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패션계를 평정한 남자,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 2014 F/W 시즌 베트멍(Vetements)의 데뷔쇼로 신선함에 목마른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또렷이 아로새긴 그는 지난 3월, 발렌시아가의 수장으로서 첫 쇼를 선보이며 하이패션계에 또 한 번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그런 그가 최근 근사한 일을 벌였다. 지난 73일, 파리의 화려한 오트 쿠튀르 컬렉션 기간에 그는 베트멍의 2017 S/S 쇼를 통해 그 누구도 듣거나 보지도 못한 ‘ 슈퍼 협업’을 선보였다.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 쿠튀르적 접근’을 통해 레디투웨어를 쿠튀르 시즌에 선보인 첫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런 그가 베트멍의 수장으로선 아시아 패션 매거진 최초로 <W Korea>와 지극히 흥미롭고도 사적인 이야기를 나눴다.

라프 시몬스가 남긴 베트멍 쇼에 대한 코멘트는 베트멍 디자인 팀의 수장인 뎀나 바잘리아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옷에 대한 진심이 담긴 컬렉션’. 이런 평가는 베트멍, 즉 불어로 ‘옷’ 을 뜻하는 브랜드의 가치에 신뢰를 더했다. 단순히 동시대의 요구를 명민하게 캐치한 쿨한 스트리트 룩이 아닌 옷의, 옷을 위한 작업. 이것이 뎀나를 비롯한 그의 디자인 팀이 추구하는 진심이라면 그는 오늘날 패션 앞에 끼인 허구적인 안개를 걷고 패션의 진면목을, 그리고 시대상을 분명하게 목도할 수 있게 한 장본인이 아닐까. 나는 패션계의 앙팡테리블이나 핫한 스타가 아닌 패션계의 오늘과 미래를 진지하게 내다보고 탐색하는 선구자를 만난다는 기분 좋은 설렘을 안고 파리 오트 쿠튀르 쇼가 한창인 파리의 베트멍 쇼룸으로 향했다. 이윽고 그라피티가 가득한, 한마디로 베트멍의 전위적인 기운으로 강렬하게 휩싸인 오피스에 도착 했다. 그가 쇼를 선보이기도 한 으스스한 지하실 분위기의 1층 공간을 지나 이번 시즌 협업 한 수많은 브랜드의 깃발이 가득 걸린 2층에 도착하자 오늘의 주인공, 뎀나 바잘리아가 지극히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한 해외 매체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매우 공식적이지만 비공식적으로 보일 만큼 격의 없었고, 마치 친한 친구와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듯 친근해 보였다. 얼마 후, 그와 이야기를 나눌 차례가 되었다. 굵고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늘어놓는 뎀나의 모습은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무모할 정도로 대범하고 자신감이 넘칠 거라 짐작했는데 실제 마주한 그는 수줍은 듯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나는 그에게 궁금한 여러 가지 질문을 쉴 새 없이 던졌고, 그는 그 어떤 질문도 피하거나 생략하지 않은 채 진솔하고 충실하게 답했다. 그의 명민한 비즈니스 마인드 역시도 숨기지 않은 채. 패션이 아트가 아닌 그저 ‘옷’이기를 추구하는 그는 매우 인간적이고 우호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의 혜안을 통해 다시금 오늘의 패션을 바라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언젠가 또 이렇게 친근하게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기를, 그의 지극히 새로운 쇼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라며

드디어 당신을 만나다니 정말 기쁘다. 쿠튀르 기간에 열린 첫 쇼라 긴장감이 더했을 텐데, 쇼를 마치고 어떤 기분이었나?
하하, 나도 기쁘다. 무엇보다 이제 마음 놓고 잘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쿠튀르 기간에 열린 쇼라는 점에서 나에게도, 우리 팀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 번 쇼를 위해서 기존과는 전혀 다른 접근 방식을 택했으니까. 유 명 브랜드들과의 컬래버레이션이 그것으로 해당 분야 최고의 장 인들과 함께한 것, 그들의 노하우를 경탄하며 지켜볼 수 있었다 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쿠튀르(Couture)’였다.

