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데릭 말과 알버 엘바즈의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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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점이 없을 것만 같은 두 남자가 만나 탄생시킨 향수 ‘슈퍼스티셔스(Superstitious)’는 추상적인 예술 작품으로 평가받는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 향수의 가치를 오롯이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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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를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인식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운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Editions de Parfums Frederic Malle)이 드리스 반 노튼과의 협업 이후 디자이너와의 두 번째 협업을 발표했다. 패션 아이콘이자 디자이너인 알버 엘바즈 (Alber Elbaz)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랑방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는 동안 패션계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은 그였기에 향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프레데릭 말과의 협업은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평소 여성을 더욱 아름답게 보이게 해주는 옷을 짓는 알버 엘바즈를 존경하던 프레데릭 말이 자신의 친구이자 알버 엘바즈와도 친분이 있는 엘리 탑(Elie Top)에게 그의 번호를 물어 점심에 초대한 것이 그들의 첫 만남이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프레데릭 말과 알버 엘바즈는 자신들에게 흥미로운 접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술은 권위에 대한 저항이며, 경계를 확장해가는 작업이고, 무엇보다 자신의 직감을 믿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성과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지만 기회나 우연처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육감(Sixth Sense)과 미신(Superstition)을 존중한다는 면에서도 그랬다. 자신들에게서 이렇게 커다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둘은 그렇게 협업을 결정했다. 알버 엘바즈는 프레데릭 말에게 드레스와 같은 향이 나는 향수를 만들어달라 부탁했다. 프레데릭 말은 오랜 친구이자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의 대표 향수 중 하나인 ‘포트레이트 오브 어 레이디’의 조향사 도미니크 로피옹(Dominique Ropion)과 함께 그에 걸맞은 향을 창조해냈다.
두 사람이 강조한 ‘미신적인’ 부분은 향수의 이름(Superstitious:미신적인)은 물론 보틀 디자인과 향에 이르기까지 ‘슈퍼스티셔스’의 모든 부분에 반영됐다. 차콜 블랙에 골드 캡으로 이뤄진 보틀 앞면에는 키네틱 아트의 선구자인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눈이 그려져 있다. 알버 엘바즈에 따르면 이는 사람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눈인 ‘식스 아이(Sixth Eye)’를 의미한다. 향 또한 클래식하지만 명확하게 한 가지로 형언하기 어렵다. 재스민과 장미를 넣었지만 알데하이드의 금속성으로 꽃향기가 나지 않도록 만들었고, 라브다넘과 다량의 파촐리, 유향, 그리고 아주 많은 양의 베티베르를 넣음으로써 ‘그랜드 알데하이드 플로럴(Grand Aldehyde Floral)’이라는 향을 창조했다. 프레데릭 말은 ‘슈퍼스티셔스’의 향에 대해 마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같다고 설명한다. 각 악기들이 다른 소리를 내지만 오케스트라로 모였을 때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듯, 원료의 개별적인 향을 맡을 수는 없더라도, 하나로 합쳐지면 놀라운 향으로 마무리된다는 의미다.
같은 향수를 쓰더라도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그 향은 미묘하게 달라진다. 향수가 자아내는 향기에 사람의 살결에서 나는 고유한 향이 섞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슈퍼스티셔스’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하나의 추상적인 예술 작품을 목표로 만들어 더더욱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이 향수는 어떤 사람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상투적인 말 대신 프레데릭 말이 ‘슈퍼스티셔스’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끝으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저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것도 강요하고 싶지 않아요. 사람들이 ‘슈퍼스티셔스’의 향을 맡고 자신만의 세상을 떠올리기를 바랄 뿐이죠. 이 향수를 통해 자신의 직감을 믿기를 바랍니다.”

알버 엘바즈가 ‘슈퍼스티셔스’를 디자인하며 그린 스케치.

