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튀르엔 영혼이 있다. 오랜 시간 장인의 손에서 빚어진 자기처럼,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우아함이 깃들어 있다. 이러한 고전적인 매혹은 이번 시즌 새로운 디자이너들을 쿠튀르 대열에 합류하게 만들었고, 한 노장 쿠튀리에는 쿠튀르가 탄생하는 공방의 장인들에게 눈을 돌려 아틀리에를 주제로 한 쇼를 선보였다. 한편에서는 모던하고 절제된 웨어러블한 쿠튀르가, 또 다른 한편에서는 디자이너의 상상과 하이패션의 판타지를 구현하는 환상적인 쿠튀르가 오늘날의 쿠튀르를 대변했다. 무엇보다 브랜드마다 화두로 삼은 건 정체성의 핵심이라 할 독자성, 즉 디자이너의 철학과 개성을 근거로 장인 정신과 테크닉을 더한 ‘미래적인 쿠튀르’에 대한 근사한 해석이었다.

1_Fendi

펜디의 쿠튀르 쇼가 열린 장소는 파리가 아닌 로마였다. 브랜드의 역사와 정체성이 담긴 로마에서 창립 90주년을 축하하는 파티와 함께 성대하게 펼쳐진 것. 펜디가 복구 사업을 후원한 로마의 트레비 분수를 배경으로 열린 한여름 밤의 쿠튀르 쇼는 마법과 같은 순간을 선사했다. 펜디에서 자그마치 50년 이라는 세월을 함께한 칼 라거펠트는 쿠튀르 쇼에는 아름다움과 스토리텔링, 여기에 장인 정신의 삼박자가 갖춰져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꿰뚫고 있었다. 퍼의, 퍼를 위한 펜디의 오트 푸뢰르(Haute Fourrure) 쇼에서 가장 중요한 건 퍼를 모던하게 해석하는 심미안과 기술적 완성도라는 사실도 함께 말이다. 그는 자신에게 내재한 로맨틱한 감성을 ‘전설과 동화’라는 주제 아래, 아틀리에 장 인들의 놀라운 테크닉을 담아 다양한 퍼의 해석을 곁들였다. 특히 마치 그림 동 화책에서나 볼 법한 순수한 색채의 화려한 그림이 퍼 소재의 드레스나 스커트 위에 황홀하게 수놓아져 시선을 끌었다. 이윽고 트레비 분수의 물과 빛의 향연 이 캣워크의 리듬과 어우러지면서 그 분위기가 고조되자, 모델 켄들 제너와 벨 라 하디드가 동화 속 요정과 같은 환상적인 모습으로 물 위에 놓인 투명한 캣워크를 통해 걸어 내려왔다. 이로써 대범한 창의성을 통해 퍼의 신선한 해석과 모 던한 가치를 강조한 쇼는 브랜드의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해 정확히 나아갔다.

2_Givenchy

지방시의 리카르도 티시는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명확히 아는 디자이너다. 쿠튀르 위크 직전에 펼쳐지는 파리 남성 쇼에 쿠튀르 드레스를 입은 톱모델들을 포진시킨 일 역시 그만의 명확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건장한 지방시 가이들의 행군에 이어 피날레에 그의 뮤즈들이 여 신처럼 걸어 나올 때, 군중들은 두 세계의 극적인 만남을 경험했다. 레디투웨어와 쿠튀르, 남성과 여성, 실용주의 와 탐미주의를 말이다. 그리고 쿠튀르 기간에 그의 고객 과 프레스를 위해 선보이는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쇼에 선 보인 열세 벌의 쿠튀르 드레스를 간결하게 디스플레이해 의상에 깃든 장인 정신 그 자체만으로도 지방시가 추구하는 쿠튀리에 정신을 읽을 수 있게 했다. 그렇게 나탈리아 보디아노바가 지닌 순수함과 켄들 제너가 보여준 동시대적 모던함, 그리고 이리나 샤크의 관능미를 옷만으로 기억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섬세한 시퀸과 비즈, 정교한 플리츠와 러플, 로맨틱한 보와 미래적인 미러 장식, 매니시한 타이 스타일링이 돋보이는 드레스들은 완벽한 테일러 링의 위엄과 드레이핑의 우아함을 갖췄다. 위베르 드 지방시의 아카이브에서 영감을 받았다지만 그건 분명 티시 만의 원초적인 유혹이 느껴지는 유산임이 분명했다.

