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아 맥애덤스는 페미니즘이 가장 요동치던 70년대에 펄펄 뛰는 여자들의 눈빛을 찍은 사진가다. 그녀의 사진집 <이머전스>에서 영감을 받은 다큐멘터리 <페미니스트: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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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신시아 맥애덤스가 LA 자택에서 로버트 프랭크가 촬영한 자신의 사진을 손에 들고 있다. 상품화되어 포즈를 취한 여성들의 이미지가 보편적이던 70년대에 그녀는 카메라를 응시하는 여자들을 포착했다. 새로운 여성들의 출현이었다.

이제 77세에 이른 사진작가 신시아 맥애덤스는 LA 아파트 거실에 앉아 풍수 사상에 따라 새로 칠한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건강한 빨간색이에요. 기쁨과 에너지를 가져오죠.” 거대한 이집트 피라미드 프린트 액자를 포함해 자신의 작품, 연인이자 페미니스트 작가인 케이트 밀레트가 그린 누드 소묘 작품이 맥애덤스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녀의 수호신이자 난관을 파괴하는 힌두교 여신 칼리가 맹렬하게 싸울 준비를 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그림도.
그녀는 샴페인을 따서 잔에 따르며 데니스 호퍼의 악명 높은 <마지막 영화(1971)>에 출연하러 페루에 갔던 시기를 떠올렸다. 동료 배우 미셸 필립스가 이 영화를 두고 농담처럼 “우리 모두에게 마지막 영화가 될 뻔했죠”라고 말했다. 필립스는 맥애덤스가 자신의 열정을 따르고 그 과정에서 강한 인상을 남기는 인물이라고 묘사했다. “저는 서른 살이었고 어디든 바람이 이끄는 대로 다녔어요.” 두려움을 모르는 호기심이 맥애덤스를 예술계의 이방인으로 만들고, 사회 문화 운동의 최전선에 서도록 그녀를 이끌어왔다. 맥애덤스의 작품은 세련되고 관능적이며, 명확하다. 그녀가 클로즈업으로 찍은 클리토리스만큼이나 부끄러움을 모른다. 그녀는 아마도 제2 물결 페미니즘 도서 <이머전스>로 가장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보통의 여성들뿐만 아니라 필립스, 글로리아 스타이넘, 패티 스미스, 제인 폰다, 메리 엘렌 마크, 릴리 톰린, 로리 앤더슨, 그리고 주디 시카고 같은 예술가, 운동가, 그리고 예민한 지성인을 찍은 인물 사진 모음집이다.
<이머전스>가 출간된 지 40년이 지난 지금, 그녀의 책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다큐멘터리 <페미니스트: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이하 <페미니스트>)>가 올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사회적인 투쟁과 예술이 교차하는 사진을 전문으로 다루는 스티븐 카셔가 맥애덤스의 작업물을 2010년 그의 뉴욕 갤러리에 전시하였다. 그는 그녀가 그때까지 큰 전시를 제안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 직접성과 정치성을 띤 사진을 다른 딜러들이 외면했기 때문이라 짐작한다. “이 작품들은 적절하고도 필요해요. 우리는 이 위대한 여성들이 세상을 흔들려고 했던 그들의 전성기 때 어떤 모습이었는지 보고 싶기 때문이에요.” 카셔가 말했다. “투쟁의 정신이 사진들 속에 있어요. 신시아는 어렵거나 지적으로 보이려 하지 않고 대담하게 그것들을 포착했죠.”
이 책의 작가 노트에서 맥애덤스는 자신의 의도를 좀 더 드러낸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엿 먹어라’고 대꾸할 수 있는 여성들을 찾았어요. 강인함과 부드러움이 눈동자에 공존하고, 삶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 야무진 여성들 말이죠.” 릴리 톰린 같은 배우에게 <이머전스>는 여전히 삶의 지표가 되어주고 있다. “여성의 역사 가운데 전환점이 된 순간을 주목한, 중요한 기록이죠.” 순수한 시대였다고 톰린은 회고한다. “우린 단지 나서서 무엇을 느끼고, 생각할지, 무엇을 위해 싸울 것인지 선언하면 된다고 느꼈어요.”
