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사진의 디지털 테크닉을 극도로 구사해온 패션 포토그래퍼 닉 나이트는 이제 포토그래피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다음은?

Nick_Knight_by_Jon_Emmony
“종이 잡지는 이제 끝났나요?” “당신에게 디지털의 시대는 축복인가요?” “인스타그램에서 도움을 얻나요?” 예스, 예스, 예스. 그레이 슈트에 흰 셔츠를 입은 닉 나이트는 아주 부드럽고 상냥한 신사의 태도로, 고전적인 매체에 여전히 애정을 지닌 패션 매거진 에디터의 심장을 찢어놓았다. 런던 빅토리아역 근처의 오래된 교회를 개조한 쇼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더 이상 포토그래피는 아니라고 말했다. 물론 여전히 디자이너들과 모델, 셀렙들과 함께 일하며 옷을, 패션을 다루지만 거기에 움직임과 소리가 보태졌다. 나이트의 표현에 따르면 이것은 새로운 ‘이미지 메이킹’의 세계다. 나이트는 인터뷰 내내 ‘흥미롭다, 흥분된다(Exciting, Excited)’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10월 6일부터 대림미술관에서 열리는 <닉 나이트 사진전- 거침없이, 아름답게>는 아마도 그가, 또 패션 사진의 시대가 화려한 전성기를 지나온 궤적 그리고 앞으로의 전환을 목격할 수 있는, 그야말로 익사이팅한 기회일 것이다.

<W Korea> 당신의 한국 전시 카테고리에 ‘스킨헤드(Skinheads)’가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유스 컬처에 관심을 갖고 그들을 촬영할 때는 패션 사진 작업할 때와 다른 자극을 받나?
닉 나이트
1970년대 사진 스튜디오들은 대부분 런던 동부에 있었다. 페티코트 레인 지역에 있던 상점 ‘The Last Resort’가 스킨헤드 크루들의 메카로, 나 역시 그곳에서 1979년 첫 번째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많은 사진 작업을 했다. 그곳에서 작업을 하는 동안 수많은 포토그래퍼들로부터 영감을 받았는데, 특히 구소련 선전광고물의 영향이 컸다. 많은 사진가들이 프로파간다 속 사진을 통해 기술의 발전과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흥분을 표현하곤 했다. 당시 러시아 선전광고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로서 거대한 스케일과 대담한 컬러 이미지를 통해 그들의 정신을 강렬하게 전달했다. 나는 항상 그러한 큰 규모, 그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아이디어를 좋아했으며, 그것이 내 모든 프로젝트의 시발점이다.

당신 자신은 어떤 10대 시절을 보냈나?
10대는 어른이 되는 전환점이 되는 시기이고, 그러한 전환은 언제나 흥미롭다. “나 자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과정으로서 재미있지만 또한 어려운 시기이기도 하다. 가족과 떨어지고, 스스로에 대한 정의를 통해 이후의 50년 혹은 아마도 70년간 지속될 음악, 그림, 사진 등 창작 활동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러한 전환점은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이며, 이러한 사실들로 인해 나는 젊은 뮤지션, 배우, 아티스트에게 강렬하게 끌린다. 만약 내가 틴에이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마도 패션 스타일, 사물을 보는 시각, 의견과 태도 등등 더욱 많은 것을 다른 방식으로 시도해볼 것이다. 10대일 때 나는 의사를 목표로 약학을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그 분야에 뛰어나지도 않았고 그다지 즐기지도 못했다. 그래서 약학 공부를 중단하고, 사진을 공부했다. 이러한 과정이 나에게는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자인 아버지와 물리치료사인 어머니, 그리고 화학자인 형제들을 감안했을 때 약학을 공부하는 것이 더 어울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부모님으로 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다. 아버지는 심리학자로서 인간에 대한 애정이 깊은 분이셨는데, 그러한 면에서 아티스틱한 면모가 있었다.

