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클락의 사진과 영화가 세상에 나왔을 때, 사람들은 불붙은 폭탄이 던져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남들이 애써 외면했던 진실을 처음으로 들춘 것뿐이라고 말한다. 시대의 풍경을 솔직하게 직시해온 논쟁적인 예술가를 더블유가 직접 만났다.

열에 아홉은 말끝마다 <섹스 앤 더 시티>를 인용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뻔한 유행이 못마땅해서 어떻게든 피하려고 노력해왔지만 이번만은 예외로 삼을까 한다. 언젠가 캐리 브래드쇼는 특유의 젠체하는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뉴욕을 상징하는 과일이 사과라면 뉴욕을 대표하는 소리는 앰뷸런스의 사이렌이다.” 몇 주 전 트라이베카 근처의 이탤리언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을 때 그게 상당히 근거가 있는 이야기였음을 확인했다. 도시는 잠투정을 하는 아이처럼 수시로 빽빽 울어댔다. 소란한 와중에 래리 클락의 에이전트는 인터뷰이가 조금 늦을 거라며 양해를 구했다. 무릎이 좋지 않아 그가 요즘 고생을 한다고도 했다. “스케이트보드를 타다 부상이라도 당했나요?” 내가 꽤나 어이없는 질문을 했다는 걸 에이전트의 답을 들은 뒤에야 깨달았다. “음, 래리도 이제 70대니까요.”

래리 클락의 나이를 실감하지 못했던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1971년에 첫 사진집 <털사(Tulsa)>를 발표한 이래 줄곧 그는 거침없는 젊음의 동의어였다. 자신과 함께 약물에 취했던 친구들을 흑백 필름에 가감 없이 담아낸 포토 다큐멘터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었다. 마틴 스코세이지와 구스 반 산트는 클락의 초기 사진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감독들에게 영감을 주는 역할에만 만족할 수 없었던 그는 1995년에 장편 영화 데뷔작 <키즈(Kids)>를 내놓는다. 섹스, 마약, 폭력, 에이즈 등의 이슈를 까발리는 암담한 틴에이저 무비가 공개돼자 열렬한 찬사와 강도 높은 비난이 동시에 쏟아졌다. 이후로도 논쟁은 그림자처럼 당연하고 익숙하게 이 예술가의 행보를 좇아왔다. 아마 섹스와 도시에 대해서라면 캐리 브래드쇼보다도 그가 훨씬 할 말이 많을 거다.

래리 클락은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은 채 나타났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역시 스케이트보드를 타기는 더 이상 어렵겠다는 것이었다. 동작은 느릿했고 귀도 많이 어두워진 상태였다. 왼손 검지 위의 해골 문신 정도만이 만만치 않았을 시절을 짐작하게 했다. 마약을 가까운 친구쯤으로 여겼던 과거가 무색하게도 한동안은 채식까지 시도했다고 한다.
“더 이상은 아니에요. 체중이 너무 많이 줄길래 그만뒀죠. 그래도 덕분에 썩 건강해진 기분이에요.”

지난 7월, <키즈>는 개봉 20주년을 맞았다. 곧 잊힐 스캔들이라며 폄하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끝내 이 작품은 불편한 만큼 강렬한 클래식으로 살아남았다. 어느덧 일흔둘이 된 그 또한 여전히 길들여지지 않는 젊음을 카메라에 담는다. 그를 마틴 스코세이지나 구스 반 산트처럼 주류에 안착한 감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래리 클락은 단 한 번도 주류였던 적이 없다. 화제의 중심에 던져진 폭탄 같았을 때도 이 고집센 아티스트는 철저히 아웃사이더였다.

“이미 누군가가 비슷한 시도를 했다면, 나는 이 일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래리 클락은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어느 누구와도 다른 족적을 남긴 데 대한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인터뷰는 수월한 편이 아니었다. 청력이 시든 노인과의 대화를 ‘뉴욕의 소리’가 자꾸만 방해하고 들었다.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 바짝 거리를 좁혀 앉았다. 선글라스 너머에서 번뜩이고있던, 늙지 않는 눈빛을 그제야 확인할 수 있었다.

연출 데뷔작인 <키즈>가 올해로 개봉 20주년을 맞았다. 지난 6월에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였던 하모니 코린, 주연 배우 클로에 세비니, 로자리오 도슨 등과 함께 BAM시네마 페스트의 이벤트였던 특별 상영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 작품을 새삼스럽게 돌아보는 계기가 됐을 듯하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당시 작업한 배우들과 인연을 유지한다. 레오 피츠패트릭, 클로에 세비니, 로자리오 도슨뿐만 아니라 그 외의 다른 출연자들까지. 특히 몇몇은 그들이 바라던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어서 무척 행복하다.물론 나도 이후로 많은 작품을 완성했고, 지금은 차기작 시나리오를 쓰는 중이다. 요즘 또 한번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느낌이다.

몇몇은 스타가 됐지만 어떤 배우들은 그사이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키즈>의 저스틴 피어스나 <불리>의 브래드 렌프로처럼.
끔찍한 일이다. 문제는 늘 마약과 알코올이다.

