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있는, 화려한, 누구나 좋아하는 관광지로의 보편적인 여행이 아니다. 자신이 파고드는 관심사를 따라가는 아주 좁고 편협한 여행법이 여기 있다.

익숙함의 맛 | 미식가의 방콕

낯선 도시보다는 익숙한 도시를 계획 없이 가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일까, 뜨거운 열기가 넘치는 도시 방콕은 여행 리스트에서 뒤로 빠지기 일쑤였다. 최근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리스트가 탄탄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그랬다. 카오산로드에 즐비한 길거리 음식으로 유명한 것은 알았지만, 도대체 어떤 맛이 숨어 있기에 맛 좀 안다는 사람들이 방콕으로 향하는 걸까? 미식가 지인이 내민 레스토랑 리스트를 들고 방콕으로 향했다. ‘올해 오픈한 곳, 별표 다섯 개.’ 레스토랑 벙커(Bunker)를 적은 쪽지에 지인이 끄적인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찾아간 곳, ‘벙커’의 1층은 바(Bar)와 테이블이 있어 격식을 차려야 하는 무거움보단 편안함이 가득했고, 2층에 올라가니 레스토랑 면적의 반을 차지한 넓은 오픈 키친이 단연 돋보였다. 감각적인 인테리어와 다양한 국적의 스태프들로 구성된 ‘벙커’는 글로벌한 방콕 미식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했다. 뉴욕에서 왔다는 젊은 셰프가 자신만만하게 내놓은 앙트레는 흰 살 생선 사시미였다. 숙성의 정도가 절묘해 녹진함과 은은한 유자향이 입안에 퍼지는 조화가 훌륭했다. 과감한 식감의 조화와 입안에서 즐기는 즐거움이 지루할 틈 없이 감탄의 연발이었다. 한편 미슐랭 2스타 조엘 로브숑의 방콕 지점인 아틀리에 드 조엘 로브숑(LAtelier de Joel Robuchon), 태국 부호의 저택에 초대되어 근사한 파티를 즐기듯 꾸며진 남사보틀링 트러스트(Namsaah Bottling Trust) 등은 여전히 국제적인 여행지로 매력을 떨치는 방콕의 위상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자연주의를 표방한 보란(Bo.lan)은 조용한 태국 가옥의 분위기까지 근사했으며, 메트로폴리탄 호텔 1층의 남(Nahm)은 향신료의 다채로운 활용이 혀를 자극했다. 소박하고 개성 강한 길거리 음식으로 각인 된 방콕의 파인다이닝은, 노점에서 편안하게 먹던 자극적인 음식의 생동감을 살리면서도 편안하고 세련되게 포장하고 있었다. 가장 멋지게 길들여진 야생이 거기에 있었다. 방콕은 이제 다시 찾고 싶은 맛으로 기억될 것 같다. 글 | 이한나(브랜드 홍보 매니저)

고기의 신을 만나다 | 육식주의자의 판차노

이태리행 비행기 티켓을 결제하자마자 책을 한 권 꺼냈다. 드디어 때가 되었다. 10년 전에 읽은 책, 빌 버포드의 <앗 뜨거워(Heat)>에 나오는 고기의 신을 만날 그때가. <뉴요커>의 기자였던 그는 고기의 신 밑에서 고기의 철학을 배우려고 직장까지 그만뒀다는데, 나는 휴가 중 하루만 바치면 고기의 신을 영접할 수 있다. 토스카나 지방 판차노 (Panzano)에 있는 체키니 정육점(Antica Macelleria Cecchini)에 가기만 하면 된다. 실은 판차노엔 볼거리가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숙박 시설 하나 변변치 않았다. 그 볼품없는 작은 마을에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그 정육점 때문이었다. 피렌체에 숙소를 잡아두 고 버스터미널로 가서 하루에 4~5대 있는 판차노행 버스를 탔다. 약 1시간 후, 드디어 체키니 정육점에 도착했다. 그 정육점의 대표 고기 만찬, 오피치나 델라 비스테카(Officina della Bistecca)를 예약해둔 터였다. 15명 정도가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아 3시간이 넘도록 스테이크를 먹는 프로그램. 테이블보에 ‘속을 비우고 와라. 우리는 조금만 먹을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당당하게 써놓고, 100명이 나눠 먹어도 남을 것 같은 스테이크 덩어리들을 그 옆에 올려놓은 식탁에 드디어 앉았다. 남편과 나를 빼고는 전부 이태리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영어에 서툴렀고, 우리는 이태리어에 무지하니, 우리의 언어는 스테이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제일 먼저 큰 남자 손에 겨우 잡히는 스테이크 덩어리를 숯불에 올려놓는 걸 시작으로, 우리 접시엔 키안티식 육회가 올라왔다가, 야들야들한 다진 고기를 숯불에 구운 고기가 올라왔다가, 분명 한국에서는 1인분이었을 스테이크가 몇 덩이 올라왔다가 사라졌다. 그렇게 2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엄청난 크기의 티본 스테이크가 숯불에서 내려왔다. 2시간 내내 고기 장인이 이렇게 돌리고, 저렇게 살펴보며 구운 스테이크. 각자의 접시에 빠르게 올려지고, 이미 술과 고기에 마음껏 취해버린 우리는 ‘저걸 또 먹어야 한단 말이야?’라고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내 옆에 앉은 백발의 작은 할머니도 이 코스를 내내 잘 따라왔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고기를 입에 넣었다. 2시간 넘게 먹고 있는 고기에 다시 또 탄복했다. 고기가 그럴 수도 있었다. 그렇게 3시간 넘 게 고기의 신을 영접했다. 10년 전 책에서 읽었던 이곳을 잊어버리지 않고 찾아본 나를 기특하게 여기기로 했다. 육식주의자에게도 철학이 있다는 사실을 믿기로 했다. 아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술로 벌게진 얼굴과 스테이크로 볼록 해진 배가 그 사실을 이토록 여실히 증명하는데. 다정한 사람들과 그 배를 맞대고 인사를 나눴는데. 토스카나에서 고기의 신을 믿지 않는다면 다른 무엇을 믿겠단 말인가. 글 | 김민철 (카피라이터, <모든 요일의 여행> 저자)