당신에게 패션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하다.
패션은 우리가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예술의 형태 중 하나가 아닐까. 또 자신이 누구인지를 결정하고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방법 중 하나이고. 사람들은 패션을 통해서 각각의 개성과 자아를 표출한다. 이러한 점에서 패션은 상당히 중요하다.

닉 나이트는 현재 자신의 프로덕션인SHOWstudio.com 을 통해 다양한 패션 필름을 선보이고 있다.

닉 나이트는 현재 자신의 프로덕션인SHOWstudio.com 을 통해 다양한 패션 필름을 선보이고 있다.

일찍부터 사진에 디지털 그래픽 기술을 도입했다. 사진의 테크닉적인 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기계 혹은 기술의 발전으로부터 창조를 갈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를 표현하는 방법을 스스로 선택한다. 디자이너들은 패션을, 그리고 나는 사진을 통해서 나 자신을 표현한다. 그 과정에서 기술을 이용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어떠한 방법으로 그것을 이루어낼 수 있는지 알아낼 뿐이다. 예를 들어 카메라의 렌즈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등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지, 그 자체가 우리를 흥분시키는 무언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술 혹은 기계적인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를 흥분시키는 것은 그러한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이미지와 그것의 작용이다. 사람들은 미디어를 좋아하며 그러한 미디어를 만들어 내는 장비 혹은 기기에 집착한다. 한편 어떠한 포토그래퍼들은 개인의 촬영 기술에 과도하게 사로잡힌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나에게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 마치 위대한 글을 쓰는 작가가 무슨 키보드 혹은 펜으로 글을 쓰는지 관심을 갖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기술에 집착하지 말라”이다. 사진뿐만 아니라 그 어떤 형태의 예술도 중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을 말하느냐이지 그것을 만들어낸 기술 혹은 장비가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예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 콘셉트다.

당신의 SHOWstudio.com 에서는 화보나 광고 비주얼뿐 아니라 패션 필름도 함께 제작한 지 꽤 되었으며, 이는 최근 패션 비주얼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기도 하다. 종이 잡지의 시대는 끝난 걸까? 사진가로서는 패션 화보와 영상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나?
패션 필름은 굉장히 흥미로운 영역이다. 그것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지 15년 정도 되었으니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셈이다. 이미 많은 부분에서 패션 화보가 해낼 수 없었던 것을 패션 필름을 통해 구현하고 있다. 그런 부분에서 우리는 새로운 미디어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의 경우 의상이 움직임 속에서 어떻게 보이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고려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패션 화보는 지난 150년간 하나의 위대한 예술 형태로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톰 포드의 방식처럼 이제 패션쇼를 온라인에서 라이브로 볼 수 있고, 패션쇼의 상품을 캣워크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는 시대다. 이러한 시대에서 종이 잡지가 갖는 의미가 무엇일까? 종지 잡지의 가장 큰 이점 중 하나인 물리적으로 이미지를 소유할 수 있다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가장 큰 약점인 현실성 (Reality)의 결여는 지금 시대에서 종이 잡지의 존재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음에 분명하다. 그러므로 종이 잡지의 시대가 끝나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그렇다” 이다. 하지만 그것이 인쇄 매체의 끝이라고는 할 수 없다. 사진이 처음 시작 되었을 때 회화의 시대는 끝났다는 예상이 빗나갔듯이 말이다. 사진 이전에 페인팅이 이 사회를 본질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수단이라고 여겨졌고, 그 이후 150년간 사진이 20세기 최고의 표현 방법으로서 그 자리를 대신해왔지만 페인팅 역시 사라지지 않고 공존해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회화가 그랬듯이 인쇄 이미지는 계속될 것이다. 다만 패션을 표현함에 있어 서 주류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는 당신에게 축복인가?
그렇다.