3_Atelier Versace

도나텔라 베르사체는 전임자가 쌓아놓은 글램한 왕국을 보다 동시대적 방식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이번 시즌엔 드레이핑에 공을 들였다. 장식적인 기교나 글램함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서 말이다”라는 그녀의 말처럼 오늘날 아틀리에 베르사체가 외치는 건 더 이상 슈퍼 섹시가 아니다. 대신 시간과 장소에 따라 관능적인 우아함마저 갖출 줄 아는 모던한 여성을 위한 옷에 몰두했다. 우선 그녀는 몸의 곡선미를 따라 우아하게 흐르는 드레이핑을 다채로운 방식으로 변주하고, 드레이핑을 통해 실루엣과 장식적인 미학을 실현했다. 나아가 블러시 핑크나 라벤더, 아이스 블루와 같은 매혹적인 컬러 팔레트로 전체적인 무드를 이끌었다. 그녀의 뷔스티에 가운과 캐시미어 코트를 입은 뮤즈들의 면면 역시 무척이나 흥미로운 볼거리를 선사했는데 카렌 엘슨으로 시작해 캐롤린 머피로 끝나기까지, 이리나 샤크와 마리아카를라 보스코노, 사샤 피보바로바, 사스키아드브로, 벨라 하디드, 리니지 몬테로 등 9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톱모델의 계보를 잇는 얼굴들이 저마다의 매력을 드러냈다. 특히 피날레엔 그 모두가 장엄하게 한 무대에 등장해 파워 풀한 존재감을 내뿜었으니 결국 도나텔라가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한 건 여성의 아름다움을 넘어선 우아한 카리스마, 즉 여성의 파워가 아니었을까.

4_Maison Margiela

존 갈리아노가 이끄는 메종 마르지엘라의 특별한 무드에 어느새 익숙해진 지금, 우린 다시 메종 마틴 마르지엘라 시절의 가치를 되짚어보게 된다. 전임자는 늘 익숙한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왜 소매는 여기에 달려 있어야 하는지라는 질문 등을 수없이 던지며 해체와 재조합을 통해 독창적인 아방가르드 미학을 쌓았다. 특히 쿠튀르 시즌 에 펼쳐지는 메종 마르지엘라의 기존 아티즈널(Artisanal) 컬렉션은 특별한 빈티지를 모으는 등 패브릭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렇다면 존 갈리아노표 쿠튀르는? 그는 우리에게 소재보다는 기묘한 여인들의 캐릭터를 통해 옷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볼륨과 비율에 대한 특별한 해석을 달았다. ‘두려움 없고 무모한, 하지만 테크닉적으로 완벽한’ 컬렉션이라는 그의 설명처럼. 또한 한층 젊고 다양해진 쿠튀르 소비층을 위해 ‘스케이트보더’라는 스트리트적 캐릭터를 차용했다. 물론 한편에는 프랑스 혁명 시대의 자유 의지와 전복적인 무드를 염두에 두었다고 했지만 그의 열정은 보다 신선한 쿠튀르의 표현을 향해 있었다. 한마디로 쿠튀리에 역시 시크해야 하며, 쇼적 감흥을 만 들어내야 한다는 갈리아노 식의 지휘랄까. 난해하게 얽힌 테일러링과 스타일링을 가만히 뜯어보면 밀리터리 재킷과 오버사이즈의 노란색 매킨토시 코트처럼 스트리트의 애티튜드가 담긴 웨어러블한 아이템들이 자리했다. 그러니 갈리아노적인 동시에 마르지엘라적인 코드를 애써 찾아내기보다는 그저 패션의 경이로움과 장인 정신의 환상적인 쇼맨십을 한껏 즐기는 편이 낫지 않을까.

