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에 수집가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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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의 휴양 도시 아스펜은 언제나 부유층과 저명 인사들의 사교장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의욕 넘치는 아트 컬렉터들 덕분에 떠오르는 아트의 성지가 되었다.

리처드 프린스의 ‘할리우드의 간호사(2003)’ 앞에서 포즈를 취한 아스펜의 미술품 수집가 가브리엘라 가르사. 앉아 있는 소파는 장 로예르의 작품이다. 드레스와 부츠는 랑방 제품.

리처드 프린스의 ‘할리우드의 간호사(2003)’ 앞에서 포즈를 취한 아스펜의 미술품 수집가 가브리엘라 가르사. 앉아 있는 소파는 장 로예르의 작품이다. 드레스와 부츠는 랑방 제품.

Richard Prince 할리우드의 간호사(2003)
헝클어진 머리에 찢어진 청바지, 플란넬 셔츠에 스터드 박힌 아제딘 알라이아를 신은 가브리엘라 가르사는 분명 세상에서 가장 스타일리시한 할머니다. 그녀는 또한 아주 중요한 뉴 아트 후원자이기도 하다. “잠깐 손댈 거라면 그것도 괜찮아요. 트로피를 원한다면 사면 되죠. 투자가 목적이라면 좋은 투자처고요. 나에겐 배움의 즐거움 그것이죠.” 아스펜 산맥의 에메랄드빛 면을 마주한 빨간 벨벳 소재의 장 로예르 소파에 앉아 그녀가 말했다. 가스와 오일 부호인 남편 라미로와 함께 멕시코시티에 거주 중인 가르사는 15년 전 안토니 타피에스의 그림이 그녀의 눈길을 끌면서 처음 미술 컬렉팅에 빠져들게 된다. 그녀의 수집품에는 제프 쿤스, 가브리엘 오로스코, 로런스 위너의 작품들이 있고, 수집품은 거대한 사이 톰블리 작품이 있는 멕시코시티에 대부분 모아 두었다. “정해진 스타일의 작품들만 산다고 사람들이 늘 말해요. 하지만 어떤 작품을 구입하는지는 우리에겐 그 당시 감정에 따라 내려진 결정이에요.” 가르사와 가족들은 20년이 넘게 아스펜을 방문하고 있으며, 친구들은 그녀 요리사의 특출한 음식을 좋아한다. “제 생각에 여기서 제일 맛있는 레스토랑은 우리 집인 것 같아요. ”

