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가 언젠가 캔버스를 대신할 것이다”라는 백남준의 선언은 이제 인공지능으로까지 확장되었다. 그렇다면 동상이몽처럼 쓰이는 ‘미디어 아트’의 좌표는 어디쯤에 있을까? 기술은 도구일 뿐이라 믿는 작가부터 로봇으로 상상력을 펼치는 아티스트까지,더블유가 만난 다채로운 이들이 그 이해를 도와줄 것이다.

타니구치

아키히코 타니구치(Akihiko Taniguchi)

아키히코 타니구치는 가상과 현실이라는 개념의 경계를 탐구한다. 주로 컴퓨터를 이용해 작업하고, 모교인 도쿄 타마미술대학교에서 미디어 아트 수업을 강의하지만, 영상, 네트워크, 조각, 퍼포먼스 등 다양한 형태로 작품을 발표하기 때문에 가끔 스스로도 자기 정체를 헷갈려 한다. 지난 11월 20일 막을 내린 서울시립미술관의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6에서 그는 두 작품을 소개했다. ‘나와 닮은 것/본다는 것에 대하여’와 ‘빅 브라우저 3D’는 모두 그가 잘 구현하는 3D 게임 형식의 작업이다. 게임의 감각으로 유지되는 이 작업은 철저히 ‘나’라는 자아가 얼마나,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바탕으로 한다. 이미지의 손쉬운 생산과 기록을 돕는 3D 스캐너를 매개로, 타니구치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 안에 탐구 주제를 심어놓는다.

<미디어시티서울> 2016에서 발표한 작품에 대해 설명해달라.
3D 스캐너로 직접 촬영한 소스를 이용해 가상의 세상을 만들었다. 관객은 조이 스틱으로 내 아바타를 조정하며 그 세상 안에서 가고 싶은 곳에 가거나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들에서 관객이 자기 의지대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과거의 내가 이미 본 것을, 내가 본 방식대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3D 스캐너를 거쳐 만들어진 데이터는 누군가 그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보고 스캔하여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영상 속 아바타를 통해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의 시선이 겹쳐질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사진과 영상을 잇는 새로운 이미지 기록 미디어는 3D 스캐너 아닐까?

당신이 작품에 담는 주제 의식을 하나의 질문으로 표현한다면?
‘나는 공간적, 시간적인 확장 속에서 어디까지가 나일까?’ 나라는 사람의 윤곽과 경계가 애매해진다.

그러한 이야기를 게임의 형식으로 풀어내는 이유는 뭔가?
게임은 어떤 의미에서 최고의 인터랙티브 아트다. 조이 스틱이나 컨트롤러 하나로 다양한 가상 세계에 바로 몰입할 수 있으니까. 최근에는 시를 낭독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물론 내가 관객 앞에서 직접 하는 게 아니라 영상 속 아바타가 가상 공간을 이동하며 낭독하는 식이다. 퍼포먼스를 할 때, 3D 아바타와 똑같이 생긴 현실의 내가 그곳에 있다는 게 중요한 요소다.

한국의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2월 중순까지 <뉴 게임 플레이>라는 기획전을 연다. 여기서 전시를 관람한다는 것은 곧 각종 게임을 해본다는 의미인데, 감각이 깨어나는 듯한 경험도 안겨준다.
궁금한 전시였는데 한국에 있는 동안 시간이 없어 못 봤다. 감각의 확장에 관심이 많다. 예를 들면 인간이 기구를 통해서 새로운 지각을 발견하거나, 감각이 확장되는 경우가 있다. ‘파쿠르’라는 스트리트 스포츠 들어봤나? 사람이 맨몸으로 장애물을 뛰어 넘는 역동적인 스포츠다. 스케이트보드나 인라인 스케이트 등의 활동으로 인간의 신체가 극에 달한 결과, 이제 어떤 이는 기구가 불필요한 신체로까지 발전했다. 그런 맥락에서 나도 작품을 보고 있을 때의 감각이 작품을 다 본 후에도 잔향처럼 유지될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일본은 디지털 문화와 디바이스가 발달된 국가다. 작가로 활동하면서 다른 나라와 구분되는 일본의 환경이나 여건이 있다고 느끼나?
여건이 좋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특징이라고 느끼는 점은 있다. 일본에선 공공 장소나 여러 상품에 세심한 배려와 편의성이 배어 있다. 그런 섬세함이 한편으로는 연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뼈가 얇은 느낌이랄까? 또 일본에는 테이트 모던처럼 거대한 전시실이 거의 없다. 그 탓인지 작가들의 작품 스케일도 작은 경향이 있다. 공간의 제약이 없는 가상현실 속에서 작품을 발표하게 해도 무의식 중에 작품 스케일이 작아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했어도 당신은 작가의 길을 걸었을까?
아마 뭔가 해보겠다고 시작했다가 중도에 포기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컴퓨터가 없었다 해도 아티스트가 됐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작업과 상관없이 일상에서는 얼마나 디지털과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나?
집에 TV가 없다. 방송을 잘 안 봐서 K-POP이 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컴퓨터와 붙어 산다. 최근에는 페블(Pebble)이라는 스마트 워치를 차고 다니는데, 메일이 오거나 누가 내 SNS에서 ‘좋아요’를 누르면 알림이 와서 손목이 진동한다. 한마디로 손목이 인터넷에 접속돼 있는 상태다.

