서 존재해야 할까?’ 우리는 함께 작업을 하고, 친구이고, 지속적인 생활을 공유한다.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공존이 아니더라도 함께 시간을 쌓아가며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야말로 공동체의 필수 조건 아닐까? 이런 질문을 하게 만든 이 집에서의 생활을 소재로, 요즘 나는 도시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신기한 점은 같이 사는 친구들이 해주는 조언과 어려운 영문 서적에 나오는 이야기가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나 관심 가질 법한 내용을 친구들은 이미 체험으로 느낀 것이다. 공간이 탁월하고, 비용이든 사람이든 그곳을 운영할 만한 구성원의 자격이 갖춰진다면, 한 공간 속에서 공동체를 가꾸는 것도 이상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올해가 가기 전, 보증금을 돌려받고 각자 살 만한 집을 찾아나설 것이다. 이사를 가면 갈월동 이집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루피가 매일 보고 싶겠다. 글|함석영(‘유기농맥주’ 기타리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 과정)


#셰어하우스
#다종다양 망리단길 #성소수자들만의 집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로 뜬다는 망리단길. 4인 가족, 노인들, 청년 1인 가구들이 섞여 살며, 작지만 힙한 새 가게들과 활기 넘치는 재래시장이 어울려 있는 다종다양한 망원동이다. 나는 레즈비언이며 게이, 바이 섹슈얼 등 성소수자들과 함께 망원동에서 산다. 함께 주택협동조합과 만든 ‘함께주택 2호’, 우리는 이곳을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를 붙여 ‘무지개집’이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무지개집은 6명의 1인 가구 셰어하우스 한 층, 게이 커플 세 집, 레즈비언 커플 한 집, 그리고 각 집의 고양이 다섯 마리가 어울려 사는 5층짜리 공동주택이다. 1층에는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용 거실과 주방이 있다. 1층 한쪽에는 거주자 두 명이 동업해 만든 자연주의 도시락가게가 있다. 바빠서, 귀찮아서 잘 챙겨 먹지 못하고 조미료 가득한 배달 음식과 가공 음식이 지긋지긋해서 만든 곳이다. 이따금 내려가 싼값에 건강한 밥상을 받고 수다를 떠는 사랑방이기도 하다. 흥이 넘쳐서 ‘흥다방’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는 왜 구태여 모여 살까. ‘공동 생활’은 싫은 점이 있어도 서로를 서로에게 맞춰나가야 하는, 생각만 해도 질척거리는 것 아닌가. 성소수자들은 익명성을 원한다. 내가 여자와 함께 손잡고 다니든 뽀뽀를 하든, 남들에게 의미 없는 타인이기를, 무관심을 바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적당한 연결망 또한 필요하다. 게이 커플이 서로 허벅지를 베고 누워 TV를 보면서도 다른 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편안한 집. 하루를 살고 들어와 내가 밖에서 꺼내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는 집. 고양이가 울어도, 한껏 목청 높여 끼 부리며 웃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 그런 집. 이곳에서는 여자가 담배 피운다고 노려보는 사람도 없고, 게이들은 내가 노브라를 한들 야릇하게 쳐다보지 않는다. 그야말로 여자 사람으로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안전한 집이기도 하다. 1층 현관에 들어서면 신발을 벗고 실내 슬리퍼로 갈아 신는다. 각자의 집 바깥 또한 편안하게 왕래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서다. 가끔 고양이들을 풀어놓고 산책을 시킨다. 그럼 ‘그 집 고양이 여기서 잘 놀고 있다’는 인증샷이 거주자들의 단체 카톡방에 뜬다.
무엇보다 이 집은 거주자 모두의 출자금으로 지었기 때문에 누가 나가라 할 일도, 보증금을 몇천 올려달라 할 일도 없는 우리 집이다. 동성 커플들이 부동산을 다닐 때, 혹은 집주인에게 “너희들은 무슨 관계냐”라는 질문을 받을 때 “친구예요”, “언니예요”, “친척이에요”라고 둘러댈 걱정도 덜었다. 집에 들어갈 때 둘이 꼭 잡던 손을 놓아버려야 할 일도 없어졌다. 성소수자끼리 모여 산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알 수 없을 만큼 숨통 트이는 경험이다.
