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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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살고 있는, 동시대 사진가 중 가장 도발적인 동시에 가장 도전적인 이를 꼽으라면 단연 스티븐 클라인이라 하겠다. 그런 그를 프랑수아 나스가 지나칠 리 없었으니 스티븐 클라인의 대담하고 우아하며 파격적인 사진이 메이크업으로 다시 태어났다.

압도적인 사이즈의 이 사진은 ‘풀 서비스 미니 가부키 브러시 세트’의 이미지로 활용되었다.

압도적인 사이즈의 이 사진은 ‘풀 서비스 미니 가부키 브러시 세트’의 이미지로 활용되었다.

스티븐 클라인의 사진은 현실에서 시작하되 빛과 어두움, 미(美)와 추(醜)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사람들을 매혹시킨다. 사진에 이야기를 담아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시에 사진의 장면 속으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으며, 금기와 터부의 경계를 끊임없이 교란하고 허물기도 한다. 그런 그의 사진이 괴팍하거나 그저 천박한 도발이 아닌 이유는 우아함이란 요소를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남다른, 비교 불가한 독특한 해석이랄까? 프랑수아 나스가 그런 스티븐 클라인과 협업을 선보인다. 기 부르댕에 이어 두 번째이자 현존하는 사진가로서는 처음이다. 그러고 보면 이 두 사람은 파격적인 도전과 독창적인 결과물로 아름다움의 기준을 새롭게 제안해왔다는 점에서 무척 닮았다. 그누구도 넘볼 수 없는, 자신만의 견고한 성채를 구축한 이 둘을 뉴욕에서 만났다.

스티븐 클라인의 사진 속 모델이 현실 세계인 파티의 분위기를 한껏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스티븐 클라인의 사진 속 모델이 현실 세계인 파티의 분위기를 한껏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나스 그리고 스티븐 클라인, 두 명의 몽상가들

뷰티가 패션과 협업한다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패션 디자이너와의 작업이 아닌 사진가와의 만남이라는 특별한 작업은 2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번 협업을 앞두고 나스는 아름다움이란 지극히 추상적인 세계에 속하며, 본인은 전형적이지 않은 특이하고 이질적인 아름다움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고 고백했다. 나스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전부터 스티븐 클라인을 잘 알고 있었는데, 스티븐 클라인의 작품 속에서 그가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시선이 자신과 무척 비슷하다는 사실을 이미 확인한 터였다. 스티븐 클라인의 사진 세계에 매혹되어 언젠가 ‘스티븐의 예술을 기념할 만한 컬렉션을 만들자’라는 생각을 품다가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이다. 너무 뻔해서 모두가 알 만한 그런 아름다움이 아니라 낯설고 예상을 벗어나는 기이함이 가져다주는 미학적 강렬함이 특징인 컬렉션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이는 프랑수아 나스와 스티븐 클라인이 2015 홀리데이 컬렉션으로 선보이는 ‘스티븐 클라인 컬렉션’의 론칭 소식을 알리기 위해 전 세계의 프레스들을 초대한 파티에서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해가 기울고 대지가 어슴푸레해지는 시간에 맞춰 초대된 공간 곳곳에는 강렬하고 도발적인 스티븐 클라인의 사진이 거대한 크기로 전시되었으며, 그 공간에 다시금 실제 모델이 전시된 사진을 고스란히 재현함으로써 초대받은 이들의 눈과 귀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파티장에서 만난 세 명의 천재들, 알렉산더 왕과 스티븐 클라인, 프랑수아 나스.

파티장에서 만난 세 명의 천재들, 알렉산더 왕과 스티븐 클라인, 프랑수아 나스.

이렇게 강렬한 시각적 자극을 두 눈으로 마주하고 보니 과연 이 둘의 작업 과정이 어땠을지 궁금증이 커져만 갔다. 나스와 앞서 함께한 기 부르댕의 사진이라면 메이크업과 색에 대한 명확한 요소가 분명하게 파악되지만 스티븐 클라인의 사진은 직관적이기보다 추상적이기 때문이다. 사진 속에 이야기를 숨겨놓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작가니 말해 뭣 하겠나? 이렇듯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의 사진이 과연 어떻게 제품으로 구현되었는지 그 과정을 프랑수아 나스에게 물었다.

<나스 X 스티븐 클라인 컬렉션>.왼쪽 위부터 | ‘티어저커 아이 세트’, ‘데드 오브 서머 듀얼 인텐시티 아이섀도우 팔레트’, ‘네일 폴리시’(나이트 크리에이터, 하드 투 겟, 블랙 화이어), ‘데드 오브 서머 듀얼 인텐시티 아이섀도우 팔레트’, ‘디스페어 치크 팔레트’, ‘킬러 샤인 립스틱’(리뎀션), ‘듀얼 인텐시티 블러쉬’(벤지풀), ‘싱글 아이섀도우’(스터드), ‘싱글 아이섀도우’(모탈), ‘킬러 샤인 립글로스’(프로보크).

<나스 X 스티븐 클라인 컬렉션>.왼쪽 위부터 | ‘티어저커 아이 세트’, ‘데드 오브 서머 듀얼 인텐시티 아이섀도우 팔레트’, ‘네일 폴리시’(나이트 크리에이터, 하드 투 겟, 블랙 화이어), ‘데드 오브 서머 듀얼 인텐시티 아이섀도우 팔레트’, ‘디스페어 치크 팔레트’, ‘킬러 샤인 립스틱’(리뎀션), ‘듀얼 인텐시티 블러쉬’(벤지풀), ‘싱글 아이섀도우’(스터드), ‘싱글 아이섀도우’(모탈), ‘킬러 샤인 립글로스’(프로보크).

