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와 루시드폴을 사랑하는 주우재와는 패션만큼이나 음악에 대해 나눌 이야기가 많다. DJ가 장래 희망인 이 모델은 같은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 사람들 사이에 어떤 마법을 부려놓는다고 믿는다.

여유로운 네크라인의 짙은 녹색 니트는 코스, 겨자색 면바지는 YMC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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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니트 보온성이 참 뛰어나네요.” 폭염주의보가 며칠째인지도 잊어버린 한 여름 한낮의 야외 촬영, 10명이 넘는 스태프들 속에서 두툼한 가을옷을 입은 사람은 모델 주우재 혼자였다. 그러나 에어컨이 켜져 있는 동안에나 간신히 유머 감각이 작동할 만큼 높은 불쾌지수 속에서도 계속 농담을 건네 주변을 웃게 하는 사람 또한 그였다. “제가 웃긴가요? 아마 라디오 진행에 필요해서 그렇게 된 걸 거예요.”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넣으면 자동 완성되는 연관 검색어 가운데는 ‘주우재 라디오’가 있다. 개인 인터넷 방송 <그대 모든 짐을 내게>를 진행해온 아마추어 DJ이자 <유인나의 볼륨을 높여요>에 고정 출연하는 게스트이기 전에 주우재는 <음악도시>, <올댓뮤직>, <라디오 천국>으로 이어지는 DJ 유희열의 프로그램들을 들으며 자란 라디오 키드다.

 

늦은 밤 함께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위로받는 심야 라디오 청취자들이 형성한 독특한 공동체 문화는 10대 시절부터 20대 초반까지 그의 감수성을 키워온 자양분이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혼자 매일 2시간씩 인터넷 라디오를 진행한 원동력 역시 마음 깊이 좋아하고, 또 그 안에서 편안하기 때문이었다. 밤 12시 방송을 하기 위해 자신이 정해둔 통금시간을 지키고, 공들여 음악을 고르고, 트위터로 청취자 사연을 받으며 대화하고, 선곡표를 정리해 올리면서 밤을 하얗게 새운 날들이 꼬박 1년. 그렇게 진행해온 라디오는 뮤지션들을 초대해 노래를 듣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연 형식의 공개 방송으로까지 발전했으며, 그의 이름을 건 토크 콘서트로 지속되고 있다. 그러니 주우재가 가을 음악 축제인 ‘GMF(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의 홍보대사인 페스티벌 가이가 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관객으로서의 기쁨과 음악을 소개 하는 즐거움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이니까.

 

스톤 워시 처리된 데님 재킷과 데님 진, 안에 입은 깔끔한 카키색 반팔 티셔츠는 모두 아페쎄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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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를 진행하고 음악을 좋아하는 당신에게 또 하나의 이력이 더해진 것 같다. 올해 ‘GMF(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의 홍보대사인 페스티벌 가이가 되었다.  페스티벌 가이로 선정된 건 무척 기뻤지만, 촬영에 대해서는 부담을 많이 가졌다. 지금까지의 페스티벌 홍보대사들 사진을 보면 희망 찬 청춘의 밝음이 느껴져서….

본인에게는 그런 밝은 젊음의 기운이 없다고 생각하나? 평온한 가정에서 곱게 자랐고 어두운 삶을 살아오진 않았지만 타고난 성격이나 좋아하는 성향이 들뜨지 않는 편 같다. 뭔가 붕 뜬 것과는 거리감을 느낀다. 표현하는 방식에서도 다 내놓기보다 조금 절제된 쪽을 좋아한다. 보컬로 치자면 절제해서 부르는 김연우 씨나 시 낭송하는 창법의 루시드폴 같은 느낌이 좋다.

DJ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했나? 대학 3학년 때쯤 ‘인간관계론’이라는 교양 수업에서 성격 테스트를 하고 결과에 따라 열몇 가지 성격 유형을 나눠 조를 짰다. 다른 조는 다섯 명에서 스무 명까지였는데 나는 혼자더라. 조별로 가상의 예산 100만원으로 여행 계획을 짜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서로 어떻게 소통하는지 인간관계를 경험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조원이 나 혼자니까 내 마음대로 내용을 구성하고 앞에 나서 발표를 하는데 100여 명의 수강생이 내 얘기를 듣고 웃더라. 그때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카타르시스를 처음으로 느꼈다. 어릴 때부터 친숙하게 들어온 매체여서인지 라디오를 시작하고 나서 따로 연습 같은 것 없이도 어렵지 않았다.

86년생인데, 라디오보다는 비디오 세대 아닌가? 두 살 위인 형의 영향으로 초등학생 때부터 듣기 시작했다. 내가 아마 마지막 세대였을 것 같다. 음악도시, 올댓뮤직, 라디오천국으로 이어지는 유희열 씨 프로그램을 내내 들으며 자랐다. 중학생 때 어느 여름, 주공아파트 거실에 누워 있다가 방 안에서 형이 틀어놓은 ‘여전히 아름다운지’를 들었던 장면이 기억난다. 그 일이 내 음악 인생을 바꿨다.

 

토이 이전에는 어떤 음악을 들었기에? 신승훈의 ‘나보다 조금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같은 곡. 어쨌거나 발라드라는 점에서는 일관성 있는 취향이다. 토이 말고 윤종신 음악도 좋아했다. 가사에서 어떤 위안을 받기도 하고 쾌감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아름답게 표현 하지만 노랫말 속에서 남자는 결코 강하기보다 지질하고 대책 없이 질척거리는 모습이니까. 나 스스로 약해지거나 절망적일 때 그런 처지를 객관화해 보게 되는 역설적인 기분 좋음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지질함의 미학을 담은 절정의 노래를꼽 아본다면? 김연우가 부른 ‘이별택시’ 2탄 격인 ‘야경’이라는 곡이 있다. 윤종신 11집에 수록되어 있는데, 혼자 산에 올라서 도시의 불빛을 내려다보며 ‘여기서 보니 내가 겪은 일들이 아주 작구나’ 하는 노래다.

슬픈 가사에 감정이입할 사건이 많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 연애를 많이 해본 편은 아니지만 어릴 때는 차이기도 하고, 청승맞았다.

2013년부터 모델 일을 했으니까 제법 늦게 시작한 편이다. 평범한 공대생이었다. 시력이 좋지 않아서 군대 대신 방위 산업체에서 근무도 했고. 학교 다니며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런데 자퇴한 이유가 있나? 아까울 법도 한데. 대학에 3년 반 다니면서 배운 것들은 내 것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수학 과외를 하라면 할 수 있을 정도로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대기업에 들어갈 것도 아닌데 졸업장이 크게 욕심나지는 않았다. 아버지나 형을 보면 회사 다니는 순간부터 회사를 위해 살게 되는 것 같더라.

 

대신 모델 일을 일찍 시작했으면 하는 후회는 없나? 나이 들어 일을 시작한 장점이 있는 것 같다. 더 신중할 수 있고, 어린 친구들이 놓치는 것을 포착할 수 있으니까. 그래도 어린 건 좋은 점이지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