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리스트 카를린 세르프 드 뒤젤(Carlyne Cerf de Dudzeele). 그는 스스로를 ‘전설(Legend)’이라고 말한다. 샤넬 트위드 재킷에 청바지를 처음으로 믹스 매치해 하이패션과 스트리트 패션의 경계를 허문 선구적인 여자. 오로지 자신의 즉각적이고 본능적인 감각에 의해 대담하고 유쾌한 스타일링을 보여주며 패션의 전설이 된 스타일리스트 CCD. 비 오는 날, 파리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직접 만나 물었다. 바로 자신을 흥분시키는 패션의 결정적 한 수에 대해.

당신의 독창적인 스타일링이 오롯이 드러난 멋진 화보들을 보며 언젠가 꼭 한번 만나고 싶었다. 우선, 스타일리스트의 길에 발을 내디딘 오래전의 이야기부터 듣고 싶다 .
하하, 나도 만나서 반갑다. 글쎄, 스타일리스트라는 소명을 지녔다고 할까. 오래된 영화나 사진 속의 여느 스타일리스트처럼 어떤 대상에 영감을 받고 그것을 떠올리며 일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언제나 순간순간을 충만하게 느끼며 일했고, 무엇보다 내 직감을 믿었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마치 아름다운 목소리를 타고난 가수같이, 쭉 뻗은 몸매를 타고난 모델처럼 내게는 스타일링 재능이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재능을 지닌 채 태어난 행운에 감사할 뿐이다.

어린 시절, 스타일리스트가 되겠다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
어린 시절에 난 내 고양이들의 옷을 만들어 입혔고, 그 순간이 너무 좋았다. 단 한번도 다른 분야를 하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내 관심을 끈 건 패션뿐이고, 오로지 패션만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프랑스 남부의 아름다운 휴양 도시, 생트로페 출신이라고 들었다.
원래 가족은 모두 파리지엔인데 어린 시절 어머니가 생트로페에 집을 구해 그곳에서 자랐다. 자연 속에서 살며 자연을 사랑하게 되었고, 어린 시절 학교에 가기 싫다는 내 의견을 존중한 어머니는 집에서 학교 공부를 대신할 수 있게 해주셨다. 그런 시간들이 나의 어린 시절을 풍부하게 해주었다. 또 어머니께서는 늘 길가에 버려진 동물 을 집으로 데려오셨다. 내가 동물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은 그 시절에서 비롯됐다.

현재는 뉴욕에서 살고 있다.
1985년부터 뉴욕 생활을 시작했다. 언젠가 우리가 함께 일을 하게 된다면 뉴욕으로 오면 된다(웃음). 나는 파리라는 도시를 매우 사랑하지만 파리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다. 내 즉각적인 성향에 비해 너무 답답하다.

뉴욕부터 런던, 밀라노를 거쳐 파리까지 이어진 2016 F/W 컬렉션 중에 가장 인상적인 쇼는 무엇이었나?
단연 마크 제이콥스. 진정한 패션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쇼였다. 그것이 좋든 싫든, 개인의 호불호는 상관없다. 셔츠와 스커트를 비롯해 정말로 볼거리가 많았다.

지난 뉴욕 여성복 컬렉션 기간에 한국의 팝스타 CL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았다. 패션 아이콘으로 부각되고 있는 그녀와의 만남은 어땠나?
씨엘과는 3년 전에 처음으로 만났다. 그녀에게는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마치 마법과 같은, 설명이 쉽지 않은 매력이다. 그녀의 쿨한 룩을 떠나서 일단은 그녀의 매력적인 내면에 끌렸다. 또 그녀는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이 편안하고,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즐기며, 매우 심플한 성격이다. 나는 심플한 사람이 좋다.

CL 외에도 스타일링 작업을 통해 여러 스타들과의 친분이 깊다. 특별히 아끼는 누군가가 있나?
일단 마일리 사이러스를 좋아한다. 그녀는 다른 유명 스타처럼 수많은 보디가드에 둘러싸여 다니지 않는다. 씨엘도 마찬가지다. 스스럼없이 다가가 말할 수 있고 인사할 수 있는 그녀들의 그런 편안한 표정과 태도가 마음에 든다.

디올 광고 캠페인의 뮤즈가 된 리한나를 보더라도 오늘날 하이패션계는 팝 아이콘에 열중하고 있다. 이런 새로운 경향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 리한나와 여러 번 일을 했고 그녀 역시도 좋은 사람이다. 디올의 광고에 힙합 스타일을 즐기는 뮤지션이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흥미롭지 않나. 우리가 아는 클래식한 여배우가 등장하는 것은 이제 좀 지겹다.