야생 속으로 | 캠핑 마니아의 굴업도

5년 차 이상 경력에 접어들면서, 나의 캠핑은 점점 단출해졌다. 가족과 함께 차에 완벽하게 장비를 챙겨 이동하는 캠핑보다는 최소한의 짐을 배낭에 꾸려 기차나 대중교통으로 떠나는 백패 킹이 좋아진 것이다. 1인용 텐트와 간단히 먹을 음식, 마시고 씻는데 필요한 물을 넣은 12kg 정도의 짐을 혼자 어깨에 지고 훌쩍 떠난다. 12일의 짧은 백패킹은 오래 계획하고 준비해서 1 주일 이상 다녀오는 해외여행과는 확실히 다른 종류의 쾌감과 충전을 준다.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집중해서 부족한 물자를 가지고 하룻밤 생활하고 돌아오는 제약 속의 즐거움이라고 할까. 특히 자연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비박하는 산이나 섬 캠핑은 온몸으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의 방식이다. 영남 알프스라 불리는 신불산, 강원도 양떼목장에서도 한참 올라가야 하는 선자령, 여수에서 한참 떨어진 소매물도와 하화도 같은 곳이 인상 깊이 남아 있는데, 인천에서도 배를 두 번 갈아타고 들어 가야 하는 굴업도는 접근이 힘든 만큼 훼손되지 않은 자연이 싱그러운 곳이다. 굴업도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하루에 몇 차례 없는 뱃시간을 확인해야 하고, 민박이나 식당도 몇 군데 되지 않는 여기는 안락하고 편리하고 빠른 속도의 여행이 익숙한 사람과는 맞지 않을 수 있다. 물을 가지고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맘대로 씻을 수 없으며 자고 일어난 다음 날 물티슈로 몸을 닦는 정도라는 얘기에 기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산이 험난 하지 않고 트레킹 코스가 길지 않아서 백패킹에 도전해보고 싶은 캠핑 초심자에게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캠퍼들이 주로 텐트를 치는 장소는 바다를 향해 길게 튀어나온 개머리언덕이다. 숨이 살짝 차오를 정도의 고개를 넘어서면 봄에는 초록 들판, 가을에는 황금색 물결이 바다와 함께 눈앞에 펼쳐지는 환희를 경험하게 된다. 삼면을 둘러싼 바다와 하늘이 하나가 되고 밤에는 눈높이에서 쏟아질 듯 별이 반짝이며, 주변에는 고라니가 뛰어다니기도 한다. 거짓말 같은 경험이다. 패브릭 브랜드를 홍보하며 디자인 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멋진 물건에 둘러싸여 생활하고, 그런 것들을 보고 느끼기 위한 출장도 종종 떠난다. 트렌디한 뭔가를 끊임없이 발견하고 제시하는 생활은 꽉 차서 바쁘게 돌아간다. 백패킹은 그런 가운데 잠깐 구멍을 내고 바람을 통하게 하는 시간이다. 소박한 음식, 어깨 의 묵직한 짐, 급변하는 날씨와 돌발 상황 속에 일상의 소중함 과 고마움을 느끼기도 하고, 곁에 있는 친구에게 동료애도 갖게 된다. 자연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예쁜 사진을 얻고 싶은 욕심이 있다면, 불편함을 모험심으로 누를 수 있는 누군가라면 충분히 초대해보고 싶은 세계다. 글 | 이홍안(키티버니포니 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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