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브랜드의 룩북 모델로, 런웨이 위의 뮤즈에서 광고 모델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전방위적 활동을 펼치는 재주 많은 패션 피플들!

올림피아 르탱의 룩북과 지방시의 광고 캠페인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늘씬하고 완벽한 모델이 아닌 어디서 본 듯 익숙한 패션 피플이 등장한다는 것. 올림피아 르탱의 룩북에는 프렌치 스타일리스트이자, 영국의 록 그룹 펄프의 보컬 자비스 코커의 전 부인 카미유 비도 와딩턴이, 지방시의 2015 F/W 시즌 광고 속에는 다름 아닌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등장한다. 룩북 속 카미유는 귀족적인 옷을 입고 다리를 번쩍 들어 올리거나, 상의를 벗고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를 포즈로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는데, 이토록 자연스럽고 유쾌한 연출이 가능했던 건 셀프 포트레이트 방식으로 촬영했기 때문이다. 지금껏 그녀는 본업인 스타일링뿐 아니라 모델, 사진가의 영역까지 넘나들며 주체할 수 없는 끼를 분출해왔다. 이런 그녀의 외향적인 행보는 한두 해의 일은 아니다. 2007년부터 이미 프랑스 브랜드 아페쎄의 룩북에 등장하면서 모델로서의 자질을 발휘했고, 2010 F/W 시즌에는 마크 제이콥스의 카운슬러가 아닌 뮤즈로 무대에 오르며 런웨이 모델로서도 부족함이 없음을 과시하기도 했다. 이번 2015 F/W 시즌, 지방시의 광고 캠페인에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등장한 것 역시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끼 많은 패션 피플의 독특한 행보 중 하나다. 이 프로젝트는 리카르도 티시의 기발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는데, 티시의 제안에 동한 도나텔라의 외향적 성향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그녀가 수수께끼 같은 패션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꽁꽁 숨어버리는 폐쇄적인 디자이너였다면? 라프 시몬스처럼 디자인 이외의 모든 활동을 거부하는 소극적인 디자이너였다면? 아마도 이 프로젝트는 티시의 크루들 사이에서 소소한 이야깃거리로 회자되고 말았을 것이다.

디자이너 중 엔터테이너 성향이 다분한 디자이너로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마크 제이콥스를 꼽을 수 있다. 2007년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자신의 남편이자 파트너 안드레아스와 함께 유르겐 텔러의 렌즈 앞에 섰다. 당시만 해도 디자이너가 자기 브랜드의 광고 캠페인 모델로 나서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로, 흥미로운 행보였고, 신선했다. 두 사람이야말로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 넘치는 시도랄까. 이후 마크 제이콥스도 자신의 남자 향수 라인을 론칭하면서 탄탄한 알몸과 알록달록한 문신을 캠페인을 통해 드러내 충격을 안겨줬다. 이 파격적인 행동 역시 패션계에서 두고두고 언급되는 일대 사건이다. 비비안 여사와 마크 이 둘의 공통점이 있다면 항상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자유로운 상상을 즐기며 철들기를 거부하는 영원한 피터팬이라는 것. 불가능이란 없다는 마인드와 넘쳐나는 에너지로 세상을 뒤집을 일을 도모하는 청춘들이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쇼를 하고, 매 시즌 컬렉션에서 기상천외한 분장과 퍼포먼스를 더하는 그들의 센세이셔널한 런웨이가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워낙 어디로 튈지 모를 그들이기에, 이제 무엇을 하든 그리 놀랍지 않을 정도. 오히려 베일 속에 가려진 패션 피플이나 어떻게든 숨으려는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포착하는 것이 더 자극적인 상황이 되어버렸다. 한편 스트리트 패션 사진이 인기를 끌면서, 누구나 쉽게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마련되었다. 패션계의 공작새, 맥시멀리스트 안나 델로 루소가 대표적으로 그녀 역시 둘째가라면 서러울 충만한 끼의 소유자다. 자신의 옷과 신발, 장신구를 모아두는 전용 아파트가 있을 정도로 옷을 사랑하는 그녀로서는 아침 점심 저녁, 매 쇼마다 옷을 바꿔 입는 자신의 모습을 노출하기에 가장 적합한 매체를 찾은 셈. 그렇다고 그녀를 그저 아름다운 옷에 미친 공작새로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하며, 같은 옷을 가지고도 비범하게 스타일링하는 능력은 최고니까. 일본 <보그>의 편집장 직을 겸하며 스스로를 브랜드화하는 데 열심인 그녀는 2011년 랑방과 H&M의 협업 컬렉션에서는 런웨이 모델로, 2012년 H&M과의 협업을 통해서는 안나 델로 루소만의 맥시멀 스타일을 전 세계에 퍼트리며 끊임없이 자신을 확장해가는 중이다. 2010년 사진가 유르겐 텔러는 미국 <W>의 화보의 주인공으로 그녀를 선택한다. 화보 속 안나는 수영복에 하이힐을 신고, 온몸에 금은보화를 칠갑한 채 다리를 높이 추켜 올리고 있는데, 그 모습은 마치 한 번 사는 세상, 내 몸, 내 멋대로 살아보겠다고 선언하는 일종의 퍼포먼스처럼 느껴졌다.

