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땡이’라는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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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 미학을 비틀던 화가, 김용익의 개인전이 열린다.

2016년 작 ‘유토피아’ 시리즈.

2016년 작 ‘유토피아’ 시리즈.

국제갤러리 설치 전경.

40여 년에 걸친 김용익의 화업을 압축하기 위해 인상적인 장면만 읊어도 숨 가쁘다. 청년 김용익은 단색화로 대표되는 모더니즘의 미학과 시대에 대한 비판적목 소리를 녹여내는 민중미술 사이에서 고뇌하는 작가였다. 이어 그는 ‘보통 사람’의 삶 속에 공공미술이라는 즐거움을 안내한 미술적 치료사로, 학생들의 미술 세계를 견고하게 이끌어주는 스승 등으로 살아왔다. 캔버스에 같은 크기의 원을 리듬감 있게 배치하는 회화는 김용익의 대표작이다. 90년대, 그는 그림 위에 다시 땡땡이를 그리거나 붙여 애초의 이미지 일부를 덮었다. 무결하고 논리 정연한 모더니즘에 균열을 일으키는 김용익식 화풍이었다. 한동안 작품 활동을 하지 않은 그가 이 시리즈를 재구성해 개인전을 연다. 창작하는 예술이 모더니즘의 신화라면, 지금은 편집하는 예술의 시대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에 따라 기존 작업을 재해석하고, 맥락을 바꿔 다시 완성한 신작 30여 점이 2016년 12월 30일까지 국제갤러리에 걸린다. 시간이 흘러 작가의 사유가 변하듯, 땡땡이의 가능성도 변했다. 신성불가침의 영역 같은 갤러리의 새하얀 벽에 낙서를 해놓거나 구석에 캔버스를 거는 그만의 어긋남은 여전하다.

<W Korea> 예전부터 스스로를 ‘늘 무거운 인식론적 질문을 하는 괴로운 타입의 미술가’라고 했다. ‘나는 왜 미술을 하는가’라는 질문은 ‘나는 왜 사는가’와 비슷한가?
김용익 인생이 수수께끼 같다면, 미술은 그보다는 조금 덜 수수께끼 같다.

평범한 직장인도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때로 자문한다. 이미 일가를 이룬 예술가가 아직도 ‘왜’에 대한 답을 못 찾았다고 하면, 길 잃은 젊은이들은 어떡하나?
그 답을 찾는 순간 작가로서는 사망이라고 본다. 좋게 말하면 ‘완성’이고, 나쁘게 말하면 ‘끝장’이다. 왜 미술을 하는가, 미술은 무엇인가, 그 질문을 더 이상 하지 않으면 예술가가 계속해서 창작해갈 동력을 상실하는 셈이다.

평생에 걸쳐 질문해왔으니 그 여정의 양상에 조금씩 변화가 있었겠다.
나이 들면서 주로 안 좋은 쪽으로 변한다. 젊을 때는 스스로에게 전방위적 질문을 했다. 미술을 하는 데 있어서 나의 인문학적 포스트는 뭔지, 정치적·심리적 포스트는 뭔지, 말 그대로 각 방향에서 질문을 해본다.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 질문의 폭이 좁아진다. 여러 질문 중 몇 가지는 포기하게 된다. 치열한 사고력과 동력이 떨어져나가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렇게 변한 걸 깨달았을 때 마음이 어땠나?
한편으로 편안한 마음이 컸다. 편안하다는 것 자체도 동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계속해서 자신을 불안한 상태로 몰고 나가고 세상과 불화해야 하는데, 그게 창작의 동력인데.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미술을 시작한 이후 인생에서 맞이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나?
대학교 4학년 때 스승 박서보를 만난 것이 화가 인생의 첫 번째 순간이다. 그분의 도발 때문에 70년대 당시 컨템퍼러리 아트라고 할 수 있는 단색화의 핫한 미술 현장 속으로 휩쓸려 들어갈 수 있었다. 그분이 내 작업을 혹평하면서 그에 대한 반발로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으니 중요한 계기다. 그다음 윤형근 선생을 만난 것이 또 하나의 계기다. 그분이 가천대(당시 경원대) 총장이 되면서 나를 교수로 픽업했다. 아무래도 홍대나 서울대 미대 같은 메이저와 다른 기운이 있었고, 덕분에 내 방향도 미술 현장과는 조금 엇박자인 쪽으로 확고해진 것 같다.

