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 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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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0년 차 패션 모델인 동시에 음반 프로듀서이며, 세계적인 패션 하우스와 코즈메틱 브랜드의 뮤즈이자 파리지엔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하는 아이콘인 캐롤린 드 메그레. 저서 <How To Be Parisian Wherever You Are>의 한국어판 출간을 앞둔 그녀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책으로 못다 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며 더블유 코리아에 말을 걸어왔다.

장식적인 디테일이 화려한 낙낙한 실루엣의 니트 카디건은 Chanel, 사각 다이얼과 간결한 가죽 스트랩의 ‘보이프렌드’ 워치와 담대한 ‘코코크러쉬’ 골드 커프는 Chanel Watch & Fine Jewerly 제품.

장식적인 디테일이 화려한 낙낙한 실루엣의 니트 카디건은 Chanel, 사각 다이얼과 간결한 가죽 스트랩의 ‘보이프렌드’ 워치와 담대한 ‘코코크러쉬’ 골드 커프는 Chanel Watch & Fine Jewerly 제품.

한국 매체와의 첫 화보 촬영은 어땠나? 프로페셔널하고 유머러스한 한국 스태프들 덕분에 지금 굉장히 유쾌하다. 오늘 촬영한 7구에 위치한 이 아틀리에를 좋아한다고 들었다.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다(웃음). 예전에 5년간 이 아틀리에 바로
옆집에 살았다. 창가에 서면 내가 살았던 집이 보인다. 그 시절, 집에서 파티를 열 때 이 아틀리에를 클럽처럼 꾸며놓고 밤새 놀았다. 지금은 이곳을 떠나 피갈 쪽에 산다. 음악과 관련된 부티크와 바가 많아서 음악 일을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최고다.

파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어디인가? 센 강 좌안 지구에 위치한 생제르망데프레. 그곳에는 아름다움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특별한 기운이 넘실거린다. 갈 때마다 마치 영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반대로, 내가 사는 우안의 피갈 같은 곳에선 조금 더 거친 생동감과 로큰롤스러운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더 현실적이랄까? 두 지역을 오가며 얻는 균형감은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해주는 중요한 화두다.

줄무늬 패턴 셔츠는 Equipment, 각기 다른 굵기의 조각적인 ‘코코크러쉬’ 반지는 Chanel Watch & Fine Jewerly 제품.

줄무늬 패턴 셔츠는 Equipment, 각기 다른 굵기의 조각적인 ‘코코크러쉬’ 반지는 Chanel Watch & Fine Jewerly 제품.

2014년 9월 서울 DDP에서 열린 샤넬 전시 오프닝 파티 때 한국을 찾았다. 서울에 관해 어떤 인상을 받았고, 무엇을 했나? 안타깝게도 머문 기간이 고작 3일이었다. 자하 하디드의 DDP는 무척 멋졌고, 주변의 고궁에도 들렀다. 모던하고 거대한 서울이라는 도시 한복판에 자리한 옛 공간은 흥미로웠고, 앞서 말했던 전혀 다른 두 가지 요소를 동시에 필요로 하는 내 성향과도 잘 맞았다. 다양한 소스들이 섬세한 맛을 내는 한국 음식도 맛있게 즐겼다. 게다가 DDP 근처 호텔에 묵었는데 시차 때문에 고생할 일도 없었다. 주변의 모든 상점이 24시간 내내 오픈되어 새벽 4시에도 서울의 활기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웃음).

그때의 경험이 당신의 책 를 올 하반기에 한국에서 출간하는 데 영향을 끼쳤을
까?
 맞다. 서울을 직접 찾아가 발견한 한국 여성들은 상상보다 훨씬 모던한 라이프스타일을 즐기고 있었다. 여성으로서의 삶과 커리어를 동시에 누릴 일종의 ‘권리’를 자각한 한국 여성들에게서 파리지엔과 비슷한 점을 보았다. 내가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건 ‘직업적인 야망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사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당연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여성이 커리어와 개인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내기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엄마이면서 동시에 성공적인 커리어우먼이 될 권리, 남자들의 존중을 받을 권리가 있고, 동시에 인생을 즐길 권리가 있다. 사실 나 역시 아들 곁에 매일 붙어 있지 못한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행복한 여성이 곧 행복한 엄마이며, 그런 엄마 곁에서 자라는 아이 역시 행복하게 자란다고 믿는다. 한 번뿐인 소중한 삶을 최대한 풍부하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골드 메달 장식이 경쾌한 골드 체인 목걸이는 Chanel, 중성적인 슈즈는 Sartore 제품. 끝단이 해진 박시한 데님 블루종과 유도 유니폼이 연상되는 오비 벨트가 인상적인 통 넓은 팬츠는 본인 소장품.

