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에서 온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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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는 말은 음악에서 특히 유효하다. 지금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래퍼 루피와 나플라를 보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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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루피(Loopy)와 나플라(Nafla)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다면 당신은 힙합에 아예 관심이 없거나 최근 몇 달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게 틀림없다. 평소 놀던 대로 친구들과L A에서 어슬렁거리며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유튜브에 올린 그들은 갑자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며 ‘한국 힙합의 미래’가 됐다. 각각 믹스테이프 <King Loopy>와 <This & That>을 낸 루피와 나플라는 스스로를 ‘21세기의 비기’니 ‘투팍 같다’느니 ‘세련된 우탱’이니 노래하더니 결국 함께 메킷레인(Mkit Rain)이라는 레이블을 만들고는 급기야 ‘Come Thru’라는 노래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잘하는 한국인들은 처음이지?’ 힙합의 과장된 어조를 감안하고 듣더라도 그 말은 뭐,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귀찮다는 듯 느긋한 태도로 또박또박 노래하는 루피의 속도감과 감기 걸린 듯한 목소리로 단어들을 유연하게 뱉어내는 나플라의 리듬감은 처음 들어보는 종류였다. LA의 환상적인 날씨를 뒤로하고 춥고 더운 서울에 온 그들을 만났다. 참, 궁금해할까봐 말해두는데, <쇼 미 더 머니 5>에는 안 나간다.

오랜만에 한국에 왔는데 어떤가?
나플라 적응은 한 것 같다. 미국에 가면 이제는 한국이 그리울 정도다. 아침에 어르신들 걸어 다니고 도둑고양이가 어슬렁대는 모습 등이 그리울 것 같다.루피 적응은 했는데 그렇게 행복하진 않다. 고립을 즐기는데 한국에서는 물리적으로도 자주 사람들과 부딪치고 심리적으로도 신경이 쓰인다. 내 멋대로 하고 다닐 수가 없으니까 거기서 오는 불편함이 있다.

믹스테이프 내고 엄청난 반향이 있었다. 서울에서의 공연 영상을 보니 함께 부른 ‘ Vegas’나 ‘미장원’도 그렇고 가사가 엄청 긴 ‘Gear 2’ 같은 랩도 관객들이 다 따라 부르더라. 그런 폭발적인 반응이 당신들에게 미친 영향이라는 게 있나?
루피
‘Gear 2’ 가사는 나도 자주 까먹는데(웃음). 나플라에게 LA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만 할 수 있는 음악을 하자고 제안했는데 ‘Gear 2’ 영상의 반응이 좋아 함께하게 된 거다. 나플라와 내 음악에 수준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겸손이 아니다. 나플라의 ‘멀쩡해’를 듣고 패서디나에 있는 우리 집 아파트 계단에서 “네가 나보다 잘하는 것 같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나플라 미국에 있을 때는 실감이 안 났다. 밖에 나가도 아무도 우릴 모르니까(웃음). 한국 와서 공연하면서 생각보다 좋아해주는 분이 많구나 느꼈다. 사람들의 반응이 없었다면 꿈은 실현되지 않았을 거다. 대학 졸업 후 부모님 반대도 심하고 이제 어른이 돼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느끼는 찰나에 믹스테이프 <This & That> 다운로드 수가 1만 회가 나온 걸 보고 음악을 해야겠다고 확신했다.

LA에서 음악 하던 시간을 떠올리면 어떤 장면이 떠오르나?
나플라
모두가 일하러 나간 아침에 작업을 많이 했다. 사실 아침도 아니다. 11시에 일어났으니까. 한참 작업하고 나면 에너지가 소진돼 4시 정도에 다시 잤다. 잠깐 자고 일어나서 또 작업하곤 했다. 루피 나플라에게 “어떻게 해가 떠 있고 모두가 깨어 있는데 작업을 해?”라고 물어보니 “아니, 그럼 모두가 잘 때 어떻게 작업해?”라고 답하더라(웃음). 나플라와 42 크루 애들이 매일 우리 집에 놀러 오곤 했다. 사실 랩을 한 시간보다 안 한 시간이 더 많다. 연애도 했고 축구도 했고 일도 했고 학교도 다녔는데, 어떤 좋은 노래를 들으면 그것과 비슷한 노래를 썼다. 특히 드레이크의 ‘0 to 100’을 듣고 진짜 멋있다고 생각했고 나도 음악을 해볼까 생각했다. 그러면서 매형이랑 ‘Wa$$up’ 뮤직비디오 찍고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Gear 2’ 뮤직비디오를 찍었다.

