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를 사랑하는 ‘향수 덕후’라면 요즘이 가장 행복할 거다.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차고 넘치는 향수를 접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쯤에서 어떻게 이런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는지, 그 중심에는 어떤 향수들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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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향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지금. 국내 향수 시장은 점차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다양한 콘셉트로 만들어진 향수를 통해 호화로운 향의 신세계에 풍덩 빠질 수 있는 시절이니 새로운 향이 더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향수 시장에서 올해 들어 특히 눈에 띄는 변화, 그리고 트렌드의 중심에 바로 니치 향수의 놀랄 만한 성장이 있다. 옛날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디자이너 퍼퓸은 꾸준히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성장해왔는데, 그 틈새를 조금씩 파고들어 이제는 향수 시장의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이 바로 2000년대 초반 처음 국내에 상륙한 니치 퍼퓸이다. 아쿠아 디 파르마, 딥티크 등 초창기 니치 향수 브랜드를 필두로 지금은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경기 불황이 길어지고 작은 호사, 자기 만족을 위한 특별한 소비가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비교적 큰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고급 향수가 자연스레 인기를 얻은 것이다. 여기서 조심스레 꺼내보려는 이야기는 최근 5~6년 사이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니치 향수가 정말 그 본래의 의미처럼 ‘틈새niche’라고 계속 불러도 좋은 위치에 있느냐는 거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고가인 향수를 니치 퍼퓸이라 부르면 되는 건지, 그런 향수를 뿌려야 고급 취향을 가진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 건지 복잡하고 미묘한 혼돈에 빠질 수 있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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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치 향수의 시즌 2
현재의 향수 시장은 보통 패션 하우스의 이름으로 출시되는 패션 향수와 뷰티 브랜드의 향수, 니치 퍼퓸 등 크게 세 갈래 정도로 분류 할 수 있다. 이 중 시장의 흐름을 완전히 바꾼 쪽은 아무래도 니치 향수다. 우선 이전과는 달리 메인스트림이 된 니치 퍼퓸의 원래 정의를 생각해보자. 잡지의 편집장처럼 여러 명의 조향사들을 통해 향수를 선보이는 향의 저자, 에디션 드 프레데릭 말의 수장 프레데릭 말이 말하는 니치 향수의 정의를 들어봤다. 그는 향수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며, 그걸 창조하는 조향사들은 일종의 아티스트라고 말한다. 계산적인 작업으로는 그들의 진가를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원료와 시간, 비용에 제약을 두지 않고 조향사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향을 자유롭게 조향해 전에는 결코 맡아볼 수 없었던 향을 탄생시키는 것, 향 자체에만 중심을 두고 개발, 생산, 유통까지 조절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니치 퍼퓸’이라고 할 수 있죠. 이러한 방식을 고수하던 원래 니치 퍼퓸 브랜드의 공통된 요소는 작은 규모였어요. 하지만 최근 몇몇 퍼퓸 브랜드들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제 니치 향수라는 말로 그들을 분류하는 것은 무의미하게 되었죠. 에디션드 퍼퓸 프레데릭 말 또한 니치 브랜드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니치 향수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한 때부터 존재한 하나의 럭셔리 하우스죠.” 