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과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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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7명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창의적인 세계를 펼쳤다. 캔버스가 된 건 레이디 디올 백의 가죽, 그리고 하우스의 노하우였다. 그 가운데 마크 퀸이안 대번포트, 영국의 두 예술가를 만났다.

<W Korea> 미디어의 홍수 속에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간섭받는 시대다. 이러한 시대에 당신이 영감을 얻는 방식은 어떻게 달라졌나?
마크 퀸 Marc Quinn 영감을 얻는 방식도 바뀌고, 그 변화는 현재의 작품에도 반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문을 모티프로 페인팅한 ‘미로(Labyrinth)ʼ나 눈 위에 세계 지도를 그려넣은 ‘역사의 눈(Eye df History)ʼ처럼 나의 많은 작품이 그러한 새로운 세계를 다룬다. 현대인은 머릿속에 늘 세상 전체를 담고 다니는 것 같다. 점점 더 비물질화된 세상에서 살아가므로, 실재하는 사물이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만들 때 어떤 기법을 사용하나?
항상 새로운 기법이나 소재, 제작 방식을 탐구하고, 페인팅처럼 아주 전통적인 방법에서 3D 스캐닝이나 클레이 모델링처럼 낯선 기법도 사용한다. 아티스트는 한 가지 매체에 자신을 구속해서는 안 된다. 어떠한 수단이든 시도할 필요가 있다. 항상 흥미를 느끼는 것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을 구현할 적합한 테크닉을 찾아내고 그 테크닉을 보다 심도 있게 탐구하여 그 결과물을 만든 다음 또 다른 작품을 시도하는 과정이다.

런던의 디올 하우스와 협업한 컬렉션에 대해 소개해준다면?
디올과의 프로젝트는 정말 순식간에 진행됐다. 백의 형태는 이미 정해져 있으므로 작품들을 변형하여 표면에 옮기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물론 디올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플라워 모티프도 흥미로웠다. 크리스찬 디올 역시 위대한 혁신가이지 않나? 1947년에 패션을 발명했으니까. 디올의 전문가다운 태도나 반응하는 속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모두 인상적이었다. 미술은 다채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깊이 있고, 중요하고, 감동을 주어야 하지만, 동시에 재미를 줄 수도 있다.

레이디 디올 컬렉션과 백에서 어떤 점이 가장 마음에 드나?
아이코닉한 형태를 꼽겠다. 하나의 아이콘을 새롭게 만드는 일은 항상 흥미롭다.

이번 작품을 어떻게 디자인했나? 어떤 소재나 기법을 사용했나?
작품 중에 엠보싱 실버 백이 있는데, 내가 예전에 만든 작품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 디올과의 협업에서 특별한 점은, 구성이나 제작 과정의 전문성이 아주 뛰어나 무수히 흥미롭고 색다른 일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 나의 모든 시도에 대해 즉각적이고 완벽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디올 팀 전원의 프로페셔널리즘 덕분에 정말 즐겁게 작업할 수 있었다.

오키드에 대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었나?
조각처럼 조형미가 뛰어나면서도 아주 관능적인, 그 이상한 조합을 좋아한다. 이렇게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자연적인 것들이 좋다. 90년대 중반에 얼린 꽃을 만들었고, 이후 한동안 꽃을 그렸다. 화훼 시장에 가서 세계 곳곳에서 온 꽃 중 내키는 대로 골라 스튜디오에서 정물화 사진을 찍곤 했다. 이 사진에 모아놓은 꽃들은 자연 세계에서는 절대 같은 때에 꽃을 피우거나 한 장소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방식으로 새로운 계절을 보여주며, 자연에서는 불가능한 조합을 하나의 지리적 장소에서 화합시킨다. 그 그림은 비자연적인 시간의 얼어붙은 순간을 그려내고 도시의 현대인이 자연과 맺는 이상한 관계의 긴장감을 반영한다. 세계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반영하는 초상이기도 하다.