언제 어떻게 아스펜이 예술계의 권좌에 올랐는지 정확하게 짚어내기란 어렵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알기는 쉽다. “큰돈이 큰돈을 부르는 거죠.” 세인트루이스 출신 작가이자 수집가인 잰 그린버그가 (바우하우스 거장 허버트 바이어가 디자인한) 그녀의 아스펜 자택에서 커피 테이블 위 루이즈 부르주아의 조각상 옆에 브라우니 한 접시를 내려놓으며 내게 말했다. 적어도 50명의 억만장자가 아스펜 인근에 집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마을의 설립자인 엘리자베스 패프케에겐 놀랄 일은 아닌 것 같다. 77년 전 시카고의 자선가 패프케는 스키 여행 중에 이 쇠퇴한 은광 마을을 발견했고, 후에 아스펜 음악 페스티벌과 아스펜 연구소를 설립, 이곳을 예술가와 지성인의 고상한 정착지로 탈바꿈시켰다. 80년대에는 신흥 부자들이 산에 성을 지으며 정착하기 시작했고, 패프케는 이를 경악하며 지켜봤을 것이다. 특별히 여름 시즌에만 벌어지는 과잉일 수도 있지만 문화적인 부자들은 아스펜을 지구상의 모든 금칠한 사교장 중에서도 독특한 곳으로 만들고 있다. 코크, 라우더, 아브라모비치, 시스네로스 등 이 마을을 전용으로 애용하는 억만장자들은 미국에서 가장 주요한 문화 시설의 임원 자리에 앉아 있다.
“여기 아니면 또 어디에서 아침에 일어나 하이킹을 하고 필라테스를 한 뒤 저명 인사 강좌를 듣고 테니스를 치고 또 하이킹을 가는 일상을 보내겠어요?” 멕시코시티 출신의 컬렉터 가브리엘라 가르사가 묻는다. 그녀는 오늘 이미 우리를 만나기 전 유명 작가인 월터 아이작슨의 다빈치에 대한 강의를 듣고 집에 돌아와 휘트니 미술관 디렉터인 애덤 와인버그와의 저녁을 준비 하고 있었다. 마을 반대편에서는 로스앤젤레스 출신의 민주당 지지자인 제인과 마크 네이선슨이 그들의 목조 주택에서 존 매케인과 그의 국가 안보에 관한 연설을 들으러 가기 전 함께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한편, 잰 그린버그와 그녀의 남편 롤랜드는 첼로 거장 앨리사 와일러스타인이 연주하는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의 프로그램을 들으러 가는 길이다. “재즈 페스티벌부터 영화제, 발레나 교육기관까지 여기서는 한순간도 지루할 수가 없어요.” 지루함을 피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어 보이는 낸시 마군이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마이애미에서 파티를 마친 새벽 3시에 앤디 워홀을 졸라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게 했던 인물이다. 아스펜에서 50년 넘게 스키를 탄 제인 네이선슨은 여기가 더는 패프케의 고상한 산속 피서지가 아니라는 것에 수긍하고 있다. “여기 남은 몇 WASP(미국 주류 지배 계층)들은 스튜어트와 린다 레스닉이 다 허물어져가는 패프케 공연장을 고치자고 하니 아연실색하더 군요. 하지만 예전 아스펜 지킴이들도 알게 될 거예요. 새로운 무리도 그들 만큼 이곳의 지적인 문화를 지키는 데 헌신적이라는 사실을요.”
확실히 아스펜은 서로 대립하는 취향과 기질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현대 예술의 성지로 만들어놓은 열정적 수집가들 무리에 상당한 빚을 지고 있다. 그들은 그들 방식대로 하나의 팀인 것이다. “그리니치나 뉴욕에선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유대감이 이곳 여성들 간에 존재해요.” 구겐하임 박물관의 회장이자 앤더슨 랜치 아트 센터(스노매스 빌리지 인근에 자리 잡고 있으며 캠퍼스 내 예술가들에게 워크숍과 기숙사를 제공하는 근 50년 된 예술 학교다)의 열혈 지지자인 제니퍼 블레이 스톤먼의 말이다. 우아한 아스펜 아트 뮤지엄과 역동적인 앤더슨 랜치는 콜로라도 로키 산맥 일대에 조성된 현대 미술의 기둥이다. 10년 전 하이디 저커맨이 아스펜 아트 뮤지엄의 CEO이자 디렉터가 되면서 모든 게 시작되었다. 강가의 조용했던 위치에서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 반 시게루가 디자인한 세련된 빌딩으로 옮겼다. 미술관은 영구 소장품 없이 운영되었지만 저커맨은 최첨단이고 종종 도전적인 방향 으로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저커맨은 아스펜에 대해 준비된 예술 도시 그 이상이었다고 주장한다. “이건 마치 모든 이가 나의 언어를 쓰는 나라에 온 기분이었어요. 아무것도 설명할 필요가 없었죠. 이곳 사람들은 강한 자신감과 과감한 아이디어에 대한 욕구를 가지고 있어요.” 저커맨을 버클리 아트 뮤지엄에서 아스펜으로 데려 온 위원회에 있었던 마군 또한 동의한다. “여기는 누가 에드 루샤 작품을 구입한다고 모두 다 에드 루샤를 사는 동네가 아니에요.” 사실 지금 이 동네에서는 루샤의 산 시리즈만큼 인기 있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캔버스 위의 예술이 아무리 인기가 있다 해도 현실이라는 예술과는 비할 바가 아니 다. 몇 해 전 건축가 그룹 ‘뉴욕 5’의 일원인 찰스 과스메이가 디자인한 집을 지은 컬렉터 앨리슨 캔더스가 알기 쉽게 말한다. “우리 모두가 아스펜 자체가 훌륭한 예술 작품이라고 믿고 있는 거 같아요.” 이 점에 관한 한 패프케도 동의했을 것이다.

