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연예인에겐 이혼과 채무와 육아도 예능 소재이지만, 예능에서 여자 연예인을 볼 일은 많지 않다. 웃기는 여자 예능인도 TV에서 사라지고 있다.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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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아는 형님〉은 매주 인기 걸그룹을 불러 각종 개인기를 시킨다. 강호동, 이수근, 서장훈, 이상민 등의 출연진은 그 개인기를 감상하며 자신의 이혼, 채무, 인기 하락 등을 두고 서로 낄낄거린다. MBC <라디오스타>의 네 남자 MC는 레드벨벳의 아이린이 토크에 소극적이자 “개인기 없냐” 같은 이야기로 압박했다. 그들 역시 서로의 사생활을 놀리며 웃길 수 있다. 반면 여자 예능인은 그들의 사생활을 마음껏 털어놓을 공간을 얻지 못한다. 여자들만으로 고정 출연진이 구성된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 1은 출연자들의 꿈을 이루는 것이 콘셉트였다. 물론 그것도 좋은데, 여자들이 자신들의 희망사항을 해결해가는 버라이어티는 10여 년 전의 KBS <해피선데이> ‘하이 파이브’부터 MBC에브리원 <무한걸스>, SBS <일요일이 좋다> ‘영웅호걸’ 등에 이르기까지 비슷한 방식으로 되풀이됐다. 남자 예능인은 실패한 결혼 생활에 대해 말해도, 결혼 못해서 혼자 사는 것만 보여줘도, 그러다 결혼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애만 봐도 출연할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그러나 여자 예능인은 꼭 이뤄야 할 꿈이 있거나, tvN <SNL 코리아>나 <코미디 빅리그>에서 외모로 놀림감이 될 각오를 하거나, MBC <일밤> ‘진짜 사나이’에서 남자처럼 강도 높은 군대 훈련을 겪거나 하지 않으면 예능에 출연하기 어렵다. 여자연 예인을 남자 출연진이 득실대는 프로그램에서 한번 불러주기만 해도 고맙다는 게 한 기획사 관계자의 말이다.

이런 현상을 여성 예능인의 자질 문제로 돌리는 경우도 있다. 여러 편의 버라이어티 쇼를 연출한 예능 PD는 “여자 연예인의 경우, 대개 잠에서 막 깬 망가진 모습을 보여주길 꺼려요”라고 한다. 하지만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온갖 분장을 하고 웃기기를 주저하지 않은 여성 코미디언은 여자가 아닌지 의아할 뿐이다. “여자들은 잘 웃기지 못하는 것 같아요. 여자 예능인 중 제일 웃기는 쪽보다 남자 쪽에서 덜 웃기는 사람을 섭외하려고 해요.” 한 예능 작가의 말은 차라리 속이라도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10여년 동안 KBS <해피투게더> MC 중 한 명이었던 박미선의 자리는 2016년 젊은 여성 배우인 엄현경으로 교체됐다. 박미선이 말 몇마디도 안 할 때가 많았던 박명수보다 진행을 못했거나 덜 웃겼다고 하기는 어렵다. 다만 박미선을 비롯한 여성 예능인은 남성 예능인과 다른 삶과 웃음의 방식이 있을 뿐이다. 김숙과 송은이는 팟캐스트 <비밀보장>에서 다양한 사람의 사연을 전달하며 고민까지 해결해준다. 이 팟캐스트의 인기에 힘입어 두 사람은 비슷한 콘셉트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진출했다. 두 사람이 불러주는 예능 프로그램이 없어 팟캐스트를 자체 제작한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결과다. 이렇게 웃겨도, TV에서는 그렇게 안 쓴다.

