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 잡으러 집 나가 배회하는 이들이 속출하는 동안, 서울 강남역엔 국내 최초의 VR방이 생겼다. 우리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증강현실과 가상현실이 이렇게 가까이 와 있다.

Kaleidoscope virtual reality

Kaleidoscope virtual reality

 

20년 전의 포켓몬이 화려하게 귀환했다.
전 세계에
서 가장 이른 시간에 1천만 다운로드를 달성한 모바일 게임으 로. 국내에선 정식 서비스되지 않는 ‘포켓몬 고’를 하기 위해 집 념의 한국인들이 강원도 영동 지방으로 향한 이유와 기타 등등 은 무수한 뉴스가 말해줬다. 시끌벅적한 타이밍은 지나갔지만, 이 게임의 여진은 현재진행형이다. 국토교통부는 해명 자료를 냈고, ‘구글에 지도 데이터를 반출하지 않는 한국 이대로 괜찮 은가’ 식의 갑론을박까지 벌어진다. 애널리스트는 포켓몬스터 라는 지적재산권의 힘을 닌텐도 주가와 연결시킨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슈가 있으니, 바로 증강현실이다. ‘포켓몬 고’를 실행 하고서 스마트폰 카메라로 거리를 비추며 돌아다니면 화면엔 실제 거리의 모습과 포켓몬 혹은 몬스터볼의 모습이 중첩돼 보 인다. 약 6500만 명이 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증강현실을 체험 한 것이다.
증강현실은 실제와 가상의 경계를 흐리게 함으로써 다양한 경 험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뷰티 브랜드들이 제공하는 메이 크업 시뮬레이션, 실사를 포함하여 리얼하게 길을 찾을 수 있는 지도 서비스 등 생활 속에 들어와 있는 증강현실은 물론 있었 다. 그런데, 처음으로 ‘터졌다’. 새로운 앱을 깔고 초기 설정을 할 때 “위치를 허용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이 뜨면 내 정보가 유 출되는 것 같아 기분 나쁜 사람도, 정부가 구글의 지도 데이터 요청을 거절한 탓에 이 땅에서 포켓몬을 잡을 수 없다고 생각 하니 화가 치민다. 콘텐츠 개발회사인 서커스 컴퍼니의 박선욱 대표는 ‘포켓몬 고’가 증강현실과 위치 기반 서비스를 이용하여 유니크하게 풀어낸 콘텐츠라고 봤다. “증강현실은 물과 소금 같 은 기술이에요. 서로 융합할 수 있는 기술이 많아서 재밌는 콘 텐츠를 만들 수 있죠. 즐거움이야말로 사용자가 왜 일부러 이 콘텐츠를 보고 있는지 타당성을 만들어주는 요인입니다.” 서커 스 AR이라는 앱을 플랫폼 삼아 뮤지션의 앨범 커버 이미지, 각 종 포스터, 스타 달력 등에 증강현실을 입히는 서커스 컴퍼니의 모토는 ‘재미없는 것도 재미있게 만든다’.
억지로 ‘이거 해보세요’보다는 은근슬쩍 호기심을 자극하는 쪽 이 현명하다. 2013년 하겐다즈가 선보인 ‘콘체르토 타이머’ 캠 페인은 냉동실에서 꺼낸 단단한 상태의 아이스크림이 먹기 좋 은 상태로 살짝 녹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을 공략했다. 아이스 크림 통 투껑의 코드를 비추면, 그러니까 하겐다즈 앱을 실행하 고 스마트폰을 갖다 대면 뚜껑 위에 바이올린을 켜는 연주자의 홀로그램이 등장하며 2분간 음악을 들려줬다. 아이스크림을 먹 으려다 말고 앱을 다운받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해도 나 쁠 건 없다. 눈앞에 홀로그램이 뜨는 신기한 풍경의 영상이 두 고두고 떠돌 테니까.