우리는 나름의 시트콤을 만들면서 산다. 한번은 안전하게 살자며 인근 소방서 대원을 모셔 소방훈련을 받았다. 소방관 ‘아재’가 농담이랍시고 게이 두 명을 가리키며 “인공호흡을 남자끼리 하면 좀 그러니까”라고 한다. 레즈비언인 나와 게이인 한 친구를 가리키며 둘이 인공호흡을 하는 게 좋겠단다. 그 소방관의 의도와는 다르게,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나는 내 여자친구가 다른 여자에게 인공호흡하느니 게이들에게 인공호흡을 해줬으면 좋겠다. 누군가 우리 이야기를 웹툰으로 만들어줬으면 하는데, 그렇게 된다면 꼭 이 인공호흡 장면을 넣고 싶다. 그리고 무지개집 안의 이런 이야기들이 무지개집 이웃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길 바란다. 언젠가 집 밖에 무지개 깃발을 걸어도, 게이 커플들이 아이를 안은 채 서로 손잡고 있어도, 사람들이 ‘망원동은 역시 다종다양한 동네구나’라며 흐뭇하게 지나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꿈꾼다. 글|정현희(레즈비언, 여성학 연구자)


#1인 가구
#떼촌 #제주도 #느슨한 공동 생활

나는 시골에서 자라 도시를 향한 동경이 컸다. 대학교 졸업 후 취업을 핑계로 서울에 올라와 15년 동안 복잡하고 불안한 시간을 꾸역꾸역 견뎌낸 원동력도 거기서 비롯됐을 것이다. 일과 시간이 지배하는,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모른 채 도시살이를 하는 무리에서 낙오되지 않으려 애쓰는 삶. 그러다 5년 전, 여성 친구 네 명과 같이 밥을 먹는 식구로 한집에 사는 경험을 하면서 다른 삶에 눈뜨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여 살며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일을 하면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회사를 그만두고 늘 가고 싶었던 쿠바로 3개월간 여행을 다녀오는 용기도 생겼다. 자연을 사랑하고 삶에 만족하는 쿠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자연스레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는 거지?’
질문을 품고 귀국해 주변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던 중 비슷한 생각을 한 여섯 명이 뭉치게 됐다. 1년 동안 지속된 고민, 그리고 제주도에 내려가 함께 살자는 결론. 2015년 3월, 우리는 제주도 저지리 마을에 ‘떼촌’(함께 모여서 내려오기)하여 자리를 잡았다. 각자 오롯이 독립된 가구로 살지만 서로 간의 집이 가까운 형태다. 현재 여섯 가구 총 10명이 한동네에 살고 있다. 사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외지인이다. 외지인이 어딘가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기존에 살던 사람들과 삶의 방식이 다른 데서 오는 이해와 오해의 시간을 거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선 함께 이주한 친구들과 생활의 전반을 공유하는 일이 중요했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포틀럭으로 밥을 먹으며 자잘한 정보를 나누고, 누군가에게 급한 일이 생겼을 때는 손을 보태기도 하며 느슨한 형태의 공동 생활을 한다. 각자가 도시인이던 시절, 누구는 회사를 운영했고, 누구는 요리사로 일했고, 또 다른 이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이기도 했다. 서로가 가진 능력이 다르니 삶의 터전이 새로운 만큼 교류하는 이야기도 색달랐다.
여자 혼자 살 집을 구한다는 소리에 딱히 반기지 않던 임대인은 함께 내려온 친구들과 동네 시세보다 조금 더 지급하겠다는 말에 안심하고 집을 내주었다. 옆집 건물과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일 것, 욕실과 화장실이 집 안에 있을 것, 방이 2개 이상일 것. 내가 집을 구하며 신경 쓴 부분이다. 서울에 살 때, 창문 너머로 옆집이나 앞집이 바로 보이는 현실이 싫었기 때문이다. 금능으뜸원 해변과 가까운 지금 집은 마당도 있고 자연 풍광 역시 좋다. 나는 제주도행을 택하기 전 셰어하우스 경험을 통해 집이라는 공간과 더불어 사는 생활이 삶을 얼마나 안정되게 만들어주는지를 깨달은 사람이다. 그래서 누군가도 나와 같은 느낌을 일시적이나마 가질 수 있도록, 남는 방을 몸과 마음이 지친 여자들에게 내줘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과도한 노동으로 시름시름 앓는 분들, 이곳에서 편안한 시간 보내다 가시라.’ 까사데미애(미애네 집)라 이름붙인 이 집엔 가끔 여행 겸 휴식차 오는 여성들이 함께한다.