‘슈퍼스티셔스’를 향한 알버 엘바즈의 애정을 옅볼 수 있는 레터.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과 협업을 하게 된 계기는?
알버 엘바즈(이하 알버) 프레데릭 말이 협업하자고 제안했을 때, ‘왜 나를?’이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프레데릭 말과의 대화에서 찾았다. 우리는 같은 부류의 사람을 좋아하고, 같은 향수를 좋아하며, 같은 음식을 좋아한다. 비슷한 ‘취향(Taste)’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프레데릭 말(이하 프레데릭) 알버 엘바즈에게 스무 가지 정도의 버전을 보내면, 어느 순간 둘이서 동일한 두 가지 버전을 선택할 만큼 취향이 비슷했다.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과 작업한 다양한 조향사 중, 특별히 도미니크 로피옹(Dominique Ropion)과 ‘슈퍼스티셔스’를 작업하기로 결심한 이유가 있나?
프레데릭 ‘슈퍼스티셔스’의 향에 대해 생각하자마자 도미니크 로피옹이 떠올랐다. 그는 건축가와 같은 방식으로 향을 만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미니크 로피옹과 알버 엘바즈는 닮은 부분이 많다. 여성을 사랑하고, 자신들의 작품보다 여성이 더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이다.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의 향수는 조향사를 섭외하고, 향을 만들고, 이미지를 부여하는 과정을 통해 제품을 완성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 향은 전적으로 조향사에게 맡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이번 작업을 할 때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하다.
프레데릭 알버 엘바즈와의 협업을 결정한 뒤 조향사인 도미니크 로피옹과 함께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제품 패키지나 이미지 결정을 앞두고 의견을 조율하는 데도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우리의 취향이 비슷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슈퍼스티셔스’ 작업을 마무리할 때, 나는 알버 엘바즈와 도미니크 로피옹 사이에서 소통을 돕는 역할만 담당했다. 물론 그 안에서 나의 취향이 반영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알버 ‘슈퍼스티셔스’는 드레스를 표현한 향수지만, 드레스를 만드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나는 프레데릭 말에게 드레스와 같은 향이 나는 향수를 만들어달라 부탁했고, 프레데릭 말과 도미니크 로피옹은 내가 상상하는 향을 만들어냈다. 그들이 나의 말을 향으로 변형시키는 모습은 마치 마법과도 같았다.

‘슈퍼스티셔스’ 디자인의 출발점은 어디에 있었나?
알버 향수 보틀의 디자인은 협업 과정 중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결정된 부분이다. 프레데릭 말은 블랙 보틀에 금색 눈을 제안했고, 이 금색 눈은 직관력과 미신을 상징한다.

협업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프레데릭 협업 과정에서 정말 많은 추억이 생겼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알버 엘바즈가 프랑스 최고의 명예인 레지옹 도뇌르 세레모니(Legion D’Honneur Ceremony)에서 훈장을 받은 것이다. 그 세레모니에서 나와 그의 협업을 알렸다.
알버 프레데릭 말과 협업하는 모든 과정이 나에게는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작업을 마친 후 그에게 협업 자체가 너무 쉬웠다(It was Almost too Easy)고 농담을 던질 정도였으니까. 프레데릭 말과의 작업 덕분에 나의 직감을 활용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얻었다.

‘슈퍼스티셔스’를 통해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프레데릭 사람들이 이 향을 맡고 자신만의 세상을 떠올리기를 바란다. 그들에게 어떠한 것도 강요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자신의 직감을 믿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알버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의 협업은 큰 위험을 안고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을 안고 나와의 협업을 결정한 프레데릭 말의 모습이 곧 우리가 만든 ‘슈퍼스티셔스’의 정체성과 같다고 생각한다. 트렌드를 따르기보다는 직감대로 밀고 나가는 것이 ‘슈퍼스티셔스’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향수는 당신이 어떤 곳에 속하는지 나타내지 않는다. 그저 당신의 일부가 될 뿐이다. 향수는 당신이 사랑하는 기억과 당신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순간과 관련이 깊다. ‘슈퍼스티셔스’를 만드는 과정을 돌이켜보니, 모든 시간이 나의 행복한 순간을 담아내는 과정이었다.

대규모 자본을 투자한 패션 하우스의 향수가 등장하면서, 마케팅을 거의 하지 않으면서, 소량만 출시하는 향수 브랜드가 점차 희귀해지고 있다. 더군다나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은 오트 퍼퓨머리의 선구자가 아닌가. 처음 시작했을 때와 달라진 상황은 어떻게 느끼는지, 이러한 시대에 대처하는 자신만의 방식이나 비전이 궁금하다.
프레데릭 향수 문화가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미디어에서 온라인을 통해 향수 문화에 대해 언급하고, 많은 이들이 향수를 두고 대화를 나눈다. 사람들은 다섯 개의 싸구려(Junky) 향수를 구매하는 것보다 제대로 만든 향수 하나를 구매하는 게 더 현명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이 이러한 변화에 한몫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15년 전 처음 브랜드를 시작했을 때와 같이 우리는 늘 좋은 향수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15년 전과 다른 점은 사람들이 점점 더 자연 원료를 많이 사용하고 유행이 아닌 향의 디테일에 집중하는 오트 쿠튀르 퍼퓸에 관심을 가진다는 사실이다. 그들 덕분에 우리는 전보다 더 우리가 추구하는 바를 자유롭게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

Editions de Parfums Frederic Malle 슈퍼스티셔스

Editions de Parfums Frederic Malle 슈퍼스티셔스
에디션 드 퍼퓸 프레데릭 말과 알버 엘바즈의 협업으로 탄생한 향수. 무화과와 복숭아 껍질의 달콤한 첫 향이 지나고 나면 터키시 로즈 에센스와 아이티 베티베르, 파촐리, 머스크 등의 파우더리하면서도 이국적인 향이 느껴진다. 10ml, 7만8천원, 50ml, 28만원, 100ml 39만원.

에디터
김선영
포토그래퍼
EOM SAM CHEOL
PHOTOS
COURTESY OF EDITIONS DE PARFUMS FREDERIC MAL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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