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고, 손으로 그렸다. 카메라 대신 그림으로 기록한 여행책 네 권.

우리가 가이드북에 기대하는 건 정확한 정보지만 여행기를 풍부하게 만드는 건 매력적인 왜곡이다. 이 네 권의 여행책에는 상세한 사진, 꼭 알아야 할 팁 대신 개성 있는 드로잉과 스케치, 때로 손글씨가 등장해 딱히 몰라도 여행하는 데 지장은 없을 주관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걸 들여다보는 일은 여행지에 대해서보다는 다녀온 사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제주를 그리다> / 최예지 | 버튼북스

페이지마다 흐드러지게 꽃이 피었다. 동백, 수선화, 유채꽃, 벚꽃, 귤꽃, 수국, 해바라기, 부용화, 능소화, 천일홍, 메밀꽃, 억새…. 알록달록한 수채화를 따라가다 보면 계절이 변하고 제주의 한 해가 흐른다. 돌담 사이 골목을 천천히 산책하며 할망들 길고양이들을 바라보는 느긋한 시선과 속도가 느껴진다.

<드로잉 제주> / 리모 김현길 | 경향미디어

실제로 사용한 재료와 제품, 테크닉까지 포인트를 설명하고 있어 그림 교본 역할까지 한다. 사실적인 화풍의 내공에 느껴지는 거리감 덕분에 화구를 챙겨 따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내가 아는 제주의 건물이나 풍경, 식물을 찾아보는 재미로 충분하지만.

 

<나의 드로잉 아이슬란드> / 엄유정 | 아트북스

북부 아이슬란드 끝자락의 레지던시에 머무는 동안의 작업과 기록을 모은 책. 인구밀도가 몹시 낮고 자연의 힘이 턱없이 센, 독특한 장소에 지내는 동안 인간 존재의 왜소함이나 인간 사이의 거리에 대한 발견이 흥미롭다. 젊은 작가의 담담한 고민을 털어놓는 문장도 담백하거니와, 간결한 선의 드로잉이나 과감한 터치의 유화로 담아낸 북구의 황량함이 매력적이다.

 

<내 손으로, 교토> / 이다 | 레진 코믹스

‘ㅋㅋㅋ’ ‘ㅠㅠ’ ‘니혼진’ 같은 구어체 표현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이 책은 글까지 아예 손글씨로 쓴 여행기를 스캔받아서 만들었다. 시장에서 산 물건이나 먹은 음식은 영수증을 잘라 붙이기도 하고, 철학의 길이며 난젠지 같은 관광지까지 색연필 낙서가 꼬리를 문다. 솔직한 성격의 잘 투덜대는 친구가 여행 내내 수첩을 놓지 않으며 집착적으로 기록한 아날로그 다이어리를 엿보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