지금 증강현실보다 분위기가 더 뜨거운 쪽은 가상현 실인 듯하다.
가상현실은 올 상반기, 글로벌한 각종 IT 콘퍼런 스의 핵심 기술로 떠올랐다. 오바마도 참석한 ‘SXSW’(텍사스 에서 열리는 엔터테인먼트 페스티벌 및 미디어산업 콘퍼런스) 에서 참석자들에게 인기 있었던 자리는 맥도날드 부스였다고 한다. 요즘 가상현실 기기 중 핫 이슈인 HTC의 헤드셋 ‘바이브’ 를 쓰고 가상의 거대 해피밀 박스에 입장하면, 페인트를 뿌리거 나 레이저를 쏘며 노는 이벤트였다. 비슷한 시기인 3월, 스웨덴 맥도날드는 ‘해피 고글 세트’를 팔았다. 먹고 난 종이박스를 재 조립해 헤드셋처럼 사용하면 가상현실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해 피밀. 어느 유치원생 아이에겐 생애 첫 가상현실 경험이었을 것 이다. 패션 기자들은 머지않은 미래에 브랜드가 마련한 VR방 에 모여 헤드셋을 쓰고 4대 도시 컬렉션을 체험할지 모른다. 지난해 타미 힐피거가 발 빠르게 VR 패션쇼를 마련했고, 알리 바바는 집에 앉아 360도로 돌아가는 가상현실 속 공간을 돌아 다니며 쇼핑할 수 있는 세상을 계획한다. 중국에선 한국의 PC 방과도 같은 VR방이 무서운 속도로 생겨나는 와중에 국내에도 드디어 엔터테인먼트 공간 ‘VR 플러스’가 오픈했다. 가상현실 의 파도가 밀려오는데, 아직 그 시스템을 개인이 취하기엔 고가 이니 이곳에서 일단 놀아보라는 거다.
IT 칼럼니스트 이요훈은 정부가 가상&증강 현실 기술과 파급 력을 평가하기 위해 만든 ‘기술영향평가위원회’의 한 사람이다. 그는 IT 산업을 영화나 방송 분야에 비유한다. 한 작품이 잘되 면 그와 비슷한 장르의 작품이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히트하고 주목받는 기술이나 플랫폼이 생기면 그 분야에 훨씬 가속도가 붙는다는 것. 우리는 이세돌을 몰아붙인 알파고를 보고서야 인 공지능이 가까이 와 있음을 비로소 실감하고 주목했다. 물론 힐 튼 호텔에서 컨시어지를 담당하는 로봇인 코니에게 직접 서비 스를 받아본 사람은 호텔에 묵는 동안 실감했을 것이다. “특히 나 가상현실은 무조건 붐업될 겁니다. 기업들에서 이미 어마어 마한 금액을 투자해 판을 깔아놓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잘될 수 밖에 없고요. 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에 태어난 밀레니 얼 세대는 생각하는 것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있어서 그 전 세대와 완전히 달라요. 게임의 사고방식이 체화되어 있죠. ”
자미로콰이가 그의 히트곡인 ‘Virtual Insanity’에서 신기술과 광기 어린 미래를 노래한 때가 1996년이다(우연찮게도 포켓몬 스터 게임이 탄생한 해다). 올봄엔 마크 주커버그가 페이스북의 향후 10년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가상&증강 현실, 드론, 인공위 성 등 IT 융합을 위한 기술력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했다. 이 미 와 있는 기술로 우리가 인상적인 경험을 할 때, 기술이 예술 처럼 다가올 때 그것은 더욱 널리 퍼진다. 기술 그 자체는 대다 수에게 아무런 울림도 없기 때문이다. 일단 지구촌 어느 도시에 선 커피 회사가 얼굴 인식 기능이 있는 자판기 앞에서 하품하 는 사람에게 자동으로 커피를 제공하고, 셔츠 회사는 셔츠 입은 마네킹을 드론에 띄워 빌딩가로 날려보내기도 했다. 플레이스 테이션VR 출시를 앞둔 소니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거듭날 분 위기다. 보름달이 몬스터볼로 보일 만큼 사람을 홀리는 다음 주 자는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