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리한나야?” 리한나가 패션 브랜드의 캠페인 모델이 되었다는 뉴스는 이제 지루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디올에서 70년 만에 처음으로 흑인 캠페인 모델을 기용했다는 건 좀 다른 의미다.

왼쪽부터 | 타미 윌리엄스가 입은 오프숄더 드레스는 발렌시아가, 체크무늬 미니 백은 살바토레 페레가모, 레이스업 슈즈는 처치스 제품. 아나이스 말리가 입은 클래식한 트위드 재킷과 스커트, 흰 셔츠, 벨트, 레이스업 슈즈는 모두 마이클 코어스, 잠금 장식이 돋보이는 백은 조르지오 아르마니 제품. 아밀라 이스테방이 입은 소매 끝부분의 독특한 커팅이 특징인 재킷, 큐롯 팬츠, 몸을 감싸는 양털 어깨 장식은 모두 프로엔자 스쿨러, 앙증맞은 미니 백은 살바토레 페레가모, 레이스업 슈즈는 마크 제이콥스 제품.

왼쪽부터 | 타미 윌리엄스가 입은 오프숄더 드레스는 발렌시아가, 체크무늬 미니 백은 살바토레 페레가모,
레이스업 슈즈는 처치스 제품. 아나이스 말리가 입은 클래식한 트위드 재킷과 스커트, 흰 셔츠, 벨트, 레이스업  슈즈는 모두 마이클 코어스, 잠금 장식이 돋보이는 백은 조르지오 아르마니 제품. 아밀라 이스테방이 입은 소매 끝부분의 독특한 커팅이 특징인 재킷, 큐롯 팬츠, 몸을 감싸는 양털 어깨 장식은 모두 프로엔자 스쿨러, 앙증맞은 미니 백은 살바토레 페레가모, 레이스업 슈즈는 마크 제이콥스 제품.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나오미 캠벨은 백인 우월주의가 팽배하던 시대의 흐름을 한껏 조롱하며 패션계를 독주했다. 백인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탄성, 흑인에게서 볼 수 없는 풍성하고 비단 같은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묘한 그녀의 등장은 80년대 중반 패션계를 단숨에 매혹시켰다. 캠벨 이전에도 흑인 모델은 있었으나 그 활동은 아주 미미했다. 이렇게 한 사람의 등장이 신드롬을 일으키며 오랜 시간 최고의 자리에 머무른 건 전무후무한 일. 캠벨과 동시대 흑인 모델로 알렉 웩 같은 빼어난 모델이 등장했지만, 몇 번의 이슈로 끝났을 뿐 캠벨만큼 전방위적으로 오랫동안 지속되지는 못했다. 리야 케베데, 샤넬 이만, 세실리 로페즈, 조단 던은 캠벨의 시대가 끝나고 등장한 흑인 모델 군단이다. 2000년대 초중반 그들은 캠벨과는 조금 다른 노선을 추구했다. 에스티 로더 최초의 흑인 모델이었던 리야 케베데, 중성적인 세실리 로페즈 같은 미녀 군단을 보면 쉽게 알아챌 수 있듯 당시 패션계는 2세대 흑인 모델들이 백인과 온전히 다르지는 않으면서, 아름답기를 바랐다. 그래서 이때 활동한 모델은 대부분 혼혈 흑인 모델이었고, 서양인 같은 친근한 이목구비를 지닌 모델이 인기가 있었다. 그들의 왕성한 활동 덕분에 흑인 모델의 입지는 더욱 굳건해진다. 더불어 시간이 지날수록 흑인을 쇼에 세운다는 건 인종 차별에 반대하며 흑인 모델을 기용하던 베네통 광고 속 뉘앙스와는 전혀 다른 것이 되었다.

그러던 차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 헤매는 패션 월드에 새 바람이 불었다. 바로 쭉 찢어진 눈, 도자기 같은 피부의 아시안 뷰티 트렌드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것. 수많은 캐스팅 디렉터들은 일본, 중국, 한국 모델이 지닌 동양의 신비로 눈을 돌렸다. 이러한 현상 탓에 흑인 모델들은 최근 4~5년 사이 패션업계에 얼마 되지 않는 흑인 모델의 지분을 아시안 모델과 나눠야 했고, 한동안 흑인 모델의 입지는 다소 위축되는 듯 보였다. 한편 이러한 유행 속에서도 흑인의 본질적 아름다움을 꾸준히 보여주는 포토그래퍼와 디자이너의 존재는 주목할 만하다. 케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네덜란드 출신 사진작가 비비안 사선의 개인 작업, 최근 주목받고 있는 영국의 신예 디자이너 그레이스 웨일스 보너 역시 자메이카계 어머니에게서 영향 받은 흑인 문화를 패션과 접목시켜 작업한다. 그녀의 룩북에 등장하는 흑인 모델들은 모두 그녀의 친구들로, 지난 1월 더블유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친구들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이들은 하나같이 흑인 고유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2014년 영화 <노예 12년>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케냐 출신 여배우 루피타 니옹고의 등장은 패션계를 또 한번 검은 아름다움으로 뒤덮은 계기가 됐다. 아름다운 노예 팻시를 연기한 그녀는 흑인 고유의 클래식한 아름다움을 다시금 상기시켰고,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된 이후 전 세계 패션 하우스에서는 그녀에게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히려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했다. 루피타 니옹고는 수상 후, 거의 모든 패션 매거진의 커버와 화보 속에 등장했고, 그와 함께 내추럴한 블랙 인종의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붐을 이뤘다. 이후 블랙 뷰티, 그중에서도 아프리칸 특유의 야생미를 간직한 흑인 모델의 위상이 치솟았고, 패션계에서는 케냐, 앙골라, 나이지리아의 초원에서 뛰어놀다 온 것 같은 모델들을 찾아내 런웨이에 올리는 이른바 익스클루시브 전쟁이 시작된다.