기술과 예술이 어떻게 하면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밀접한 관계를 맺으려고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동시대를 살면서 각각 본질적인 것을 추구한 끝에, 새로운 철학이 서로의 영역으로부터 탄생할 수도 있다. 훗날 역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거야말로 거대한 컬래버레이션이지 않을까? 무언가가 동시대를 함께 통과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관계를 맺고있는 셈이다.

하지만 기술은 그 시기를 지나면 금방 옛것이 돼버린다. 기술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지 않나?
기본적으로 그림 물감이나 점토와 같은, 일반적인 작품 소재 중의 하나로 기술을 다루고 싶다. 하지만 어떤 기술은 그 시대에만 유효한 의미나 콘셉트를 갖는다. 시대나 역사적인 시선을 내포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금방 옛것이 돼버릴 기술이라도 이용할 가치가 있다. 다만 실제로 내가 작업할 때의 감각으로 말하자면, 새로운 기술이 지닌 순수한 매력으로부터는 조금 거리를 두는 편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예술의 역할은 뭐라고 생각하나?
무의미한 것을 유용하게 만들고, 그 기능에 대해 계몽하기. 여가, 짬, 완충 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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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하

인터랙티브 아트의 다양한 가능성을 이해하는 방법 중 하나는 양민하의 웹사이트를 둘러보는 것이다. 그는 대표작 ‘묵상’처럼 여러 국제전에 초대되는 강렬한 빛의 파장도 낳았고, 자연과 자연을 감쪽같이 흉내 낸 기술의 차이를 질문하기 위해 씨름하기도 했다. 관객의 반응에 따라 작품이 생물처럼 변하는 인터랙티브 아트는 그 신기한 성질 때문에 간혹 흥미 위주로만 전달될 때가 있다. 그 점에 회의감도 느낀 양민하는 이제 인터랙션 요소가 있는 작업은 예전만큼 하지 않는다. 1월 20일까지 아트센터 나비에서 열리는 <아직도 인간이 필요한 이유: AI와 휴머니티>전에 가면 그의 신작 ‘해체된 사유와 나열된 언어’가 있다. 작품은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인터랙티브’하게 영향받지 않는 대신, 이제 자기 스스로 생물처럼 존재한다. 양민하가 상상하는 사유하는 기계, 감정을 가진 기계는 앞으로 또 다른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해체된 사유와 나열된 언어’는 어떤 작품인가?
데카르트 같은 철학자들은 사유가 인간의 이성 작용이라고 설명한다. 만약 인간이라는 단서를 기계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에서 이 작업을 시작했다. 기계가 자아를 지니면 어떤 행동을 할지 탐구하는 철학자와 과학자가 있는데, 그들의 대표 저서 9권을 골라 인공지능에게 책 내용을 학습시켰다. 그리고 책의 목차와 색인에서 주요 단어 530개 정도를 골라 그것에 대한 생각을 문장으로 표현해보라고 한 결과가 이 작업이다.

기계가 사유한 결과는?
불완전하다(웃음). 완벽하지 못할 거라는 건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 인공지능에게 제대로 학습시키려면 기계가 표준 문법이라고 인식할 만한 기준점이 있어야 하는데, 외국에는 그런 게 있지만 한국어로는 아직 없다. 책 9권의 문체가 다 다르다 보니 거기서 오류가 생긴다. 스크린에 기계가 생각한 문장이 계속펼쳐진다. 어려운 얘기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자세히 보면 말 안 되는 부분이 많다.