여전히 틴에이저에 관한 영화를 찍고,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 10대는 왜 그토록 흥미롭게 느껴지는 시기일까?
첫 사진집인 <털사>는 나와 내 친구들에 관한 자전적인 기록이었다. 그 작업 이후로 이 나잇대가 나의 ‘영역’이 됐다. 사람들이 나로부터 원했고, 나 역시 흥미를 느낀 게 젊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내가 그 시절에만 머물러 있는 건 아니다. 지금 집필 중인 시나리오는 전혀 다른 주제를 다룬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비슷한 무언가를 나보다 먼저 했더라면, 나는 10대에 관한 작업을 할 필요를 못 느꼈을 거다.

과거와 현재의 10대 사이에서 어떤 차이를 느끼나? 아니면 어떤 시대를 살든 틴에이저는 다 비슷하다고 생각하나?
모든 10대는 어느 정도 비슷하다. 경험에 물들지 않은, 일종의 순수함을 공유한다. 하지만 그동안 세상이 많이 바뀐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관계를 맺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누군가는 <키즈>가 요즘 영화였다면 모든 캐릭터가 러닝타임 내내 휴대전화만 붙들고 있을 거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인간 관계뿐만 아니라 더 이상은 리얼하게 느껴지는 사진도 드물다. 대부분이 진공 상태의 이미지 같고 즉각 휘발되어버린다.

일탈이 일상이 된 틴에이저를 주로 묘사한다. 개중에는 잔인하다고 할 만한 인물도 종종 눈에 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기본적으로는 순수하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약하기 때문에 악해지기 쉬운 게 10대다. 프랑스에서 만든 <더 스멜 오브 어스>는 아이들이 어떻게 문제에 빠져드는가에 대한 일종의 탐구였다. 이제는 매일같이 모든 일상이, 심지어는 섹스까지도 온라인에 공개되는 시대다. 놀라운 일이다. 달라진 세상이 아이들을 어떤 곤경으로 몰아넣고 있는지, 그리고 그로 인해 삶은 어떻게 바뀌는지가 내게는 흥미로운 주제였다.

신작에서는 10대의 이야기 대신 다른 주제를 다룬다고 했다. 어떤 내용인가?
각기 다른 연령대의 여성 다섯 명에 관한 이야기다. 70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다양한 여자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기억을 되짚으며 캐릭터를 구체화해가는 중이다. 즐거운 작업이다.

‘Jonathan’

‘Jonathan’

작년에는 뉴욕과 파리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전시 제목이<They Thought I Were, But I Aren’t Anymore(내가 그랬을거라고 생각했겠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였는데,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문장이라 기억에 남았다.
털사에 살던 어린 시절, 그러니까 열네댓 살 무렵 알던 친구가 있었다. 멀리 학교를 옮긴 줄 알았던 녀석을 어느 날 다시 만나게 됐다. “떠난 게 아니었냐”고 묻자 친구가 들려준 답이 바로 저 문장이었다. 전시 제목을 정할 시기에 문득 그 기억이 떠올랐다. 따지고 보면 나는 꾸준히 사람들에게 저 말을 반복하며 살아온 것 처럼 느껴졌다.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페인팅을 처음으로 공개했던 전시다. 그림은 언제부터 그리기 시작한 건가?
파리에서 <더 스멜 오브 어스>를 찍은 게 계기가 됐다. 제작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기 때문에 주의를 돌려 몰입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어쩌다가 그림을 그리게 됐는데, 그 시간이 내게는 일종의 명상 같았다. 바깥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모든 걸 잊고 캔버스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꼭 필요했던 탈출구인 셈이다. 그래서 뉴욕에 돌아온 뒤에도 페인팅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어쩌면 한국에서도 사진과 함께 전시할 기회가 있지 않을까?

내가 직접 본 전시는 3년 전 베를린에서 열린 대규모 회고전이다. 전시장 외벽에 대형 포스터가 걸려 있었는데, 누군가가 던진 페인트로 더럽혀져 있었던 게 생각난다. 한 여성의 벌거벗은 아랫도리를 클로즈업한 이미지였다. 이런 식의 논란은 래리 클락에게 전혀 놀랍거나 새로운 사건이 아닐 듯하다.
나는 논란을 일으키려고 애써본 적이 없다. 내가 보는 그대로의 삶, 그러니까 진짜라고 느끼는 장면을 기록할 뿐이다. 나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 사람은 많았지만 그중 어느 누구도 날 카피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예술가로서 난 어떤 룰도 세우지 않는다. 원칙에 갇혀본 적도 없다. 그게 의도적으로 스캔들을 좇는 이들과의 차이 아닐까? 나는 찍고 싶은 건 뭐든 찍어온 사람이다. 그전까지는 다들 지레 한계를 설정해두고, 할 수 없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따지기에 바빴다. 하지만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초반쯤 사진을 시작했을 때 내 생각은 이랬다. ‘못 찍을 이유가 뭔가.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 훌륭한 포토 저널리스트가 많았음에도 당대에는 사진이 넘지 못하는 분명한 선이 있었다. 가까이에 분명히 존재하는 삶을 아무도 드러내거나 밝히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한 것뿐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다른 누군가의 시도가 이미 있었다면 난 할 필요를 못 느꼈을 거다.