눈의 홍채를 주제로 한 회화 시리즈를 디올 백의 한 작품에도 사용했는데,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나?
홍채 그림은 우리의 정체성이 보안 확인이나 지문 등으로 축소되는 방식에 관해 다룬 시리즈의 일부이다. 눈이나 지문을 스캔하는 것은 추상과 형체가 만나는 지점이다. 홍채만 따로 놓고 보면 신체의 일부인 동시에 우주의 일부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대개 눈을 통해 다른 사람과 소통한다. 어떤 면에서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도식이다. 홍채는 색채와 섬세한 패턴과 밝음과 빛으로 가득하고, 그 가운데의 눈동자는 신비를 드러낸다. 그리고 아주 민주적이다. 모두가 눈을 가지고 있으니까.

미술과 패션이 협업할 수 있다면 미술과 과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나? 혹은 미술과 정치도?
노벨상 수상 과학자와 함께 DNA 데이터로 작업한 적이 있으니, 분명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술과 과학은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과학은 끊임없이 해답을 찾는 반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 미술의 역할이다. 정치에 관해서는, 미술이 세계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어떤 방식으로든 명백히 정치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술과 정치인이 협업한다면 정치적 선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작품 속에 영적인 면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우주의 더 큰 힘의 존재를 믿나?
이 세계는 놀라운 곳이라고 믿는다. 다만,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믿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그리고 이 세계와 맺는 관계의 질이고, 바로 그것이 내가 미술을 하는 이유다. 세계와 관계를 맺는 것 말이다.

<W Korea>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나?
이안 대번포트 Ian Davenport 과거의 아티스트들이 사용한 색채를 상당히 정밀한 방법으로 바라보며 탐구한다. 컬러의 작용 방식이나 특별한 효과 등에 흥미가 많다. 설명하기 어려운 수수께끼 같은 면이 있어서 더 매력적이다.

디올 프로젝트는 어땠는지 얘기해준다면?
정말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해달라는 디올의 이메일을 받고 나서 먼저 스케치 몇 장을 보낸 다음, 과연 내 그림이 레이디 디올 백과 만나 어떤 식으로 어우러질 수 있을지 고민했다. 내 작품 중에 마치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처럼 가운데가 접혀 있는 듯 보이는 그림이 있는데, 그렇게 조각적이면서도 뭔가 녹아 내리는 듯한 핸드백을 제작하면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메탈릭 컬러를 사용하면 어떨지 의견을 타진해보았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어떤 연구나 조사를 했나?
패션에 대해 특별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디올 측과 긴밀한 대화를 통해 프로젝트가 나아갈 방향을 두고 의견을 교환했다. 초기의 종교화를 보면 골드 컬러를 비롯해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채로운 컬러로 그려진, 굉장히 아름다운 이콘화(종교 도상 미술)들이 많다. 그런 이콘화들을 작품 속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늘 생각해왔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현재의 삶에도 관심이 많다. 현대인의 삶의 방식과 문화 같은 것들 말이다.

대중문화와 과거 거장의 작품, 그 두 요소의 접점은 어디일까?
글쎄,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 나의 회화 속에서 만나지 않을까. 그걸 지적으로 분석해본 적은 없다. 과거에는 화가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는 색이 있었기 때문에, 화가들의 팔레트는 보다 부드럽게 톤다운된 다른 색채로 채워지곤 했다. 하지만 <심슨 가족> 같은 애니메이션을 생각해보자. 얼마나 생동감 넘치고 강렬한 색상을 사용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런 두 가지 요소를 조화시키는 것이 내 작업의 관건이다. 나에게 예술이란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를 진지하게 탐색하고 그 관계의 실체를 발견하는 방법의 하나다.

현대미술계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은 어떤가? 그 안에서 본인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현대미술계는 지난 몇 년 동안 엄청난 변화를 겪으며 눈부시게 발전해왔다. 런던만 해도 방문해볼 만한 갤러리와 문화예술 공간이 굉장히 많아졌고, 관람객 수도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아직도 미술에 대한 일부 해설이 난해할 뿐 아니라 가식적이고 잘난 척하는 듯 보인다. 그러면 사람들이 미술에 호감을 갖기 힘들어지고, 일상 속 사물과 미술의 관계에도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작업을 위해 고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요즘 세상은 그런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도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느낌은 무척 중요하다. 지금 내 스튜디오 안에는 페인트를 혼합하고 무거운 패널을 옮기는 걸 도와주는 어시스턴트 팀이 함께 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나만의 영역으로 들어가서 온전히 집중해야 작업이 잘되는 느낌이다. 좋은 작품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정신적 여유 공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에디터
황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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