패션 피플들의 넘치는 끼, 그들의 높은 자존감 그리고 넘쳐나는 자기애는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다. 한 예로, 지난 2015 S/S 시즌 발렌티노의 광고 속에 익숙한 팔뚝이 등장한다. 문신 가득한 팔뚝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포토그래퍼 테리 리처드슨. 거친 문신으로 가득한 테리의 아이코닉한 팔뚝은 발렌티노의 더없이 여성스러운 백과 슈즈를 익살스럽게 쥐고 있다. 더불어 그가 사진을 찍을 때마다 늘 취하는 포즈인 일명 ‘엄지 척’ 손동작까지 추가되어 얼굴이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누구나 테리의 팔임을 알아챌 수 있어 재미를 주었다. 파리의 그로테스크한 디자이너 릭 오웬스 역시 그만의 음산한 끼와 기운을 독특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자기 매장의 입구에 그를 빼닮은 긴 머리 동상을 세워놓고 들어서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선명하게 각인한다. 심지어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리게 환풍기를 설치해 매장 안 그의 분신 같은 동상의 머리카락이 늘 바람에 휘날린다. 볼 때마다 섬뜩하지만, 그만의 괴짜적 성향과 아무도 말릴 수 없는 끼를 표출하는 방식이 신선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SNS의 발달, 스트리트 사진으로 이제는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자신을 어필할 수 있고, 거리의 패셔니스타가 될 수 있다. 미국 <W> 매거진의 편집장 스테파노 통키는 한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모든 사람은 자신에 대해 쓰고,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특히 소셜 미디어와 만나면 자기 자신의 브랜드를 창조하고자 하는 데까지 확장된다. 우리는 늘 브랜드 브랜드 브랜드를 외치지만 결국은 사람 관계의 아이디어가 핵심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아이디어, 사람의 브랜드화, 결국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도 아이디어의 싸움이 되는 것이다. 이제 단순히 광고에 등장하고, 룩북에 등장하며, 디자이너의 런웨이에 서는 방식으로는 자신을 어필하기는 부족한 세상으로 진입한 것. 그래서 파리 <보그>의 편집장직을 내려놓고 나와 CR북을 만드는 카린 로이펠드의 행적이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 소장 가치 있는 근사한 책을 만들고, 애정을 갖고 만드는 책 안에 자신이 직접 등장해 페이지를 채우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해 세상을 향해 자기만의 목소리, 스타일을 제안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 가지 일만 잘하면서 살기에는 시대가 너무 복잡미묘하고 멀티해졌다. 그 옛날 쎄시봉에서 노래하던 윤형주처럼 노래하는 의사나 더로우의 올슨 자매처럼 디자인하는 배우, 스타일 아이콘인 동시에 매거진의 편집장인 안나 델로 루소같이, 세상은 끼가 넘쳐나 주체할 수 없는 사람을 환대하는 듯 보인다. 늘 다양한 탤런트를 가진 새로운 사람이 출현하길 바라니까. 쉬워졌다 생각하다가도, 그렇게 만만하진 않음을 가끔 실감한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하루하루 더 특별한 자질을 보고 싶어 하며, 흥미를 느낀다. 당신은 어떤 시류에 편승할 것인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잠재된 끼를 가감 없이 발산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남들이 뭘 하든 뒷짐 지고 멀리서 조용히 지켜보며 살 것인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