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경자의 전시, 그리고 화집 두 권은 세계를 두 가지 방식으로 보여준다. 자연의 힘을 아주 느릿하게 관찰한 회화, 그리고 인간들의 표정을 빠르게 포착한 크로키로.

평생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던 존 버거는 <벤투의 스케치북>에서 드로잉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드로잉은 어떤 사물이나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는 아주 귀한 방법입니다”. 다연 이경자에게 크로키는 매일 거르지 않고 몸을 훈련하는 운동이자 자신을 스쳐가는 사람들과의 경쾌한 대화다. 단숨에 포착해낸 인물의 순간 속에는 각기 다른 생김새와 인종, 몸의 선과 면, 표정과 기분이 들어 있다. 그런 한편 습지의 사계절을 변주하듯 다양하게 담아낸 <야습관조> 시리즈의 회화는 담담하게 사색적이다. 100% 닥으로만 만든 한지인 순지 위를 지나간 붓의 자취는 고요한 늪 위로 자라난 풀, 지나가는 바람과 구름을 휘휘 펼쳐놓는다. 신기하게 메마른 겨울도 보이고, 반짝이는 반딧불이도 보인다. 독특한 색감과 질감은 종이에다 드물게 옷칠을 하고, 위에 잘 먹지 않는 먹으로 다시 그려내는 수고에서 나왔으며 더러는 장판을 캔버스로 사용한 작품도 있다. 그런 과정을 떠올려보면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름다운 것은 어렵고 그 아름다움 속에서 꿈꾸는 것은 더욱 어려운 법일 테니까.” <다연 이경자 회화 및 크로키 전>은 5월 15일부터 23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