당신은 작업에 관해 어떤 사유를 했나?
지금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기계에 포용되고 있는 시대다. 그 점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고 화두를 던지고 싶었고, 인공지능이 아직까지는 인간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는 점도 말하고 싶었다. 우리가 일상에서 가까이 접하는 인공지능의 대표적 예가 검색엔진이다. 그게 얼마나 완벽할까? 인공지능은 그들의 진영에서 판단하는 검색 결과를 보여주고, 우리는 그 판단을 수용할 뿐이다.

2014년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미술 부문을 수상했다. 그 유명한 융복합 가치를 실천하고 있는 작가여서 선정됐을까?
내가 왜 상을 받았는지 나도 궁금하다.

인터랙티브 아트로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약했기 때문 아닐까? 그 분야를 중심으로 한 뉴미디어 아트의 흐름과 변화를 지켜봤겠다.
인터랙티브 아트는 흥망성쇠 중 ‘망’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큰 분야다(웃음). 한동안은 아주 흥했지만, 사실 소진되고 있었다. 인터랙션이 포함된 설치 작업은 겉보기에 그럴싸한 경우가 많아 여기저기서 전시를 유치했고, 그 탓에 훈련 안 된 작가들이 자기 복제를 하다 많이 사라졌다.

인터랙션 요소가 있는 작품은 관객의 반응에 따라 작품이 변하는 시각적 즐거움이 있다. 그 때문에 정작 작품의 메시지는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텐데.
관객이 참여함으로써 작품이 완성되는 의미가 있지만, 말초적이고 피상적인 상태만 즐기는 모습을 볼땐 슬프고 불편하기도 했다. 관심 있는 사람은 전시 리플렛 등의 설명을 챙겨 본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인터랙티브 아트가 아니더라도 현대미술에선 겉으로 드러나는 것 외에 주석이 거들어야 한다.

인상적인 관객의 반응이나 피드백도 있었나?
몇 년 전, 각 종교의 상징적인 요소를 조합해 ‘묵상’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이런저런 종교의 상징을 집어넣어 비정형적 형태만 만들어놔도 과연 사람들이 종교로 받아들일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구형의 오브제들로부터 현란한 붉은빛 파장과 소리가 퍼져 나가며 관객이 몰입하도록 붙드는데, 샌프란시스코에서 전시를 할 때 어떤 이가 사흘 내내 와서 거의 종일 그 앞에 서 있었다. 기도하듯 주변에 있거나 누워서 지켜보는 사람도 있었고. 이 작업은 설치된 공간이 일종의 성지 같은 의미를 지녀야 했기 때문에 관객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했다.

미디어 아트라는 작업의 속성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이 있다면 뭔가?
통상적으로 영상 작업을 일컫는 미디어 아트, 그리고 뉴미디어 아트, 제너러티브 아트 등 용어에 따른 개념의 차이가 어느 정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분야에서 어려운 점은 기술이 너무 빨리 바뀐다는 거다. 일일이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미디어 아트가 발전하면서 미디어 고유의 기술이 지닌 물리적 현상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는 작업도 많아졌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는 ‘공진화’, 그리고 ‘기계가 감정을 가졌을 때’라는 가정이다. 공진화는 인간이 기구를 만들어 쓰기 시작하면서 인간과 기구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진화한다는 개념이다.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는 기구로서의 기계가 만약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그 아이는 아직 미물이니 사람에게 공포를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점을 표현하는 작업을 위해 몇 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통해 완성된 작품의 미학은 뭘까?
미학이라고 말하면 정말 어려운 문제가 된다. 나는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작가는 아니니까. 다만 내가 추구하는 바는 있다. 그걸 미학이라고 말해도 된다면, 바로 기계의 자아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다.

물아일체?
그렇다. 재밌지 않나? 요즘 핫한 머신러닝이라는 인공지능은 인간의 뉴런 체계와 똑같은 방법으로 학습한다. 죽기 전에 나의 뇌를 컴퓨터에 옮겨두고 싶다. 두 개의 자아가 존재한다면 내가 나와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도 있겠고.

기술이 예술로서 최상의 결과물을 내려면, 그 기술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기술이 어때야 한다기보다 그걸 이용하는 사람이 어때야 한다는 점은 말할 수 있다. 프로그래밍이나 기술을 다루는 능력, 심미적이고 조형적인 감각, 이 두가지를 완벽하게 갖춰야 진짜 뉴미디어 아트를 계속할 수 있는 작가가 된다. 우리가 위대하다고 말하는 예술가들은 심미성만 훌륭한 게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도 뛰어났다. 뉴미디어 아티스트에겐 인문학의 자리가 기술로 대체되는 셈이다. 물론 인문학적 이해까지 갖추면 더욱 좋고.

