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하는 첫 전시를 위해 전부를 쏟아부었다는 비주얼 재능꾼 토드 셀비. 그가 얼마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품은 사람인지, <더블유> 코리아가 LA에서 확인했다.

토드 셀비(Todd Selby)

셀비의 LA 집에서. 연못가 주위로 풀이 우거진 집 지하는 정글 같은 분위기다.

토드 셀비(Todd Selby)의 예전 작업을 지금 보면 그다지 새로운 무엇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있다. 셀비 같은 인물이 처음 보여준 이미지에 우리가 그사이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주로 의뢰 받은 사진을 찍던 그는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나 소위 힙스터의 집과 작업실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그의 블로그 ‘더셀비닷컴(theselby.com)’에 올리기 시작했다. 2008년경 시작한 이 셀비 프로젝트로 그는 순식간에 유명해졌다.인테리어 잡지에 인위적으로 멀끔하게 단장한 사진이 등장할 때, 셀비는 우리가 궁금해 할 만한 인물의 사적인 공간을 있는 그대로 포착해 보여줬다. 누군가의 공간 구석구석과 하찮아 보일 수 있는 사물까지 사진과 사진에 더한 일러스트 작업으로 기록한 셀비는 일찍이 흥미로운 시각적 탐험을 선사했다. 타인의 진짜 생활을 훔쳐보게 만드는, 클릭하고 스크롤만 내리면 끝없이 이어지는 탐험. 루이 비통, 나이키, 에어비앤비, 마이크로소프트 등 다양한 분야의 브랜드가 셀비에게 작업을 의뢰했다. 어느 순간 셀비는 집을 떠나 부엌과 음식으로, 또 패션으로 카메라를 향하거나, 단편영화를 만들고 짧은 다큐멘터리를 찍기도 했다. 여전히 유쾌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전진하는 토드 셀비의 국내 첫 전시가 4월 27일부터 10월 29일까지 서울 대림미술관에서 열린다. <The Selby House: #즐거운_나의_집>이라는 제목의 전시에서 셀비는 사진과 일러스트와 영상은 물론, 대형 설치 작품까지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이 전시를 위해 거의 1년 동안 눈떠서 잠들 때까지 ‘내 전부를 쏟아부었다’고 한다. 전시장을 가장한 셀비의 놀이동산이 개장하기 전, 토드 셀비를 LA에 있는 그의 집에서 만났다. 그가 오랜 시간에 걸쳐 고민하고 작업한 결과는 곧 서울에서 확인할 수 있는 만큼, 이번에는 셀비라는 사람과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셀비의 LA 집에서. 연못가 주위로 풀이 우거진 집 지하는 정글 같은 분위기다.

셀비의 LA 집에서. 연못가 주위로 풀이 우거진 집 지하는 정글 같은 분위기다.

<W Korea> 지금 당신이 입고 있는 티셔츠의 고양이 얼굴이 당신 얼굴보다 더 크다.
토드 셀비 고양이 티셔츠를 거의 매일 입는다. 아주 어릴 적 나를 돌봐준 유모 할머니가 늘 고양이 티셔츠 차림이었는데, 그것이 마음속 깊이 각인된 것 같다. 한국에도 전시에 쓸 용도로 티셔츠 10벌을 보내놨다. 지금 옷장에 내가 디자인 한 것을 포함해서 고양이 티셔츠가 40벌쯤 있을걸?

집으로 초대해줘서 고맙다. 독자들을 위해 인테리어 콘셉트를 간단히 소개해줄 수 있나?
얼마 전에 이사와서 정리가 다 안 됐다. 아마 나를 아는 사람들이 상상한 집과 많이 다를 것이다. 나는 작업 할 때도 요소가 많은 걸 좋아하는 맥시멀리스트인데 부인이 미니멀리스트라 집 안에 뭘 갖다 놓지 못하게 한다(웃음).

1966년에 건축됐으니 LA에서는 오래된 집에 속한다.
‘미드 센추리 모던’ 스타일로 지어졌고, 벽면이 거의 유리라서 뭘 걸어놓을 수가 없다. 이것저것 꾸밀 수 있도록 허락된 유일한 공간은 이제 갓 돌 지난 딸의 방이다. 그곳에만 내 작품이 가득하다.

3년 전 어느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기자가 ‘거실은 페이스북과 비슷하다. 사람들은 페이스북에서 오직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늘어놓는데 집 안에서 거실이 바로 그런 장소다’라고 한 말에 동의했더라. 당신은 거실에 들어선 손님에게 어떤 인상을 주고 싶은가?
하하, 재밌는 질문이다. 후… 말했듯이 현재 우리 집 거실은 나란 사람과 매치되지 않는 면이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이렇게 빈 공간이 주는 편안함도 존재한다. 더셀비닷컴을 보면 알겠지만, 그동안 정말 다양한 물건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고 꾸준히 기록했다. 그들을 통해 나 역시 그 많은 사물을 같이 수집한 기분이다. 그런 대리 만족을 느꼈으니 뭘 갖고 싶다는 생각이 줄어들면서 내 일부가 미니멀리즘이 된 것 같다. 작업 스타일과 대조적인 거실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도 재밌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본능대로 거실을 꾸며보라고 하면 분명 뭔가로 가득 채워놓겠지만.

