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성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제안. 바로 주인공의 성전환이다.

사라 개브론의 <서프러제트>는 20세기 초 영국에서 여성 참정권을 요구한 운동가들의 이야기다. 페미니즘이 새삼스럽게 재론되는 최근의 분위기에 힘입어 이 작품 역시 뜨거운 관심을 모으는 중이다. 그런데 주연인 캐리 멀리건은 한 인터뷰에서 ‘강한 여성 캐릭터’라는 표현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남자 배우에게는 ‘이번에도 강한 남성을 연기했군요’ 같은 칭찬을 하지 않잖아요? 그 같은 말의 이면에는 여자는 태생적으로 약하다는 인식이 이미 깔려 있는 거죠.” 이 야무지고 욕심 많은 배우는 제안받는 역할 대부분이 엇비슷하다는 불평도 덧붙였다. “거의 누구의 아내, 혹은 누구의 여자친구 캐릭터예요. 제가 맡고 싶은 건 그 ‘누구’의 역할인데도요.”

사실 캐리 멀리건 이전에도 엇비슷한 문제 제기는 여러 차례 있었다. 왜 여자 배우는 작품에 대등한 비중으로 참여한 남자 배우보다 낮은 개런티를 받아야 하는지, 그리고 별 볼일 없는 캐릭터에 출중한 연기력을 낭비해야 하는지 상식이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의아해했다. 하지만 의문에 이렇다 하게 후련한 답이 뒤따르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래도 최근 할리우드는 꽤 효과적인 해결책을 찾은 눈치다. 콜롬부스의 달걀 세우기 처럼 간단하지만 그래서 더욱 확실한 방법이다. 내용은 이렇다. 남자를 위해 쓴 캐릭터에 여자를 캐스팅할 것.

11월 중 북미 개봉을 앞둔 빌리 레이의<시크릿 인 데어 아이즈>는 스페인 영화 <엘 시크레토 : 비밀의 눈동자>의 할리우드 리메이크다. 줄리아 로버츠가 맡은 수사관 제스는 원작의 남성 캐릭터 둘을 조합해 완성한 인물이다. 예고편을 보면 각색의 무게중심이 ‘귀여운 여인’의 진지한 드라마 연기에 실려 있는 느낌이다. 데이비드 고든 그린의 <아워 브랜드 이즈 크라이시스>는 남미에 있는 한 가상 국가의 대선 캠페인에 뛰어든 정치 홍보 전문가의 이야기다. 초고의 주인공은 남성이었지만 감독과 작가, 그리고 제작자인 조지 클루니가 산드라 블록을 캐스팅하기 위해 기꺼이 시나리오를 수정했다.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에서 인상적인 여성 영웅을 연기한 샤를리즈 테론은 현재 조 & 앤소니 루소 형제가 연출을 맡을 <더 그레이 맨> 출연 여부를 놓고 교섭 중이다. 본래 브래드 피트가 주연으로 고려됐던 스파이 스릴러다.

<아워 브랜드 이즈 크라이시스> 제작진의 인터뷰 내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은 주인공의 성전환을 위해 고쳐 쓴 디테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고 밝혔다. 즉, 이건 적은 노력으로 근사한 효과를 거두게 해줄 아이디어다. 관객들은 흔한 남자 캐릭터 하나를 잃는 대신 주체적이고 괜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10분 간격으로 몸매를 과시하지 않는 여성 캐릭터를 얻게 되는 셈이다. 조지 클루니는 앞으로 더 많은 남성 주인공 역할을 여자 배우들이 차지하길 바란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남자도 탐낼 만한 여자 캐릭터가 넉넉히 고려되는 게 바람직한 결론일 거다. 그 전까지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시도 중인 성전환도 나쁘지 않은, 아니 썩 괜찮은 대안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