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누구니? Vo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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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디자이너 정지연, 배우 정은채, 배우 정유미. 의상은 모두 2016 S/S 렉토.

왼쪽부터|디자이너 정지연, 배우 정은채, 배우 정유미. 의상은 모두 2016 S/S 렉토.

느긋하게 여심 저격
약속 시간보다 정확히 40분 전 렉토의 디자이너 정지연은 스튜디오에 나타났다. 오늘 함께할 친구들이 입을 옷을 잔뜩 가지고 말이다. “친구들 오기 전에 옷을 정리해두려고 조금 일찍 왔어요”라며. 올해 초 그녀는 더블유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배우 정유미와 정은채를 렉토의 뮤즈라고 언급했다. “오늘 함께 촬영하는 유미 언니는 5년 전 친구 소개로 알게 되었고, 은채는 유미 언니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친해져 저를 소개시켜 주면서 알게 되었어요. 두 사람 모두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들이에요. 자신만의 향기가 있는 여자들이죠.” 촬영장에 들어온 정유미와 정은채는 셋이 함께하는 촬영은 처음이라 더욱 설렌다고 했다. 이어 정지연은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새로운 컬렉션을 그들에게 조용조용 친절히 설명한다. 단 세 번의 컬렉션으로 여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은 그녀가 대중의 눈을 어떻게 읽는지 궁금했다. “판매로 이어지는 게 엄청 중요한 부분이긴 한데 사실 판매를 염두에 두고 옷을 만들지는 않아요. 의외의 것이 생각보다 잘 팔리는 것도 있고. 아무래도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만들면 상대도 입고 싶어 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학교 수업에 충실했다는 전교 1등 같은 대답이지만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지연이 좋아하는 것은 대중도 좋아하고 갖고 싶어 한다. “대체할 수 없는 브랜드로 자리 잡고 싶어요. 여자들이 너무 가지고 싶어 하는, 동경하는 그런 브랜드 말이에요.” 그녀는 앞으로의 렉토에 대해, 이어 새 시즌 렉토에 대해 침착하게 설명했다. “이번 시즌 역시 예전 시즌의 연장선상에 있어요. 현대적이고, 간결한 실루엣 안에서 풍기는 매니시한 무드 말이에요.” 새 시즌이 반드시 새로울 필요는 없다. 정지연에게서는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에게선 서둘러 브랜드를 확장하려는 조급함도 보이지 않는 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저 담담하게 담아낸다. 정갈하게 빚어놓은 렉토라는 그릇 안에 말이다.

왼쪽부터|디자이너 예란지, SM 민희진 이사, 토마스 스페이스 갤러리 대표 박상미, 일러스트레이터 김아람, 루프 XXX 퍼포머 성규리, 의상은 모두 2016 S/S 센토르.

왼쪽부터|디자이너 예란지, SM 민희진 이사, 토마스 스페이스 갤러리 대표 박상미,
일러스트레이터 김아람, 루프 XXX 퍼포머 성규리, 의상은 모두 2016 S/S 센토르.

돌아온 낭만주의자
2008년 무섭게 떠오르는 신인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린 센토르의 디자이너 예란지가 2012년 모든 것을 정리하고 미국으로 향했을 때 모두 의아해했다. “우울증이 있었어요. 뭣 모르고 데뷔하다 보니, 어떤 디자이너가 돼야겠다는 마음도 없었고, 기대 이상의 큰 사랑을 받게 되어, 그 사랑에 보답하고자 쉼 없이 일했어요. 그때가 서른이었는데, 어느 순간 내 현주소를 정리해보고 싶더라고요.” 오늘 모인 친구들은 그녀에게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영감을 주는 사람이자, 그녀의 컴백을 기다려온 친구들이다. “모든 걸 접고 미국으로 가기 전 짐을 싸준 사람이 바로 일러 스트레이터 김아람이에요. 당시 언니도 많이 힘든 시기였는데, 저를 더 많이 보듬어줬던 것 같아 고맙죠. 퍼포먼스 아티스트 성규리 언니를 처음 만났을 때 우리는 서로 다른 종족의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언니와 저는 표면적으로 무척 다르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모습을 보면서 배워요.”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 그녀는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준 친구들이 혹시라도 불편하지 않을까 세심하게 살폈다. 불편함을 이해하지 못할 만큼 덜 친한 친구라서가 아니라 가장 소중한 친구기 때문이다. “센토르를 시작할 때 사무실로 전화가 왔었어요. 쇼룸에 가서 옷을 좀 사고 싶다고 했죠. 1년 넘게 저는 그저 내 옷을 좋아하는 단골손님이라고 생각했고 요. 그 사람이 바로 SM 민희진 이사예요. 차갑고 냉정한 것 같지만, 저에게만큼은 무장해제되는 아주 사랑스러운 사람이에요.” 수많은 프로젝 트를 진두지휘하는 민희진은 정작 피사체로서는 익숙지 않다고 했다. 누군가를 위해 싫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것, 새로운 것에 용기를 내는 것이 바로 우정의 모습이 아닐까. 작가이자, 번역가, 갤러리를 운영하는 박상미 역시 이런 식의 촬영은 낯설다. “박상미 언니는 제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좋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에요. 끝내주게 멋진 여자죠.” 그녀는 제임스 설터의 소설을 한국에 처음 소개하고, 갤러리 ‘토마스 스페이스’를 운영하는 박상미를 두고 자신을 꿈꾸게 만드는 사람이라 말했다. 컴백 후 두 시즌을 성공적으로 만들게 된 것도 이 멋진 친구들의 지원 덕분이었을 터. “2016 S/S 시즌 콘셉트는 ‘결혼하자’예요.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넘어갈 즈음, 감성이 이끄는 대로 펜과 붓을 휘두른 그 시절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지 않을래?’라는 내용이죠.” 예란지의 독특한 발상으로 시작된 이번 시즌은 좀 더 다양한 취향의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게 웨어러블해졌다. 완벽주의자인 그녀는 아직 성에 차지 않는다 말하지만 이 든든한 다섯 친구를 통해 더욱 풍성해질 예란지의 세계, 그리고 더 깊어질 센토르의 미래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왼쪽부터|타투 아티스트 노보, 디자이너 김희진, 타투 아티스트 석류화. 의상은 모두 2016 S/S 키미제이.