이 집에서 당신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물건들을 꼽아본다면?
유일하게 수집하는 게 책이다. 거의 다 창고에 보관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책은 거실에 둔다. 우선 살바도르 달리의 <갈라 디너(Gala Dinner)>라는 요상한 요리책을 아주 좋아한다. 달리가 자신의 작품 세계처럼 초현실적인 요리와 레시피를 소개하는 책인데 매우 창의적이다. 참고로, 먹을 만한 요리는 못 된다(웃음). 아프리카에서 주로 활동한 사진가 피터 비어드(Peter Beard)의 책도 좋아한다. 그는 콜라주와 멀티 미디어 아트의 달인이다. 특히 <End of The Game>이라는 책을 보면서 일러스트를 통한 스토리텔링 등 많은 영감을 받았다. 또 하나, 콩! 세이셀 섬에서 날아온 세상에서 제일 큰 콩은 정말 아끼는 것이다. ‘코코넛 드 메르(Coconut de Mer)’라고 불리는데 엉덩이처럼 생겼다. 내가 방문한 집에 있길래 너무 갖고 싶어 이베이에서 주문했다. 기이한 것이 왠지 나랑 닮았다.

수많은 집과 작업실을 방문하는 동안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풍경이 있나?
촬영한 곳이 500군데도 넘으니 그 중 하나를 꼽기는 어렵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이태리의 한 무인 여관이다. 내 책 <Edible Selby>에서도 소개했다. 여관 이름은 ‘Inn Without Innkeeper’. 작은 마을의 허름하고 오래된 곳인데 사람들이 쉬다갈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냉장고에 와인과 치즈, 빵이 채워져 있다. 아무도 없지만 가격표대로 양심상 돈을 놓고 가는 시스템. 경치는 아릅다고, 공간은 특이했기에 계속 기억이 난다.

대림미술관 관계자에게 당신은 끊임없이 생각과 아이디어가 솟아나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그것들을 받아내 줄 분수대라도 필요하지 않나? 영감을 발전시켜가는 방식이 궁금하다.
아이디어와 생각이 넘치는 편이다. 그러나 그것을 실현시키는 재료와 시간의 제약이 있으니 선택을 잘해야 한다. 핵심은, 거의 잊어버린다는 것. 많이 생각하는 만큼 또 많이 잊어버리는 와중에 몇 개월이 지나도 자꾸 생각나는 게 있다. 그렇게 계속 나를 괴롭히는 아이디어에 집중한다. 잊어버리는 과정을 통해 현실적으로 발전시킬 아이디어를 걸러내는 셈이다. 그럴 때 한번 도전해본 방식의 아이디어는 되도록이면 다시 써먹지 않으려고 한다. 새로운 일을 좋아해서 작업 역시 사람들의 집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시작해 음식, 패션으로 넘어갔다. 지금은 아트와 일러스트에 집중하고 있다.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있을 텐데, 당신에겐 어떤 것들이 인풋으로 작용하나?
아마도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영감의 원천인 듯하다. 어릴 때부터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다. 인기가 많은 친구보다는 아웃사이더들과 어울렸고. 초등학교 시절 틈만 나면 가필드 고양이를 그리는 친구가 있었다. 인기 없는 괴짜였는데, 나에겐 그 아이가 최고의 히어로였다.

당신의 비주얼 감각과 특성에 영향을 끼친 과거 시간이나 경험이 있다면?
어릴 때 가족과 박물관, 미술관에 자주 갔다. 바스키아의 작품을 보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 주제에 ‘저거 나도 할 수 있어!’라고 막연한 배짱을 가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쑥스럽지만, 그런 태도 때문에 스스럼없이 미술을 대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한다. 너무 전문가가 돼버리면 잘하는 일만 반복적으로 하게 된다. 살짝 모자람이 신선함을 주기도 한다. 중요한 건 예술은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다.

111

서울행을 앞둔 그가 더블유 코리아를 위해 직접 써준 손글씨.

사진과 일러스트 작업을 하면서 곧잘 손글씨를 곁들이는 이유는 뭔가?
처음 사람들의 집을 찍을 때 사진과 함께 이야기도 덧붙이고 싶었는데 글재주가 없어서 간단히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손글씨는 그 내용 외에 쓰는 사람의 캐릭터도 보여준다. 디지털처럼 리터칭하거나 편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고, 글씨를 쓰다가 가끔은 그림도 그리게 되니 그 사람의 특징이 묻어 나온다. 아직도 내 많은 작업에 손글씨가 등장한다.

