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에는 비정상적으로 길거나 폭이 넓은 드라마틱한 소매 속으로 손을 숨겨야 한다. 클래식한 우아함과 90년대 특유의 반항기가 어우러진 이 트렌드야말로 이번 시즌 패션을 대하는 가장 쿨한 태도이니까.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네일 케어를 잠시 멈추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열 손가락에 끼운 수많은 반지를 서랍 속에 넣어두어야 하는 걸까? 반지르르한 광택이 흐르는 가죽 장갑을 쇼핑하는 것도 그만두는 편이 나을까? 아쉽고 서운하더라도 그렇다. 이번 시즌 길거나 넓어진 소맷부리가 당신의 손을 꿀꺽 집어삼켜버릴테니. 얼마 전, 따끈한 2015 F/W 신상들이 업데이트되고 있는 온라인 쇼핑몰에 접속해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다가 문득 발견한 사실은 비정상적으로 길거나, 나팔꽃처럼 활짝 퍼진 독특한 소매를 장착한 옷이 많다는 것이었다. 언뜻 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트렌드가 낯설지 않은 까닭은 우리에겐 집단적으로 손공포증(Chirophobia)에라도 걸린 듯 소매를 길게 끄집어내려 손을 꽁꽁 숨기던 10대 시절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지와 힙합 같은 유스(Youth) 컬처가 거리를 휩쓴 1990년대, 도전적이고 불안했던 그 시절에 우리들은 엄마의 끊임없는 잔소리를 피해가며 길바닥을 쓸 정도로 길고 풍성한 바짓단에 소매를 길게 내려뜨린 채 거리를 서성였고, 1993 S/S 시즌 18살의 케이트 모스 역시 반항기를 발산하며 긴 소매를 펄럭인 채 페리 엘리스 런웨이를 거닐었다.

소매가 긴 오프 숄더 니트 톱은 스포막스, 랩 스커트는 마쥬, 플랫폼 부티는 DKNY 제품.

소매가 긴 오프 숄더 니트 톱은 스포막스, 랩 스커트는 마쥬, 플랫폼 부티는 DKNY 제품.

이번 시즌 런웨이와 거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매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셀린 쇼에는 종 모양처럼 풍성하게 부풀어오른 소매가 니트 톱에 부착됐고, 페미닌한 꽃무늬 드레스 차림의 스텔라 매카트니 쇼의 모델은 손을 숨긴 채 긴 소매를 나풀거리며 런웨이로 올라섰다. 그런가 하면 더로우의 낙낙한 니트 스웨터 룩에서는 손이 완전히 실종되었고, 아크네 스튜디오와 프로엔자 스쿨러의 슬릿을 넣어 나팔처럼 퍼지게 한 커프스는 손목을 훌쩍 덮은 채 펄럭였다. 마르니와 이사 아르펜, 로지 애슐린처럼 극도로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브랜드도 ‘길수록 좋다’는 규칙을 소매에 적용했고, 후드 바이 에어와 베트멍, 자크뮈스 같은 전위적이고 아방가르드한 무드의 신예 디자이너들 역시 손이 어디에서 끝나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비현실적인 길이의 소매를 등장시켰다. 최근 패션 피플들의 입소문과 함께 승승장구하고 있는 브랜드 엘러리와 어웨이크 역시 A라인으로 퍼지는 길고 드라마틱한 소맷부리와 헴라인을 메인 테마로 삼았다. 최장길이 슬리브 어워드가 있다면, 우승자는 단연 코페르니 팜.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늘어진 소매는 종아리를 스치는 길이감을 자랑한다. 꼼데가르송이나 메종 마르지엘라 같은 개념주의 하우스들이 이런 트렌드를 선보였다면 그러려니 하고 흘려버렸을 테지만, 유행에 민감한 파워풀한 하우스의 디자이너들마저 소맷부리를 늘어뜨리는 데 합류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Mytheresa.com의 저스틴 오셰아(Justin O’Shea)는 “그런지 룩은 오늘날의 럭셔리 세상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물론 길이가 오르락내리락하는 드레싱 업이나 다운의 아이디어가 조만간 어떤 디테일에 집중될지는 알 수 없어요. 어쨌거나 이번 트렌드의 핵심은 세상의 흐름에, 눈에 개의치 않는 우아함이에요.” 실제로 옷을 입은 사람들은 소맷부리가 그녀의 손목선을 정확하게 스치는지 아닌지를 신경 쓰지 않는다. 게다가 남자친구의 옷을 빌려입은 듯 편안하고 시크한 스타일은 놀랍게도 인상적인 실루엣을 만들어준다.

과장된 길이와 폭을 지닌 소매를 접어 올리거나 손목에서 돌돌 말아 살짝 치켜 올리지 않는 한 당연히 팔의 움직임은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운전 중이거나 메이크업을 할 때, 펜을 쥐거나 이메일을 보낼 때, 심지어 친구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 때도, 긴 소매의 불편함은 어쩔 수가 없다(셀린과 프로엔자 스쿨러, 아크네 스튜디오 등 일부의 경우엔 움직임을 좀 더 자유롭게 만들기 위해 심플한 슬릿을 커팅해놓기도 했지만).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여성의 팔이 바람에 나부끼는 연약한 버들강아지처럼 길고 가녀리게 보인다는 점과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여성스러움이 한껏 부각된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긴 소매 안으로 손을 숨기는 스타일링은 몇 년 전, 어깨에 코트를 툭 걸쳐 소맷자락을 자유롭게 흔들리게 한 것처럼 쿨한 애티튜드를 완성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