왼쪽부터|타투 아티스트 노보, 디자이너 김희진, 타투 아티스트 석류화. 의상은 모두 2016 S/S 키미제이.

처음 느낌 그대로
지난 시즌 제너레이션 넥스트 텐트에서 만난 키미제이의 디자이너 김희진은 분명 두 번째 시즌을 궁금하게 만든 디자이너였다. 오늘 모인 두 명의 타투 아티스트와의 관계는 묻지 않아도 될 만큼 존재 자체가 키미제이의 이미지를 대변하고 있었고 말이다. “두 사람 모두 일을 하면서 만났어요. 류화 씨는 룩북의 모델로 인연을 맺게 되었고, 노보는 저의 쇼의 모델로 서면서 친해졌어요. 둘 다 키미제이의 판타지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첫 느낌이 워낙 강해 이번 시즌 역시 당연히 딥 펑크일거라 생각했지만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펑크는 그 시즌만 가지고 간 이슈였어요. 그렇다고 전혀 다른 맥락으로 흐르진 않을 거예요. 이번 시즌 콘셉트는 플라스틱 마켓. 사고 팔면 안 되는 것을 사고 파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죠. 돈을 주고 몸을 파는 사람들 말이에요.” 옷에 담기엔 다소 어려운 소재이지만 새로운 발상이다. “몸을 파는 여자들의 생활, 그 안에 슬픈 이면을 날염으로 표현해봤어요.” 듣고 보니 그녀가 만든 물 빠진 데님은 눈물로 얼룩진 베갯잇 같아 보였다.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키미제이는 호불호가 명확히 갈린다. 누구나 좋아할 만한 옷은 사실 아니라는 얘기다. 앞으로 어떤 브랜드로 키우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녀는 신이 나서 말한다. “판타지를 꿈꿀 수 있고, 남과 다를 수 있는 용기가 가장 인간다울 수 있는 높은 단계의 행위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시즌마다 전할 메시지의 근원은 이것일 거예요.” 그녀는 쉽게 옷을 만들어 팔 수 있는 요즘같은 세상에서 보기 드문 디자이너임은 분명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꼭 한번 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무언지 묻자 그녀는 진지하게 고민해보고 싶다며 답을 미뤘다. 며칠 후 장문의 이메일이 날아왔다. “언젠가 주목받는 클럽과 협업을 통해 새로운 구조, 영상 등의 비주얼을 선보이고 싶어요. 흔히 클럽이라고 하면 방탕하거나 철부지들이 노는 곳이라는 느낌이 강한데, 저는 그곳이 아직 판타지를 믿는 젊은이들의 공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원동력과 에너지가 발현되는 공간 말이에요.”

에디터
김신
포토그래퍼
황혜정(돌아온 낭만주의자), 김희준(처음 느낌 그대로, 느긋하게 여심 저격)
헤어
이에녹(돌아온 낭만주의자), 강현진(처음 느낌 그대로), 박선호(느긋하게 여심 저격)
메이크업
이준성(돌아온 낭만주의자), 박이화(처음 느낌 그대로, 느긋하게 여심 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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