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스타일리시한 팝스타들. 그들의 뒤에는 보이지 않는 손, 든든한 협력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있다.

2016년 2월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카니예 웨스트의 이지 시즌3 쇼.

2016년 2월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카니예 웨스트의 이지 시즌3 쇼.

1970년대 중반 펑크 밴드 블론디가 혜성처럼 등장했을 때 싱어 데비 해리는 자신의 옷장에서 대충 꺼내 아무렇게나 입은 채 무대에 올랐다. 헤어와 메이크업도 직접 해야 했던 그 시절, 그녀가 패션 게임에서 앞서기 시작한 건 친구 스티븐 스프라우스(Stephen Sprouse)를 만나면서부터. 열정적이고 파격적인 디자이너이자 아티스트인 스프라우스는 그녀에게 슬립 드레스와 쿠레주 부츠를 권했다. 해리는 시각적 이미지에 엄청나게 신경 썼지만, 인터넷이 없던 때라 간혹 스타일 실수를 해도 그다지 큰 이슈가 되지는 않았다. 마침내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반항적인 탈색 블론드의 팜파탈이 탄생했다.
오늘날의 팝스타들은 조금 과장해 분 단위로 변신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반 홍보나 몸에 걸친 패션 브랜드는 물론이고, 매순간 쉴 새 없이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 스냅챗을 통해 시각적 이미지를 전달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무대 위의 스타와 무대를 내려온 스타 사이에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시시각각으로 흘러가는 리얼리티 덕분에 그들 뒤에서 이미지와 스타일을 창조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역할이 더욱 막강해졌다. 스타일링뿐 아니라 머천다이징과 앨범 패키지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맡고 있는 이들은 팝스타의 조언자, 상담자, 뮤즈, 커넥터이자 예언자 역할까지 겸한다.

팝스타의 크리에이터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버질 아블로(Virgil Abloh)가 아닐까? 디자이너이자 DJ, 건축가 그리고 장르를 초월한 멀티플레이어인 그는 13년간 카니예 웨스트와 호흡을 맞춰왔다. 또한 리한나의 시아라 파르도(Ciarra Pardo), 드레이크의 올리버 엘-카티브(Oliver El-Khatib), 비욘세의 토드 투어소(Todd Tourso) 도 빠뜨릴 수 없는 막강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군단이다. “아티스트가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넘어서면, 사람들을 다 만나며 소통하기란 불가능해요. 이때부터는 그들을 하나의 브랜드로 보고, 일관적인 관리가 필요하죠.” 비욘세의 ‘Heaven’과 ‘Jealous’ 비디오를 감독하고 올해 6집 <Lemonade> 전 과정을 총괄한 투어소가 말한다. “그들에게는 시각적 언어를 통일감 있게 연결해줄 누군가가 있어야 해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일은 아티스트의 머릿속에서 스쳐가는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고, 여기에 시각적 진취성을 불어넣는 작업이에요.” 아블로는 카니예 웨스트와 함께 작업하며 ‘팝 문화 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역할을 개척해왔다. 패션, 디자인, 아트를 포함하는 드넓은 분야를 아우르는 그는 ‘카니예는 전사!’라고 말한다. “아티스트가 또 다른 아티스트를 고용하는 건 드문 일이지만, 최근에는 더 창조적인 작업을 위해 이런 형태가 확산되는 추세죠.” 아블로는 틈새 트렌드를 탐구하고 웨스트를 위한 컬래버레이터들을 물색할 뿐만 아니라 카니예의 브랜드 이지(Yeezy)의 수많은 프로젝트(투어, 비디오, 앨범 커버, 한정판 티셔츠, 이지 패션 레이블 등)를 아트 디렉팅한다. 아블로가 바라보는 웨스트는 ‘삶 자체가 살아 숨 쉬는 아트 프로젝트’다. “그가 생각하는 방식을 알아차리고 여기에 최적화된 툴과 옵션을 제시하는 게 제 역할이에요. 큰 그림을 통해 전체적인 시나리오의 밸런스를 맞춰가면서요.”


