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튀르의 실종, 웨어러블한 옷의 홍수, 재미를 잃은 런웨이. 최근 몇 년간 패션 기사의 헤드라인으로 자주 등장한 표현이다. 판매로 이어지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비정하고 냉혹한 흐름에 휩쓸려간 디자이너들. 그 와중에도 옷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 길 위에 서 있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이어 자신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아방가르드라는 끈을 쥔 새로운 디자이너도 출현했다. 변치 않는 것이 있다면, 그들은 시류에 흔들리지 않고 아름답다고 믿는 것에 확신을 가지고 나아간다는 것.

넌 영감이었어! |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준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들

루이 비통과 크리스토퍼 네메스 
디자이너가 디자이너의 옷에 영감을 받아 컬렉션을? 아이러니하지만 실제로 루이 비통의 남성 컬렉션 디렉터 킴 존스는 이번 2015 가을/겨울 시즌을 런던의 아방가르드 디자이너 크리스토퍼 네메스의 디자인에서 영감 받아 컬렉션을 완성했다. “크리스토퍼 네메스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런던에서 중요한 디자이너지만, 사람들은 그의 진가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네메스의 사망 50주년을 기리기 위해 헌정 컬렉션을 준비했습니다.” 쇼가 끝나자 옛날 아방가르드 디자이너가 럭셔리 브랜드의 디렉터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슈가 되었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옷을 만들었던 크리스토퍼 네메스는 디자이너라기보단 아티스트에 가깝다. 그의 초창기 작업을 보면 의류 수거함에서 가져온 듯 낡은 옷감을 캔버스 삼아 추상적인 선과 면을 그려 넣은 것이 대부분이었고, 옷 자체는 하나의 아트 작품이었다. 킴존스는 네메스의 작업 중에서도 섬세하며 추상적인 밧줄 프린트를 주된 소스로 활용했고, 고급스러운 앙고라 니트, 고급스러운 캐시미어 더플코트, 모노그램 프린트 가방, 럭셔리한 시계에 녹아들게 만들었다. 루이 비통의 현대적 실루엣 안에서 네메스의 밧줄은 새로운 숨을 쉰다. 한 편 루이 비통의 파란색 밧줄 프린트 슬립온은 파리의 콜레트에서만 한정 판매되었는데, 이는 대중의 뇌리에 네메스라는 이름을 선명하게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아방가르드 디자인이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지 못하는 이유는 전형적인 방식을 파괴한, 낯설고 과감한 형태감 때문이다. 자신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디자이너를 크리스토퍼 네메스라 칭한 킴 존스는 네메스의 아티스틱한 성향을 럭셔리라는 보호막 안으로 끌어들였다. 특정 소수에게만 사랑받던 아방가르드 디자이너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면서도 보호하는 영리한 시도였다.

레이 보워리와 알렉산더 매퀸, 그리고 갈리아노
1990년대 영국에서 활동한 행위 예술가이자 전위적이고 진보적인 패션 디자이너, 레이 보워리. 그는 괴상하고 그로테스크한 작품과 자신을 괴상하게 변형하는 자극적이고 기이한 퍼포먼스로 사회가 강요한 질서와 억압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한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였다. 그는 특히 인간의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을 읽는데 탁월했다. 2003년 존 갈리아노, 2009년 알렉산더 매퀸은 보워리의 전위적 디자인과 메이크업, 기괴한 퍼포먼스에서 영감받은 컬렉션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이렇듯 아방가르드 디자이너의 작품은 누군가의 눈에, 사고에, 신선한 자극과 충격을 주는 오브제이자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기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