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년 소녀들은 어리지만 한 사람 몫을 충분히 해내는 프로페셔널이다. 21세기에 태어나 생의 긴 시간을 카메라 앞에서 보내온 이 여섯 명을, 아역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세대의 배우라 부르는 게 합당할 것이다.

볼륨감이 돋보이는 하얀색 양털 코트는 루이 비통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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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닉> <차이나타운> 김수안
옴니버스 영화 <신촌좀비만화>의 한 에피소드인 <피크닉>을 연출한 김태용 감독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 작품을 통해 제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은 최고의 여배우를 알게 됐다는 사실입니다.” 자폐증을 앓는 동생을 외딴곳에 버리고 온 뒤 죄책감에 시달리는 소녀를 연기한 김수안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이 찬사를 과장된 수사로만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겨우 열 살을 넘긴 어린 배우는 어른의 짐작과 상상에 갇히지 않는 생생한 실체로서의 ‘아이’를 보여준다. 연출자의 평에 대한 감상을 묻자 김수안이 수줍은 듯 말을 더듬었다. “음, 그러니까… 진심이 아닐 수도 있잖아요. 더 열심히 하라는 말씀 같아요.” 연기는 어려운 일보다 재미있는 놀이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소녀는 예전부터 꿈이 많았다. 드라마 <마의>를 본 뒤 한의사를 동경했을 때는 곰 인형을 눕혀놓고 이쑤시개로 온갖 혈을 찌르며 극 중 대사를 중얼거리다 어머니에게 근심을 안겨주기도 했다. 최근 들어서는 장래 희망을 감독 겸 배우로 정리한 상태다.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기를 하면 뭐든 다 해볼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주연만 고집할 생각은 없다고 그가 서둘러 덧붙인다. 어린이 응원단에서 활동 중인 만큼 치어리딩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고, 김태용 감독을 배우로 캐스팅하는 작품도 구상하려고 한다. 탕웨이와의 동반 출연을 제안하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좋은 생각인데요?” 하면서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현재는 연출보다 연기가 우선인 시기다. 한효주의 아역을 맡은 <해어화>와 공유, 정유미 등과 출연한 <부산행>이 2016년에 공개될 차기작이다. “<부산행>에서 우는 신을 찍는데 연상호 감독님이 딱 천만만 울려보자고 하시는 거예요. 갑자기 부담이 돼서….” 그래도 결과물이 나쁘지는 않았다는 게 김수안의 자평이다. “요즘 좀 이상해요. 행복한 일밖에 없는데 촬영장에서는 눈물이 잘 나요”.

페전트풍의 끈 장식 톱은 SJSJ, 검정 오버올 팬츠는 요지 야마모토, 검은색 페이턴트 워커는 생로랑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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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육룡이 나르샤> 남다름
2015년에 중학생이 된 남다름은 <육룡이 나르샤>를 촬영하던 중 변성기를 겪었다. 10대의 방원은 위엄 있게 소리를 치는 장면이 잦은 캐릭터였다. 음성이 의도치 않게 갈라지고 신마다 톤 차이가 나서 애를 먹었다고 그가 조용히 털어놓았다. 물론 함경도 사투리 역시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북한에서 오신 분이 연습을 도와주시긴 했어요. 그래도 어색하게 들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돼서 방송 전에 긴장을 많이 했죠.” 그런데 배우로 일하며 사춘기의 문턱에 다다른 소년에게는 더 큰 고민이 따로 있는 듯했다. “시키는 대로만 연기하는 대신 제 감정을 직접 찾아야 할 것 같아서요.” 남다름은 최근 들어 부쩍 복잡한 인물들을 소화하고 있다. 특히 <군도 : 민란의 시대>에서는 어린 조윤으로 등장해 어둡고 섬뜩한 표정을 보여줬다. 강동원은 남다름의 외모가 10대 무렵의 자신과 많이 닮았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경우, 눈매가 매서운 배우가 아역으로 짝지어지는 경우가 많으셨대요. 하지만 사실 본인은 어린 시절에 상당히 순한 인상이셨다는 거예요. 영광이었죠. 다름이보다 제가 더 좋아했어요.”인터뷰에 동석한 어머니가 슬며시 한마디를 보탰다. 두 문장 이상 이어지는 답변이 드물 정도로 남다름은 수줍음이 많았다. 그래서 촬영장의 카메라 앞에만 서면 긴장이 풀리고 편안해지는 게 스스로도 신기하다고 했다. 그래도 2016년의 바람을 물었을 때는 빠르고 확실한 대답이 돌아왔다. “키가 더 컸으면 좋겠어요. 일단 15센티미터 정도?”