2003년 웨스트와 협업하기 전, 아블로는 대학에서 공학과 건축을 공부한 후 시카고의 한 회사에서 일했다. 자신에게 영감을 준 인물로는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카라바조, 건축가 미스판 데어 로에, 렘 콜하스 등을 꼽으며, 마음이 맞는 동료들과 함께 건축 역시 미학적 과정의 하나라는 바우하우스의 원칙에 입각해 작업을 해왔다고 말한다. 2010년 카니예 웨스트의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의 앨범 커버를 그 린 아티스트 조지 콘도(George Condo) 또한, 아블로를 두고서 ‘기민하고 독특한 미학적 감수성을 지닌 디렉터’라 언급했다. 웨스트뿐 아니라 아블로도 1년 중 320일을 여행한다. 더욱이 DJ를 겸하면서 시카고의 의류 스토어인 RSVP 갤러리도 운영 중이고(시카고에는 아내와 아직 어린 딸이 산다), 종종 뮤지션 테오필러스 런던(Theophilus London)이나 레이디 가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매슈 윌리엄스와 본인이 속한 크리에이터 그룹 빈 트릴의 창시자, 헤론 프레스톤 등의 친구들과 함께 독자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2013년 패션 레이블 오프-화이트를 론칭했고, 2015년에는 LVMH 영 패션 디자이너 프라이즈에 후보에 올랐다. 그는 스케이트보드와 스트리트 신에 관련된 경험을 바탕으로 주로 하이패션과 언더그라운드적인 것의 접목, 남성스러움과 여성스러움, 밀레니엄 스타일과 포스트-텀블러 세대의 기발함을 혼합하고 있다. 최근 카니예의 앨범 <이저스 (Yeezus)>의 아이튠즈 페이지 그래픽 디자인을 위해 그가 택한 인물은 바로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 짐 조(Jim Joe)였다. 그는 2015년 드레이크의 ‘If You’re Reading This It’s Too Late’ 앨범 커버를 만든 친구다. 또 웨스트에게 그는 비주얼 아티스트이자 오프-화이트의 협업자인 칼리 도른힐 드윗(Cali Thornhill DeWitt)을 소개했고, 그에게 ‘세인트 파블로 투어(Saint Pablo Tour)의 머천다이징 디자인’을 맡겼다.

이렇게 분주하게 이어지는 프로젝트와 끊임없이 전달되는 수많은 콘텐츠 덕분에, 아티스트들은 매니지먼트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리한나는 본업 외에 디올 선글라스의 뮤즈이자 푸마와의 협업 라인을 론칭했고, 비욘세 역시 액티브웨어 라인인 아이비 파크(Ivy Park)를 공동 설립했다. 비욘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토드 투어소는 그녀와의 작업에 대해 말한다. “몇 년 전 그녀에게 촬영용 아이디어 보드를 들고 갔더니 ‘왜 백인 소녀들을 위한 스키니만 있을까요?’라고 말하더군요. 우리는 딸아이의 세대가 그런 감정을 느끼면서 자라길 원치 않았어요.”
2007년부터 리한나와 작업해오고 있는 시아라 파르도의 경우 ‘Bitch Better Have My Money’와 ‘Pour It Up’의 뮤비 공동 감독을 포함해 모든 콘셉트를 총괄하고 있다. “커다란 변화였어요.” 브롱크스출신의 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투자금융사인 모건스탠리에서 일하다가 캘리포니아로 옮겨와 프로덕션 회사를 차렸다. “그들은 더 이상 단순한 팝스타가 아니죠. 그들은 문화를 바꾸고 이동시키는 진정한 인플루엔서예요.”

비욘세의 스타일 디렉터 토드 투어소.

비욘세의 스타일 디렉터 토드 투어소.

