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의 신작 제목은 이번에도 수수께끼 같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를 본 뒤 지금은 무엇이 맞고, 그때는 무엇이 틀린 건지 물었다. 그는 그게 아예 틀린 질문이라고 답했다 .

매번 홍상수의 영화만큼이나 홍상수의 영화 제목에 기대를 하게 된다. 지난 20여 년간, 그는 낯설고 종종 의아하지만 일단 듣고 나면 머릿속에 딱지처럼 내려 앉는 단어의 조합을 꾸준히 생각해냈다. 9월 24일에 개봉될 신작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띄어쓰기를 의도적으로 생략한 데는 의미심장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감독의 설명을 들으면 무릎 아래에서 바람이 새는 기분이다. 그러니까 답은 이렇다. “띄어 쓰면 너무 길어지니까.”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감독 함춘수(정재영)가 수원에서 보내는 1박 2일을 그린다. 그는 화성 행궁에서 시간을 죽이다 화가 윤희정(김민희)과 대화를 주고받게 된다. 결국 그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함께 술을 마시고 희정의 친구들과도 어울린 뒤 헤어진다. 그런데 영화는 이 시점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두 주인공의 만남과 여정이 반복되는데, 전과는 그 디테일이 조금씩 다르다. 늘 그렇듯 짧게 요약하기가 어려운 이야기다. 누군가의 삶을 뒤흔들 만큼 극적인 사건이 벌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엔딩 크레디트가 뜰 때쯤이면 구체적으로 짚어 말하기 힘든 긴 여운이 남는다.

작품을 보고 난 뒤 궁금했던 몇 가지를 홍상수에게 이메일로 적어 보냈다. 답 같기도 하고 질문 같기도 한 문장이 며칠 만에 돌아왔다. 그의 영화를 좀 더 들여다 보게 해줄 단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단서마저도 수수께끼 같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동일한 인물들과 동일한 장소들이 등장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로 구성됩니다. 편의상 각각을 1부와 2부로 구분하자면, 1부의 촬영을 끝내고 편집까지 완료한 상태에서 해당 로케이션을 다시 처음부터 순례하며 2부를 촬영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부와 2부에 쓸 테이크를 한 번에 찍은 뒤 나누어 편집하는 대신, 지금과 같은 ‘경제적이지 못한’ 방식을 택한 이유가 있으셨을까요? 홍상수 제게는 미리 쓰여진 대본이 없습니다. 그날그날 순서대로 써가면서 전체를 만들어나갑니다. 그래서 2부의 어느 신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없이 그 신을 미리 쓸 수가 없습니다.

 

1부와 2부 때, 두 명의 주연 배우에게 강조한 내용이 각각 달랐을까요? 캐릭터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특별히 요구한 내용이 있으셨습니까? 서로 믿고 하자고, 순수한 맘으로 하자고 했을 겁니다. 1부를 끝냈을 때 2부의 차이를 만들기 위해서 편집본을 보여주고 한두 마디 했는데, 제가 한 말보다는 그 편집본을 보고 스스로 느낀 게 훨씬 중요했을 겁니다.

정확히 똑같은 방식은 아닙니다만 <오! 수정>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등의 작품에서도 비슷한 듯 다르게 반복되는 이야기 구조를 사용하셨습니다. 한 사고 틀에서 삶을 쳐다보고 뭔가 깨닫고 싶어 하고, 다시 다른 틀로 옮기고 하는 것보다, 꽤 구체적인 삶의 덩어리 두 개를 붙여놓고 비교해서 보는 게 더 많은 걸 보게 합니다.

1부의 춘수는 말을 곤란해하는 사람입니다. “말은 중요하지 않고 방해가 될 뿐”이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2부의 춘수는 직설적이고 적극적인 화법의 소유자입니다. 그는 생각나는 모든 걸 털어놓아야 한다고 믿는 사람 같습니다.영화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견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감독님께서 심정적으로 더 가깝게 느끼는 쪽은 있지 않을까요? 말의 한계를 잊지 않으면서 할 수 없이 말을 하는 것처럼 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자기가 정말 아는 것이 뭔지 먼저 알고 그것만 얘기하고, 그것도 결국은 삶을 담지 못하는 그냥 말일 뿐이란 걸 또 잊지 않고 그러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전.

 

1부의 춘수는 영화란 무엇인지 한마디로 설명해달라는 질문에 화를 냅니다. 감독님의 경우에는 지금껏 받아본 질문 가운데 어떤게 가장 난처하게 느껴지셨나요? 종류가 몇 있겠지만 그렇게 난처하지는 않았습니다. 좀 답답한 정도?

 

수원에서 촬영을 하신 첫 작품입니다. 이 도시를 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아주 오래전에 수원역에서 잠시 배회하다 올라온 기억이 먼저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리고 수원시에서 도움을 준다고 해서 한번 가본 날, 거기 장소나 사람들에게서 좋은 느낌을 받아서 하게 됐습니다.
전체 시나리오가 없는 상태에서 당일 찍을 분량만 아침에 완성해 촬영을 진행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계십니다. 글이 써지지 않아 애를 먹은 경험은 전혀 없으실까요? 전날 술을 잘못 마셨거나, 잠을 너무 못 자고 나왔을 때 힘든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기다리니깐 결국은 쓰게 되었습니다.

 

감독님과의 첫 작업에서 ‘쪽대본’ 촬영의 어려움을 토로한 배우는 없었나요? 김민희 씨의 경우는 어땠습니까? 재미있게 생각하고, 그런 방식을 즐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배우들 본인의 옷 가운데서 감독님이 직접 고른 것을 영화 의상으로 활용하십니다. 연기자들의 의견은 묻지 않고 혼자 결정하시나요? 감독님의 선택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없었습니까? 당연히 생각을 교환합니다. 하지만 제 의견을 큰 문제 없이 따라주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제목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지금은 무엇이 맞고 그때는 무엇이 틀린 걸까요? 무엇이 지금 맞다가 아닙니다. 그냥 ‘지금’이 맞다는 뜻입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순간에 충실할 수 있으면 그때가 지금이 되는 겁니다. 기억에 충실하면 그때로 남기 쉽고요.

 

이미 차기작 계획을 진행 중이십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작품을 만드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시는 듯합니다. 대부분의 창작자들은 작업을 하며 기쁨과 고통을 함께 느끼곤 합니다. 하지만 감독님께 영화는 전혀 어렵거나 괴롭거나 고단한 숙제가 아닌 걸까요? 네, 아닌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