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의 주역이 된 스포티즘 읽기

스포티즘_0003_레이어 1“스포츠 웨어는 패션의 미래다.” 테니스 슈퍼스타 세레나 윌리엄스가 프런트로에서 존재감을 뽐내던 2017 S/S 시즌 베르사체 컬렉션 쇼노트에 적힌 문구에선 패션의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는 도나텔라 여사의 선견지명이 돋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베르사체 컬렉션은 미니 올림픽의 향연과도 같았으니까. “윈드 브레이커와 스웨트셔츠, 트랙 슈트 같은 아이템들을 베르사체 런웨이에 어울리도록 시크하게 만드는 건 큰 도전이었어요.” 지난해부터 계속된 트랙 슈트 스타일의 일상화, 애슬레저 스타일의 영향 탓인지 이번 시즌 디자이너들은 자기 해석이 돋보이는 스포티즘을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웨어러블함까지 담았음은 물론이고. 접근 가능하지만, 하이패션을 기반으로 기존의 스포츠 웨어 브랜드와는 확실히 차별화해 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점이 이번 시즌 진화한 스포티즘 트렌드를 주목해야 할 이유다.
스포티즘_0001_레이어 3약 2년 전, 당시만 해도 어색하기만 했던 ‘애슬레저’라는 단어가 등장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웰빙에 매료된 할리우드 스타처럼 ‘피트니스 센터에서 지금 막 나온 듯’ 혹은 ‘요가와 필라테스 스튜디오에서 레슨을 마치고 나온 듯’한 스타일이 그 당시 애슬레저를 대표하는 룩이었다.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자기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해진 패션계가 이런 움직임을 놓칠 리 없었다. 빅토리아 시크릿 앤젤로 거듭난 동시대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패션 모델이자 셀레브리티 캔들 제너, 지지&벨라 하디드가 연일 아디다스 트랙 슈트, 나이키 브라톱, 룰루 레몬 팬츠를 입고 등장했음은 물론이다. 챔피온과 손잡은 베트멍, 별다를 것 없는 각종 후디 스웨트셔츠나 트레이닝 팬츠임에도 없어서 못 사는 스트리트 브랜드들의 비약적인 인기몰이 등 지난 2년간 패션계를 바라보면, 트렌드의 한가운데서 모든 영역을 넘나드는 스포티즘의 인기가 단순한 반짝임은 아니라는 걸 알아챌 수 있다. 집업 스트레치 팬츠, 선명하고 역동적인 컬러 블록 프린트 아이템, 가볍고 활동적인 나일론 소재의 활용, 트랙 슈트의 변주, 마지막으로 스포츠 샌들 테바를 꼭 닮은 슈즈까지! 강인한 원더우먼처럼 윈드 브레이커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쇼에 등장한 에디 캠벨의 모습은 하이패션계를 점령한 스포티즘의 당당한 선언과도 같았다. 하지만 런웨이의 스포티즘에는 기존의 스포츠 웨어와 선명하게 구분되는 특징 역시 존재한다. 베르사체가 커팅, 슬릿 장식으로 고유의 센슈얼리티를 스포티즘 위에 덧입힌 것처럼 말이다.
스포티즘_0002_레이어 2디자이너들은 스포티즘을 상반된 요소와 함께 적용하는 아이디어에 몰두했다. 먼저 펜싱을 고난도의 섬세한 하이패션 감성으로 구현한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의 디올을 빼놓을 수 없다. “디올 하우스의 자연스러운 애티튜드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옷을 입은 여성이 편안하다고 느끼고, 동시에 자신의 아름다움도 자연스레 확인할 수 있도록요.” 자수 장식의 튤 이브닝드레스, 펜싱복 디테일의 적용, 스포티한 감각과 관능적인 매력은 그녀가 언급한 ‘편안함’에 녹아들었고, 그 안에서 아스라이 비치는 스포티즘은 궁극의 럭셔리를 보여준다. 빈티지 오리엔탈 무드로 환상 동화를 쓴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 역시 스포티즘을 차용했다는 사실을 아는지? 철저하게 화려함으로 무장한 컬렉션에서는 타이츠처럼 밀착되는 줄무늬 장식 트랙 팬츠(그것도 고리 바지!)를 과감하게 믹스 매치해 70년대식 스포티즘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펜디의 칼 라거펠트는 독특하게도 마리 앙투아네트의 로맨티시즘에 스포티즘을 적용했다. 꽃과 리본 등 그녀가 심취했던 전원의 여유로움과 아름다움은 스포티한 줄무늬와 어우러져 전에 본 적 없는 달콤한 스포티 스타일을 제안한다. 요가, 서핑, 아웃도어 하이킹 등 갖가지 스포츠 요소를 다분히 쿠튀르적으로 재해석한 존 갈리아노의 메종 마르지엘라 역시 기존의 스포티즘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동참했다. 아노락 재킷의 창의적인 변형, 팝 컬러의 변주, 메시, 네오프렌과 같은 입체적인 스포티 소재의 활용은 물론, 요가 매트와 스트레칭 밴드를 액세서리로 연출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스포티즘_0000_레이어 4활동적인 분위기를 배가한 컬러와 프린트의 적용 역시 이번 시즌 스포티즘의 스펙트럼을 보다 풍성하게 만든 요소다. 아디다스 오리지널스와의 유니섹스 라인 협업을 기념하는 피날레를 펼친 알렉산더 왕은 가장 힙한 여름 스포츠인 서핑을 탐구했다. 눈이 시릴 것 같은 네온 컬러 아이템들은 바닷물에 젖은 듯한 모델들의 헤어스타일까지 더해져 서퍼들의 자유로운 영혼과 쿨한 애티튜드를 표현했다. 서핑 슈트에서 차용한 집업 쇼츠와 재킷, 파도 위를 유연하게 흐를 것 같은 드레스, 네온 목걸이 모자는 캘리포니아 서퍼 걸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오렌지, 블루 등 컬러 포인트 스타일링이 돋보인 DKNY 역시 도회적인 스포티 무드를 보여준 컬렉션. 밝고 경쾌하고 진취적인 줄무늬는 특별한 기교 없이 웨어러블함을 겸비한 스포티 룩을 연출하는 데 필수다. 펜디와 더불어 오프닝 세레모니, 포츠 1961, 푸치, 프로엔자 스쿨러 등은 컬러풀한 줄무늬 프린트의 그래픽적 해석으로 2017년의 스포티즘을 재정의했다.
뉴욕부터 파리까지, 4대 도시를 관통한 런웨이의 스포티즘 열풍은 담쌓고 있던 운동과 스포츠에 관심을 갖게 할 정도다. 시장성이 좋은 기존의 스포츠 웨어와의 차별화를 위해 다양한 하이패션적 발상으로 창의력을 발휘한 디자이너들은 이렇듯 새로운 개념의 스포티즘 방정식을 완성했다. 그들이 제시하는 갖가지 해법은 일상에서 보다 유연하게 스포티즘을 연출할 수 있는 중요한 팁이 돼준다. 그것이 매니시 룩이든, 로맨틱 룩이든, 실루엣의 변주이든 이 모든게 스포츠 웨어와 결합이 가능하니, 이번 시즌이야말로 진정한 스포티즘의 호시절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