비욘세는 2013년 이후 자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투어소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유튜브 영상을 보내고 컴퓨터로 직접 만든 무드보드를 전송하면서 말이다. “그녀는 참여 의식이 굉장히 높아요. 쉼 없이 일하죠.” 투어소가 말한다. 반대로 비욘세는 투어소를 이렇게 바라본다. “지금껏 접해온 사람 중에 가장 두려움이 없는 용감한 사람이에요.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는 아이디어를 이해하고 언제나 이를 현실화할 방법을 찾아내거든요.” <Lemonade> 속 대담한 영상은 결혼 제도와 남편과의 갈등과 원망 그리고 화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앨범은 정신과의사 퀴블러 로스(Kubler Ross)가 말하는 ‘우울과 슬픔’의 단계를 더 감정적으로 확장시킨 것이라 한다. 투어소는 워너브라더스 레코드와 온라인 아트 잡지 <플루언트(Fluent)> 매거진의 아트 디렉터로도 활동했으며, 레이디 가가와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비욘세는 세대를 넘나드는 갈등 관계에 대해 고민했어요. 아프리칸 미국인의 투쟁과 갈등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요.” 투어소가 말한다. “그리고 또 하나, 더 개인적으로 들어가 우린 남자의 배신과 거짓에 대해 여성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건 모든 갈등이 그렇듯이 엄청난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죠.” 비욘세가 야구방망이로 차창을 깨부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비디오 아티스트 피필로티 리스트의 설치 작품 ‘Ever Is Over All’에서 영감을 얻었다), 뮤직비디오 속에서 그녀의 강렬한 감정과 폭발하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투어소의 역할은 비욘세가 누구인지,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Lemonade> 발매는 미국 영화 채널HBO의 1시간짜리 뮤직비디오 영상과 동시에 이루어졌고, 그 안에는 인종, 성별, 권력, 결혼, 인권과 관련된 흑인 여성의 파워풀한 다큐멘터리가 담겨 있다. 경찰에 잡혀가는 흑인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들을 포함해 이 다큐멘터리 영상은 루이지애나 부두, 남부 고딕, 독일 표현주의 등 다양한 소스에서 영감을 얻었다. 웨스트의 경우에는 한동안 이지 시즌 3 패션쇼와 새 앨범 <Life of Pablo>의 홍보로 분주했다. 작년 2월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는 라이브 파티 겸 아티스트 바네사 비크로프트와의 퍼포먼스 쇼가 펼쳐졌는데, 아블로는 웨스트의 옆에 서서 이 모든 과정을 총괄했다. 이를 지켜본 투어소는 “웨스트의 작업은 대중에게 아트와 패션의 높은 가치를 전하는 개념주의 퍼포먼스”라 평했다. “반면 비욘세의 목표는 보는 사람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 맞춰지죠.” 투어소는 LA에서 나고 자랐고, 파사데나 아트센터 칼리지에서 디자인과 필름을 공부했다. 그리고 2006년 스트리트 웨어 브랜드 ‘플레인 그레이비 (Plain Gravy)’를 론칭해 온라인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지만, ‘Pharrell can’t Skate(패럴은 스케이트를 못 탄다)’라는 레터링 티셔츠를 파리 콜레트에서 판매했다가 패럴 윌리엄스의 팬과 스케이터들의 공분을 샀다. 아이러니한 건 패럴과 그는 절친한 친구 사이고, 2013년 투어소와 비욘세를 만나게 해준 것도 패럴이었다. 아블로는 가나 이주민의 아들로, 시카고 교외에서 자라 대학에서 하우스파티 DJ로 활약해왔다. 위스콘신 매디슨 대학 시절, 패션 스타일에 관한 한 그와 룸메이트들이 입버릇처럼 되뇌는 말이 있었다. <GQ>에서 베르사체 로브를 입은 래퍼 디디를 본 뒤로 ‘디디라면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 말이다. 이렇듯 매우 독특한 지점이 있는 그는 일리노이 공과대학에서 건축 공부도 겸하면서 웹사이트와 가구를 디자인했고, 다양한 문화와 관련된 블로그도 만들었다. 웨스트의 눈에 띄게 된 건 아블로가 이지를 위해 직접 만든 티셔츠를 웨스트의 스태프들이 자주 들르는 스크린 프린팅 숍에 비치해놓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대의 이 크리에이티브 군단의 필수 요건은 ‘글로벌 라이프에 걸맞게 24시간, 일주일 내내 다양한 플랫폼을 아우르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블로는 말한다.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고 포스팅을 하고, 여행도 하고, 거리의 사람도 지켜보죠. 수시로 그룹 채팅을 하면서 친구와 디자이너를 만나고, 우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아요. 매일 밤 디제잉을 하면서 누군가는 파리나 LA에 있거나, 또 누군가는 전시회와 패션쇼에서 모습을 드러내고요. 우린 집단적으로 공존하죠. 게다가 집단적으로 엄지손가락을 올리거나 내리면서 ‘찬성’과 ‘반대’를 표현해요. 만일 우리 중 누군가가 폰트를 잘못 썼거나 뭔가 실수를 저질렀다면, 난 이런 표시를 하죠. ‘넌 이제 끝났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