어깨를 과장되게 부풀린 중세 풍의 드레스는 루이 비통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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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폰> <피노키오> 노정의
열다섯 살 소녀에게는 웃을 일이 참 많다. 특히 좋아하는 것을 떠올리면 그렇다.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거나, 몸으로 뛰어노는 걸 좋아한다거나, 응원하는 야구 팀 두산베어스에서는 민병헌 선수가 참 잘생긴 것 같다는 얘기를 할 때도, 좋아하는 엑소 멤버를 묻자 세훈, 카이, 찬열의 이름을 답했을 때도 노정의의 모든 말은 마침표 대신에 경쾌한 웃음소리로 끝났다. “〈피노키오〉 박신혜 언니랑 닮았다는 얘기 듣고 처음엔 아니라고 했는데, 그래도 기분이 좋았어요. 성인 배우의 아역을 할 때는 그분들에게 배우는 게 있어서 좋아요.” 엠마 왓슨처럼 연기도 잘하고 멋진 여자가 되고 싶다는 이 욕심 많은 여중생은 촬영을 한번 하고 오면 학교 진도가 다섯 페이지씩 나가버리니까 처음에는 어떻게 따라가야 할지 막막했는데, 친구들보다 두 배 열심히 공부하는 게 맞는 거 같아서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모든 게 완벽했으면 좋겠거든요. 물론 그럴 수는 없겠지만요.” 2015년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역할을 가지고 연기한 첫 영화〈더 폰〉이 개봉하고 무대인사를 돌았던 게 가장 설레는 경험이었으며, 조금 더 커서는 사랑 이야기도 해보고 싶다는 노정의에게 희망하는 상대역을 물었다. 이민호의 이름보다 수줍은 웃음소리가 더 크게 오래 들려왔다.

검정색 터틀넥과 다양한 달의 형태를 담은 점퍼, 도트 무늬 팬츠는 모두 앤디앤뎁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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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아치아라의 비밀> 최원홍
“바우 역할은 자폐아 설정이라서 걱정이 많았는데 첫 리딩 전까지 영화 보면서 연습했어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나온 <배스킷볼 다이어리>요. 감독님이 연기에 대해 지적하실 줄 알았는데 다행히 첫 촬영 들어가고 나서 칭찬해주시더라구요. 역할 톤을 스스로 잘 잡은 것 같아요.”최원홍은 아침부터 주말까지 드라마를 섭렵해온 10년 차의 노련한 배우다. 놀이공원 자유이용권이 걸린 아역 모델 오디션에 삼촌이 사진을 내면서 커리어를 시작해서 어느새1 70센티미터가 넘게 자란 이 소년에게 연기란 낯가림이 심한 성격을 조금씩 고치게 만드는 일이었다. 사극 <계백>을 찍으며 산 속에서 살수차로 뿌리는 비를 내내 맞거나 <달래 된, 장국>에서 겨울에 여름 신을 찍었던 일은 정말 힘들었지만 촬영은 대체로 카메라 앞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볼 수 있어 재미있는 놀이다. 운동, 특히 축구를 좋아해서 앞으로는 하고 싶은 연기의 우선 순위에는 액션이 올라 있기도 하다. “수업 따라가는 건 좀 딸리는 편인데 친구들 관계는 조금도 어려움이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연기를 해서, 친구들에게 나를 그냥 같은 학생으로 봐달라고 했어요. 다행히 애들이 막 신기해하진 않는 것 같아요.” 최원홍이 축구 말고 패션에도 관심이 많다는 건, 스튜디오에 신고 온 알렉산더 매퀸 스니커즈를 보고 알아챘다. “옷 못 입는다는 소리 듣는 게 싫거든요”.