협업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지만 그건 나중의 질문으로 밀어두겠다. 당신에게 쿠튀르는 어떤 의미인가?
나에게 오트 쿠튀르란, 옷을 완벽에 가깝도록 만들어내는 것이다. 만약 그 대상이 티셔츠라면 최고의 티셔츠, 가죽 재킷이라면 최고의 가죽 재킷을 선보이 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오트 쿠튀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50년 전처럼 나풀거리는 레이스와 볼륨감이 넘치는 의상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높은 수준의 오트 쿠튀르(최고의 재단)를 선보일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번 쇼를 위해 각 분야 최고의 파트너를 선정하는 일이 즐거운 고민이었을 것 같다. 어떻게 이 브랜드들과 협업을 시작하게 되었나? 특히 그중에서도 꼼데가르송의 레이가와쿠보는 매우 신중한 디자이너이기에 섭외하기까지 까다로운 과정이 있었을 듯싶다. 어떻게 이 모든 굉장한 브랜드들과의 협업을 성사시켰나?
함께 협업하고자 한 모든 브랜드들과의 연결이 쉬웠던 건 아니다. 먼저 우리가 원했던 브랜드 리스트를 쭉 나열했고, 그 후에 베트멍을 위해 함께 일하고 있는 나의 형이 각 브랜드에 연락을 취했다. 물론 그것조차 쉬웠던 건 아니다. 브랜드의 해당 업무를 맡고 있는 사람을 찾아내 그들과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이렇게 수많은 브랜드라니 . 하지만 함께 하기로 결정한 이후에는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 되었다. 우리가 선택한 브랜드 대부분이 이 특별한 컬래버레이션 제안에 긍정적이었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우린 정말 운이 좋았다. 물론 그 운 역시 내 형 과 그의 팀 덕분임을 잘 알고 있으며, 고마움을 느낀다.

다른 브랜드들이 아닌 왜 그들이었나?
내 기준에 있어 그들이야말로 각 분야의 최고이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보머 재킷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가 뭔가? 당연히 알파인더스트리 아니겠는가. 브리오니야말로 최고의 슈트를 만든다고 생각했고, 섹시하고 여성스 러운 슈즈를 원했기에 주저 없이 마놀로 블라닉을 선택했다. 셔츠도 마찬가지다. 사실 난 셔츠를 어떻게 해야 잘 만들 수 있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분명했다. 내게 세상에서 셔츠를 가장 잘 만드는 사람은 꼼데가르송의 레이가와쿠보라는 것 말이다. 그래서 그의 팀에도 연락을 취한 것이다.

함께 협업한 브랜드들에게도 당신과의 작업이 특별한 기회였을 것 같다.
흠, 내 생각엔 그들에게도 이번 협업은 하나의 도전이었을 거다. 우선 이 브랜드들이 이미 전 세계적으로 높은 인지도를 지닌 유명 브랜드고, 그들만의 고유한 작업 방식이 있다. 또 그들 만의 옷을 생산하는 시기가 있을 터, 협업을 하려면 평소보다 더 일찍 새로운 컬렉션을 만들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만나 파격적인 커팅을 감내하며 새로운 옷과 액세서리로 태어난다는 사실은 그들에게도 흥미로운 과정이었을거라 믿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그들과 함께 일하며 각 분야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점이다.

이번 쇼가 열린 장소가 라파예트 백화점이라는 점도 독특했고, 초대장의 자리 번호도 특이했다. 각 게스트의 자리에 다른 브랜드의 이름을 붙였는데 무슨 의미였나?
우선 우리는 쇼장이 사람들이 옷을 사는 장소이기를 원했다. 이번 컬렉션은 옷을 소비하는 것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여러 브랜드들과 함께 컬렉션을 준비했으니 갤러리 라파예트라는 많은 브랜드가 모여 있는 파리의 대표적인 백화점이야말로 적합한 곳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라파예트야말로 파리를 대표하는 곳이라 생각한다. 에펠탑처럼 아이코닉한 곳이다. 또 자리 번호는 의자가 놓인 위치의 매장 이름을 택했다. 단순히 사람들이 자리를 찾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베트멍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신은 ‘옷’ 자체에 집중하는 디자이너가 되길 원했다. 그런데 어느새 당신의 영향력은 옷 이상이 되어버렸다.
하하, 내가 그런 위치에 올랐다니 기쁘다. 하지만 여전히 내 궁극적인 목적은 여자 혹은 남자를 막론하고 사람들에게 옷을 입히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물론 내가 어느 곳에서 일하는지, 즉 몸담고 있는 브랜드에 따라 스타일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오트 쿠튀르 쇼장에는 쿠튀르 의상을 많이 소비하는 VIP를 우선적으로 초대하는 문화가 있는데, 당신이 프레스를 제외하고 특별히 초대하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나?
나는 내가 직접적으로 아는 클라이언트가 없다. 하지만 친구들은 여럿 초대했다. 발렌시아가 팀도 모두 와주었고 말이다. 근데 사실 그들은 내가 쇼를 할 때마다 온다. 그냥 내 가족이라 생각하면 된다. 또 우리 옷을 사고 그것을 멋지게 소화하는 사람을 어디서든 만난다면 그 사람을 쇼에 초대하고 싶다.

