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바뀌면 주위의 풍경을 구성하는 요소들도 달라진다. 과거에 우리는 어떤 것들을 보고 듣고 즐겼는지 되짚어봤다.

2000년대
페이스북 대신 싸이월드에 몰두했고, 아이팟의 출시 소식에 흥분했다. 얼마 전인 것 같다가도 아득하게 느껴지는 21세기의 도입부.

브리트니 스피어스
순진한 스쿨걸 이미지에 은근한 섹스어필을 섞었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전략은 꽤나 아슬아슬했다. 데뷔 앨범의 첫 싱글인 ‘…Baby One More Time’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시작된 신데렐라 스토리는 어긋난 로맨스, 파파라치, 신경쇠약 등으로 이내 얼룩졌다.

아이팟과 아이폰
MP3 플레이어의 춘추전국시대는 아이팟의 출현과 함께 막을 내렸다.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와 매끈한 디자인은 어렵지 않게 시장을 접수했다. 한동안 아이팟은 지구상에서 제일 쿨한 기기였다. 아이폰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싸이월드
한국형 소셜미디어의 본격적인 기원은 싸이월드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배경음악을 구입하고 미니룸을 꾸미느라 한국인이 사용한 도토리를 다 모으면, 전 세계 다람쥐들을 평생 배불리 먹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
이마에 번개 모양의 흉터를 지닌 어린 마법사를 주인공으로 한 JK 롤링의 판타지 소설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 사로잡았다. 2001년부터 한 편씩 공개되기 시작한 영화 역시 개봉하는 족족 흥행 기록을 경신했다. 오리지널 시리즈는 마무리가 됐지만 해리 포터의 마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에디 레드메인이 주연을 맡은 <신비한 동물사전>은 롤링이 직접 시나리오를 쓴 스핀오프 프로젝트다. 7월에 런던에서 개막할 연극 <해리 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는 성인이 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에미넴
악명 높은 트러블 메이커, 그리고 2000년대에 가장 많은 앨범을 팔아 치운 힙합 뮤지션.

DC vs. 마블
2000년대 들어 카툰 출신 슈퍼히어로들의 접전은 부쩍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마블의 <스파이더맨>과 <아이언맨>이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으며, DC의 <배트맨 비긴즈>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손을 거쳐 무게 있는 블록버스터로 재탄생했다. 하지만 브라이언 싱어의 <수퍼맨 리턴즈>는 실망스러운 불발탄으로 끝났다.

네이버
네이버의 서비스가 시작된 건 1999년이었다. 그리고 2002년에는 지식 검색 서비스가 도입됐다. 이후로 한국인의 인터넷 생활은 극적인 지각 변동을 겪었다.

유튜브
2005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유튜브는 불과 10여 년 만에 하나의 중요한 매체로 자리매김을 했다. 신문에 실린 TV 편성표를 일과표 삼아 보내던 휴일은 VOD 서비스와 스트리밍 서비스가 보편화된 이후로 영영 과거가 됐다.

영화 <올드보이>
내한했던 해외 유명인들은 박찬욱 감독 덕분에 여러 위기를 넘겼을 것이다. 한국 기자들로부터 “좋아하는 한국 영화는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래도 한 편의 제목은 생각이 났을 테니까.

1990년대
왕가위의 영화를 보고 하루키의 소설을 읽다가 외로울 땐 삐삐를 치는 X세대가 세상을 지배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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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로버츠
1980년대 후반의 줄리아 로버츠는 <미스틱 피자> <철목련> 등으로 착실하게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신인이었다. 그런데 1990년에 <귀여운 여인> 이 개봉됐고,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빨강머리를 갈기처럼 흔들며 목젖이 들여다보이도록 웃던 이 배우는 공식적인 ‘미국의 연인’이 됐다.

모토로라 삐삐
1980년대 후반에 비즈니스용으로 처음 소개된 삐삐는 1990년대 들어 일반 소비자에게까지 빠르게 전파됐다. ‘당신의 천사(1004)’ ‘열렬히 사모(1010235)’ 등 숫자 암호로 애틋한 메시지를 전하던 시절은 X세대가 그만 잊고 싶어 하는 흑역사다.

PC 통신
접속 신호음과 모니터에 뜨는 파란 화면을 생각하면서 문득 아련해졌다면 당신은… 늙었다. 블로그도 트위터도 없던 시절, PC 통신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물리적 활동 반경 밖에 있는 인연을 찾도록 도와줬다. 물론 큰 즐거움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 는 법. 이를테면 전화요금 고지서 같은 것 말이다.