MBC <나 혼자 산다>는 예능 프로그램 속 여자에 대한 이 많은 편견을 날린다. 1인 가구로 사는 유명인들이 나오는 이 방송에서 여자 출연자들은 보기 드물게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 모델 한혜진은 비 시즌에는 좀 더 많이 먹고,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또 다른 인생을 준비한다. 중견 배우 황석정은 도시에서 혼자 살아가기가 녹록하지 않은 중년의 삶을 가감 없이 보여줬고, 여성 래퍼 헤이즈는 그녀만의 매력에 힘입어 음원 차트에서 역주행하기도 했다. 남자처럼 자신에게 익숙한 이야기, 익숙한 놀이, 익숙한 삶을 보여줄 수 있다면 여자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얼마든지 재미 있을 수 있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새로운 흐름도 아니다. 이미 온스타일 <겟잇뷰티>나 올리브채널 <테이스티로드>처럼 케이블 채널에서 여성들의 라이프스타일과 특정 분야를 결합한 예능 프로그램이 오랫동안 호응을 얻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효리는 SBS <일요일이 좋다> ‘패밀리가 떴다’ 등에서 막 자고 일어난 모습으로 웃음을 이끌어내기도 했고, 유재석과 <해피투게더>의 메인 MC로 베테랑다운 입담을 보여줬다. 종영 전 프로그램 포맷이 바뀌기도 했던 MBC <세바퀴>는 애초 이경실, 조혜련 등의 기혼 여성이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토크쇼였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독 여성들이 보이지 않거나 그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말하기 어렵게 된 것은 지난 몇 년간의 일이다. 이 현상은 어떤 이유에서 비롯된 것일까? 여자 연예인의 문제인가, 그들에 대해 관심이 없는 제작진의 문제인가, 시청자의 문제인가? SBS <미운 우리새끼>는 <나 혼자 산다>처럼 1인 가구의 삶을 보 여주되 결혼하지 않은 남자로 한정한다. 그들의 어머니가 대체 왜 마흔이 넘은 남자를 아이 대하듯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미운 우리새끼>가 <나 혼자 산다>보다 비교적 높은 시청률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해 한 예능 프로그램 연출자는 말했다. “여자는 남자가 출연하는 예능도 보지만, 남자는 여자들만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을 즐겨 보지 않아요. <프로듀스 101>처럼 어리고 예쁜 여성이 단체로 나오는 것이라면 모를까, 일정한 나이가 되고, 거기다 똑똑하거나 남자들이 이른바 ‘드세다’고 하는 타입의 여성들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은 좀처럼 보지 않으려고 하죠.” 그러니 남자들을 모아서 남자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다. 방송계에서 여전히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남자 연출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 과정에서 여자 예능인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우선순위에서 훨씬 뒤로 밀린다. 남자는 JTBC <비정상회담>처럼 다른 일을 하는 ‘일반인’ 외국 남자도 출연할 수 있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처럼 남성 셰프도 인기 예능인이 될 수 있다. <아는 형님>에서 김영철은 못 웃기는 것 자체가 캐릭터다. 못 웃긴다는 것으로 구박받고, 그것이 하나의 스토리가 되어 그를 자리 잡게 했다. 하지만 여자 예능인은 언제나 각개격파하듯 남자들의 예능 프로그램 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김연경은 <나 혼자 산다>에 다시 한번 출연해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을 공개했다. 그 전 출연 시에도 세계 최정상 운동선수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상당한 호응을 얻어낸 인물이다. 김연경조차 리우 올림픽 이후 출연한 <무한도전>에서는 본인이 쌓은 업적과 상관없이 엉뚱하게 출연자들과 관련된 순위만 발표하고 들어가야 했다.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은, 또는 그 제작자와 출연자와 시청자들은 김연경마저 그들이 규정하는 여성의 역할에 넣으려 한다. 하지만 김연경 같은 여성은 예상치 못한 순간 그런 시선을 넘어서면서 문자 그대로 ‘걸 크러시’를 만들어 낸다. 이런 순간들이 모이면 예능 프로그램은 조금씩 달라질지 모른다. 굳이 Mnet <프로듀스 101>처럼 소녀들이 ‘우리는 꿈을 꾸는 소녀들’이라고 노래하지 않아도, <언니들의 슬램덩크>처럼 여자들이 애써 꿈을 찾아 나서지 않아도, 그저 자신들의 현재만 이야기해도 충분히 재미있고 멋진 예능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