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사 장소를 정할 때도, 화장솜 한 통을 구입할 때도 우리가 먼저 하는 일은 검색이다. 끊임없이 망설이는 ‘ 햄릿증후군’에 빠진 사람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우유부단해졌을까?

_GettyImages-484139549
소설가 장강명은 첫 에세이인 <5년 만에 신혼여행>에서 흥미로운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신문기자 출신인 그는 불필요한 지출과 허세 부리는 절차가 싫어 결혼식 없이 구청에서 혼인 신고만 하며, ‘효도는 셀프’라는 모토를 갖고 부모와 아내 사이에 스스로 선을 긋는 똑 부러진 사람이다. 형식에 연연하지 않는 실용주의자로 자신을 정의하는 그가 살아가는 모습은 과연 솔직하고 쿨하다. 아이러니한 점은 그런 실용주의자 부부가 뒤늦게 떠난 보라카이 신혼여행에서 보이는 이상한 집착이다. ‘가성비’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이들은 여행지에서 한 끼의 식사도 허투루 낭비하지 않겠다는 야무진 자세로 ‘맛집’을 검색하고, 평이 좋았던 곳만 방문한다. 3박 5일 여행 일정의 하루하루가 계속되는 동안 매일 혼잡한 현지 쇼핑몰을 헤매면서도 한국 블로그에서 훌륭하다고 언급한 식당이나 바가 아니면 가지 않으려는 이들 부부를 보면 조금 혼란스럽다. 남들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 가치에 입각해 살겠다는 쿨함은 어디로 간 거지? 가성비를 중시한다고 하면서도 길을 잃거나 줄을 서서 기다릴지라도 맛집이 아니면 들어가지 않겠다는 모습은 시간과 에너지의 낭비로 보여 점점 피곤해진다.
맛집 선택에 대한 결정을 외주에 맡기는 건 <5년 만에 신혼여행> 속 부부뿐만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정보가 부족한 여행지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 아니라 평범한 저녁 한 끼를 위해서도 블로그와 SNS에서 평을 검색하는 건 일상이 되었으니까. 얼마 전 동네의 작은 순댓국집과 곱창전골집 앞에 30~ 40명이 줄을 선 걸 보고 무슨 일인가 싶었다. <수요미식회>에서 이 동네를 다루며 두 가게를 취재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재밌는 사실은 바로 옆에 있는 빈대떡집은 한가했으며, 평소처럼 중년 이상의 손님이 대다수였다는 점이다. <수요미식회>에서 소개하지 않았을 뿐, 앞의 두 가게와 비슷하게 저렴하고도 맛있으며, 좌석 점유율도 비슷한 가게인데 말이다. 나 역시 결백한 처지라고는 말할 수 없다. 친구와 약속 장소를 정하면서, 인스타그램 타임라인에 자주 올라오던 한남동의 캐주얼 중식당을 떠올린 건 실수였다. 하얗고 동글동글한 탕수육에 ‘목화솜’이라는 귀여운 별칭이 붙어 있고, 실내를 카페처럼 장식한 식당은 과연 사진으로 찍어 올리고 싶은 분위기에 예쁜 음식을 내놓았지만 결정적으로 맛이 없었다. 남들이 많이 가는 곳이니까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기대한 판단의 실수였지만, 조금만 냉정하게 짚어보면 당연한 결과기도 했다. 바삭하게 튀겨야 할 탕수육을 동그랗게 만들었으니 당연히 고기 대신 녹말 반죽 옷이 두꺼워지고 튀김의 상태도 좋지 않았던 것이다. 모험을 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검토하고 남의 이야기를 듣는 이유는 명확하다. 돈을 쓰는 일에 있어서 시행착오를 겪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에서 40K 정도의 팔로어를 거느린 친구는 자기가 무슨 사진을 올리건 간에 ‘어디 제품인지 알려주세요’ 하는 질문 댓글이 달린다고 하소연했다. 뭔가 특별한 건가 싶어 물어보고, 따라서 구매하려고 한다며 말이다. 심지어 지마켓에서 10만원 주고 산 자전거까지.
