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아이돌이 세계 속의 아이돌로 성장하는 동안, 아이돌을 활용한 제품인 굿즈의 세계도 문구점에서 백화점 수준으로 확장했다. 팬들은 물론 팬덤 바깥의 사람까지 포섭하는 천태만상 아이돌 굿즈를 살펴본다.

마토끼는 귀엽고 불량하게 생긴 팬시 캐릭터다. 열쇠고리, 볼펜, 담요, 마우스 패드 등등으로 상품화돼 있다. 그리고 가수 B.A.P가 데뷔할 때부터 그들의 심벌로 함께 기획된 캐릭터이기도 하다. 콘서트장에서는 팬들이 손에 든 야광봉으로, 심지어 모바일 게임으로도 존재한다. 팬들은 마토끼의 정체를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알고자 하기 전까지 그것의 정체를 모른다. 이 점은 최근의 아이돌 굿즈가 잘 취하는 전략이다. 팬 아닌 사람에게도 어필하는 은근하고 티 안나는 굿즈. 누군가의 광팬임을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 이에게도 유용하다.

SM 신사옥인 SM커뮤니케이션센터에 들어서면 리빙 숍에서나 볼 법한 물건들이 눈에 띈다. 자세히 들여다 보니, 접시와 찻잔의 장식은 동방신기 멤버들의 얼굴 옆모습 실루엣을 따 패턴화한 것. 누군가에게 집들이 선물을 주면서 그 집에 동방신기의 숨결을 불어넣고 싶은 팬에게 최적이다. 악동뮤지션 최근 앨범 <사춘기 상> 발매에 맞춰 나온 굿즈는 어느 디자인 스튜디오의 제품이라고 해도 손색없다. 사춘기의 감성과 정서에 맞는 파스텔 톤의 휴대폰 커버, 노래 제목을 타이포그래피로 얹은 노트들은 팬이 아니어도 하나쯤 갖고 싶다. 아이콘의 각종 패션 굿즈는 스트리트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이 즐겨찾기에 추가했을 법하다. ‘iKON’의 폰트를 그래픽적으로 응용한 로고는 가수 이름이라기보다 모호한 상형문자처럼 작용한다.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을 일러스트 처리하여 프린트한 티셔츠도 그 자체로 멋이 있다. YGMD 관계자가 말한다. “아이돌 굿즈는 아이돌 팬들이 사는 거라는 인식을 깨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팬덤 외의 사람까지 아우를 수 있는 라인업을 차차 늘렸죠. 디자인 제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접할 수 있도록 텐바이텐, 29CM, 핫트랙스 같은 경로로 굿즈를 판매하기도 했고요. 굿즈의 퀄리티 또한 끌어올리려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이돌 굿즈의 기본 정신은 ‘팬들이 갖고 싶고 옆에 두고 싶어 할 만한 것’이다. 이는 대개 초상권을 활용한 제품으로, 굿즈라는 말의 원래 뜻이기도 하다. 포토 카드, 달력, 스티커, 책상 위에 나의 아이돌을 세워놓을 수 있는 등신대, 얼굴이나 전신이 프린트된 쿠션은 기본이다. 한국 정서에서 쿠션으로는 지디가 팔베개를 해주 는 포즈 정도가 나와 있다. 일본 가수 각트의 전신 쿠션 은 지퍼를 내리면 쿠션 커버가 벗겨지며 각트의 상반신 이 드러나는데 말이다. 팬들을 위한 굿즈는 아이디어가 독특할수록 팬덤의 자부심으로 이어진다. GOT7은 최근 콘서트를 하면서 라이트 키링을 선보였다. 작은 플래시를 벽에 비추면, 멤버의 얼굴이 환하게 뜬다. 고담시에서 배트맨을 호출할 때 썼던 그 방법과 비슷한 원리다. 빅뱅 응원봉은 첨단기술의 승리다. 음원에 반응하는 모듈이 있어서 쿵짝거리는 베이스 소리에 맞춰 불이 번쩍거린다. 아침마다 동방신기가 깨워준다면 어떨까? 비록 얼굴은 못 보지만, 유노윤호와 최강창민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알람시계도 있다. 이렇게 깨워준다. “잘잤어? 일어나. 모닝 커피 한 잔 어때?”