더블유에 소개되지 않으면 아쉬울 것 같은 자신의 곡은 무엇인가?
나플라
‘멀쩡해’라는 곡. 친구들과 캘리포니아에서 어떻게 느끼고 지냈는지 담은 곡이다. 좀 더 내 자신과 가까운 곡이라고 말할 수 있다. 루피 ‘Friday’라는 곡. 그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과 친구 할 거고 그 노래를 좋아하는 여자를 만날 거다. 내 안에 있는 침울한 바이브를 끄집어내 쓴 곡인데 그 노래를 들으면서 좋다고 생각했다(웃음). 난 내 노래가 좋다고 느끼는 그 순간을 위해서 노래를 만든다.

노래하는 자아와 실제의 자아는 얼마나 일치하나?
나플라 난 다르다. 화를 분출하는 용도로 랩을 썼다. 그래서 랩도 좀 공격적으로 했을 거다. 요새는 ‘잠시만, 이게 내가 아닌데.’ 싶어서 내가 누구인지 찾아가는 중이다.루피 이야기를 하는 나와 실제의 나는 다를 수 있지만 그 노래 속의 감성은 내 것이다.‘ K ing Loopy’라는 곡을 낸 이유는 스스로 당당하게 느끼고 남의 시선을 신경 안 써서다. 한국 와서 발표한 곡‘Goyard’는 감옥에 갇혀 며칠 문을 막 두드리다가 결국 풀썩 주저앉는 느낌의 곡이다. 한국에 와서 추위를 느꼈고 외롭고 쓸쓸하고 어쨌든 기분이 되게 별로였다. 그런 무드에서 노래를 한 거다. 그 곡을 내야 평가를 신경 쓰는 내 자신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힙합이 왜 좋나? 
나플라 힙합은 목소리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거기서 힙합의 멋을 느꼈다. 루피 힙합의 멋은 태도에서 나온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래퍼들이 하는 일이다. 힙합은 나를 좀 더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꼭 힙합 음악을 하지 않더라도 어떤 태도를 보고 ‘힙합이다’라고 얘기하는 게 그래서다.

최근에 그렇게 느낀 사람이 있나?
나플라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의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멋있었다. 아이덴티티가 완벽하다. 말하는 태도나 외모, 모든 게 하나의 정체성으로 일치된다. 루피 김제동. 세월호 추모 행사에서 김제동이 연설하는 걸 봤는데 멋졌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신념을 담아서 눈치 안 보고 말한다는 게 멋있다고 느껴졌다. 김제동의 유머는 안 좋아하지만(웃음).

그럼 메킷레인은 자유롭고 싶어서 만든 건가?
루피
그렇다. 나플라가 도끼 밑에 들어가도 멋있지 않았을 거고 스윙스 밑에 들어가도 멋있지 않았을 거다. 거기 가서 똑같은 뮤직비디오 만들고 똑같은 노래 하면 재미없지 않나? 멋있는 그림은 우리가 직접 레이블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잘 되면 뉴욕의 젊은 래퍼들이나 LA의 다른 래퍼들이 또 자신들만의 랩을 들려줄 수 있을 거고, 그러면 한국의 음악 신이 더 풍부해질 거다.

힙합 말고 다른 음악도 듣나?
루피
스투(Stwo), 플럼(Flume), 주(Zhu) 등의 칠 트랩과 칠 하우스를 좋아한다. 나플라 어렸을 때부터 발라드를 좋아했다. 요즘 자주 듣는 건 김진호의 ‘가족사진’이다. 임창정의 ‘슬픈 혼잣말’도 좋아한다.

에디터
이예진
포토그래퍼
조영수
나지언 (프리랜스 에디터)
스탭
헤어&메이크업 | 정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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