제주는 아름다운 대신 바람이 많이 불고 기름값과 전기세가 비싼 편이다. 고정적인 수입을 충당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다시 일도 시작했다. 일하는 삶에 있어서는 예전과 같은 맥락이지만, 이제는 퇴근 후 한라산이 바라보이는 집에서 쉬고, 동네 친구들과 모여 야외에서 밥을 먹는다. 집 안에서만 키우던 고양이는 쥐를 잡아올 정도의 용맹한 고양이가 됐고, 곧 출산을 기다리는 고양이도 곁에 있다. 집이란 내가 어떤 인생을 살아갈지 반영하는 공간이 아닐까? 좁다, 넓다, 혹은 집세가 싸다, 비싸다의 개념이 아닌 ‘나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를 질문하게 만드는 곳. 제주도의 새소리는 좋지만 매서운 바람 소리는 무섭고, 자연이 좋지만 때로는 암흑 같은 어둠이 두렵다. 내가 선택한 삶에는 마땅히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과 굳은 결심도 필요하다. 누군가 연고 없는 외지에서 사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본다면, 그래도 나는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고 말하겠다. 글 |김미애(제주올레사무국 후원사업팀장)


#5인 가구
#삼대가 함께 #조카 폭행에 시달리는 고모

“삼대가 같이 사는 게 부동산 트렌드야.” 어느 날, 오빠의 선언 같은 한마디가 있었다. 그 무렵 우리 가족은 어느 때보다 본의 아니게 끈끈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아빠가 병으로 돌아가신 후 얼마 안 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온 가족이 모여 밥 한 끼 하기가 쉽지 않았던 지난날이 불쑥 떠오른 탓이기도 했다. 회사와 가까운 동네에서 3년째 유유자적 독립 생활을 즐기던 나, 집에 혼자 남게 된 엄마, 당시 백일 좀 지난 조카를 둔 오빠네 부부. 이렇게 세 가구가 흩어져 있는 구도에서 우리 집 장남은 지지고 볶으며 함께 사는 가족의 청사진을 그렸다. 우선, 엄마와 내가 합쳤다. 몸과 정신이 지친 우리는 아빠의 부재와 조카의 등장으로 집안 구성원이 재편된 새 시대를 앞두고 고요하게 쉴 시공간이 필요했다. 오빠의 청사진이 실현된 건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흘러 관계자 모두가 새 시대에 웬만큼 적응한 후다. 가구와 가구가 합치는 개혁은 순차적으로 이뤄진 셈이다. 유아를 포함한 5명이 한 집에 기거하는 챕터를 연지 10개월. 이사를 앞두고 오빠는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트렌드세터가 되기엔 늦었지만, 잘 살아보자.”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였던가? 삼대가 함께 사는 집에 껴있는 철부지 미혼 시누이의 존재가 미끈한 면에 튀어나온 못자국처럼 거슬리곤 하는 이야기. 현실에서는 맞벌이 부부의 육아 문제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해 아이를 돌봐줄 친할머니 혹은 외할머니가 함께 사는 집이 늘었다지만, 이 중 미혼 형제가 포함된 경우는 얼마나 될까? 엄마 에겐 시집 안 간 딸, 며느리에겐 그 어떤 수식어 없이 타이틀만으로 흠칫할 시누이로서, 나는 이 집의 엑스트라 구성원이자 언젠가 풀어야 할 숙제 같은 존재일 것이다. 다행히 우리 집엔 사돈과 8촌까지 챙기는 대가족 문화에서 자란 동갑 짜리 새언니가 있다. “시댁 식구는 님의 가족이 아니에요. 남편과 자식만 님의 가족이라니까요?” 주부들이 들락거리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런 식의 댓글을 수없이 목격한 후, 나는 이 구역의 천연기념물인 새언니를 보살이라고 생각하며 적응해갔다.