알렉산더 매퀸을 입은 데본 아오키(1997). 자신의 책 표지로 선택한 이 사진에 대해 닉 나이트는 "내가 사랑하는 많은 것들, 많은 이야기, 그리고 나의 감정들이 담긴 컷"이라고 더블유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알렉산더 매퀸을 입은 데본 아오키(1997). 자신의 책 표지로 선택한 이 사진에 대해 닉 나이트는 “내가 사랑하는 많은 것들, 많은 이야기, 그리고 나의 감정들이 담긴 컷”이라고 더블유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한 컷 한 컷 강렬한 이미지가 너무 많지만, 당신이 패션 사진을 연출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할 때 데본 아오키의 사진을 빼놓 을 수 없다.
촬영한 날은 어느 일요일이었다. 데본 아오키가 스튜디오로 왔을 때 그녀는 굉장히 쿨해 보였고 편안한 상태였다. 당시 알렉산더 매퀸의 옷은 쇼피스로 제작된 것들이어서 의상들을 소화하기가 육체적으로 아주 까다로웠음에도 데본 아오키는 전혀 불평하지 않고 편안하게 촬영에 임했다. 다른 한 명의 모델이 많은 불만을 표했고 촬영이 끝난 직후 바로 스튜디오를 떠난 반면, 데본 아오키는 촬영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스튜디오에 남아서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촬영장에 머물렀다. 그녀는 아름다운 사람이었고, 패션에 열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사진이 내 책의 커버로 장식되었지만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한 사진은 아니었다. 사진은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즉 포토그래퍼가 어떠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녀의 사진은 그러한 관점을 가장 잘 대변한 것이다. 그것이 내 최고의 사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며, 나의 최고의 사진은 어쩌면 내일 찍게 될지도 모른다. 다만 그 컷은 다른 사진에는 없는 많은 것을 담고 있는 듯하다. 내가 사랑하는 많은 것들, 많은 이야기, 그리고 나의 감정들 말이다.

많은 패션 디자이너들과 일해왔는데, 가장 천재적이라 생각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그리고 가장 따뜻한 사람은?
알렉산더 매퀸, 존 갈리아노, 가레스 퓨, 마리 카트란주 등등 많은 디자이너와 작업을 했는데, 그들과 일한 이유는 내가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매퀸이나 갈리아노 같은 디자이너들은 패션, 예술, 사회 분야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다. 미술관도 패션의 영향을 받고 있지 않나? 예를 들어 런던과 뉴욕에서 열린 매퀸의 전시 <Savage Beauty>의 역사적인 성공은 패션이 문화의 중요한 영역임을 분명히 보여준 사례다. 이러한 위대한 디자이너들은 굉장히 흥미로운 존재들이다. 뿐만 아니라, 신진 디자이너들이 아이디어를 패션쇼에 담아내는 모습 또한 흥미롭고 흥분되는 일이다. 300명이 넘는 디자이너들이 매년 런던, 뉴욕, 밀란, 파리에서 그들의 아이디어와 영감을 펼치는데, 사람들이 이 세계와 사회를 보고 표현하는 아주 흥미진진하고 사랑스러운 방법이다. 어쩌면 패션을 너무 상업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 그들이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보이지만, 모든 디자이너들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사람들이다. 패션쇼는 그들이 혹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를 알 수 있는 좋은 매개체다.

패션 디자이너로부터 의뢰받은 당신의 첫 광고 캠페인은 요지 야마모토였던 걸로 기억한다.
아이디 매거진의 스타일리스트 사이먼 폭스턴(Simon Foxton)과 함께 오랜 시간 일했는데, 1995년 말 요지 야마모토로부터 그의 첫 번째 남성복 광고 캠페인 작업을 함께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인터내셔널 패션 디자이너와의 첫 작업이었고, 지금까지도 특별한 경험으로 기억하고 있다. 요지 야마모토의 광고를 진행하는 3년 동안 다른 사람과 작업하지 않은 편인데, 많은 협업 작업과 마찬가지로 포토그래퍼와 디자이너의 합작은 서로 호감을 갖지 않으면 좋은 결과물을 얻기 힘들다. 마치 남녀관계 혹은 부부관계처럼 서로에 대한 존중과 사랑의 감정을 가져야 하며 동시에 다른 관계를 찾아서는 안 된다.