5_Viktor & Rolf

레디투웨어를 떠나 쿠튀르에 전념하고 있는 빅터 호스팅과 롤프 스노렌이 이끄는 빅터&롤프. 그들에게 쿠튀르란 창조적이고 아트적인 유희의 과정 그것인 듯하다. 이번 시즌, 그들이 집중한 것은 표현의 방식으로서의 ‘재활용’이 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기존의 옷을 과감하게 잘라 새롭게 조합해 의상을 만드는 과정을 영상으로 공개한 그들은 자신들의 지난 컬렉션에서 수집한 패브릭을 이용했을 뿐만 아니라 쿠튀르적 해석을 더해 풍성한 볼륨감의 러플 장식 톱과 드레스를 생산했다. 그뿐일까. 기존의 옷에서 떼어낸 무수히 많은 단추를 하나하나 일일이 달아 새로운 형식의 엠브로이더리를 선보이기도. 한편 이 듀오는 올 10 월 브라이들 위크 데뷔전에서 선보일 첫 웨딩드레스 컬렉션을 예고하듯 피날레에 화이트 드레스도 등장시켰다. 전반적으로 클래식한 모자와 섬세한 소재, 로맨틱한 컬러 팔레트 덕분에 한 편의 서정시처럼 달콤하고도 몽환적이었던 컬렉션. 미묘하게 다른 해석의 러플 퍼레이드가 다소 지루한 감은 있었지만, 크리에이티브하고 난센스적인 파격을 추구하는 듀오로서는 좀 더 웨어러블한 쿠튀르에 대한 접근이자 요즘 패션계의 반향을 의식한 새로운 도전이 아니었을까. 특히 밀리터리 재킷과 빈티지 트렌치코트, 스웨트셔츠(코크라고 적힌)와 데님의 활용은 모던하고 실용적인 면모를 엿보게 했다.

6_Jean Paul Gaultier

파리 쿠튀르의 영원한 앙팡테리블인 장 폴 고티에. 그야 말로 기존의 쿠튀르 고객들을 가장 존중하는 디자이너가 아닐까. 세월의 풍파와 시대의 격변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흥겹고도 탁월한 쇼를 선보이니 말이다. 이번 컬렉션은 인비테이션과 쇼노트를 통해 예고한 것처럼 가을을 담은 컬러 팔레트에 집중했다. 관능적인 가죽 소재 톱과 나무나 원석 소재 액세서리, 그리고 나무, 새, 꽃 등이 정교하게 프린트된 하늘거리는 시폰 드레스. 여기에 캐주얼한 밀리터리 점퍼 혹은 오버사이즈 니트 코트가 믹스 매치되어 등장했고, 때로 깃털과 퍼 장식이 더해져 와일드한 야생의 매력적인 무드를 더하기도 했다. 얼굴을 감싸는 형태의 드라마틱한 모자는 뒷면에 고티에가 사랑하는 코르셋을 연상시키는 레이스업 장식으로 악센트를 더했다. 고티에의 뮤즈로 분 한 모델들의 극적인 워킹과 드라마 퀸 같은 표정 연출도 볼거리였지만, 특히 강한 인상을 남긴 건 한국 톱모델 수주의 피날레. 성스러운 신부의 모습으로 분해 순백의 레이스와 튤 장식의 구조적인 뷔스티에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고티에 특유의 강렬한 캐릭터와 극적인 글램함을 드러내 탄성을 자아냈다. 이내 무대에 등장한 장 폴 고티에를 비롯해 모델 코코 로샤, 안나 클리블랜드와 함께 천진난만한 피날레 인사를 건넸지만 피날레 순간의 장엄한 카리스마는 긴 여운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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