SM엔터테인먼트는 팬들도 따라잡기 벅찰 정도로 굿즈의 A부터 Z까지 내놓는다. 여느 기획사와 달리 아직까지는 오프라인 숍만 있다는 게 특징인데, SMTOWN @코엑스 아티움에 각종 굿즈가 스펙터클하게 도열한 모습이 굿즈 제국답다. 큐레이션 브랜드인 SUM을 론칭한 이후로는 제품군이 더욱 다양해졌다. 소녀시대 아트워크 라벨이 붙은 맥주, 아티스트 이름으로 장식한 컵케이크, 이마트와 협업해 내놓은 식품들은 굿즈라고 하기엔 결이 다르지만, 팬이든 아니든 같은 제품군 중에서 디자인에 공들인 제품을 싫어할 사람은 없다. 거대 팬덤을 보유한 SM의 경우 팬들만을 공략하는 굿즈라 해도 그 규모가 만만치 않다. 그리하여 아티스트 MD팀의 디자이너는 디자이너 역시 ‘팬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아티스트를 사랑해야죠. 그래야 팬들이 좋아할 만한 기획이 나와요. 아티스트의 말투나 작은 행동, 잘 짓는 표정까지 캐치해서 그 특징을 활용해 굿즈를 만들 면 팬과 아티스트 간에 끈끈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 어요.” 슈퍼주니어 카드지갑을 몸에 지니고, EXO 백현 이 디자인에 참여한 강아지옷을 내 강아지에게 입히며, 샤이니 페이퍼 토이를 나의 컬렉션에 추가하는 일상이라면 팬은 가수의 공백 기간에도 버틸만할 것이다.

새로운 개념을 선점하면 이는 기획사의 무기가 된다. YG의 곰 인형 캐릭터인 크렁크는 독자적인 캐릭터이자 아티스트의 특징을 표현한 피규어 식으로 변형된다는 점에선 B.A.P의 마토끼와 유사하다. 그러나 크렁크는 그 자체가 ‘셀렙’이다. 그러니까 신장 175cm가량의 실물 곰 인형이 서울패션위크에 초대받아 쇼를 감상하고, 니베아의 광고 모델도 한다. 8월 중엔 크렁크가 중심이 된 피자집 PBA도 오픈할 예정이다. 이 셀렙 곰이 ‘피자 맥주 연합’의 연합장이라는 콘셉트. 빅뱅을 캐릭터화한 빅뱅X크렁크 아트 토이는 멤버들과 별로 닮지 않았지만, 필요에 따라 키덜트족을 겨냥한 굿즈로, 혹은 독립된 셀렙으로 ‘자아분열’ 하는 캐릭터라면 빅뱅에 관심 없는 사람과도 접점을 갖기 좋다.

전진꾸준히 진화한 아이돌 문화는 아이돌을 소유하고 즐기는 방식도 변화시켰다. 사진이나 엽서, 머그컵만 연상되던 굿즈가 각 기획사의 캐시 카우로 떠오르고, 한발 더 나아간 팬들은 스스로 굿즈를 만들어 팬클럽 회원들에게 판매한다. 이젠 대형 기획사를 중심으로 팬덤 외부의 사람들까지 포섭하는 굿즈가 나오는 때에 1세대 원년 아이돌의 상황은? 지오디가 컴백 투어 콘서트를 하며 선보인 굿즈 중 가장 인기 있었던 건 소주잔 세트다. 가수와 팬이 ‘함께 늙어가는’ 상황에서 삶의 애환을 겪을 나이가 된 옛 팬들에게 소주잔은 적절하고도 상징적인 굿즈다. 올초 전진은 회심의 ‘전진 매니아 굿즈 4종 세트’를 마련했다. ‘내 눈에 전진 안대: 전진님을 눈에 담으세요’ ‘전진 포옹 앞치마: 전진님이 안아드립니다’ 라는 설명과 함께. 무릎 담요와 전신 쿠션까지 박스 포장하려니 크기가 워낙 커서 ‘택배 받을 가족에게 미리 놀라지 말라고 전하라’는 공지까지 띄웠다. 그렇다. 굿즈는 EXO나 빅뱅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애정하는 아이돌 하나 없는 사람만 몰랐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