더블유 매거진과는 어떤 관계를 이룰 수 있었나?
매거진과의 작업은 항상 흥미진진하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블유 매거진은 아주 세련되고 정교한 화보를 요구하며 가끔은 그런 것들이 압박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매거진이 해야 하는 것이고 그래야만 매거진으로서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 만약 낮은 퀄리티의 이미지를 제공하는 패션 잡지라면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많은 글로벌 매거진들은 오랜 시간 전 세계의 위대한 포토그래퍼들과 작업을 해왔고, 바로 그것이 그들이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근거였을 것이다. 더블유는 그러한 부분을 잘 이해하는 매체다. 인터넷의 발전으로 잡지사들은 고작 몇만이 아닌 수백만 부를 판매할 수 있을 것이다. 확고한 목표와 방향성, 그리고 환상적인 사진과 글로 더욱 위대한 매거진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더욱 원대한 목표를 달성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끔 광고가 에디토리얼을 컨트롤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식으로는 잡지에 실리는 이미지와 글의 퀄리티가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셀렙이나 모델을 촬영할 때, 어떤 피사체와는 특별히 통한다는 느낌을 가지나?
모든 화보 촬영을 할 때 어떠한 관계라도 존중 되어야 하고 똑같이 대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카니예와 케이트 모스 혹은 비요크를 대하는 데 있어서 어떤 차이 점이나 차별은 없다. 나 자신과 함께 작업하는 파트너 사이의 관계 혹은 케미스트리는 항상 똑같다. 물론 누군가는 더욱 오픈되어 있고, 누군가는 더 수줍어할 수는 있을 것이다. 포토그래퍼는 작업을 할 때 모델이 되는 인물에게 어떤 역할을 위임하 는 것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일종의 약속을 맺는다. 물론 어떠한 사람과는 남들보다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그것이 더 좋은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은 아니며, 거꾸로 인간적 관계를 맺기 어려운 사람과의 작업이라고 하더라도 사진을 찍는 데에 있어서 어려움이 있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인스타그램을 활발하게 운영해왔다. 이 미디어에서 어떤 도움을 얻나?
인스타그램은 이미지를 즉각적으로 업로드할 수 있고, 즉흥적이며 신속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른 소통 형식에 비해 특별히 신선하다고 느낀다.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모델을 구하기도 하고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할 수도 있으며, 다양한 패션 일러스트레이터에게서 영감을 얻거나, 이를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하기도 한다.

당신의 말처럼 패션 필름이 화보와는 다른 강점을 발휘하며, 인스타그램에 이미지를 올려도 사진보다 영상이 인기가 많다. 이런 시대에 사진이 여전히 의미를 갖는다면 그건 어떤 면에서일까?
엄격히 말하자면 우리는 더 이상 사진(Photography)을 하지 않는다. 90년대 중반 인터넷의 발달과 디지털 혁명 이후 새로운 매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우리는 영상을 비롯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들은 사진에서 시작되었지만 더 이상 포토그래피가 아니라 이미지 메이킹의 영역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진은 몇 년 전에 죽었으며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움직임, 3차원, 소리 등을 포함하는 새로운 매체, 즉 이미지 메이킹이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전시를 보게 될 한국의 오디언스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나?
많은 한국인들이 센트럴 세인트 마틴같은 세계적인 패션 스쿨에서 공부한 이후에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 걸 보았을 때 의아했다. 이곳과 비교해 한국에서의 제한된 가능성 등이 이유인 것 같다. 어느 나라에든 훌륭한 재능이 많으며, 그것을 알아채고 서포트하는 것은 그 사회의 역할이다. 한국 사회가 예술 분야와 패션을 지원하여 다양한 재능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시대에는 전 세계가 연결되어 정보는 충분히 공유할 수 있으니,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보다 자기 확신이 더 의미 있다. 그러므로 나의 메시지는 이 것이다. “당신 자신을 믿어라.”

10월 6일부터 대림미술관에서 열리는 닉 나이트 전시 포스터.

10월 6일부터 대림미술관에서 열리는 닉 나이트 전시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