몇 년 사이 패션계는 급속도로 변했다. 당신의 말처럼 하이 패션계가 흠모하던 우아한 배우의 자리를 이제는 힙합 스타나 팝 아이콘이 차지하고 있다. 또 하이엔드 캐주얼 패션이 화두로 떠올랐고 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오늘날의 패션 문화가 당신의 취향에 더 부합할 것 같다.
난 스타일링을 시작하던 최초의 순간부터 스트리트 패션을 보여주었다. 처음으로 하이패션과 로패션을 믹스 매치한 사람이 나니까. 런웨이를 길거리로 가져온 것이 내가 한 일이다. 수 많은 패션쇼에서 한 가지씩의 아이템을 가져와 내 스타일로 연출해 서 새로운 룩을 만드는, 그게 내가 가장 먼저 취한 스타일링이다. 내 인생에 토털 룩이란 없었다. 브랜드에세 제시한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늘 나만의 방식으로 믹스한다. 또 여자를 치장하는 건 원치 않는다. 예쁘게 꾸며놓은 인형 같은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진정으로 건강하고 프레시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이 내가 바라는 바다.

순간 당신의 매거진 화보와 광고 캠페인 비주얼에 등장한 나오미 캠벨, 린다 에반젤리스타 등 전설적인 80~90년대 슈퍼모델부터 최근 패션계를 화려하게 수놓은 여인들이 떠올랐다. 참, 지난해 이슈가 된 지지 하디드와 함께한 이태리 보그 커버를 보면 사탕 반지가 눈에 띈다. 이러한 예상치 못한 신선한 아이디어와 두려움 없는 스타일링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사실 그 어린이용 반지들은 내 소장품이다. 길에서 구입한 5달러짜리로 상자 안에 색색의 반짝 이는 반지들이 들어 있는데, 자주 착용하기도 한다. 내가 추구하는 하이패션과 로패션의 믹스 매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소재다. 내가 처음으로 샤넬 슈트에 청바지를 매치한 사람이라고 말하면 바로 이 해가 되지 않나. 이것이 바로 패션이다. 1천 유로짜리 골드 주얼리가 아니더라도 돋보일 수 있는 것 말이다. 스타일링은 돈이 아니다.

그런 대범함이 부럽다. 오늘날의 패션계는 오히려 지난날의 자유로움보다 한층 제한적이다. 스타 디자이너의 의견을 중시해 그들이 제안한 토털 룩을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브랜드의 압박도 있고 말이다.
우리는 자신의 스타일을 표현하는 대범함을 지녀야만 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커버를 보며 이 반지를 어디서 샀는지 궁금해했다. 말 안 해줬는데, 오늘 이후로 다들 알게 되겠지(웃음).

스타일링에 있어 누군가는 옷에, 사람의 캐릭터에, 또 누군가는 디자이너의 미학에 집중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요소를 가장 중요시하는가?
나는 함께 촬영할 주인공을 생각한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의 퍼스낼리티와 함께 일하는 것이다. 그게 내가 일하는 방식이다. 모델이 내 앞에 있고, 모든 것은 내 머릿속에 있고, 그녀 앞에서 나는 마치 화가가 된다. 그리고 나에겐 미리 착장을 맞춘다든지 하는 사전 작업이란 없다. 예를 들어 내가 사진가 마리오 테스티노와 함께 스페인 보그 화보를 촬영할 때 알렉산드라 앰브로시오, 이자벨 리 폰타나, 칼리 클로스 등 아름다운 여자들이 다 모였다. 그리고 그녀들이 스튜디오로 들어왔을 때, 갑자기 내 안에서 모터가 뜨겁게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거침없이 스타일링을 해냈다.

당신과 가장 잘 맞는 사진가는 누구인가?
단연 스티븐 마이젤 1985년에 미국 보그 촬영을 통해 처음으로 만났다. 그때부터 스티븐과 함께 일했다. 나랑 가장 잘 맞는 최고의 포토그래퍼다.

당신이 지닌 대담한 체인 목걸이, 황금빛 손목시계, 클래식한 샤넬 재킷, 캐주얼한 아디다스 점퍼와 운동화, 와일드한 퍼 코트 등 글램과 스포티즘, 클래식과 힙합 무드가 자유롭게 어우러진 방대한 컬렉션이 매우 흥미롭더라. 당신의 옷장에서 가장 사랑하는 소장품은 무엇인가?
내가 모아온 컬렉션은 정말 방대하다. 모든 스타일이 다 있을 정도로. 그래서 그중 하나를 고르기란 사실 어렵다. 금을 좋아하고, 샤넬의 주얼리도 좋아하고, 롤렉스 시계도 좋아하고, 물론 내 5달러짜리 반지들도 아낀다. 믹스 매치가 내 스타일링의 기본이기에 어떤 걸 더 선호한다고 말하기가 정말 어렵다.