휘트니 미술관의 임원인 낸시 크라운 뒤로 존 발데사리의 ‘물체를 든 두 형상 위의 분홍 형체들(산악 풍경 속에) (2003)’ 이 걸려 있다. 톱과 스커트, 부츠는 모두 디올 제품.

휘트니 미술관의 임원인 낸시 크라운 뒤로 존 발데사리의 ‘물체를 든 두 형상 위의 분홍 형체들(산악 풍경 속에) (2003)’ 이 걸려 있다. 톱과 스커트, 부츠는 모두 디올 제품.

John Baldessari 물체를 든 두 형상 위의 분홍 형체들(산악 풍경 속에) (2003)
“전 다른 여성분들이 제 멘토라고 생각해요.” 그녀의 컬렉션이 다른 아스펜 친구들의 리그에는 못 미친다고 최초로 인정한 낸시 크라운의 말이다. 하지만 크라운 컬렉션이 어둠 속에 오래 숨겨져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일리노이 위네트카에 기반하고 있지만 그녀 집안은 아스펜에서 가장 큰 사업체 중 하나인 아스펜 스키 컴퍼니를 소유하고 있다. 아들이 선호하는 극한의 스노보딩 지역에 가까운, 아스펜 하이랜드에 위치한 꽤나 격식있는 스톤 하우스에서 보는 신문 속 리처드 세라의 작품이 데이비드 이스턴의 데코와 대조적으로 시크하게 보인다.
“우리는 존 발데사리를 수용할 수 있게 로비의 벽판을 제거해야겠어요. 난 그 병렬이 좋았지만요.” 2011년부터 휘트니의 임원이었던 크라운이 말했다. 이 부부의 수집물은 지난 세기 중반의 거물들인 엘스워스 켈리, 리처드 디 벤콘, 브리짓 라일리와 차세대 거장인 크리스토퍼 울과 크라운이 친구라 부르는 웨이드 가이톤이 섞이며 점점 늘어갔다. “컬렉팅은 제게 아주 풍부한 경험이 되어주었 어요. 다른 임원들과 여행을 다니고, 예술가들을 알아가고, 그들의 커리어가 꽃피우는 걸 보죠. 예술 작품을 가지고 사는 것은 그 기쁨의 일부일 뿐이고요. ”

도발적인 작품을 선호하는 미술품 컬렉터 앨리슨 캔더스의 왼쪽에는 레이철 해리스의 ‘이렇게 걷는다(2007)’, 오른쪽에는 폴 매카시의 ‘미미(2006~2008)’가 놓여 있다. 드레스는 스텔라 매카트니 제품.

도발적인 작품을 선호하는 미술품 컬렉터 앨리슨 캔더스의 왼쪽에는 레이철 해리스의 ‘이렇게 걷는다(2007)’,
오른쪽에는 폴 매카시의 ‘미미(2006~2008)’가 놓여 있다. 드레스는 스텔라 매카트니 제품.

Paul McCarthy 미미(2006~2008)
“햄튼은 뉴욕 사람들의 휴양지죠. 하지만 아스펜에는 모든 사람들이 온답니다. 파크 애비뉴를 걷다 보면 보편적인 체크리스트를 보게 돼요. 하지만 여기의 아트 컬렉션은 훨씬 더 개인적입니다.” 캔더스와 그녀의 투자가 남편은 콜로라도의 사진 명소인 마룬 벨스 봉우리를 전망으로 가진 모던한 보금자리에서 여름과 겨울을 보낸다. 찰스 과스메이가 디자인한 마지막 남은 사택 중 하나다. 작품을 더 걸기 위해 특유의 곡선으로 이루어진 벽은 살짝 포기해야 했다. 솔 르윗의 작품이 거대한 루돌프 스팅겔을 마주 보고 있고, 그 사이에 폴 매카시의 소녀상이 놓여 있다. (“무난하죠.” 매카시에 대해 그녀가 말했다. “조지 W. 부시가 돼지랑 성교하는 작품을 만든 사람의 작품치고는요.”) 21세에 처음으로 구입한 예술 작품이 루이즈 롤러의 사진이었던 캔더스는 도발적인 작품을 모으는 데 열중하고 있다. “안 그러면 지루해질 거예요.”