실패했기 때문에 가난해지는 게 아니라, 부유한 사람이 실패할 자유를 갖는다. 그리고 지금은 모두가 가난한 시대다. 일본에서 30년 동안 스타일리스트로 일한 지비키 이쿠코는 그의 책 <옷을 사려면 우선 버려라>의 서문을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일본이 주식과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던 버블 경제 시기였을 때 물질적 호사를 마음껏 누린 세대다.” 호황기에 젊은 시절을 누린 사람들은 다양한 취향을 탐색할 여유가 있었다. 이런 저런 스타일을 과감하게 시도해보고,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옷을 버리고 옷장을 비우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스스로를 발전시켜갈 수 있었을 터이다. 능동적으로 안목과 취향을 쌓아 올리는 데는 실패와 비용이 따른다. 사회학자 베른하르트 하인츨마이어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을 언급하면서 지금의 청년 세대는 실험이나 유예의 자유를 누릴 겨를이 없다는 점을 언급한다. 너무 많은 선택지가 앞에 놓여 있어 사람을 우유부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자신이 82년생인 오스트리아의 저술가 올리버 예게스는 결정 내리는 걸 힘들어하는 자신의 또래를 ‘메이비(Maybe) 세대’라고 명명한다. 지구 역사상 가장 많은 옵션, 사상 최대의 과잉 기회를 앞에 두고 망설이는 자신들이 마치 독일 통일 직후 동독에서 건너와 난생처음 소시지 진열대를 마주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이주민 같다는 것이다. 무한하게 열려 있는 인터넷의 정보를 보며 무엇이든 시뮬레이션해 볼 수 있지만 방향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다. 제품 선택과 구매뿐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어정쩡한 상태를 유지하는 현상은 점점 퍼져가고 있는데, 바로 ‘썸’이라 부르는 그것이다.
각종 서브스크립션 박스를 비롯한 큐레이션 커머스의 유행은 이런 우유부단한 소비자를 위해 메뉴를 정해주고, 편하게 떠먹여준다. 넷플릭스나 아마존 같은 사이트에서는 고객의 선택을 분석해서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제시해주는 추천 알고리즘이 점점 더 섬세해지고 있다. 나아가 얼마 전 홍대에 새로 생긴 한 서점이 1 대 1로 상담하고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책을 콕 집어 골라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읽어야 할 책을 결정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읽을 시간이 없어서 문제인 내 주변의 도서 애호가들은 하나같이 경악했다. “스스로 책 한 권 못 고르는 시대가 됐단 말이야?” 이 경우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치유받는 경험 역시 중요하겠지만 말이다. 물론 차분하게 대화를 나누고 믿을 만한 사람으로부터 현재의 자신에게 도움이 될 책을 추천받는다면 막연하게 베스트셀러 목록을 보고 사는 것보다는 바람직한 일일 거다.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을 통해 나타나는 거란다.”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덤블도어 교장 선생님이 했던 말대로라면 실패하지 않으려고 검증된 선택만 하는 우리의 모습은 모두 엇비슷하게 고만고만 닮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식당 선택만큼은 나름의 확고한 기준을 가진 친구는 말했다. “인스타그램을 믿지 마.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사진발 잘 받는 음식이 올라오는 곳이야. 블로그에서 ‘개맛’ ‘존맛’ 같은 단어나 이모티콘을 섞어 쓰며 소개하는 가게는 가지 마. 어린애들 취향이라는 뜻이니까. 일식 이자카야 중 애니메이션 피규어를 진열해둔 곳은 피하는 게 좋아. 요즘은 인테리어 업자가 그런 장식품까지 모아서 팔거든. 모르는 동네에서 밥을 먹어야 할 때는 전주 식당처럼 전라도 지명 들어가는 식당에 가면 보통 이상은 해.” 너무 많은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잘 선택할 줄 알려면 자기만의 심미안과 결단력이 필요하다. 자신만의 기준으로 정보를 걸러서 바라보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필터는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가질수 있다. 그리고 이런저런 실패 속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는다. 눈송이인지 목화솜인지 하는 탕수육에 현혹되었다가 배신당하는 경험까지 포함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