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약이 쇄도한다는 레스토랑 흥행의 최고 호재, 미쉐린 스타를 받자마자 두 달 만에 이삿짐을 꾸려버린 레스토랑이 있다. 잠실 롯데월드타워 80층으로 올라가는 비채나가 그곳이다. 조희경 대표와 방기수 셰프를 만나 이 대담한 결단의 전모에 대해 들었다.

비채나의 조희경 대표와 방기수 셰프.

비채나의 조희경 대표와 방기수 셰프.

지난해 11월 미쉐린 가이드 한국판이 발간되었을 때, 어떤 이는 말했다. “조태권의 승리로군.” 별 세 개를 받은 가온, 그리고 한 개를 받은 비채나 등 광주요의 한식당이 둘 다 좋은 성적을 받은 데 대한 언급이었다. 그릇과 술(화요), 그리고 음식까지 어우러져 문화로서의 고급 한식을 풍성하게 가꿔온 조태권 회장 아래에서 외식사업부인 가온소사이어티를 이끌고 있는 이는 그의 둘째 딸인 조희경 대표다. 경기도까지 내려다보이는 롯데월드 타워 81층, 가스가 들어오지 못하는 주방에서는 가스불 대신 인덕션에 익숙해지기 위한 직원들의 실험이 한창이었다. 비채나는 4월 3일부터 롯데호텔의 최상위 브랜드인 ‘시그니엘’의 한식당으로 2기를 시작한다. 오픈을 3주 앞둔 건물에는 아직 공사 먼지가 가득했지만, 그 와중에도 잊지 않은 노란 꽃이 손님을 맞는 이들의 마음을 짐작하게 했다.

방기수 셰프
83년생이다. 젊은 나이에 미쉐린 스타 셰프가 되었는데 기분이 어땠나?
힘들었던 지난 시간에 대한 보답, 그 이상은 생각하지 않는다. 한식은 손이 많이 가고 힘든데 상업성이 없다며 직원들이 떠날 때 많이 지쳤다. 이제 더 많은 분들에게 내 음식을 소개할 수 있게 된 일이 고맙고, 오신 분에게 어떻게 더 잘해드릴지를 고민한다.

별을 받는 것보다 지켜가는 것, 더 늘리는 것은 배로 힘들다고 한다.
요리하는 사람은, 미쉐린 평가단이 방문할 때뿐 아니라 언제라도 늘 평가대에 놓여 있다. 한번 실망하면 더는 가지 않는 게 고객의 입장이니까. 한 접시 한 접시를 내가 다 완성할 수 없다면 셰프의 팔다리가 되어 흔들리지 않는 팀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혼 있게 하라’는 이야기를 직원들에게 자주 한다.

초고층 빌딩의 주방이라는 제약이 클 것 같다. 우선 가스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
극복이 안되는 조건이라면 그 상황에서 상상력을 발휘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도 셰프의 몫일 것 같다. 센 불에 볶아냈을 때의 풍미 같은 걸 내기 어렵다면, 대신 찌거나 푹 익혀서 향까지 같이 담을 수 있도록 찜, 탕을 합에 담으려 한다. 차분하고 다채로운 요리를 시도할 수 있을 거다.

무엇이 달라질까?
공간이 고층에 있어 접근성도 달라지고, 육성급 호텔 안에 있는 한식당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있을 것 같다. 이전의 비채나가 계절마다 메뉴에 변화를 주고, 지역 음식을 풀어내면서 편안한 한식 레스토랑 모델을 제시해왔다면 이사 후에는 조금 더 숨은 매력을 보여줄 음식들로 구성할 것 같다. 보통 한 상에 차려서 한꺼번에 내는 전통적 한식은 공간 전개형이라고 하는데 코스 음식은 시간 전개형이다. 한 접시마다 가장 맛있는 온도와 타이밍에 드실 수 있게 하는 방법, 약강의 리듬과 흐름도 주된 고민이다.

광주요의 그릇을 음식에 맞게 주문 제작해 쓸 수 있다는 건 어떤가?
아주 큰 혜택이다. 색감 질감 용도 두께…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운 맞춤옷을 입는 기분이다.

한식 파인다이닝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 안에서 자신의 좌표는 어디쯤이라 인식하고 있나?
어디서 요리했나, 어느 요리 학교에서 배웠나 하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나는 비채나에 입사해서 12년 동안 이곳에서만 음식을 만들었다. 해외 출신의 셰프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서양 조리법과 한식을 접목하는 창의적인 파인다이닝도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내 길은 아니다. 기본에 충실하면서 한식도 이렇게 더 멋져질 수 있구나, 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싶다.