팔 부분에 풍성한 볼륨이 잡힌 턱시도 재킷과 대리석 메달 장식의 초커, 가슴에 달린 브로치는 모두 지방시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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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육룡이 나르샤> 이레
이레는 그 또래가 좀처럼 쓰지 않는 어휘를 익숙하게 구사했다. 현장에서는 생각한 바를 잘 ‘표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며, 기회가 닿는다면 ‘조신’한 캐릭터도 경험해보고 싶다고 했다. 요리와 색종이 접기를 좋아하고 수학 문제를 풀 때마다 통쾌함을 느낀다는 소녀는 작은 차돌처럼 야무졌다. 하지만 ‘어른스럽다’라는 칭찬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더 아이다워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거든요. 엄마, 아빠와 이 문제에 대해 의논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그것도 네 모습이고 어른스럽다는 게 나쁜 건 아니야. 그러니까 그냥 너를 보여주면 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큰 감동을 받았어요. 이제는 어른스럽다고들 하셔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겨우 열 살 남짓한 나이가 됐지만 이레의 필모그래피는 이미 만만치 않다. 영화 <소원>과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에서는 극의 감정을 끌고 가는 주연이었다.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때는 어린 분이 역할을 맡아 동료 아역들과 함께 초반 시청률을 견인했다. “시나리오를 받아서 읽기 시작하면 막 상상이 되거든요. 이 장면은 어떻게 하면 재미있을지, 혹은 슬플지 혼자 생각해봐요. 그럴 때마다 내가 연기를 많이 좋아하는구나, 해요.” 하지만 커서도 계속 배우로 남고 싶은지 묻자 신중하게 답을 고른다. “하고 싶기는 해요. 그런데 앞날은 모르는 거잖아요. 인생에 맡기고 지금 하는 작품들이나 열심히 하려고요”.

굽이치는 밧줄 패턴의 푸른색 터틀넥은 루이 비통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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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이효제
송강호와 유아인이 육중한 도끼와 예리한 칼날처럼 시퍼렇게 맞부딪치던 영화 <사도>에서, 부자관계의 숨통을 죄는 긴장 사이로 보드랍고 여린 기운을 불어넣은 것은 어린 손자, 정조 역의 이효제였다. 폭풍이 몰아치는 궁에서 이 조숙한 왕손은 때론 어른들을 고요한 눈빛으로 응시하고, 때로는 작은 어깨를 동그랗게 무너뜨리며 관객을 울렸다. “영화관에서 본 느낌요? 슬펐어요. 아빠랑 아들 간의 사이가, 삼대에 걸친 가족사가 비극적이었어요.” 함께 연기한 배우들을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소년은, 스크린 속에서와 다를 바 없이 너무나 의젓해서 차라리 귀여웠다. 그러니까 이런 얘기를 하는 순간 말이다. “슬픈 연기를 할 때는 뒤주에 유아인 선배가 아니라 진짜 우리 아빠가 갇혀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제 아내, 아 그러니까 빈 말고는 다른 아역 배우가 없었거든요.” <사도>에서 소지섭의 아역이었던 그는 지금 촬영 중인 영화 <가려진 시간>에서는 강동원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다. <극비수사>나 <우리는 형제입니다> 같은 영화에서도 쭉 아픔이 있는 아이를 연기하다가 이번에는 밝은 성격을 보여줄 수 있어서 즐겁다고. 2015년의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부산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일이며, 2016년의 꿈은 성인 배우의 아역 대신에 뭔가 주인공을 해보고 싶은 것. 어린이 프로는 재미없어서 잘 안 본다는 이 소년은 곧 열세 살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