그 시절 페미니스트 커뮤니티는 뉴욕의 바워리 스트리트에 위치한 케이트 밀레트의 로프트에 모여들었다. “케이트는 저의 훌륭한 스승이었죠,” 맥애덤스가 말했다. “저녁 식사로 치킨을 먹는 자리에 매번 다른 여성이 방문했어요. 글로리아 스타이넘, 미술가 마리솔 에스코바 같은 인물들이 코트 뒤론 와인을 마시고, 마리화나를 피우며 벽난로 앞에 앉아 페미니즘에 대해 얘기했죠.” 맥애덤스가 여성을 사진에 담기 시작한 이유는 이렇다. “미래는 여성의 손에 달려 있어요. 남성은 너무 기업의 부속품 같아져서 주머니 속 돈만 원하죠. 하지만 여성은 어떻게 인간과 지구를 보호할지를 생각해요.”
1969년 당시 신기원을 이룬 <성의 정치학>의 저자 밀레트는 <이머전스>의 서문에서 맥애덤스의 피사체들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이들은 새로운 종류의 여성들이다. 당신도 나도 전에는 그들을 본 적이 없다. 적어도 사진으로는. 새로운 유형의 우리가 막 태어난 것이다. 지금껏 기록되지도 눈에 띄지도 이름을 부여받지도 못한 수많은 여성들이 연속적으로 연합을 이루고 있다. 눈동자 속에 새로움을 담은 그들이 당신을, 그리고 너머를 돌아본다. 왜냐하면 그들이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론가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머전스>는 본질적으로 셀레브리티 앨범에 불과하다. 유용성은 있지만 스스로 주장하는 바처럼 날카로운 사회학적 문서는 아니다.” <뉴욕 타임스>는 비웃었다.
내가 82세의 밀레트에게 그 혹독한 비평을 상기시키자 대화는 남성적 시선에 대한 개념으로 흘렀다. 당시에는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고, 제품을 광고하거나 팔기 위해 어떤 포즈를 취했는지 말이다. 밀레트는 맥애덤스의 피사체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지 않는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단지 기다렸다 순간을 포착했다. “그녀는 항상 자신을, 그리고 시대를 앞서갔지요. 세상이 그녀를 따라잡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 분명했어요.”
맥애덤스는 1939년 사우스다코타 주 웹스터 인근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신문사를 운영하는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부모님의 반대에도 예술가가 되겠다는 꿈을 놓지 않았다.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뒤 뉴욕으로 이주해 브로드웨이와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일하기도 했다. 60년대 말엔 로버트 프랭크의 <우리 형제>와 <와일드 인 더 스트리트> 같은 단편에 출연하기도 했다. 그러나 할리우드는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맥애덤스는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이었고, 쇼비즈니스 세계에서 게임을 치를 기질이 자신에게는 없음을 알았다. 캘리포니아 빅서에 위치한 유명한 정신 휴양 센터 에살렌에서 명상과 수행을 거친 그녀는 인도와 네팔에 머물며 힌두 여성의 소외에 대해 공부를 한다. 그리고 1974년 맥애덤스가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친구였던 사진가 알로마 이치노세가 그녀에게 카메라를 들어보라고 권한다. “그녀의 작품엔 수그러들지 않는 기세가 있어요. 리터칭도 하지 않아요. 힘들지만 매우 솔직하고 훌륭한 작품을 만들도록 빛을 쓸 줄 알아요.”
<페미니스트>의 총 책임자이자 아티스트인 셰릴 스완낵은 그즈음에 맥애덤스를 만났다. 스완낵과 밀레트, 톰린, 그리고 맥애덤스는 지난 40년간 페미니즘 이슈에 큰 진전이 있었음을 인정하지만 최근 미국 대통령 선거 후에 다시 의문이 생겼다. 과연 오늘날에도 우리가 준비가 된 건지 말이다. 맥애덤스는 도널드 트럼프의 승리가 놀랍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우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자세를 다잡는다. “나는 서프러제트(20세기 초 영국과 미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예요. 우리 모두가 서프러제트가 되어야 합니다. 노예 제도 폐지론자이자 여권운동가였던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은 투표권이 없이 죽었지만, 결국 여성들은 투표권을 얻어냈어요. 그래서 난 계속 걸어갈 것이고 모든 면에서 여성은 남자와 평등하다는 진실을 믿을 겁니다. 이제 우리는 더 냉정해지고, 영리해지고, 강해져야 합니다. 결국엔 우리가 이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