다마고치
1990년대는 가상 현실이 일상에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한 시기다. 아담, 류시아, 사이다 같은 사이버 가수들이 등장했다 잊혀졌고, 일본 반다이 사가 출시한 휴대용 전자 애완동물 사육기인 다마고치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후자의 경우,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할 수 있다는 비난에 부딪히기도 했다.

서태지 vs. 너바나
서태지와 아이들은 평범한 밴드라기보다는 하나의 현상이었다. 직설적인 메시지와 새로운 사운드는 당대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한편 팝 애호가들은 커트 코베인을 망적인 영웅으로 삼았다. 몇 장 안 되는 너바나의 디스코그래피는 이들에게 평생의 경전이 됐다.

왕가위의 영화 vs.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990년대의 도시를 살아가는 외로운 청춘들이라면 젖은 행주나 쓰다 만 비누 앞에서 왕가위의 스텝프린팅을 논하거나, 노르웨이의 숲으로 떠난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을 그리워해야 했다. 뻔하게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무겁거나 난해하지도 않은 두 사람의 작품은 열혈 추종자들을 낳았다.

영화 <타이타닉>
<타이타닉>은 첨단의 기술력과 막대한 제작비로 되살린 할리우드 대하 에픽의 전통이었다. 이 작품으로 박스오피스를 제패한 뒤 아카데미 트로피까지 거머쥔 제임스 캐머런은 “나는 세상의 왕이다!”라는 극 중 대사로 소감을 대신했다. 아마 진심에서 우러나온 외침이었을 것이다.

1980년대
마돈나와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을 워크맨으로 듣던 그때 그 시절의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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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
1980년대의 마돈나는 부모들의 악몽이자 소녀들의 우상이었다. ‘보이 토이(남자 노리개)’라고 새겨진 벨트를 매고 노골적인 섹스어필을 과시하던 이 팝스타는 당대의 라이벌로 꼽히던 신디 로퍼를 이내 앞질렀다. 신드롬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인 건 ‘Like A Virgin’이었지만, ‘Border Line’이나 ‘Crazy For You’ 등도 클래식으로 꼽힐 자격이 충분한 트랙들이다.

소니 워크맨
1979년에 일본 소니 사가 출시한 워크맨은 젊은 음악 팬들의 일상을 바꾸어놓았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자면 여전히 부담스러운 무게와 크기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집전화만 쓰다 휴대전화를 처음 쥐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

MTV
MTV의 개국을 계기로 ‘보는 음악’의 중요성이 새삼스럽게 대두됐다. 뮤직비디오 시장이 급성장했고, 마돈나와 같은 비디오형 가수가 도약의 발판을 얻었다.

타이거 운동화
삼화고무에서 출시한 범표 운동화는 1970 년대 후반에 타이거 운동화로 상호 변경을 했다. 최근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면서 새삼 화제가 됐지만 누군가는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때 이한열 열사가 신었던 운동화 브랜드로 그 이름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심하게 훼손됐던 신발은 2015년에 복원 전문가에 의해 옛 모습을 회복했다. 출간 예정인 김숨의 장편 소설 <L의 운동화>는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테트리스
1984년에 구 소련의 프로그래머 알렉세이 파지트노프에 의해 처음 개발됐으며, 소련이 미국에 처음으로 수출한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기도 하다. 이 퍼즐 비디오 게임은 냉전으로 대치 중이던 두 국가를 폐인으로 하나 되게 할 만큼 중독성이 막강했다.

잡지 <멋>
디자이너이자 타이포그래퍼인 안상수가 아트 디렉터를 맡았던 <멋>은, 한국 패션지의 본격적인 시작이나 다름없다.

영화 <탑 건>
<탑 건> 개봉과 함께, 전 세계의 소녀 팬들은 이상형을 갈아치웠다. 레이밴 선글라스를 벗으며 얼굴 가득 미소를 짓던 톰 크루즈는 할리우드의 왕자님 자리를 당연하다는 듯 꿰찼다.

TV 시리즈 <맥가이버>
1980년대는 외화 시리즈의 전성기였다. 파충류 외계인들의 지구 침공을 그린 <브이>는 신드롬에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꽁지머리 만능 해결사의 모험을 그린 <맥가이버>의 시청률도 만만치 는 않았다. 그는 근육보다 머리를 믿는 새로운 영웅이었다.