뮌

“감정 오염의 시대 같아요. SNS에는 ‘좋아요’와 하트가 넘쳐나고 메시지에서는 이모티콘을 붙이지 않으면 딱딱하게 여겨지죠. 타인의 감정에 지나치게 노출되는 위험함과 피로를 느끼는 사회가 되었어요.” 김민선과 최문선의 이름을 합친 팀 네임을 쓰는 듀오 아티스트 뮌은 네트워크에 관심이 크다. 실제 사회에서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방식, 그리고 인터넷 정보망이라는 두 가지 의미에서 다 그렇다. 복합 문화 공간 파라다이스 집(ZIP)의 개관을 기념해 열린 이들의 전시 타이틀은 ‘오 마이 퍼블릭’이었다. 오래된 주택을 건축가 승효상이 리모델링한 전시 공간 외벽에는 전체를 덮은 아시바 설치 사이로 이모티콘이 여러 개 부착되어 있었다. 가장 사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수단이자 공적 언어로서 기능하는 이 상징을 비롯해 뮌은 ‘공공’이 가진 다양한 개념을 흥미롭게 또 풍부하게 풀어냈다. 미술관과 비엔날레 등의 전시 빅 데이터를 분석해 아티스트와 큐레이터 등 미술계 파워 인물들의 관계를 웹상에 시각화한 ‘아트 솔라리스’ 작품은 조각 설치물로 마치 태양을 둘러싼 행성처럼 배치되기도 했다. 미디어 아트, 두 어절에서 방점을 찍는다면 이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확실히 후자에 있었다.

미디어 아트의 개념이 다소 넓게 사용되고 있다. 당신들 스스로는 어떻게 느끼나?
우리가 사용하는 머티리얼이 미디어이긴 하지만 미디어 아트라고 국한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미술로 이야기하고 싶은 걸 손쉬운 재료를 사용하자, 이게 우리 입장이다. 그 손쉬운 재료가 설치가 되기도하고, 때로는 인터랙티브적 요소가 있거나 비디오, 컴퓨터 테크놀로지가 되기도 한다. 현재 미디어 아트라는 용어는 신매체에 대한 관심으로만 포섭해 미술 공학 디자인을 아우르는 단어로 폭넓게 쓰이는게 사실이다. 개념보다는 스펙터클한 장치, 기술 자체의 구현에 치중하는 작가들이 확실히 있는데, 그에 비해 우리는 개념이 더 중요하다.

네트워크와 파워 피플의 관계도를 시각화한 ‘아트 솔라리스’ 작업은 미술계 내부에서 환영받지 못했을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서서히 보이는 게 있는데, 그걸 똑바로 볼 것인지, 아니면 외면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우리는 둘이라 그런지 용기가 생겨서 직시할 수 있었다. 처음에 전혀 선입견 없이 미술계에서 공적 예산이 지원되는 프로젝트에 대한 인물 데이터를 넣었는데 몇 군데에 편중되는 결과가 나오는 걸 보고 놀랐다. 다른 나라의 미술계에도 카르텔이 있지만 한국만큼 불균형하게 쏠리지는 않을 거다. 소수 몇 군데에만 힘이 밀집되어 있는 건 비단 미술계뿐 아니라 정치계, 문화, 경제계를 포함해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모습일 것이다. 특히 폐쇄적이고 대중이 소비하지 않는 장르일수록 전문가의 전횡이 두드러진다. 고인 물처럼 내부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힘이 여러 군데로 산발적으로 분포해 서로 교류하고 견제도 하는 쪽이 건전한 그림일 것이다. 우리도 30대였다면 미술계만이 전부인 줄 알았을 터라 이런 접근은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30대 이하의 젊은 작가들이라면 오히려 기존의 질서를 이해관계 없이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아 이런 게 요즘 시류의 예술인가 보다’라는 선입견을 갖게 된다. 30대 초반 작가들의 작업이 마치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처럼 쏠려 있어서 카테고리화할 수 있을 정도다. 예술이 가장 큰 힘을 가질 때는 학습한 것 위에 고유함이 더해질 때인데, 이제 그런 고유함의 컬러조차 큰 별들의 색깔과 유사해지는 형국이다. 그런 면이 아쉽다. 미술계 내부에서 전시를 하고 살아남으려다 보니 그럴 거다. 이 세계가 아니라 다른 세상과 만나서 생산물을 만들어낼 수도 있는데, 그 내부에서 경계선 밖으로 나와 구축해보려는 용기를 갖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교통 통제용 러버콘에 금 도금을 한 작품은 이런 ‘경계선’이라는 키워드와 맞물려 있는 것 같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허물려는 사람은 소속된 곳이 없다. 반면 안전을 추구하는 사람은 어딘가에 소속 되려고 한다. 특히 메인스트림에.