김용익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 키워드를 던져준다면?
모순. 나는 모순적인 것의 기묘한 동거를 추구한다. 슬픔과 기쁨, 절망과 경쾌함, 심각함과 유머 등이 결합하는 순간. 앙코르와트의 부처상에 오랜 세월에 걸쳐 자란 덩굴이 엉켜 있는 것도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와 자연의 힘이 얽힌 언캐니한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상반된 요소를 지니고 살아갈 텐데, 세상에 통용된 질서에 따라 그중 하나는 누르고 사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예술가의목표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사회에서 억눌려 있는 다른 측면을 꺼내 보여줌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위안과 대리 만족을 주는 거다.

얼마 전 일민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했다. 당시 ‘아무 의미 없는 의미’를 추구한 20여 년 전 땡땡이 작업을 미술관에서 다시 보니 오랜 세월의 켜가 보여 흥미롭다고 밝혔는데, 무슨 뜻인가?
과거에는 내 땡땡이 작업이 사람들에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땡땡이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들여다보려는 이가 많았고, 결국 의미를 못 찾으니 이해가 안 된 것이었다. 나도 하고 싶은 걸 본능적으로 하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스스로도 의미를 제대로 몰랐던 것 같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고 사람들의 감각이 변했다. 요즘 미술학도나 젊은 층은 의미를 찾기보다는 그저 땡땡이가 경쾌하고 좋다고 받아들인다. 세대의 문제, 기류의 변화다. 이를 거창하게 말하면 시대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오랜만에 신작을 그리며 어떤 마음이 들었나?
한 작가가 회고전을 하고서도 뭘 더 해볼 수 있을지, 내 가능성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이번 개인전에 걸리진 않았지만, 신작으로 가장 처음 작업한 것의 제목이 ‘25년 전의 땡땡이를 지금 하면 어떤 작업이 나올까?’였다. 여태껏 나는 작가로서 미학적, 정치적, 윤리적인 면 등등 모든 점에서 흠이 없어야 한다는 무게에 짓눌려 살았다. 최근 들어 무거운 이념의 무게에서 좀 벗어났기 때문인지, 신작을 해놓고 보니 과거와 달라진 부분이 확실히 보였다. 예전의 땡땡이는 뭔가를 가리고 감추는 부정적인 의미였는데 이젠 땡땡이가 스스로 발언을 하는 긍정적 의미로 나섰다는 점이다. 하다 보니 그렇게 되더라.

김용익에게 땡땡이란 뭔가?
모르겠다. 점점 더 미궁에 빠지고 있다. 과거의 땡땡이는 나에게 분명했다. 모더니즘 회화를 가리고 지우기 위해 등장시킨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땡땡이가 긍정적으로 바뀌었으니, 앞으로 또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다. 붙잡고 더 씨름해야 한다.

개인전을 찾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갤러리 2층에 있는 작품을 좀 더 즐겨주시면 좋겠다. 1층에는 신작이라도 여전히 무거운 기운의 것이 있는데, 2층의 작업이 미래 쪽으로 열려 있는 편이다. 그리고 어려운 주문이 되겠지만, 밝고 경쾌한 가운데 왠지 모를 허무함도 느꼈으면 한다. 땡땡이라는 무늬 자체가 사실 아주 공허하다. 의미가 없는 무늬지 않나?

에디터
권은경
포토그래퍼
JOE YOUNG SOO
PHOTOS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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