그의 말처럼 이제 향수의 카테고리를 구분 짓는 기준은 모호해졌다. 예술적인 감각과 내공이 느껴지는 향수 브랜드를 론칭한 뻬르푸뭄 장은영 대표도 같은 생각이다. “이제 니치 퍼퓸이라는 말은 새롭지 않아요. 본래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기 도 했고요. 정교하고 예술적인 보틀 디자인부터 과정에 많은 공을 들이던 니치 퍼퓸과 지금 사람들에게 니치 퍼퓸으로 인식되며 인기를 얻는 향수는 많이 다릅니다. 현시점에서 향에 집중하며 본래 니치 퍼퓸의 명백을 이어가고 있는 브랜드들은 많지 않아요. 쉽게 눈에 띄는 변화는 보틀의 형태가 많이 단순해졌다는 것인데, 이는 향을 만드는 데 시간과 비용을 더 많이 투자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간소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마케팅을 위한 선택이죠. 물론 모던 아트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있지만요.” 그렇다면 향수 브랜드들은 지금 시점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결국은 향 본질에 답이 있다. 최근 국내에 리뉴얼 론칭한 영국 브랜드 일루미넘은 세계의 유명 셰프와 협업해 만든 독특한 향의 향수 라인을 출시하는 등 나름의 확고한 노선을 펼치는 브랜드. 향수의 이름을 쉽사리 알 수 없어 편견 없이 후각으로 향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바이레도 역시 라벨에 이름을 없앤 이름 없는 향수를 내놓았다. 그 어떠한 선입견 없이 향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것. 시향을 할 때도 어떤 노트로 만들어졌는지 설명해주지 않는다. 향수의 본질을 중시하는 브랜드의 가치관을 그대로 보여주는 프로젝트로, 직접 스티커로 라벨에 이름을 만들어 붙이거나 사인할 수 있다. 이런 움직임을 보면 퍼퓸 하우스들 스스로도 이 시점에서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결국 어떤 향을 만들어냈느냐 자체가 마케팅이 되는 게 진짜 니치 향수니까. 그러니 여기에 간혹 상업적인 마케팅의 수단이 숨어 있을지라도, 높은 가격이나 누가 썼다더라 하는 이면에 현혹되지 않고 그저 자신이 원하는 진짜 향을 찾으면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단순히 가격이 비싸다고 해서 향수에 대해 반감을 가지거나 반대로 맹신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틈새가 주류가 된 니치 향수 시장은 어쩔 수 없는 경쟁과 성장통을 거치고 나면 새로운 의미, 혹은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지 않을까?

흔들리지 않는 소나무처럼
니치 향수 열풍속에서도 꾸준히 사랑받으며 리뉴얼되고 있는 스테디셀러 향수들.

익숙하거나 생경한 향의 묘미
딥티크의 깊고 독특한 향과 디자인, 자신만의 향을 만들 수 있는 르라보의 희소성 등 니치 향수 열풍을 이끈 브랜드들의 선전 덕에 가벼운 시트러스 향이나 달콤한 과일 향 등을 선호하던 예전에 비해 사람들의 취향 또한 많이 달라졌다. 여성 향수에 잘 쓰지 않던 우디 향을 담은 향수가 출시되면서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고, 침향나무의 진액 에서 채취한 묵직한 ‘우드Oud’ 향을 메인 향으로 한 향수도 관심 갖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주로 중동 지방에서 사용하던 이국적인 향까지 인기를 끌 줄이야. 향의 취향과 선호도가 굉장히 풍성해졌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메종 프란시스 커정의 ‘우드 컬렉션’ 과 딥티크의 ‘우드 팔라오’ 등은 이미 입소문이 난 상태다. 자연적이되 흔치 않은 향을 선호하는 이들 또한 예전에 비해 늘어났다는 증거. 흔한 꽃인 것 같지만 진짜 장미 향을 추출하기까지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로즈 향 향수 또한 반응이 꾸준하다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재미있는 건 이전과 달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료를 고급 향수로 만들어내려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는 것. 대표적인 예는 조 말론 런던의 ‘바질 앤 네롤리’다. 