왜 이번 S/S 컬렉션을 선보이기 위해 오트 쿠튀르 기간을 선택했나? 어떤 메시지를 담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오트 쿠튀르 기간을 선택한 건 베트멍의 연중 계획을 조금 변화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성복의 메인 컬렉션 시즌인 3월과 10월에 선보이는 걸 그만하고 싶었다. 그리고 쿠튀르 기간에 쇼를 하는 편이 비즈니스적으로도 좀 더 활력 넘치기 때문이다. 이 시즌은 프리 스프링 컬렉션이 펼쳐지는 기간이고, 클라이언트들도 80퍼센트의 버짓을 쓰는 시즌이다. 3월과 10월엔 그들의 20퍼센트 버짓만이 쓰이는 기간이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첫 쇼를 선보인 지 2년 남짓 밖에 되지 않은 신진 브랜드인 우리 브랜드를 판매 측면에서 크게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었다. 쿠튀리에가 되고 싶었다기보다는 판매를 좀 더 올리고 싶었던 게 솔직한 마음이다. 아, 그러니 까 10월엔 우리(베트멍)를 못 볼 것이다. 내년 1월에 다시 만나게 되겠지. 물론 10월에는 발렌시아가를 통해 인사할 테고 말이다. 내게는 훨씬 나은 스케줄이다. 하하하.

이번 S/S 컬렉션을 쿠튀르 기간에 선보이기 위해 오트 쿠튀르 협회의 인증을 받아야 했을 텐데.
물론이다. 베트멍의 연중 스케줄을 조정하는 데에서 쇼 기간을 쿠튀르 기간으로 정했지만, 쿠튀르 기간에 쇼를 하려면 우선 오트 쿠튀르 협회의 동의가 있어야 한 다. 그래서 그들에게 우리의 콘셉트를 설명했다. 특히 이번 쇼 기간의 그 특별한 협업, 최고 장인들과의 작업에 대해 설명했다. 단순한 협업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오트 쿠튀르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강조했고 말이다. 이런 설명을 들은 후, 협회 측에선 역으로 우리에게 쿠튀르에 함께해줄 것을 제안했다. 물론 우리로서도 쿠튀르 리스트에 베트멍의 이름을 올린 건 정말 큰 영광이었다.

앞으로 패션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 같나? 동시대의 패션을 미래적으로 이끌고 있다고 평가받는 당신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다.
아, 쉽지 않은 질문이다. 우선은 글로벌한 지금의 상황이 지속될 것 같지는 않다. 각각의 브랜드는 점점 더 개인적인 스타일을 가지 게 될 거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중요한 시대가 올 테니까. 지금은 트렌드가 여러 브랜드에 걸쳐 있지만 그건 시장을 어지럽힐 뿐 더는 고객에게 어필할 만한 요소로 지속될 것 같지는 않다. 한마디로 브랜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브랜드와는 차별화된 어떤 것이 중요한 시대가 올 거라고 본다.

당신의 옷을 보면서 남녀노소의 구별이 사라진 듯한 인상을 받았다. 마치 미래 시대를 다룬 영화를 보는 듯하달까.
미래를 다룬 영화엔 늘 딱 달라붙는 우주복이 등장하니까 그건 아닌 것 같다. 한 50 년 후라면 모를까? 하하. 오늘날은 성의 구분이 중요하지 않은 시대다. 여자가 팬츠를 입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은 시대 아닌가. 오늘날 여성들은 팬츠를 살 것인가, 스커트를 살 것인가를 두고 더 이상 고민하거나 자신의 성별을 따지지 않는다. 옷을 볼 때 자신의 독자성과 스타일을 더 염두에 둘 뿐이다.

사람들이 패션을 통해서 충족하길 원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난 패션은 언제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동시대적인 것보다는 조금 더 앞서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브랜드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좀 아쉽긴 하다. 그것이 문화적 요소가 되었든, 혹은 그 어떤 면모이든 간에 말이다. 또한 패션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 그것이 행복이 든 불행이든,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간에 그 모든 것을 아우르고 흡수해서 선구적으로 표현해내야 한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당신이 좋아하는 10가지를 말해달라.
엄마, 가족, 남자 친구, 물론 옷도 있다. 요리, 운전, 캘리포니아, 잠자는 것, 동물(특히 강아지), 그리고 질문하는 것이다.

질문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니 마지막으로 묻겠다. 한국에서 온 우리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나?
그렇다. 한국은 언제 가는 것이 가장 좋은가? 한국의 시골에 한번 가보고 싶다. 그리고 제주도의 해녀들을 만나보고 싶다. 사실 해녀들에게 큰 관심을 갖고 있어서 여러 번 그들의 이미지를 찾아보았다. 언젠가 한국을 방문 해서 호기심 어린 이미지로만 보았던 해녀들을 실제로 꼭 만나 보고 싶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