영화 ‘Kids’ 촬영장에서 포착한 10대 시절의 로자리오 도슨과 클로에 세비니

영화 ‘Kids’ 촬영장에서 포착한 10대 시절의 로자리오 도슨과 클로에 세비니

당신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새로운 세대를 꾸준히 만나왔을 것이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예로는 사진가 라이언 맥긴리를 들 수 있겠다. <털사>나 <키즈>로부터 영감을 얻고 성장한 젊은 아티스트들이 활발히 활동 중인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괜찮은 일인 것 같다.

그냥 괜찮은 정도인 건가? 패션 디자이너 조너선 앤더슨 역시 열혈 팬 중 한 명이다. 결국 그는 당신과의 협업을 추진하기도 했다. <더 스멜 오브 어스>의 배우들이 J.W. 앤더슨의 2015년 프리폴 컬렉션을 입고 촬영한 프로젝트가 그 결과물이다.
영화를 한 편 마치면 출연 배우들과 패션 슈팅을 하곤 한다. 홍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단지 그 이유뿐이다. 아무튼 조너선과의 작업은 무척 즐거웠고 결국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됐다. 어쩌면 다음 기회에 또 다른 프로젝트를 함께 할 수도 있을 거다. 사실 내게 패션 슈팅은 무척 힘들게 느껴진다. 하루 만에 좋은 사진을 그렇게나 많이 찍어야 한다는 건 상당한 압박감이다. 스티븐 클라인이나 브루스 웨버 같은 패션 포토그래퍼들의 작업 현장에 가보면 좀 신기하다. 나와는 전혀 다른 작업 스타일이니까.

스트리트 브랜드인 슈프림과의 협력 관계는 특히 돈독하다. <키즈> 20주년 컬렉션 외에도 이미 수차례 협업을 진행한 바 있다.
내가 <키즈>를 찍을 무렵 슈프림도 막 사업을 시작했다. 공통분모가 있었던 만큼 자연스럽게 관계가 형성됐다. 그들이 원하는 작업이 있다면 늘 승낙한다. 친구 같은 사이니까.

자녀들 역시 아버지의 작업을 지켜보며 성장했을 것이다. 딸과 아들이 사진이나 영화에 대해 의견을 들려준 적이 있나?
착한 아이들이다. 내 작업을 늘 지지해준다. 딸은 훌륭한 사진가이자 화가다. 이제 스물아홉인데 현재 임신중이라 11월이면 난 할아버지가 된다. 포틀랜드에 사는 아들은 펑크록 밴드의 일원으로 활동 중이다. 공교롭게도 둘 다 예술가로 성장한 셈이다. 애들 엄마가 잘 키워준 것 같다. 아들녀석은 내 영화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2002년 작인 <켄 파크>에 쓰일 음악을 선곡해준 게 시작이었다. 열여섯 살짜리한테 그런 작품을 보여주면서 부탁을 했으니, 돌이켜보면
미친 짓이었다.

‘The Smell of Us’

‘The Smell of Us’

<더 스멜 오브 어스>에서 직접, 그것도 두 개의 서로 다른 캐릭터를 연기했다. 원래 계획했던 바는 아니라고 들었다.
연기자가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록스타 역할은 원래 피트 도허티가 맡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실제 정키답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촬영일이 다가와서 스무 번 넘게 통화를 시도했지만 아예 연락이 안 되더라. 내가 하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또 다른 캐릭터는 발 페티시가 있는 인물이다. 뛰어난 벨기에 배우가 출연 의사를 밝혔고 계약서에 사인까지 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부상을 당해서 여행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된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발을 다쳤다고 했다. 금요일 밤에 연락을 받았는데 촬영은 당장 월요일이었다. 록스타를 연기할 때 나는 수염이 덥수룩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면도와 이발을 하고, 매니큐어와 페디큐어를 한 뒤 현장에 나갔다. 그 신을 찍는 동안 든 생각은 딱 한 가지였다. ‘우리 딸이 나중에 이걸 보고 뭐라고 할까?’ 영화를 만들 때는 선택의 여지가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할 수 있는
걸 해야 할 때가 많다.

물리적인 나이와 체감하는 나이가 꼭 일치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지금 래리 클락은 스스로가 몇 살 정도라고 느낄까?
난 일흔둘이고 실제로도 그렇게 느낀다. 하지만 행복한 일흔둘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건강하고 일을 계속할 수 있으니까. 6주 정도 지나면 무릎도 많이 좋아질 거다. 그러면 좀 더 행복하겠지.

실제 나이보다 자신을 더 젊게 여기고 있을 거라고 짐작했다. 
어떤 면에서는 그렇다. 여전히 세상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았고, 그 사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입해서 목소리를 내고 싶다.

새로운 세대에게도 래리 클락은 의미가 큰 이름이다. 그들에게 당신은 여전히 젊음을 상징하는 존재다.
반가운 일이다. 덕분에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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