개혁과 화합을 향한 길에 뒤따르는 건 형이상학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살림살이를 합친다는 말과 같다. 에세이 작가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시키기>는 독서광끼리 결혼하고 서재를 합치면서 벌어지는 지난한 소동을 묘사한다. 우리 집도 한바탕 소동을 치렀다. 전생에 당나귀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이고 지고 사는 짐이 많던 우리 식구, 엄마보다 손이 더 큰 새언니의 살림이 합체하는 과정은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없는 잡동사니 수집가들이 혼돈의 몸부림을 치는 전위극이었다. 그 무대에서 이 집의 하숙생처럼 살기를 바란 나, 그리고 엄마는 대문과 가까운 쪽 방들에, 오빠네 부부의 공간은 대문과 가장 먼 위치에 자리 잡았다. 집의 중추적 공간으로서 안락한 휴식의 장이 되어야 하는 거실은 현재 세 돌 좀 지난 남자 조카의 놀이터다. 한지붕 체제를 앞두고 온갖 시뮬레이션을 하게 만든 공포의 근원. 내 생활을 훼방놓으러 온 나의 구원자.
조카와 한집에 살면서, 나는 전쟁터로 뛰어든 저널리스트가 그렇듯 육아의 비애를 초근접 거리에서 지켜보거나 그 한가운데로 휘말렸다. 예뻐 죽겠는 마음과 그 만큼 힘든 상황이 비례했다. 조그만 생명체가 하는 짓들이 하도 신기해 DNA와 본성, 사회생물학 책 따위를 들춰보는 기행도 저질렀다. 물론 지적인 호기심보다 자주 일어나는 일은 조카가 나라 잃은 사람처럼 통곡하는 탓에 불쾌한 기분으로 잠을 깬다거나, 야근 후 쓰러질 듯한 몸을 안고 집에 들어갔더니 장난치기 좋아하는 조카가 내 방문을 잠가 놨다거나, 그 밖에도 수백 가지다. 지난 겨울부터 이상하게 내 사소한 물건이 하나둘씩 사라진다 했더니, 얼마 전 조카가 자기만의 비밀 공간에 내 슬리퍼 한 짝과 이어폰과 기타 등등을 은닉한 사실이 발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미혼에게 조카가 있다는 건 꽤 괜찮은 사실이다. 사람은 사랑을 받기도 해야 하지만, 사랑을 베풀고 보살피며 살기도 해야 무언가 충족될 테니까.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거나 식물 하나를 기를 때도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반면 조카는 내가 나보다 약한 대상에게 애정과 관심을 쏟을 수 있는 대신 온전히 책임질 의무에서는 비켜나 있는 존재다. 그런 존재와 매일 부대끼며, 나는 그저 노처녀였다면 알지 못했을 또 다른 세계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셈이다. 종일 기운 넘쳐나는 남자아이에게 내가 좀 맞고 사는 것쯤이야.
보편적이지 않은 가족 구성원으로 사는 생활은 이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주로 수면 밑에 있었을 감각을 자주 건드리는 일과 비슷하다. 이 집의 어른이자 훌륭한 보모(혹은 육아 노동자)인 나의 엄마는별탈 없이 늙어갈 수 있을까? 피를 나눈 가족끼리 어쩌면 이렇게 다르고 또한 무섭도록 닮은 걸까? 워킹맘 그거 과연 아무 여자나 할 수 있을까? 잠깐, 나는 <쇼생크 탈출>의 주인공처럼 탈출을 도모해야 마땅한 것 아닐까! 여름이면 둘째 조카가 태어난다. 또 남자아이다. 요즘 이 집에 기대 반 두려움 반의 기운이 감돈다. 새로운 구성원이 생기는 이상 언젠가 방 하나를 내줘야 할 것이다. 끈끈한 가족애를 경험하다 적당한 시점에 제 짝을 만나 퇴거하길 바란 이들의 청사진 속에, 나의 주거 미래는 불투명하다. 내 재정 상태로 절대 구할 수 없는 좋은 아파트와 아랫것들에게 밥을 대령해주는 엄마와 귀여운 조카가 함께하는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다 고백하면, 그들은 기겁할까? 글|권은경 (<더블유> 피처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