혹시 당신도 아침에 외출하기 전에 오늘의 스타일을 위해 사랑하는 오브제들 앞에서 망설일 때가 있나?
노, 절대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 뭘 입을지 생각해야 한다고? 그 정신없고 잠도 덜 깬 아침에 그건 말도 안 된다. 나의 아침은 정말 심플하다. 그냥 눈에 보이는 청바지를 입거나 아니면 아디다스 트레이닝 룩을 입는다. 특히 중요한 건 아침에 일어나서 느끼는 그때의 공기와 감정에 따라 입는다는 것이다. 나는 삶이 좋고, 즐겁다. 나는 미래를 지향하기 보다는 매일매일을 산다. 아침 730분에 카페에 내려와 마시는 커피 한잔 같은 내 인생이 너무나도 좋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당신은 매우 직관적이고 솔직한 표현에 익숙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신에게 패션은 무엇인가? 누군가에게 패션, 나아가 스타일은 매우 심오한 것 혹은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는데 말이다.
스타일리스트 중에는 샤넬의 8번 룩이나 루이 비통의 9번 룩 풀 착장, 이런 식으로 토털 룩을 모델에게 입히고 촬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열정에 의해 움직힌다. 샤넬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아하는 건 아니다. 내가 그 옷을 좋아하고 아니고의 문제에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에서 나 자신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 패션은 브레인스토밍이 아니라 직관이다. 또한 내게 패션은 곧 우아하거나 글램한 대상이기도 하다.

마일리 사이러스와 함께한 펑키한 2013년 서머 에디션의 V 매거진 커버 작업. 사진가는 그녀가 최고의 파트너로 꼽은 스티븐 마이젤(Steven Meisel).

마일리 사이러스와 함께한 펑키한 2013년 서머 에디션의 V 매거진 커버 작업.
사진가는 그녀가 최고의 파트너로 꼽은 스티븐 마이젤(Steven Meisel).

당신의 인스타그램 계정(@carlynecerfdedudzeele)의 프로필 링 크를 보면 #CCD 옆에 ‘Legend’라는 수식어가 눈에 띈다.
그 의미는 말 그대로 내가 바로 패션의 전설이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도 그 타이틀이 붙었다. 나는 오늘의 패션계가 자리 잡는 모습을 모두 지켜본 산증인이다. 최고의 포토그래퍼들과 모두 작업을 해봤고 말이다. 사실 그런 좋은 사람들과 일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운아이다.

당신의 자신감과 당당함이 멋지다. 그래서 말인데 패션과 관련해 일반적인 여성들의 자신감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싶다. 많은 여성들이 아직도 TV 속의 규격화된 아름다움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 해 주고픈 말이 있나?
그렇게 사는 건 너무 피곤하고 남의 눈을 위해 사는 인생이다. 스스로가 어떤지를 좀 더 부각시켜라. 내가 키가 작으면 힐을 신게 되겠지, 하지만 그것이 당신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을 편하게 하는 것이 가장 먼저다. 당신의 신체도 당신의 정신도 편안해야 하는 것이다. 아름다워지려면 우선 자신감을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오늘날 사람들이 어떻게 패션을 느끼고 사랑했으면 하는가?
글쎄, 디자이너들의 자신감 넘치는 창의성을 좀 더 발휘한 패션을 보고 싶다. 자신의 재능을 표현하는 패션 말이다. 지금은 패션이 좀 지겹다. 예전보다 정말 덜 재밌다. 과거에는 패션 디자이너 등의 멋진 재능을 볼 수 있었는데, 솔직히 지금은 패션이 우스워진 것 같다. 오늘날 모든 패션의 요소들은 너무 낡았다. 예전보다 나아가 변한 게 없다. 더구나 쇼를 위해 여기저기를 쫓아가 사진을 찍고, 또 그 사진에 찍히기 위해 옷을 입는 사람들. 그 모습은 얼마나 허무한가.

하지만 고고했던 패션이 대중과 좀 더 가깝게 소통하는 시대라 는 점은 좋지 않은가?
그렇지만 재능 없는 소통은 소용 없다.

당신의 말처럼 이런 지겨운 패션 속에서도 당신이 짜릿함을 만끽 할 때는 언제인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 그리고 나 자신의 내면과 감각에 온전히 집중해 스타일링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