1970년대
<스타워즈>의 막이 올랐고, 독고탁이 마운드에 섰다. 오래도록 기억될 많은 것이 그 시절에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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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 더너웨이
오스카의 저주에 대해서라면 페이 더너웨이도 할 말이 많다. 시드니 루멧의 미디어 풍자극 <네트워크>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뒤, 그의 경력은 눈에 띄게 쇠락했다. 그래도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까지 남긴 작품들, 즉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차이나타운> 등은 불멸의 클래식으로 남았다.

가나 초콜릿
채시라, 이미연 등이 광고 모델로 나선 건 1980년대였다. 하지만 제품의 출시 시기는 197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응답하라 1988> 방영에 맞춰 롯데는 이 장수 제품을 복고풍 패키지로 다시 내놓기도 했다.

야전
MP3 플레이어와 워크맨이 없던 시절에도 나름의 대체재는 있었다. 야전, 그러니까 야외전축은 휴대용 LP 플레이어를 뜻한다. 잔디밭에서의 몇 시간짜리 낭만을 위해 당대의 청춘들인 기꺼이 이거추장스러운 기기를 지 고 날랐다.

현대자동차 포니
1975년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한국 최초의 양산형 고유 모델 자동차다. 당시만 해도 한산하던 서울 거리는 40여 년 만에 교통 지옥이 됐다.

영화 <스타워즈>
역사가 시작된 건 1977년이었다. SF적 상상력으로 빚은 이 신화적 무용담은 기대 이상의 흥행을 거두며 거대한 팬덤을 양산했다. 2015년 말에 공개된 <스타워즈 : 깨어난 포스>는 오리지널 삼부작 이후 30여 년이 지난 시점을 그린다. 전편의 설정에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이 속편은 1977년 작의 창의적인 리메이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고탁
독고탁은 고 이상무의 1971년 작인 <주근깨>를 통해 처음 등장했다.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건 대체로 밝고 명랑한 스포츠물이었다. 하지만 골수 팬들은 초기작인 <아홉 개의 빨간 모자>처럼 어두운 독고탁의 모습을 더 많이 이야기한다.

레드 제플린
1969년부터 1980년까지, 10년 남짓한 활동만으로도 레드 제플린은 록의 역사에 길이 남을 전설이 됐다. ‘Immigrant Song’ ‘Stairway To Heaven’ ‘D’yer Maker’ 등이 1970년대의 젊음을 흥분시켰던 곡이다.

1960년대
비틀스와 데이비드 보위, 그리고 오드리 헵번이 현역이었던, 역사보다는 신화처럼 들리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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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드리 헵번
오드리 헵번이 배우로서의 커리어에 집중한 시기는 생각보다 짧다. 스탠리 도넌의 1967년 작인 <언제나 둘이서> 이후부터 이 배우는 쇼비즈니스에서 한 걸음 물러선 삶을 살았다. 그래도 15년 정도의 전성기 동안 헵번은 양질의 작품을 여럿 남겼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그가 1960년대에 뗀 성공적인 첫걸음이었다.

삼양라면
삼양은 1963년에 국내 최초로 라면을 출시했다. 당시에는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을 버티게 할 영양식에 가까웠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뒤 이 제품은 수많은 폭식인들의 다이어트를 좌절시키는 국민 야식이 되고 만다.

미원
1960년대의 한국인이 가장 반기던 명절 선물은 바로 미원 세트였다. MSG,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모나미 볼펜
1963년에 처음 출시된 모나미 153볼펜은 아 직까지도 당시의 디자인을 지키고 있다. 오랜 세월을 견뎠 지만 아직도 전혀 낡게 느껴지지 않는 클래식 아이템이다.

비틀스
리버풀의 네 청년은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흔들어놓았다. 그리고 이후 팝계의 풍경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1960년대 이후를 산 사람들은 모두 비틀스를 들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데이비드 보위
지난 1월 10일 데이비드 보위가 암으로 사망했다. 유작이 된 새 앨범 <Black Star>를 발표한 지 며칠만의 일이다. 세상의 다양한 경계를 자유롭게 탐험했던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같았다. 1960 년에 커리어를 시작한 이래 수차례의 변화와 진화를 거듭하며 각 분야의 창작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지구는 지난 반세기 동안 특히 사랑했던 외계인을 잃었다.

김승옥의 <무진기행>
1964년에 발표된 이 단편소설은 꾸준하고 열렬한 사랑을 받는 고전이다. 부유한 아내 덕분에 출세하게 된 주인공이 어린 시절을 보낸 무진을 다시 찾아 허무한 일탈을 맛본다는 내용이다. 섬세한 미문은 이 단순한 이야기에 남다른 생명력을 부여했다. 1967년에 김수용 감독에 의해 <안개>라는 영화로 옮겨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