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방송된 <응답하라 1988> 10회의 어마어마한 명대사 “하지마. ……(침묵)…… 하지마, 소개팅.”을 들은 뒤 일상 생활이 불가해진 에디터 R. 그 드라마 덕에 친구들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리고, 짝사랑에 빠져 어쩔 줄 모르던 마음을 일기장에 적던 시절의 단편적인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십대 시절 ‘너무 멋있다!’고 느끼며 처음으로 동경했던 슈퍼 모델이 누구였는지 되짚어보게 되었다. 그 주인공은, 린다 에반젤리스타다.

1965년 캐나다에서 태어난 린다 에반젤리스타는 1980~90년대를 주름 잡은 모델을 이야기 할 때 언제나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진리의 슈퍼 모델’이다. 그녀는 1981년 고등학교 재학 시절 ‘미스 틴 나이아가라’를 뽑는 미인 대회에 출전했고, 여기서 엘리트 모델 매니지먼트 매니저의 눈에 띄어 모델 일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패션 잡지 커버를 장식한 건 1984년, <로피시엘 옴므>. 그 이후로 수 많은 패션지(물론 US <W>도!) 커버에 700번 이상 등장한다. 1985년부터 그녀를 뮤즈라 부른 칼 라거펠드를 비롯해 지아니 베르사체, 지안프랑코 페레, 이브 생 로랑, 아제딘 알라이아, 오스카 드 라 렌타 등 그녀를 사랑한 디자이너들은 셀 수 없을 정도.

그녀의 인생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은 1988년 발생했다. 사진가 피터 린드버그가 그녀에게 헤어 스타일을 짧게 바꿔보길 권한 것. 프랑스 헤어 아티스트 줄리엔 다이스(Julien d’Ys)가 린다의 긴 머리칼을 싹둑 자르는 모습을 당시 피터 린드버그가 직접 화보로 담았는데, 사진도 아름답거니와 이후 짧은 보브 단발과 숏 컷 헤어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이후 1989년은 ‘에반젤리스타 커트의 해’였다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

이후 1990년대 후반까지 린다 에반젤리스타는 어마어마한 전성기를 구가한다. 당시 인터뷰에서  “1만불짜리 촬영이 아니면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는다”던 그녀의 말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수많은 런웨이와 화보, 광고를 장식하던 그녀에게 패션 저널리스트 수지 멘키스가 붙여준 별명은 ‘월드 스타 모델’. 하지만 린다는 1998년 은퇴를 선언하고, 프랑스 리비에라 지방으로 거처를 옮겨 휴식기를 갖게 된다. 그러나 2001년 다시금 화려하게 컴백하며, 지금까지도 패션 하우스들의 뮤즈이자 캠페인 모델로, 또 에이즈와 유방암 근절에 힘쓰는 사회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내가 이 언니에게 반한 건 1996년 여름, 중학교 교복을 입고 새로 나온 <쎄씨>와 <에꼴>을 보러 서점에 갔던 어느 오후였다. 그 날, <보그 코리아> 창간호 커버를 우연히 마주하곤 어린 마음에도 그 비주얼이 너무나 강렬해 ‘뭐지? 이 언니 뭔가 너무 멋있어!’라 읊조리며 한참을 구경했다. 그 커버의 주인공이 바로 린다 에반젤리스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