‘퍼블릭’이라는 전시 타이틀을 내걸고 공공성, 대중,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다방면으로 탐구했다. 이런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나?
최근 10년 동안 우리 사회의 공공성이 점점 약해진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더 예민하게 감지할 수도 있지만, 한국 사회는 시스템이 붕괴하면서 각자도생의 시대를 맞은 것 같다. 다양한 영역에서 공공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인지 의심하는 개인들이 많다. 사회적 규율이 합의되어 있고 법에 의해 억울함이 해소되지 않는 사회말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싶었다.

당신들이 상정하는 미술 관객의 ‘퍼블릭’은 어떤 사람들인가?
이를테면 대림미술관 같은 곳의 전시 기획은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지만 미술계에서는 인정받지 못한다. 아니, 거의 없는 취급을 받는다. 소위 힙스터라고 하는 사람들이 거기까지 발품 팔아서 가면서 문화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는 자체를 긍정적으로 본다. 그런 관객들이 늘어나는 과정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박경근

박경근

스냅챗, 페이스북 라이브, 인스타그램 스토리. ‘실시간’ 그리고 ‘영상’이라는 두가지 키워드가 지배하는 시대, 박경근은 12월 7일 갤러리현대에서 개막한 새 전시에서 새로운 형식을 시도했다. 인물 4명의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감정의 움직임을 몸짓으로 표현하는 퍼포먼스가 벌어지는 한편으로 이를 실시간으로 촬영한 영상을 상영하는 라이브 비디오였다. 배우와 무용가들이 연기를 하고 촬영 감독과 중계 감독이 한 팀으로 일했다. 실재와 디지털 이미지가 동시에 존재할 때 발생하는 시각적 긴장감은 그가 요즘 탐구하는 중요한 모티프이기도 하다. 중계를 거친 현실은 재현되고 또 파편화된다. “디지털은 대상과 나를 계속 쪼개고 멀리 떨어지게 하는 효과가 있어요. 추상화된 정보의 신호를 계속 받아들이는 차가운 성질의 경험이죠.” 소통을 위한 수단인 카톡이 실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쪼개는 것처럼 말이다. 이전에 박경근이 영상으로 담아온 주제는 철강 산업(<청계천 메들리> <철의 꿈>), 군사 문화(<군대: 60만의 초상>) 등 비교적 고전적인 주제였고, 형식 또한 그러했다. 어쩌면 앞으로는 근현대사를 이어온 집단 서사의 한 축을, 현대 한국인의 환경을 강력하게 구축하고 있는 디지털이 차지할지도 모르겠다.

2016년 리움의 아트스펙트럼 작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스스로 어떤 의미를 두나?
주변에서 축하 인사를 많이 받았다. 나 자신에게는 상 자체보다 상금이 소중했다.

당신은 주로 미디어 아티스트로 불리고, 간혹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스스로는 어떻게 정체성을 규정하나?
장편 영화의 기준이 60분 이상의 러닝타임이니 틀린 말은 아니다. 내 작업의 경우 짧은 버전은 비디오 인스톨레이션용, 긴 버전은 영화관 상영용으로 편집한다. 미술관에서 제대로 프로젝션하는 경우 크게 30미터 정도의 스크린에 3채널 멀티비디오 인스톨레이션으로 설치하고. 스스로는 아티스트가 걸맞은 타이틀 같다. 영화라는 형식 안에서 작업하기보다 영상이라는 매체를 표현 방식의 하나로서 활용하는 미술 작가니까.