원하는 질감과 디자인, 기능으로 제작되는 광주요 그릇을 사용할 수 있다는 데 대해 방 셰프는 맞춤옷을 입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

원하는 질감과 디자인, 기능으로 제작되는 광주요 그릇을 사용할 수 있다는 데 대해 방 셰프는 맞춤옷을 입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

조희경 대표
롯데월드타워에 들어온 선택이 파격적이다. 어떤 맥락의 결정이었나?
좋은 조건의 파트너십을 제안받았다. 마침 장소 이전이나 브랜딩에 대해 새로운 고민을 하던 시기였다. 레스토랑을 오픈할 때마다 느끼는 건 장소가 우리를 찾아온다는 거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게 방기수 셰프에게는 힘들겠지만, 결국은 도약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이 사람은 끝까지 한식을 물고 늘어질 거라는 신뢰도 있다.

무엇이 그대로 가고, 무엇이 달라질지 궁금하다.
더 화려해지고 더 높은 곳으로 옮긴 걸 누구나 알고 있는 입장인데 잘난 척까지 하게 되면 매력이 없어질 거다. 좀 더 셰프의 개인적인 장점이 드러나는 곳을 지향한다. 좋은 레스토랑은 셰프의 자아나 아이디어가 선명하게 보이는 곳 같다.

경영자로서 셰프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나?
셰프가 스타라면 나는 기획사 매니저, 내가 감독이라면 이 셰프가 나의 주인공이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게 해주기 위해 자원을 총동원해서 환경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다. 방기수 셰프에게 늘 한식을 하는 30대 셰프로서 이 시장에서무엇을 확실히 보여주고 싶은지 질문한다. 그런 캐릭터와 변화가 있어야 레스토랑은 재미있어 진다. 방 셰프는 한국에서만 체험한 사람인데 나름대로의 그 컬러를 지켜가는 게 중요한 거 같다.

비채나뿐 아니라 가온도 함께 맡고 있다.
가온은 소규모의 연구하는 자세로 고전 한국 음식에 집중하는 곳이라면 비채나는 새로운 시도에 열려 있는 융통성이 있다. 자유분방하다기보다는 ‘뉴 클래식’이다. 가온에서 미쉐린 3 스타를 받은 건 물론 큰 성취다. 하지만 그 덕분에 예약이 많아지고 가격에 대한 컴플레인이 없어지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가장 큰 숙제는 셰프의 오른팔을 육성하는 것 같다. 모모푸쿠의 데이비드 창, 베누의 코리 리, 노마의 르네 레드제피…. 모두 토머스 켈러의 프렌치 론드리 출신이다. 팀이 성장하면 그 셰프는 세계를 바라보는 브랜드를 키울 수 있는 거다. 진짜 비즈니스는 거기서부터 시작 같다.

별을 받는 것보다 지키는 게 더 어렵다고 하는데, 급기야 장소를 이전하고 메뉴까지 바꾼다. 2017년에는 어떨 거 같은가?
우선 목표는 투 스타로 가는 데 두자고 했다. 별을 잃는다고 해도 우리 셰프가 본인의 책임으로 너무 힘들어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더 넓은 주방, 더 많은 기계, 더 좋은 재료를 쓰는 식당이 되었으니까 셰프로서는 더 좋은 장난감을 갖고 노는 거다. 자기 집처럼 여기며 여기서 재밌게 놀아줬으면 좋겠다.

호텔 레스토랑이 되었다는 것도 상징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큰 변화 같다.
게다가 너무 높은 호텔이고, 먼 호텔이고 하다 보니 몇 겹의 벽이 생겼을 수도 있다. 그 벽을 낮추는 의미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메뉴를 한 가지 이상은 늘 메뉴에 두자는 얘기를 했다. 지금 그런 차원에서 냉면을 시도하고 있다. 호텔 한식당은 대체로 궁중 요리 쪽으로 집중하고 있다. 우리는 셰프의 진중하지만 크리에이티브한 요리로 다른 길을 갈 거다. 호텔 가서 밥을 먹는다는 외출의 고전적이고 설레는 감성도 불어넣었으면 좋겠다.

파인다이닝이 대중화되면서 고객 집단이 어떻게 달라지는 걸 느끼나?
뭐든 경험을 많이 하면 세련돼진다. 식당에 와서 평가하고 인증하는 분도 많지만 정말 즐기고 가시는 분이 보이는데, 그런 분들이 올 때 보람이 크다.

‘한식의 세계화’에 대해서 다들 다른 그림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당신에게는 어떤가?
내가 할 수 있는 성공 사례를 보이는 것이다. 비채나나 가온이 정말 잘되고 브랜드로서 상품이 나와서 세계 시장에 나간다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을 거다. 외국 셰프와의 콜라보를 비롯해 여러 가지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나씩 시도해 보려 한다. 한식이라고 하면 전통이나 정신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폐쇄적인 마인드를 벗어나는 게 먼저인 것 같다. 어떻게 세련되게 쉽게, 그리고 재밌게 다가갈 수 있는지의 승부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