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있는, 화려한, 누구나 좋아하는 관광지로의 보편적인 여행이 아니다. 자신이 파고드는 관심사를 따라가는 아주 좁고 편협한 여행법이 여기 있다.

낡은 일상 속으로 | 빈티지 수집가의 바르샤바

오래된 것, 낡은 것이 좋다. 일상에서 편리한 첨단의 것을 즐기는 한편으로, 여행지에서만 이런 ‘뒤처짐’을 요구한다고 생각하면 난 참 이기적인 여행자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부러 멋있게 이런 풍경을 유지하고 있는 곳보다 생활에 그 가치가 멋지게 묻어 있는 곳을 찾으려 애쓴다는 것이다. 폴란드 바르샤바는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내 여행의 방향성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도시가 아닐까 싶다. 바르샤바로 가기 전 일 때문에 그곳에 체류 중인 이들을 만났는데, “눈 씻고 찾아봐도 볼 것이 없으니 다른 곳으로 가라”고 만류했다. 바르샤바 여행 후 의외의 즐거움을 발견한 내게, 로만 폴란스키, 크쥐스토프 키에슬롭스키 같은 거장 감독이 영화를 공부한 바르샤바의 우츠국립영화학교를 졸업한 한 지인은, “거기가, 도대체, 왜” 좋으냐는 반문의 뜻을 내비쳤다. 바르샤바가 좋은 이유는 그곳이 대단히 그럴싸한 여행지가 아니어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저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일상의 도시, 그런 장소에 진입하는 행위는 단 며칠을 지내더라도 마치 내가 그 일상의 단면을 비집고 들어가 일체가 되는 기분을 갖게 해준다. 한때 공산주의 국가였음을 알려주는 도심의 광장, 러시아식 낡은 건축물, 흔히 볼 수 있는 전통 스넥바 ‘밀크바’, 멀티플렉스 이전의 단관 극장, 샹들리에와 군용 제품을 판매하는 주말의 벼룩시장. 내가 이 도시에 살고 있더라도 똑같이 그들처럼 접할 평범한 일상의 풍경.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바르샤바의 지명만 빼고 모두 폭격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무참히 폭격을 당한 이 도시는 1950년대 재건을 통해 오늘날의 분위기를 형성했다. 도시는 그 역사를 새겼고, 그로부터 많은 것이 변화하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 있다. 바르샤바의 풍경 하나하나를 담는 과정은 그래서 마치 오래된 영화의 스틸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바르샤바를 떠날 때 많이 아쉬웠다. 이런 풍경들이 곧 사라지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언제나 나만큼은 뒤돌아보기를 멈추지 않으려 한다. 최근 발간한 나의 여행 에세이 <언젠가 시간이 되는 것들> 역시 그런 뒤처진 것들의 존재 이유와 아름다움의 발견을 위한 기록이다. 빠르게 소비되고 순식간에 잊혀지는 시대다. 누군가에게는 지난 시대의 것을, 어느 누군 가는 애써 찾아봐주면 좋겠다. 글 | 이화정 (< 씨네21> 취재팀장, <언젠가 시간이 되는 것들> 저자)

레코드로 기록하다 | 음악 애호가의 코펜하겐

언제부턴가 나는 딱 세 개의 웹사이트만을 이용해 여행 계획을 짠다.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아티스트들의 공연 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송킥(www.songkick.com), 그리고 에어비앤비와 구글맵이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 일정을 확인하고 가고싶은 도시를 정한 다음, 방문하고 싶은 장소를 구글맵에 기록하고, 별표가 많은 곳을 거점으로 에어비앤비를 통해 현지 젊은이들이 사는 집을 빌린다 . 코펜하겐을 여행지로 선택한 건 ‘ 코펜하겐 디스토션(Copenhagen Distortion)’이라는 일렉트로닉 페스티벌 때문이었다. 아주 차분해 보이는 한 버려진 섬에서 펼쳐지는 고삐 풀린 페스티벌이랄까. 규모나 운영 측면에서는 국내 페스티벌이 훨씬 매끄러운 모습이지만, 제멋대로 들어선 음식 부스나 대충 꾸며놓은 여러 가지를 보면 자유로운 페스티벌의 기운이 좋았다. 11 시는 되어야 해가 지고, 새벽 4시 정도면 해가 뜨는 백야 시즌에 펼쳐진 이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인 딕슨(Dixon)은 새벽 3시부터 아침 6시까지 롱셋을 펼쳤다. 해가 뜨는 섬의 항구에서 일출과 함께 듣는 일렉트로닉이라니! 그런데 7 월엔 전 도시 규모의 코펜하겐 재즈 페스티벌이 열린단다. 이 도시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년엔 7월에 다시 오기로 했다. 처음 여행하는 코펜하겐에서의 거처를 정할 때도 이 같은 기준을 두었다. 가 고 싶은 레코드숍과 카페 등을 구글맵에서 별표 치다 보면 내가 묵을 곳은 단 한 군데로 수렴되었다. 그렇게 선택한 뇌레브로라는 동네는 사람들이 밀집되지 않고 한산했다. 에어비앤비에서 뇌레브로 지역을 검색하면, ‘hip place’라는 표현을 여러 번 접하게 된다. 잠시 머물렀던 플랫 주변엔 콜드 프레스 쥬스와 캐리비안 바이닐을 함께 파는 ‘굿 타임(Good Time)’, 한낮 단 3시간 동안 만 맥주와 바이닐을 파는 ‘크레이트 비어 앤 바이닐(Crate Beer and Vinyl)’ 미슐랭에도 소개된 바 있는 소규모 레스토랑 ‘릴래(Relae)’와 ‘맨프레드 (Manfred)’, 한국에도 들어온 쿨한 집시 크래프트 비어 브루어리 ‘미켈러 (Mikkeller)’ 코펜하겐 최고의 커피바로 손꼽히는 ‘카페 컬렉티브(Cafe Collective)’ 등이 있어 한 골목을 떠날 필요가 없었다. 여행을 처음 다닐 땐 예쁜 호텔에 별표를 했다. 그 다음엔 로컬 크래프트 맥주집. 이제 그 별표의 대상은 레코드점이 되었다. 바이닐 시장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레코드 숍을 운영하기 어려운 건 한국이나 해외나 매한가지. 그럼에도 레코드를 취급한다는 건 취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견결한 고집에 가깝다. 그래서 신뢰가 간다. 경험적으로 레코드 점은 트렌드를 포획하는 태양의 흑점과 같다. 때문에 레코드 숍 주변에는 힙한 맥주집, 커피집, 레스토랑이 함께 줄지어 있다. 명동이 아니라 연남동에 머무르며 그 주변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렇게 음악이 가이드가 되는 여행법을 권해보고 싶다. 나에게 여행의 경험이란 에펠탑이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앞에서 “저 왔다 가요”라고 증거를 남기고 돌아가는 것보다는, 파리의 밤거리를 술에 취해 헤매다 급하게 들어간 바에서 밤새도록 놀다 나오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여행의 뒤에는 여러 장의 레코드가 남기도 한다.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에서 주인공 오웬 윌슨이 한 벼룩시장에서 레아 세이두로부터 콜 포터(Cole Porter)의 오래된 음반을 사는 장면을 기억하시는지. 그 78회전 SP에 들어 있는 노래 ‘Lets do It(Fall in Love)’은 그 둘의 새로운 사랑을 이어줄 매개도 되었지만, 훗날 두 사람이 파리를 추억할 촉매도 될 것이다. 글 | 한창헌(tvN 콘텐츠마케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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