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이 달라졌다. 필요한 품목만 찾아 신속히 빠져나오곤 했던 그곳에 다양한 소비의 가능성이 생겼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가 부진한 사이 승승장구하는 건 편의점뿐이다.

BAR CODE SHADOWS OBLIQUE편의점 인스턴트 음식을 사 먹지 않는 건 자취생 시절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요리하는 기쁨을 아는 몸도 아니고 엄마가 해다 바치는 반찬마저 썩어가게 방치할지언정, 공산품의 강으로 건너가지는 않겠다는 이상한 철학을 고집했다. 편의점에서 생필품을 살 때는 상황과 동선상 그게 효율적이라거나 그만큼 급하다는 의미다. 깊은 밤, 생리대가 떨어졌다는 걸 안 여자들이 향할 곳은 한 군데뿐이다. 필요한 물건을 고르고 리더기로 바코드를 읽어내기까지 편의점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과정은 신속하게 진행된다. 각종 할인 행사와 왠지 이로워 보이는 덕용 제품 사이를 어슬렁거리게 되는 대형 마트에서는 사람이 슬로 비디오처럼 움직이는데 말이다. 말 그대로 편의를 위해 가는 장소. 그곳에서 무엇을 고를까, 즐거운 갈등으로 눈이 반짝거릴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편의점 안에서도 모색과 탐색을 하는 일이 생겼다. 나의 변화라기보다 편의점의 변화다. 각 유통업종에서 사용된 카드 금액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비교하면 요즘 편의점의 위상이 드러난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이 2015년과 2016년의 카드 사용액을 비교한 바에 따르면, 백화점과 대형 마트의 금액 증가폭은 1%대에 머문 반면, 편의점은 무려 31%나 증가했다. 금액으로 치면 1조1600억원.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나홀로족이 간단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메뉴 시장이 커졌고, 이에 편의점 역시 신메뉴를 내놓으며 바빠진 덕이다. 대형 마트보다 접근성이 좋으면서 소량으로 구매하기 편한 편의점은 특히 1인 가구가 가볍게 들르기에 꽤 적합한 곳이다. 나는 편의점이 눈에띄게 흥하는 걸 보고서야 비로소 우리 사회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인 ‘1인 가구 증가’ 여부를 체감할 수 있었다. 그동안 1인 가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는 뉴스가 무색하게, 한편으로는 결혼식장마다 예약이 다 차서 식장 구하기 어렵다는 커플들의 소식도 곧잘 들려왔기 때문이다.
편의점 풍경에 상전벽해를 일으킨 일등공신은 도시락 메뉴다. 한때 편의점에서 파는 도시락은 재앙 수준이었다. 살면서 본의 아니게 맛 본 편의점 도시락에는 고기인지 고무인지 알 수 없는 물체가 반찬이라고 자리해 있었다. 국내 편의점 도시락의 새 시대를 연 건 김혜자도시락이다. GS25의 빛나는 성취는 사람들이 가성비가 훌륭하거나 푸짐한 구성을 갖춘 아이템을 말할 때 ‘혜자롭다’ ‘마더혜레사’라고 표현하는 현상을 낳았다. 4000원짜리 ‘명가바싹불고기’ 도시락의 자애로움은 흰 쌀밥을 유부초밥처럼 한 입 거리 모양으로 잡아놓는 디테일과 미니 샌드위치로 디저트까지 챙겨주는 책임감에 배어 있다. 2016년 한 해 CU에서 매출액 1위를 차지한 품목은 ‘백종원 한판 도시락’이다. 도시락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햄과 계란말이, 김치볶음과 돼지불고기, 어묵볶음과 감자볶음, 여기에 돈까스, 산적, 만두, 너겟이 샘플러처럼 한두 조각씩 있고, 고기와 튀김류를 이만큼 먹는다면 인간적으로 야채도 섭취해줘야 한다는 듯 소량의 마늘쫑이 자리한다. 이 꽉 찬 구성의 가격은 3500원. 세븐일레븐에는 혜리와 강레오가 있다. 혜리가 오늘도 끼니를 걱정하는 남성들에게 그만 갈등을 접고 도시락을 집으시라 이끈다면, 강레오는 셰프 인생의 노하우와 정수를 도시락에 앞서 부대찌개 라면에 담았다. 강레오 역시 조만간 세븐일레븐에서만 살 수 있는 도시락을 선보인다. 죽 메뉴도 출시할 예정이다. 배탈이 나거나 속이 불편해서 찾는 게 죽인데, 이왕이면 그냥 참치죽보다는 셰프가 끓여준 듯한 죽이 더 위로가 되긴 할 것이다.
신세계 계열 편의점인 위드미는 어느 순간 이마트의 PB(자체 브랜드 상품)인 ‘노 브랜드’와 피코크의 상품이 가장 눈에 잘 띄도록 진열해놓았다. 불필요한 포장과 브랜드명 자체를 없앤 노 브랜드는 긴 원통 케이스에 담은 감자칩을 프링글스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판다. 이마트가 만든 식품 브랜드 피코크도 편의점 부흥을 따라 자회사인 위드미에 안착했고, 메뉴는 간식거리에서 족발과 순대까지 다양하다. 끼니를 해결하면 디저트가 기다린다. 커스터드 크림이 꽉 찬 CU의 크림가득 빅슈, 콘셉트가 재밌는 GS25의 스노우볼 초코퐁당, 편의점에서만 구할 수 있는 쁘띠첼의 푸딩 등등 때문에 디저트를 찾아 편의점에 일부러 가는 사람이 꾸준히 늘고 있을 정도다. 다양해진 건 먹거리뿐만이 아니다. 리빙 브랜드의 소도구, 라인 프렌즈와 콜라보한 세면용품, 특정 상품을 사면 사은품으로 주는 피규어…. 예상 가능한 것들이 늘 그 자리에 줄지어 있던 편의점 풍경은 어느새 이토록 바뀌어 있다. 한 주택가 안에 자리 잡은 편의점으로부터 5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어느날 갑자기 또 다른 편의점이 말쑥하게 나타날 때처럼, 이 변화가 당연하다는 듯이.
2016년 일본의 순수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편의점 인간>의 작가 무라타 사야카는 18년째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상을 받는 날에도 편의점 근무를 했다는 그는 자전적 소설에서 이렇게 묘사한다. “나는 기계가 만든 청결한 식품을 가지런히 늘어놓는다. 신상품인 명란 치즈는 한가운데 두 줄로, 그 옆에는 가게에서 제일 잘 팔리는 참치 마요네즈를 두 줄로, 별로 팔리지 않는 가쓰오부시 주먹밥은 구석에. 속도가 승부를 가르므로, 머리는 거의 쓰지 않고 내 안에 배어 있는 규칙이 육체에 지시를 내리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속도감 있게 새 단장을 하는 편의점이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한 이후, 우리는 줄과 줄 사이에서 선택하는 소비가 가능해졌다. 이제 나 역시 스스로 공산품의 강으로 건너가곤 한다. 그러고 보니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낸 어느 뮤지션을 인터뷰할 때 그가 신이 나서 한 말이 있다. 서울에선 어느 구석진 동네에 있어도 조금만 걸어 나가면 편의점이 보여서 편리하다고. 땅덩이 넓은 도시에 살 때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었던 풍경이라며 그는 감탄했다. 24시간 불 밝힌 채 그 자리에 있는 편의점이 이곳의 큰 미덕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리하여 1인 가구의 누군가든 동거인이 있는 누군가든, 우리는 오늘도 편의점으로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