향수에는 메인으로 사용하지 않던 바 질을 주인공으로 신선한 향의 향수를 출시했다. “조향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진귀한 원료로 좋은 향의 향수를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바질처럼 쉽게 구할 수 있는 특별하지 않은 재료에서 좋은 향을 뽑아내는 거라고 해요. ‘바질 앤 네롤리’의 경우 ‘헤드 스페이스’ 라는 기술을 이용해 바질과 네롤리를 함께 유리병에 넣어 그 공기 안에서 어떤 향이 나는지 연구해서 얻어낸, 정말 귀한 향이죠.” 조 말론 런던 홍보팀 윤소진의 말처럼 향수가 다양해진 만큼 오히려 이렇게 일상과 잘 어우러지는 자연스러운 향에 주목하는 조향사가 늘어났고, 이는 꽤나 흥미로운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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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월드를 물들인 향
이렇게 향수업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지금, 패션 하우스의 향수 또한 진화하고 있다. 올 하반기 가장 큰 이슈가 된 향수는 아무래도 소문으로만 돌던 루이 비통에서 70년 만에 출시한 향수다. 수석 조향사 자크 카발라에 벨투뤼는 오대륙을 여행하며 찾은 타이티 바닐라와 목련 등 독특한 천연 원료와 향, 급속 냉동 기법을 통해 7가지 향수를 만들었다. 여성의 피부 위에서 아름답게 표현되는 향을 만들기 위해 진부한 재료가 아닌 신선한 원료로 향을 표현하는 것 자체에 집중했다는 점, 2012년부터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패션 하우스이지만 이미 그 이상의 퍼퓸 하우스로서의 입지를 다진 톰 포드 뷰티 또한 독보적인 위치에 서있다. 톰 포드 특유의 강렬하고 섹시한 무드,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만이 가질 수 있는 날카로운 이미지와 함께 접근이 쉽지는 않지만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향수들을 선보이고 있다. ‘블랙 오키드’가 대표적. 한편 알레산드로 미켈레 영입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구찌는 2010년 출시되어 센세이션을 일으킨 ‘길티’를 리뉴얼하는 동시에 플래티넘 에디션을 함께 내놓았다. 향수 출시와 동시에 공개된 #GuiltyNotGuilty라는 캠페인 영상은 자유롭고 관능적인 무드를 담아 구찌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26만 뷰를 기록 중. 과연 가장 핫한 패션 하우스답다. 패션 하우스 향수에 살짝 놓고 있었던 관심을 다시 되살아나게 한달까. 로에베 또한 오랜만에 새로운 향수를 공개했다. 아쉽게도 국내 출시 계획은 없지만 조너선 앤더슨이 로에베에 불어넣은 예술적이면서도 모던한 감각이 향수에서도 느껴진다. 이 외에도 쟈딕&볼테르가 향수를 론칭했으며, 코치 또한 기존의 향수 라인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제품을 선보였다. 버버리, 페라가모, 발맹, 프라다, 보테가 베네타 등도 꾸준히 라인업을 더해가는 중. 이제 향수는 브랜드의 철학을 향에 반영하는, 아카이브로서의 존재감을 보다 선명하게 구축해가고 있다.

향, 내 피부로 느끼다
향수가 아니더라도 향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바로 향수 라인의 보디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다. 물론 좋아하는 향수의 향을 더욱 오래 지속시킬 수도 있고 레이어링을 위해 바를 수도 있다. 무엇보다 향수보다 더 쉽고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게 향수 라인 보디 제품의 장점이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향수를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크림이나 미스트 같은 보디 제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요. 디올 ‘쟈도르’의 보디 제품은 이미 1980년대부터 존재했을 정도로 새로운 카테고리는 아니지만 예전과 달라진 점은 보디 케어 제품과 홈 프레이그런스 제품이 한 라인으로 함께 출시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제품군을 구성하면 아무래도 훨씬 많은 사람들이 쉽게 향을 접할 수 있죠. 브랜드로서는 고객을 좀 더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이고요.” 뻬르푸뭄 장은영 대표는 다만 그 구심점을 지키려면 메인이 되는 향수가 꼭 있어야 하며 향수가 없이 구성된 퍼퓸 보디 라인은 존재감이 덜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향수 시장이 커지고 소비자 층도 두터워질수록 향수 라인의 보디 제품의 구성 역시 더 풍부해질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