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들, 특히 주얼리 장인의 수작업 과정을 직접 마주하면 가슴 떨리는 경외심이 든다. 다미아니의 산테 리체토를 만난 날도 그랬다.

아틀리에에서 포즈를 취한 산테 리체토.

아틀리에에서 포즈를 취한 산테 리체토.

“언젠간 공방 학교에 다녀보고 싶어.” 6년 전이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한 패션 하우스의 공방 다큐멘터리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아 지인들에게 건넨 말이다. 돌아온 반응은 제각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미 너무 늦었어(대부분 십대에 시작하기 때문에)”, “언어는 할 줄이나 알고?(대부분 이탈리아와 프랑스에 있으므로)” 등등. 당시의 마음은 나름 진지했다. 오랜 시간 공을 쏟아 유일무이한 최고의 작품을 손으로 만든다는 것 자체가 자유분방한 아티스트 이상으로 멋져 보였고, 평생 한길을 파는 인생이 엄청나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으니까. 그 이후 주얼리, 워치 하우스 등의 공방 다큐멘터리를 접할수록, 브랜드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한국을 방문해 진중하게 직접 시연하는 장인들의 모습을 옆에서 볼수록 존경심은 커져갔다. 그러다 보니 지난 2010년 드라마 <시크릿가든>이 히트를 기록하며 현빈의 시퀸 장식 트레이닝복이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놓은’이라는 유행어를 탄생시켰을 때, 고백하자면 내가 동경하는 장인들이 조금 가볍게 여겨지는 것 같아 조금 불쾌한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랬던 내게 얼마 전, 설레는 일이 생겼다. 이탈리아 발렌차에 위치한 주얼리 앤 워치 하우스 다미아니의 공방에 가볼 기회가 생긴 것이다.

밀라노 패션위크가 끝난 다음 날 다미아니의 한국 홍보 담당자와 함께 공방으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다. 다미아니는 1924년 엔리코 그라시 다미아니에 의해 설립, 9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주얼리 하우스. 다미아니의 주얼리가 사랑받는 건 기교를 부린 쇼적인 디자인을 지향하기보다 아무리 화려해도 절제된 담백함과 우아함, 고급스러움의 삼박자가 살아 있는 주얼리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다미아니 특유의 이러한 디자인은 이제까지 ‘주얼리계의 오스카 상’이라고 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 인터내셔널 어워드를 18번 수상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그중에서도 2000년의 수상작인 ‘에덴’ 뱅글은 가히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일으켰다. 똬리를 튼 뱀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볼드한 뱅글에는 94캐럿 브릴리언트컷 다이아몬드 900개가 세팅되어 있다. 8백여 시간의 수작업 끝에 에덴 뱅글이 탄생한 곳이 바로 이 발렌차 아틀리에라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숙연해졌다. 아틀리에에 들어서니 산테 리체토가 작업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산테 리체토는 다미아니 아틀리에의 수석 장인으로, 50년 넘게 다미아니 하우스에서 일해온 핵심 인물. 다미아니의 모든 주얼리는 여섯 가지 공정을 거쳐 탄생하는데, 첫 과정은 에덴의 디자인이 조르조 다미아니의 스케치에서 시작되었듯 다미아니 패밀리와 다미아니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이뤄지는 스케치 과정이다. 이 스케치가 캐드 디자이너에 의해 3D로 구현되어 발렌차 아틀리에에 데이터로 전송되고, 원형이 제작되는 것. 그런 다음 두 번째 단계인 왁스 주입과 세 번째 단계인 정밀 주조 과정을 통해 러프한 주얼리가 탄생된다. ‘작은 책상 위의 공정’이라 불리는 네 번째 단계와 보석 세팅이 이뤄지는 다섯 번째 단계는 그야말로 장인의 기술이 발휘되는 하이라이트 부분. 이 과정을 통해 장인의 손으로 만든 하나의 작품으로서의 주얼리가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마지막으로 로듐 도금이 이루어지면, 모든 공정이 끝나는 것이다.

모든 과정을 숨죽이고 지켜본 뒤 아틀리에를 나서니, 하늘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섬세하고 정밀한 공정에 대해 감탄의 말을 전하니, 여섯 가지의 공정 이후엔 엄격한 품질 검사가 필수로 무결점 제품인지 확인된 뒤에야 다미아니의 주얼리로서 자신을 선택해줄 주인을 기다릴 자격을 얻게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아름다움의 집약체인 주얼리, 그중에도 최고의 피스를 만드는 과정이 그 어찌 간단할 수 있을까. 돌아오는 길엔, 그런 생각을 했다. 60대로 접어들 즈음 가을엔 검정 니트 스웨터와 다미아니 주얼리만 걸쳐도 멋진 우아한 어른이 되고 싶다고. 바야흐로, 주얼리를 즐기기 좋은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