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들이 결혼하고 싶다고 말할 때, 그건 종종 넓은 집에 살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 결혼 대신 넓은 집을 구하고, 여자와 같이 살기 시작한 여자들이 있다.

two velvet armchair in a empty living room - rendering

나는 지금 커다란 창으로 정오의 햇살이 들어오는 망원동의 새집 거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이전에 살던 집은 합정역 근처에 있었다. 큰 방, 중간 방, 작은 방이 나란히 있던 합정동 집의 중간 방을 내가 쓰게 된 것은 작년 3월의 일이다. 호주에서 1년을 보낸 뒤 일단 본가로 들어가기는 했는데 목돈이 없어 독립이 요원하던 때, 어쩌다 합정의 친구 집에 하루 묵었다가 친구 동생의 결혼으로 중간 방이 비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취 10년 차를 넘어서는 친구가 모든 것을 구비해둔 집에, 말 그대로 침대와 몸만 들어가면 되는 상황이었다. 친구는 혼자 살기에는 너무 집이 크다고 생각하던 중이었고, 나는 독립이 절실하던 차. 그럼 내가 빈방으로 들어가면 어때? 그렇다면 하이파이브. 생각보다 간단하게 동거는 성사됐다.
사소한 것을 합의하기 전에 생각보다 빨리 동거 생활이 시작되었지만 의외로 마찰이 없었던 이유는 친구와 나의 생활 패턴이 반대였기 때문이다. 친구는 부지런하고 깨끗한 편이었고, 나는 치우는 게 귀찮아 잘 어지르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회사에 다니는 친구와 프리랜서인 나는 적당히 가끔 마주치고, 그럴 때면 맥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또 금방 각자 자신의 방에서 할 일을 하며 살았다. 위기는 여름에 찾아왔다. 더위 때문이었다. 에어컨이 없는 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더웠고, 나는 친구가 아니라 모기와 동거하는 느낌이었다. 본가와 호텔과 다른 친구의 집을 돌아다니며 여름을 나는 동안, 더운 집을 지키던 친구는 큰 결심을 했다. 집을 사서 이사를 가겠어! 함께 가겠나? 나는 끄덕이며 대답했다. 너무 멀리만 가지 마요.
그렇게 망원으로 이사를 온 지 갓 2주가 지났다. 넓은 거실에 방 세 개, 화장실 두 개짜리 빌라의 작은 방 중 하나에 내 짐을 풀었다. 방이 작아 책상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라 친구는 내 제안에 따라 거실에 커뮤니티 테이블을 놓아주었고, 지금 이 글은 그 테이블 위에서 쓰고 있다. 하나 남은 방의 용도는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일단 두 사람이 살기에는 아주 적당한 크기의 집이라는 생각이다. 서로에게 조금씩 적응하며 같이 장을 볼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됐고, 주로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는 친구는 반찬을 사고, 빵을 주로 먹는 나는 빵을 사들여 조금씩 나누어 먹곤 한다. 서로의 스케줄은 냉장고에 붙인 달력에 적혀 있고 바뀌는 일정은 문자로 알려준다. 단점이라면 역시 혼자 살 때처럼 대충 처리할 수 없는 필수적인 집안일이 있다는 것인데, 상식을 지키고 민폐를 끼치지 않을 것을 원칙으로 삼는 성인이라면 그건 오히려 생활에 긴장을 주는 장점이 된다. 설거지와 빨래, 청소를 제때 해결하는 상황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은 내 생활을 지키는데도 큰 힘이다. 둘 다 비혼이지만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는 열려 있다. 늘 최악의 상황까지 상정해 꼼꼼히 대비하는 친구가 집의 주인이고 대체로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내가 월세를 내는 입장인 것은 그래서 다행이다. 지금은 일단 이 테이블에서 친구와 우리가 함께 좋아하는 또 다른 동료, 지인들과 재미있고 새로운 일을 도모해보고 싶은 작은 꿈이 있다. 만약 안 되면 망원 시장에서 맛있는 무언가를 사와 함께 술을 마시면 되는 것이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찌 됐든 큰 테이블과 친구가 필요하고, 여기에는 그 모든 것이 있다. 일단은 그거면 꽤 괜찮지 않은가. 글 | 윤 이나(칼럼니스트)