글을 잘 쓰기 위한 전통적인 팁 중 하나로 ‘명문장 필사하기’가 있다. 무언가를 잘하고 그 감각을 익히기 위해선 잘하는 사람을 모방하는 것도 출발점이 될 수 있어서다. 당신도 창의적인 누군가의 것을 모방하고 흡수 하려고 한 경험이 있나?
사진을 시작하던 시점에는 네덜란드 사진가 리네커 딕스트라(Rineke Dijkstra)를 많이 모방했다. 나도 그녀처럼 정형화된 인물 사진을 주로 찍었는데, 그렇게 오래하고 잘하게 되다 보니 모든 사진이 똑같아 보였다. 블로그를 만들고 셀비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조명도 신경 안 쓰고, 빛이 날리면 날리는 대로,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자연스러운 조건 자체를 그대로 이용했다. 모방을 통해 기술을 내 것으로 만든 후, 그것을 흐트러트리면서 창의력이 나온 것 같다. 더셀비닷컴이 순식간에 인기를 얻은 것도 신선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인테리어 잡지들은 엄격하게 정돈된 이미지만 보여주는데 나는 사람 사는 집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으니 기존과 달랐다. 건전한 모방은 변화와 성장을 일으키는 동력이다.

SNS 인플루언서들이 말 그대로 영향력을 키워가던 초창기, 기자들의 역할이라고 인식되던 자리를 파워 블로거가 대신하면서 언론과 잡지사 등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일이 있었다. 당신 역시 ‘더셀비닷컴’을 통해 유명해진 사람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의견을 들려줄수 있나?
내가 처음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 언론은 나를 패션 블로거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했다. 누군가는 스트리트 스타일 블로거라고 불렀다. 당시엔 워낙 새로운 트렌드였기 때문에 나를 뭐라고 부르든 크게 상관은 없었다. 나는 지금의 SNS 문화와 관련된 모든 것이 태동하던 시기부터 유명 블로거들과 자주 만났고, 그들이 폭발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되는 과정을 생생히 목격했다. 처음 내 입장에서는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에 잡지사나 언론 같은 ‘게이트 키퍼들’이 너무 많았다. 이젠 매체가 다양해졌으니 내 프로젝트를 예전보다 쉽게 노출할 수 있고, 자연스레 전통 미디어 매체들과 경쟁 구도가 형성된 것 같다. 그에 따른 문제도 있겠지만, 서로가 발전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보다 많은 사람들의 니즈나 틈새 시장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최근 ‘지겹다’고 느낀 게 있나? 아이템, 사람, 정치 사회 문화 현상 등 무엇이든.
싫증을 잘 안 느끼는 편이다. 뭔가를 지루하다고 생각해본 기억이 없다. 내 일도 마찬가지고.

그럼 최근 흥미를 느끼는 이슈는 뭔가?
두말할 것 없이 대림미술관에서 열릴 전시. 나를 돌아보는 회고가 아닌, 새로운 것에 도전을 많이 하는 전시라서 한동안 다른 흥미를 가질 여유가 없었다. 단 한 명의 콘텐츠로 미술관을 채운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전시를 찾을 관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관객이 무엇보다 환영받는 기분이 들면 좋겠다. 내 전시를 통해 영감을 얻고, 일상에서 얼마든지 예술에 도전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기길 바란다. 사진, 일러스트, 조형물, 설치 미술 등 다방면에 걸친 전시를 통해 전문가의 벽을 느끼기보다는 아마추어적 열정을 봐줬으면 좋겠다. 누구든 내가 어릴 때 미술관에서 말한, ‘저거 나도 할 수 있어!’를 외치길 바란다.

서울에서 해보고 싶은 게 있나?
서울보다 제주도에 너무나 가보고 싶다! 언젠가 서울에 머무를 때 제주 음식점에 간 적이 있는데 완전 취향 저격이었다. 해산물과 나물로 생애 처음 느껴보는 맛을 체험했고, 달면서 짭짤했던 오렌지주스 비슷한 것도 못 잊고 있다. LA에는 제주 음식을 하는 식당이 아직 없는 듯하다. 서울에서는 관광객이 잘 모르는 골목을 누비면서 특이한 숍을 구경하고 싶다. 지난 방문 때도 SNS를 통해 알게 된 소공동의 ‘아티스트 프루프’라는 숍에 갔다. 신기한 물건이 많고, 주인이 트럼펫을 연주해줘서 인상적이었다.

대림미술관 전시 주제가 ‘셀비의 집’이다. 당신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인가? 집은 어떤 공간이어야 할까?
사람이 중요하다. 물리적인 건축물 자체도 중요하겠지만, 집이란 사람이 그 안을 채우면서 완성되는 곳이다. 내 전시에서도 그 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거실 통유리창으로 따뜻한 햇살이 기분 좋게 비친다. 당신에게 가장 완벽한 하루란 어떤 날일까?
아침에 일어나 딸과 시간을 보내고, 가족과 함께 식사하며 작품 활동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며 사진 찍는 하루. 일하지 않을 때는 주로 좋은 음식을 찾아다니거나 하이킹을 한다. LA에서 성장해 뉴욕에서 10년 넘게 일하다 최근 다시 LA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햇빛 가득한 LA 날씨를 만끽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