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 가수는 힘들다, 백업 댄서를 최대한 세워야 한다는 가요계의 금언이 생길 정도로 대중은 아이돌 여럿이 꽉 채우는 무대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런 아이돌 팀의 멤버들도 솔로 활동을 감행한다. 모두가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묵직한 연말 후유증에 시달리는 1월에서 새 계절을 맞이하기 직전인 3월까지, 1/4 분기는 가요계의 대표적이며 암묵적인 공백기다. 연말연초 각종 시상식과 어워드 준비에 시달린 대어들이 대거 휴식기에 들어가고, 들뜬 분위기 덕에 홍보가 어렵다 생각하는 이들이 새 앨범 발매 자체를 꺼리며 자연스럽게 ‘빈 집 상태’가 조성되기 쉽기 때문이다. 촉 빠른 이들이 이런 묘한 기류를 놓칠 리가 없다. 2, 3년 전부터 부쩍 늘어난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주목할만한 솔로 앨범 발매가 1/4분기에 몰려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2015년 벽두에는 샤이니 종현, 틴탑 니엘, 씨엔블루 정용화 등이 동시에 첫 솔로 앨범을 내놓으며 화제를 모았고, 지난해에는 블락비의 지코가 대망의 첫 솔로 앨범으로 연초를 뜨겁게 달궜다. 2017년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돌 래퍼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띄운 진지한 표정이 사뭇 인상적인 빅스 라비, 그룹 활동이 주춤한 사이 두 번째 솔로 활동에 시동을 건 틴탑 니엘은 물론 소녀시대 서현과 미쓰에이 수지가 각각 데뷔 10년, 7년 만에 첫 솔로작을 내놓으며 가요계 전체를 일주일 간격으로 들었다 놓았다.
사실 아이돌 솔로 활동이 이렇게 공식화, 본격화된 건 생각보다 오래지 않은 일이다. 우리가 ‘아이돌’이라 의심 없이 명명할만한 존재들이 등장하기 시작 한지 20년. 그 안에서 그룹 해체나 실질적 활동 중단 없이 멤버 한 사람이 회사의 적극적 지원 아래 솔로 앨범을 내고 팬덤의 지지를 바탕으로 한 활동을 시작한 건 고작 6, 7년 정도 사이 생긴 큰 변화다. 아이돌 가수 출신이 록 음악을 한다는 것만으로 전 국민의 조롱의 대상이 되거나 솔로 활동이 활발한 멤버가 팀의 분열을 막기 위해 개인 수입을 멤버수대로 공평하게 분배한다는 미담 아닌 미담이 전해지던 시절이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란 걸 생각하면 참으로 놀랄 만한 변화다.이렇듯 급격한 분위기 전환의 배경에는 태동기에 비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 아이돌의 위상과 넓어진 활동 영역이 자리하고 있다. 10대 팬들을 대상으로 청소년의 꿈과 희망을 노래한 것이 1세대 아이돌 선배들의 주요 일과였다면, 지금의 아이돌은 타고난 적성과 재능에 따라 배우, 진행자, 모델, 예능인, 솔로 가수 등 원하는 곳 어디로든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해볼 수 있다. 예기치 않은 케이팝 붐 이후, 물리적 활동 영역마저 세계 오대양 육대주로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이 확장 셈법은 공간뿐만이 아닌 시간에도 적용되었다. 아이돌 그룹 수명의 한계를 5년으로 보았던 ‘5년 위기설’은 아이돌 팝의 인기 승승장구 속 묵묵히 활동 10년을 채워가는 그룹이 하나 둘 늘어나며 어느새 사라진 구시대의 사어(死語)가 되었다.
애써 만든 그룹이 오래도록 유지된다는 건 분명 다행스런 일이었지만 이 뜻밖의 생명 연장에 내부자들에게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하나 추가되었다. 이제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하는, 마치 인구고령화 시대의 실버 세대와도 같은 질문이었다.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아이돌 솔로 활동은 이런 고민이 낳은 가장 손쉬운 현실 타개책 가운데 하나다. 현실에 기반한 객관적 분석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에 무모한 도전은 의외로 적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10만 장을 훌쩍 넘기는 놀라운 앨범 판매고는 물론 음원 차트까지 점령한 소녀시대 태연, 차분하고 단단한 곡 만듦새에 모그룹 보다 높은 솔로 앨범 판매량으로 팬들과 관계자들 모두를 아연하게 했던 씨엔블루 정용화가 바로 이 ‘될 카드로 될 결과를 불러온’ 대표적인 경우다. 이 외에도 완성된 팝 스타로 향한 길을 성실히 밟고 있는 샤이니 태민이나 R&B와 Soul에 대한 사려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질 좋은 결과물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는 종현 역시 아이돌 솔로의 모범적인 예라 할 만하다. 신승훈, 성시경의 뒤를 잇는 감성 발라더 타이틀을 일찌감치 선점해둔 슈퍼주니어 규현이나 ‘아이돌 치고’라는 수식어를 무색하게 만드는 전천후 아티스트 빅뱅 지드래곤, 블락비 지코의 이름도 빼놓을 수 없다. 질과 양 모두에서 청자를 만족시키는 이 눈도 입도 즐거운 메뉴들은 가요계 정상의 자리에서 축소와 팽창, 균열과 반목을 꾸준히 반복하며 살아남은 케이팝이 낳은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든든한 밑천들이다.
물론 눈에 띄는 성공 사례가 많다는 건 그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실패가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같은 그룹의 멤버로 역시 솔로 앨범을 발표했지만 규현에 비해 다소 모호한 존재감을 발하고 있는 려욱과 예성, 준수했던 앨범 완성도에 비해 별다른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던 f(x) 루나, 티아라 효민 등의 이름이 빠르게 스친다. 비슷한 시기 발표되었지만 서로 다른 명암을 남긴 수지와 서현의 솔로작이 남기고 간 흔적들도 기억해둘 만 하다. 대중의 반응으로 보자면 두 작품 모두 기다린 시간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지만, 이들이 향후 이어갈 커리어를 생각하면 분명 유의미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던 활동이다. 박진영에서 원피스, 어반자카파, 에피톤 프로젝트까지 풍성하게 꾸린 작곡가진에 비해 밋밋하게 일관된 프로덕션으로 내 맛도 네 맛도 아닌 기억을 남긴 것이 수지의 <Yes? No?>였다면, <Don’t Say No>는 삐삐밴드, EE의 이윤정과 함께한 곡을 압도하는 스타일링과 ‘소녀시대 막내’라는 수식을 벗어 던진 서현의 말끔한 민낯을 만날 수 있었던 마냥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요컨대 성공적인 아이돌 솔로 활동을 위해서는 적을 알고 또 그만큼 나를 알아야 하는 영민함과 냉철함이 필수다. 내가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그 음악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지, 만일 만들 수 없다면 누구에게 의뢰하는 게 정확할지, 그 음악으로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 지. 아이돌 신 뿐만이 아닌 대중음악계 전반에 영향력을 미치기 시작한 아이돌 솔로 가수들의 활약은 이제 막 첫 걸음마를 떼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미 솔로 데뷔라는 이름이 결코 달고 시원한 열매만이 아니라는 걸 뼛속 깊이 인식한 채 다음 단계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누구도, 왜소한 세포분열이라 쉽게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