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이 없었던 시절은 아예 기억하지 못하고 소셜 미디어가 가장 익숙한 소통 수단인 집단, 이름하여 Z세대가 새로운 물결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성세대에게는 이 새로운 코드를 해독하는 게 중요하면서도 급한 숙제가 됐다.

나는 X세대다. 말하고 나니 가요무대를 보며 어깨춤을 추다가 들킨 것처럼 민망한 기분이지만, 한때 저 문장은 광고 카피로도 쓰일 만큼 쿨하고 당당한 선언이었다. 쉽게 정의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정의되던 1990년대의 젊음을 당시 언론은 흥미로운 신인류로 포장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X세대가 기성세대 대접을 받는 시대다. 요즘 한창 주목받는 건 Y세대도 아니고 그 이후에 출현한 Z세대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 사이에 태어난 10대가 이 범주에 해당한다. 기업들은 이들이 소비의 주체로 떠오를 몇 년 뒤를 벌써부터 착실하게 준비 중이다. 내 입장에서 보면, 거의 아들딸뻘인(쓰면서도 이 표현이 못마땅하지만) 무리가 세상의 중심을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주인공의 부모 역할로 밀려난 왕년의 청춘 스타처럼 은근히 섭섭할 지경이다. 디지털 환경을 당연하고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건 Z세대의 가장 큰 특징이다. Y세대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그래도 둘 사이에 미묘한 차이는 존재한다. 최근 <뉴욕타임스>에 실린 특집 기사는 Z세대가 스마트폰과 함께 성장한 집단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아이포드에서부터 차근차근 업그레이드를 경험해온 앞선 세대와 달리, 이들은 아이폰이 없던 시절은 아예 기억조차 못한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부감은 거의 없고 뉴 미디어에의 적응도 상당히 빠르다. 블로그 뉴스 사이트 <매셔블>은 지난 2013년에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나는 13살이고, 내 친구 중 어느 누구도 페이스북을 이용하지 않는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이미 그들에게 한물간 유행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소셜 미디어를 선호한다는 걸까? 아직 한국에서의 인기는 미미한 편이지만 미국의 10대들은 주로 스냅챗이나 위스퍼 같은 앱에 모여든다. 프라이버시 때문이다. 스냅챗의 경우, 일정 시간이 지나면 대화 내용을 자동 삭제한다. 위스퍼는 익명의 소통에 최적화된 시스템이다. 5초 후에 폭파되는 메시지를 주고받는 <미션 임파서블>의 첩보 요원들처럼 좀처럼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Z세대는 소셜 미디어의 편리함뿐 아니라 위험에 대해서도 제대로 인지하고 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혓바닥, 아니 손가락을 잘못 놀린 덕분에 톡톡한 대가를 치르는 성인을 충분히 목격한 덕분일지도 모른다. 온라인에 사생활을 노출하는 게 얼마나 큰 모험인지를 안다는 점에서도 이들은 진정한 ‘스마트’ 세대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우선순위를 고르는 기준은 세대마다 갈린다. 20~30대는 남자 톱모델이라면 션 오프리나 데이비드 간디부터 떠올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10대들의 선택은 단연 럭키 블루 스미스다. 순정 만화 책갈피에서 떨어진 것 같은 미모와 서늘한 아이스 블론드로 전 세계 소녀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 열일곱 살이다. 140만 명에 달하는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지금 이 순간도 그의 일상을 좇으며 미소를 짓고, 또 한숨을 쉰다.

Z세대의 스타들은 온라인에서 어김없이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한다. 인스타그램이 없었다면 지지 하디드와 켄달 제너가 이렇게 많은 캠페인을 차지할 수 있었을까? 현재 둘의 팔로어는 각각 690만 명, 그리고 무려 3,830만 명이다. 스타성도 왕위처럼 세습되는 걸까? Z세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상당수가 X세대가 열광한 스타들의 2세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조니 뎁과 바네사 파라디의 딸인 릴리 로즈 멜로디 뎁은 16살의 나이에 샤넬의 아이웨어 컬렉션 모델이 됐다. 샤넬의 오트 쿠튀르 쇼에 섰던 가브리엘 케인 데이 루이스의 혈통도 만만치 않다. 한때 떠들썩한 로맨스를 나눴던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이자벨 아자니를 부모로 뒀으니까. <CR> 패션북과 <보그 이탈리아>의 촬영을 마친 카이아 거버는 어머니인 신디 크로포드의 몇십 년 전을 보는 듯한 외모다. 윌 스미스와 제이다 핀켓 스미스의 아들인 배우 제이든 스미스는 졸업 파티에 스커트를 입고 참석할 정도로 과감한 패션 센스를 과시한다. 하지만 온라인 매거진 에디터이자 배우인 타비 게빈슨이야말로 눈여겨볼 만한 사례일 것이다. 10대 초부터 블로그에 패션 비평을 쓰며 알려지기 시작한 그는 혈연의 후광 없이 마크 제이콥스 쇼의 프런트로를 차지하는 유명 인사가 됐다.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자신의 입지를 조숙하게 다진 예다. 미국 언론은 Z세대에 품는 기대가 꽤나 큰 눈치다. 소셜 미디어가 부상하면서 기존의 매체 질서는 완전히 재편됐다. 그들에게 흑인 대통령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고, 동성 결혼 역시 마땅한 권리다. 최근의 주요한 진보들이 10대에게는 애써 거둔 성취가 아니라 당연한 출발점인 셈이다. 유리한 위치에서 뛰기 시작한 만큼 훨씬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한국에서도 비슷한 바람을 품는 게 가능할지 생각해보면 문득 막막하다. 앞으로 달리기는커녕 전속력으로 문워킹을 하는 기분이 드는 요즘이니까. 부모 말을 안 들으면 어떻게 되는지 가르치려고 <사도>를 아이들과 동반 관람하는 X세대가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얼마 전에 들은 탓인지도 모르겠다. 이전 세대가 바뀌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의 변화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