애니시 커푸어의 ‘무제(2013)’ 앞에 선 테라피스트이자 수집가인 제인 네이선슨. 드레스는 샤넬 제품.

애니시 커푸어의 ‘무제(2013)’ 앞에 선 테라피스트이자 수집가인 제인 네이선슨. 드레스는 샤넬 제품.

Anish Kappor 무제(2013)
면허를 가진 테라피스트인 제인 네이선슨과 그녀의 발명가 남편 마크는 덴버 대학에서 처음 만난 60년대 초부터 아스펜을 드나들었다. 그땐 모텔에서 잤지만 요즘 그들은 요세미티 화재로부터 구출해낸 수목으로 만든 통나무 집에 머문다(털 카펫을 깔고 워홀 작품을 모아 그루브함을 더한). 이전에는 로스앤젤레스 홈비 힐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하우스에 살았다.
제인은 부모가 인상주의 작품을 수집하던 맨해튼의 5번 가에서 자랐다. “그림을 그리라고 독려해주셨죠. 내 작품을 사는 사람은 오직 아빠뿐이었고요.” 제인과 마크는 70 년대 초반 뉴욕에서 예술 작품을 사기 시작했다. “워홀의 수프 캔을 1천 달러에 샀어요. 그때만 해도 살 만한 가격이었죠. 이젠 갑부들의 취미가 되었지만요.” 이들의 컬렉 션 중 걸작- 워홀의 큰 더블 엘비스와 작가 서머싯 몸이 한때 소유했던 마티스- 들은 LA에 걸려 있고, 아스펜 별장에는 애니시 커푸어, 마릴린 민터, 그레고리 크루드슨 등의 현대미술 작품이 모여 있다. 왜가리의 도래지로 노스 스타 자연보호구역과 인접해 있는 바깥 경치는 말 그대로 장관이다. “밖에 조각상을 놓아야 하나 사람들이 묻더군요. 제 생각엔 나무 한 그루가 더 멋진 것 같아요”

루치오 폰타나의 ‘콘체토 스파지알레, 아테세(1966)’ 앞에서 포즈를 취한 톰 포드 인터내셔널과 소더비 이사회 회장의 아내 엘레노어 데 솔레. 드레스는 톰 포드 제품.

루치오 폰타나의 ‘콘체토 스파지알레, 아테세(1966)’ 앞에서 포즈를 취한 톰 포드 인터내셔널과 소더비 이사회 회장의 아내 엘레노어 데 솔레. 드레스는 톰 포드 제품.

Lucio Fontana 콘체토 스파지알레, 아테세(1966)
“어머니가 말씀하셨죠, ‘물은 저절로 제 위치를 찾아간다’.” 톰 포드 인터내셔널과 소더비 이사회의 회장인 남편 도메니코와 함께 지난 30년 동안 찾던 이 슬로프로 왜 예술 애호가들이 모여드는지를 엘레노어 데 솔레가 설명해주는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조용하고 온전히 세련된 컬렉션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추상적 표현주의와 미니멀리즘이 섞여 있으며, 90년대 도메니코가 구찌의 CEO 시절 플로렌스 거주 당시 경매사 사이먼 드 퓨리로부터 소개받은 이탤리언 모더니스트 루치오 폰타나의 작품 네 점 과 피에로 만초니의 작품 하나도 포함되어 있다. “도메니코와 나는 단순한 눈을 가졌 다고 말할 수 있어요. 우리는 느긋하고 티를 안 내죠. 스노매스 빌리지에 사는 것도 그렇고요.” 아스펜의 약간 덜 호화로운 동네를 언급하며 엘레노어가 말했다. 항해에 열심인 데 솔레 부부는 아스펜에 없을 때면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힐튼 헤드에서 발견 할 수 있다. 그들은 서로 완벽하게 동의하지 않으면 절대 작품을 사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절대 아무것도 팔지 않는다고 한다. “절대요 절대.” 엘레노어가 말했다. “또 다른 벽은 언제나 있으니까요”

Rob Haskell
에디터
황선우
포토그래퍼
MATTIAS VRIENS- McGR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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