매년 다른 룸메이트를 맞았던 대학 기숙사 생활은 누군가와 같이 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가르쳐주었다. 밤마다 같이 수다를 떨며 맥주 캔을 쌓아가던 1학년 때의 룸메이트와는 지나치게 잘 맞아서, 매일 새벽까지 공부를 하며 혼잣말을 중얼대던 3학년 때의 고시생 룸메이트와는 맞지 않아서 생활은 요동쳤다. 그 뒤로 이 오피스텔에서 저 빌라로 옮겨 다니며 15년쯤 혼자 살았다. 타인이라는 변수를 고려할 필요 없는 작은 집에서 나는 맘껏 독재를 할 수 있었다.
“힘든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깜깜한 집에 혼자 불을 켜는” 장면이 왜 쓸쓸함을 대변하는지 궁금했다. 종일 사람에 시달리다 집에 오면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거나 귀찮게 하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짜릿하고 새롭고 신나는지! 하지만 1인분의 삶을 유지하는 일은 간편하고 홀가분한 대신 경제성이 떨어졌다. 아침에 나가면 밤에나 집에 돌아오는 1인 가구가 하루에 잠깐 사용하는 욕실이나 주방 공간에 대해 지불하는 부동산 비용부터 1인분의 식생활을 위해 유통기한이 지나 버려지는 식재료까지 아까운 부분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생산량이 증가하면 단위당 생산에 투여되는 비용이 감소한다는 ‘규모의 경제’ 이론은 분명 생활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용 공간을 다른 사람과 함께 사용하는 셰어하우스 모델에 관심을 가지고, 지인들 여럿과 함께 공동 주택 건축을 도모해보자며 협동 조합을 만들기도 했던 건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혼자 사는 친구들이 모이면 종종 ‘싱글들이 모여 사는 실버타운을 만들자’고 노후를 구상했다.
“언니, 친구랑 같이 살면 집에 남자 데려오기 힘들지 않겠어요?” 아는 동생의 걱정도 일리 있었지만 나는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는 참이었다. 사실 지난 몇 년 사이 우리 집에 들어오려는 남자들의 시도는 번번이 좌절되었는데, 데이트 나가면서 청소까지 하기에는 내가 너무 바쁘고 정신없이 살았기 때문이다. ‘곧 결혼하면 달라질 텐데 뭐’ 하면서 임시방편으로 지내오는 사이에 짐도 쌓이고 구색이 맞지 않은 가구와 그릇도 쌓이고, 시간도 쌓여 마흔이 되었다. 이제 직감도 이성도, 그리고 나이도 말하고 있었다. 결혼하지 않더라도 제대로 된 삶에 정착할 때가 되었다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러기 위해서는 파트너가 필요했다.
결혼 대신 은행과 힘을 합쳐 꽤 넓은 아파트를 샀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집을 구하고 있던 친구와 같이 살기 시작했다. 각자가 동원 가능한 예산으로는 아마 몇 가지는 타협하고 마음을 접어 15평짜리 집을 구했을 테지만 합치니 욕실도 베란다도 두 개씩인 30평짜리 쾌적한 집에 살 수 있었다. 규모의 경제를 이룩한 대가로 독재는 끝났다. ‘두 사람만 있어도 단체 생활이야.’ 결혼에 대해 우리 편집장님이 얘기한 것처럼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건 끊임없는 협상과 조정의 과정이었다. <단순하게 살기> 같은 책을 몇 권은 쓸 수 있을 만큼 단정한 동거인에 비해 물건 모으는 건 좋아하면서 정리정돈에 젬병인 내가 얼마나 같이 살기 고약한 상대인지 자기반성도 매일 이어졌고, 그럴 때면 내가 해줄 수 있는 뭔가를 했다. 주로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는 일이었다. 집이 넓어진 만큼 번거로운 살림도 늘어났지만 내가 요리와 빨래를, 동거인은 청소와 설거지를 좋아한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가사 노동의 부담을 나눠 지면서 취약한 부분에 도움을 받는다는 건 남자 파트너와 같이 산다면 기대하지 못했을 부분이었다.
얼마 전 노로 바이러스에 걸린 동거인을 위해 죽을 끓이고 약을 사다 줬다. 내가 아플 때면 그 친구가 똑같이 할 것이다. 가족이란 내가 약할 때 힘이 되는 존재라는 걸,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같이 살면서 실감했다. 물론 연일 계속되는 자기반성에 힘입어 내 요리 실력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에디터 | 황선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