나스, 스티븐 클라인에게 주목하다

흥미로운 작업을 위해 늘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맨다는 프랑수아 나스. 그래서 확실한 비전을 가진 아티스트와만 협업한다는 그가 말하는 스티븐 클라인의 매력.

스티븐 클라인의 어떤 면이 함께 작업을 하도록 결심하게 만들었는가?

프랑수아 나스 그의 사진 속에서 생생하게 전해진 비전과 창의성. 그의 사진은 도발적이다 못해 파괴적일 만큼 강렬한 이미지를 보여 주지만 한편 그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궁금하게 만든다. 나의 영감을 자극하는 그의 재능과 감각을 함께 경험해보고 싶었다.

그의 사진 중 어떤 요소에서 메이크업 제품으로 작품 세계를 확장시킬 수 있었는가?

그가 자신의 사진을 위해 선택하는 조명과 분위기, 여자들의 패션과 메이크업 스타일이 나를 매혹시켰다. 무엇보다 사진 속 모든 요소의 컬러 배치가 대단히 창의적이다. 전형적이지 않아서 더욱 눈길을 끌고, 파격적이면서 매력적이다. 이를 제품으로 풀어낸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지, 강렬한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에 대한 영감을 주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무엇인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흥미로웠다. 스티븐의 수백 장의 사진 중에서 이번 협업을 위해 필요한 이미지의 사진을 하나씩 추려내는 작업부터 제품을 담아내는 패키지를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 제품의 색을 결정하고 이름을 짓는 모든 과정을 즐겼다. 신기하게도 이 모든 과정이 조금의 트러블도 없이, 물 흐르듯 막힘 없이 흘러갔다. 기이할 정도로. 다시는 없을 좋은 작업이었다.

그의 사진 중 가장 좋아하는 사진과 완성된 제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컬렉션은?

물론 열 장의 사진이 모두 마음에 든다. 그래도 그중 고르라면 ‘Dead of Summer’와 ‘Tearjerker’ 컬렉션의 사진이다. 마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당신만의 정의를 내린다면?

아름다움이란 복잡한 거다. 완벽한 대칭의 얼굴과 눈, 코, 입술을 가진 전형적인 아름다움도 좋지만 자신만의 캐릭터를 가진 사람이 더 매력적이다. 틸다 스윈턴이나 샬롯 램플링을 보라. 일반적인 미인은 아니지만 강인한 자아와 카리스마를 가진 그녀들의 아름다움은 얼마나 매혹적이고 강렬한가? 여기에 총명함과 유머까지 겸비한다면 더 할 나위 없다.

<나스 X 스티븐 클라인 컬렉션>을 위해 스티븐 클라인과 나스가 심혈을 기울여 고른 스티븐 클라인의 사진들은 하나같이 강렬하고 대담하며 도발적이다.

<나스 X 스티븐 클라인 컬렉션>을 위해 스티븐 클라인과 나스가 심혈을 기울여 고른 스티븐 클라인의 사진들은 하나같이 강렬하고 대담하며 도발적이다.

스티븐 클라인, 뷰티와 만나다

프랑수아 나스는 도발적이고 강렬한 작품과 달리 클라인은 아주 조용하고 상냥하며 친절하다 말했다. 직접 만난 그는 마치 수줍음을 심하게 타는 소년 같았다. 그런 그와 나눈 짧은 인터뷰.

나스와 협업을 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스티븐 클라인 프랑수아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의 사진에 바탕을 두고 켈렉션을 하나하나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상의하고 싶다면서 말이다. 나에겐 굉장히 영예로운 제안이었다. 기 부르댕이나 앤디 워홀과 같은 위대한 예술가와 작업을 했는데, 그다음 타자가 나라니. 고민할 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협업의 의미가 남달랐을 듯하다.

물론이다. 이건 대단한 기회였다. 일반적인 뷰티 캠페인은 만들어진 제품에 기반을 두고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내 사진이 먼저였다. 내 사진을 기반으로 그에 어울리는 제품을 구성하고, 컬러를 선택하며, 패키지를 만드는 거다! 대단한 경험이었다.

이번 협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과정을 꼽는다면?

신기하게도 난 이번 작업의 모든 과정을 아주 즐기면서 했다. 사진을 고르는 작업에서부터 컬렉션이 완성되기까지 쉽지만은 않은 과정의 연속이었는데 모든 일이 굴곡 없이 부드럽게 균형을 맞춰 흘러갔다. 서로의 세계를 충분히 존중하고, 배려한 덕분일까? 그는 색에 대한 해석이 훌륭했고, 난 나의 창의성을 한껏 담아낼 수 있었다. 스트레스라고는 조금도 없는, 아주 섬세하고 유쾌한 협업이었다.

이번 협업에서 가장 공들인 부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심지어 컬렉션을 소개하는 파티 공간을 만드는 과정과 모델을 섭외하고 배치하는 과정까지 프랑수아 나스와 함께 의논했다. 덕분에 나의 아이디어가 온전히 반영된 제품(총알을 닮은 패키지인 Abnormal Female’)까지 보여줄 수 있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당신만의 정의를 내린다면?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다움(Beauty)’이다. 단, 당신이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어떤 관점과 시각을 바탕으로 보느냐에 따라 당신이 바라보는 모든 것이 충분히 아름다울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에디터
송시은
포토그래퍼
박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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