미디어 아트라는 용어가 상당히 넓게 사용되고 있다.
첨단기술, 전자 매체를 쓰면 대체로 그렇게 불리는 것 같다. 내 경우 컴퓨터 테크놀로지 자체에는 관심이 있지만 그 기술을 활용해서 뭘 만드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학부에서 원래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90년대 말 IT 붐이 일면서 과 이름이 미디어 아트로 바뀌었다. 커리큘럼에 가상현실 같은 수업이 추가되고, MIT 사람들이 들어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에게는 재미가 없었다. 신기함까지일 뿐, 깊은 울림을 주거나 감동을 주거나 하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기술을 쓰더라도 결국 사람에게 감동을 주어야 예술적인 퀄리티가 있다고 생각한다.

청계천 뒷골목의 공장, 조선소, 군대처럼 남성적인 공간을 취재하고 영상으로 찍는 작업을 해왔다.
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 것이다. 한국 사람이고 남자라는 틀이 나를 형성하는 그 정체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그게 진짜 나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가 있는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한다고 하면, 대상과 거리를 두는 데 어려움이 있지는 않나?
공감하지 않으면 찍을 수가 없지만, 한편으로는 감정 이입에 빠져버리면 신파적으로 나올 수도 있어서 그 선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 의도와 반대의 해석을 접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군대: 60만의 초상>에서 입대하는 신병의 주인공 어머니가 울면서 배웅하는 표정을 한참 찍었다. 아들을 군에 보내는 엄마가 우는 걸 찍으며 감정 이입이 되니까 나도 모르게 뭉클한 감정이 들어서 그 장면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해외의 다큐멘터리 워크숍에서 이 장면의 편집본을 보여주니 누군가 “너는 이 엄마를 조롱하려고 찍었냐”는 반응을 보여 깜짝 놀랐다. 한국의 군대 문화에 대한 맥락을 모르는 사람은, 통곡하며 우는 어머니를 우스꽝스럽게 보는 것이다. 전혀 배경 지식이 없는 누군가에게 이 정서를 전달해야 한다면 내가 거기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군대 문제는 한국의 특수성이 강해서 해외 관객과는 온도차가 더 클 것 같다.
외국에서 한국의 군대를 보면 ‘이런 이상한 제도가 있구나’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객관적으로 동떨어진 입장을 취하면 감동이 없어질 거다. 독일이나 북유럽에는 사회 시스템을 건조하고 좌파적 시선으로 비판하는 영화도 있지만 내가 보는 현장이랄까, 한국에서의 삶은 그런 정서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결국 닿아 있어야 표현할 수 있지만 너무 가까우면 안 되는 거다.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건 거기 있으면서도 없기를 동시에 해야 하는 입장이다. 이 정서를 어떻게 예술화시키냐 하는 걸 계속 고민한다. 구조를 명확하게 드러내면서도 어떻게 신파에 빠지지 않고 한 단계 예술적 가치를 높이느냐 하는 것이 큰 과제다.

32:9의 극단적인 화면 비율이 특이하다. 도열하고 있는 군인들의 신체 부위를 강조하는 효과도 있었다.
아래위로 잘라서 트리밍했다. 그 포맷이 강화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개인들의 얼굴 같은 게 더 잘 드러나는 크로핑이다.

요즘은 어떤 관심사를 갖고 있나?
지금 세대의 남녀 관계에 대한 관심이 많다. 지금까지 한국 남자의 정체성을 다뤘다면 앞으로의 질문은 한국 여자로 향하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여자들을 이루는 감정을 한 단어로 설명하자면 불안감 같다. 이 불안감 때문에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 반대로 남자들을 보면 그 감정의 1순위는 억울함이 아닐까 싶다. 거기에 군대가 한몫하기도 하고. 내가 한국 남성이기 때문에 더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남성의 시선에서 보는 여성이라는 한계 속에서, 여성의 시선으로 보는 남성 역시 드러날 것 같다. 그들 사이의 관계와 소통의 어려움 역시. 커뮤니케이션 툴이 점점 발달하는 것 같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를 방해하는 쪽으로 가는 것 같아 아쉽다. 카톡에 왜 답이 없는지, 메시지가 무슨 의미인지 고민하고 싸운다. 실시간이지만 각자의 시간을 단절시키고 흐트러뜨리는 역할도 한다. 이런 측면이 작가로서는 흥미롭다.

21세기를 둘로 나눈다면 모바일 폰 이전과 이후로 구분될 것 같다.
미디어는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 사는 방식, 보는 방식, 느끼는 방식 같은 걸 디지털 식으로 하고 있으니까. 내가 관심 있는 건 그 테크놀로지에 의해서 감정이나 영혼이랄까, 이런 게 어떻게 관계를 맺나 하는 면이다. 이런 것이 쌓여서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을 형성할 수도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