2014년 뉴욕, 알렉산더 왕 쇼에 익스클루시브로 등장한 자메이카 출신 타미 윌리엄스는 앙상하게 마른 16살 소녀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같이 큰 눈망울과 두툼한 입술의 조합이 인상적인 모델이다. 알렉산더 왕 런웨이 이후 주목받은 그녀는 2014 F/W 발맹의 흑인 슈퍼 루키로 구성된 캠페인 모델로 발탁된다. 당시 지방시도 2014 F/W와 2015 S/S 시즌 모두 흑인 모델을 기용했는데, 티시의 눈에 띈 모델은 바로 오리지널 앙골리언 마리아 보르주와 레이 몬타나. 마리아 보르주의 경우 납작한 코, 두툼한 입술, 봉긋하게 솟아오른 이마가 매력적인 모델인데 흑인 소녀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깡마른 몸이 아닌 완벽하게 균형 잡힌 몸매를 지녀, 빅토리안 시크릿 속옷의 모델로 나서는 등 티시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에 반해 레이 몬타나의 생김새는 좀 독특하다. 머리를 세게 당겨 묶어 올라간 듯 쪽 찢어진 눈, 유난히 날카로운 콧날과 뾰족한 턱은 흑인에게선 보기 드문 이목구비다. 마리아 보르주와는 사뭇 다른 매력을 보면 지금, 블랙 뷰티의 트렌드는 바로 다양성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2015 F/W 프라다 쇼에서 익스클루시브로 런웨이에 오른 리니지 몬테로는 지금 검은 물결이 흐르는 방향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모델이다. 흑인 특유의 곱슬머리를 살린 동그란 헤어스타일, 기존의 흑인 모델보다 한 톤 밝은 피부, 높이 솟은 광대, 갈라진 턱, 개구쟁이 주근깨까지. 벌어진 이빨, 얼굴의 두서 없이 난 점 등 이상하지만 자꾸 끌리는 스트레인저 뷰티에 집착하는 패션계의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킨 종합선물세트가 등장한 것이다.

CR 북의 캐스팅 디렉터 에블렌 주스는 스타일닷컴의 인터뷰에서 이번 시즌 뉴 아이콘으로 리니지 몬테로를 꼽으며 말했다. “우리는 바로 어제 일어난 일도 오래된 뉴스가 돼버리는 시대를 살고 있어요. 패션계는 늘 새로운 것을 원하고,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장면을 기대하죠. 그리고 우리는 모두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첫 번째 사람이길 바랍니다.” 그녀의 말에는 다양한 감정이 섞여 있다. 늘 새로워야 하며, 본 적 없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은 패션계에서 일하는 이들의 숙명이다. 시대가 변할수록 흥미로운 현상이 떠오르고 시들해지는 주기는 점점 짧아지는 것도 사실. 성별의 경계, 인종과 국가를 뛰어넘으며 ‘위아 더 월드’를 옷과 캠페인을 통해 표출하는 것이 패션이라지만, 호기심도 큰 만큼 금방 지루해하며, 한 시즌만 지나도 쉽게 낡아버리는 건 안타까운 현실이다. 트렌드의 다이내믹하고 화려함의 이면은 씁쓸하다. 빛과 그림자처럼 늘 함께 가야 한다는 사실을 과연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지금 전 세계는 거대한 패션 월드가 만들어낸 블랙 뷰티라는 해일이 일고 있다. 아직까지 파도는 거세지만 시간이 흘러 대륙을 돌고 건너면 곧 파도는 잦아들 것이다. 어느 때 꺼질지 모를 이 연약한 불꽃의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일까? 바람이 있다면, 시간이 흐른 뒤 다음 세대 흑인 소녀들의 인터뷰 속 ‘당신의 롤모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더는 나오미 캠벨은 아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