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F/W 패션위크 기간, 파리 로샤스 쇼룸에서 유서 깊은 프렌치 하우스의 헤리티지를 이어나가고 있는 이탤리언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델라쿠아를 만났다. 지난 3월 10일 갤러리아 백화점에 스토어를 오픈하며 한국 패션 시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디딘 로샤스 스토리.

파리 로샤스 쇼룸에서 만난 알레산드로 델라쿠아.

파리 로샤스 쇼룸에서 만난 알레산드로 델라쿠아.

가장 현대적이고 실용적인 터치를 마르셀 로샤스가 남긴 럭셔리한 유산 위에 새롭게 입히고 있는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델라쿠아. 밀라노에서 자신의 브랜드인 N.21 컬렉션을 마치고, 그와 돈독한 우정을 나누었던 프란카 소차니의 추모식에 들른 후 파리로 건너온 그는 마치 긴 여독을 풀 듯, 편안한 미소를 한가득 머금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와 함께 인터뷰에 동석한 밀라노의 홍보 담당자는 그가 완전 ‘패션에 중독됐다’고 이야기했다. 언제나 패션 사진과 매거진,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무엇이든 패션과 연결해 이야기한다는 그. 델라쿠아는 2014년 2월 자신이 디자인한 로샤스의 첫 컬렉션을 선보인 이래, 이 전통의 하우스를 모던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가 만드는 동시대적 로맨티시즘에는 여성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그 무엇이 담겨 있다.

<W Korea> 밀라노과 파리를 오가는 삶은 어떨지 궁금하다.
알레산드로 델라쿠아 시즌 때마다 쇼를 위해 파리에 오지만 이태리 안에서도 로샤스와 내 브랜드를 위해 피렌체와 밀라노를 수시로 옮겨 다닌다. 그래서 내게는 ‘기차’에서의 시간이 무척이나 귀하다. 로샤스가 파리 베이스 브랜드지만 다행히 피렌체에 공장을 두고 일을 볼 수 있게 해줬다. 더할 수 없이 바쁘지만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 브랜드에서 일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기에 그 어느 때보다 패션을 좋아하고 즐기고 있다.

로샤스의 헤리티지를 모던하게 해석하는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로샤스만의 아이덴티티는 여성스러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의 디자인과 맞닿아 있다. 시즌을 거듭하면서 한 단계 한 단계 그 헤리티지를 재해석하며 발전시켜가고자 했다. 고귀하고 럭셔리한 소재를 사용하면서 동시대적이고, 클래식하며, 간결한 실루엣을 만들려 애쓴다. 브랜드 전체의 무드를 단숨에 바꾸기보단, 센슈얼리티를 지닌 나만의 DNA를 하우스에 녹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쿠튀르적 터치로 대표되는 로샤스 하우스를 모던화했다는 패션계의 평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무조건 글래머러스한 슈퍼모델에 레트로 무드를 고수하는 건 컨템퍼러리 패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클래식하면서 심플하고 모던해야 한다는 게 핵심적인 디자인 요소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커머셜한 부분에도 많은 신경을 쓰는 게 사실이다. 프리 컬렉션을 통해 잘 팔리고, 접근 가능한 커머셜 라인을 주로 선보이고, 시즌 런웨이에서는 보다 화려하고 섬세한 쇼적인 디테일에 집중하는 편이다.

R 로고의 다양한 활용도 재미있다. 바로 이틀 전에 선보인 쇼에선 R 로고 장식이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이니셜 R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커다랗게 로샤스라고 쓰인 직접적인 로고 플레이보다는 이니셜을 통한 약간의 컨템퍼러리적 터치를 넣고 싶었다. 나의 두 번째 시즌에서 처음으로 이니셜을 등장시켰는데, 당시만 해도 아주 작은 사이즈의 R을 차용했다. 주머니처럼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말이다. 이후 이니셜이 들어간 아이템의 반응이 좋아, 조금씩 더 커진 R을 티셔츠는 물론 슈즈, 백 등에도 프린트하고 크리스털 장식을 곁들이는 등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리본 디테일도 델라쿠아의 로샤스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리본은 여성다움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한데, 특별히 리본을 컬렉션에 다양하게 등장시키는 이유는?
워낙 리본을 좋아하고 리본에 대한 로망이 있는데, 헬렌 로샤스의 예전 아카이브 사진을 보면서 더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녀의 사진 속에는 언제나 커다란 리본이 있는데, 그 리본을 드레스나 블라우스, 슈즈 등에 악센트 디테일로 적용해봤다. 이번 2017 F/W 컬렉션은 두 명의 여인을 상상하며 만들었다. 바로 이태리 배우인 마리아 아넬리(Maria Angelli), 그리고 마르셀 로샤스의 뮤즈이자 아내 헬렌 로샤스다. 마리아의 귀족적이고 우아한 이미지, 헬렌의 프렌치 터치와 매력을 동시에 섞고 싶었다.

리본 외에 또 좋아하는 것들은?
꽃 프린트, 브로케이드, 가볍고 여성스러운 소재, 그리고 더블 캐시미어. 더블 캐시미어 소재를 코트보다 드레스같이 여성스러운 룩으로 풀어내는 걸 좋아한다.

패션 외에 관심 분야가 있다면?
이탈리아의 1950~70년대 클래식 영화들. 컬렉션을 앞두고 옛 영화를 보면서 영감을 얻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모습도 내게 영감의 원천이 돼준다. 최근엔 인스타그램에 빠져있다. 빠르게 업로드되는 수많은 이미지를 통해 전 세계의 다양한 여성을 만나볼 수 있다는 사실은 참 근사하다.

한국 여성에 대한 생각은?
패션에 호기심이 많고, 많은 이들이 아름다움과 스타일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로샤스에게도 한국은 중요한 시장이고 아시아에서 워낙 영향력도 크기 때문에, 스토어도 오픈했으니 올해에는 꼭 방문해보고 싶다.

당신 사무실의 인스피레이션 보드에는 어떤 이미지들이 붙어 있을지 궁금하다.
어시스턴트가 일주일마다 새로운 이미지와 그림을 업데이트해준다. 그동안 내가 접한 여러 기억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래된 패션 캠페인도 붙어 있고 유르겐 텔러, 스티브 클라인의 사진은 물론, 모델 지젤 번천과 마리아 카를라 보스코노, 프란카 소차니, 카린 로이펠드, 안나 델로 루소 등 내게 영감을 주는 여인들의 사진이 가득하다.

당신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는?
프란카 소차니. 그녀의 부재가 너무 슬플 따름이다. 내가 처음 알레산드로델라쿠아 컬렉션을 선보였을 때부터 나를 지지해준 이가 바로 프란카였다. 전 세계에서 가장 멋진 에디토리얼을 만들어낸 여인이다. 그녀는 살아 있을 동안 모든 내 쇼의 백스테이지를 찾아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캠페인 작업도 함께했다. 내 커리어에 측량할 길 없는 도움을 주고 영감을 줬으며, 언제나 아방가르드하고 시대를 앞서나가는 비전을 가진 여성이었던 프란카가 너무 그립다.

당신에게 ‘여성스러움’이란 어떤 것인가?
애티튜드. 어떤 드레스를 입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드레스를 입고, 자신만의 캐릭터를 강조하느냐 하는 ‘애티튜드’가 곧 여성스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