골드 메달 장식이 경쾌한 골드 체인 목걸이는 Chanel, 중성적인 슈즈는 Sartore 제품. 끝단이 해진 박시한 데님 블루종과 유도 유니폼이 연상되는 오비 벨트가 인상적인 통 넓은 팬츠는 본인 소장품.

당신과 샤넬의 특별한 관계를 세계 많은 여성들이 동경한다. 샤넬은 나에게도 영원한 동경의 대상이다. 비교 대상을 찾을 수 없는 이상적인 세련됨을 보여주는 하우스니까. 샤넬은 편안한 스타일을 단번에 시크하게 만들어주는 마법사 같은 존재다. 진에 스니커즈를 매치한 힘을 뺀 차림도 샤넬 재킷 하나만으로 우아해지니까. 또한 패션이 일종의 소모품처럼 여겨지는 요즘 같은 시대에 샤넬이 추구하는 최고급 소재와 장인 정신, 그리고 오래도록 이어져온 장인의 손길을 수호하고자 하는 노력은 하우스의 이름을 더욱 각별한 의미로 각인시키는 것 같다. 

자신의 패션 브랜드를 만들고 싶진 않은가? 캡슐 컬렉션이라면 모를까, 내 브랜드를 론칭하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 해보지 않았다. 이미 존재하는 브랜드를 내 방식으로 해석하는 일이라면 몰라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컬렉션 하나를 완성할
능력이 과연 내게 있을지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지 막막할 것이 분명하니까(웃음). 가방 브랜드는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구조적으로 재단된 트위드 소재 드레스는 Chanel, 화이트 골드 베젤의 ‘보이프렌드’ 워치와 퀼팅 장식을 응용한 음각 디자인이 특징인 두 개의 ‘코코크러쉬’ 화이트 골드 반지는 Chanel Watch & Fine Jewerly 제품.

구조적으로 재단된 트위드 소재 드레스는 Chanel, 화이트 골드 베젤의 ‘보이프렌드’ 워치와 퀼팅 장식을 응용한 음각 디자인이 특징인 두 개의 ‘코코크러쉬’ 화이트 골드 반지는 Chanel Watch & Fine Jewerly 제품.

1994년에 모델 커리어를 시작했다. ‘패션 모델’이라는 타이틀이 갖는 의미가 그동안 어떻게 달라졌을까? 90년대에는 패션 화보 촬영을 위해서 일주일씩 출장을 떠나곤 했다. 2시간씩 정글을 헤매면서 멋진 배경을 찾아다녔고, 하루 종일 기다려

완벽한 A컷을 건지기도 했다. 마치 여유로운 보헤미안들 같았다. 지금은 그때에 비하면 모든 것이 극도로 비즈니스화된 느낌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다양한 분야의 일을 진행하면서 하루를 꽉 차게 사는 걸 좋아하는 내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
다. 오늘처럼 촬영을 마친 뒤 집에 가서 아들 안톤의 저녁을 챙겨주고, 밤엔 내 작업을 할 수 있으니까. 당시에는 모델 일 말고 다른 일을 전혀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모델이라는 직업 하나에만 집중하는 이들이 적을 정도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패션 모델=SNS 스타’의 인식이 커지고 있다. 당신 역시 인스타그램 유저 중 팔로어 수가 많은 인물이다. SNS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매체에서 보이는 나의 이미지와 현실 속의 나 사이에 큰 간극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하고픈 이야기, 전하고픈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창구가 생겼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SNS는 내가 가는 장소, 하는 일을 부담스럽지 않게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을 뿐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신진 디자이너와 아티스트들을 알릴 계기를 만들어주니까. 또한 파파라치들이 아닌 내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일종의 ‘셀프 프로모션’ 채널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클래식한 트위드 재킷은 Chanel, 담백한 시가렛 팬츠는 Dice Kayak Couture, 모노톤이 세련되게 배합된 슈즈는 Apologie, 왼손 두 손가락의 ‘코코크러쉬’ 골드 반지는 Chanel Watch & Fine Jewerly 제품, 핀 스트라이프 셔츠는 본인 소장품.

클래식한 트위드 재킷은 Chanel, 담백한 시가렛 팬츠는 Dice Kayak Couture, 모노톤이 세련되게 배합된 슈즈는 Apologie, 왼손 두 손가락의 ‘코코크러쉬’ 골드 반지는 Chanel Watch & Fine Jewerly 제품, 핀 스트라이프 셔츠는 본인 소장품.

개인적으로 당신의 책을 읽으며 30대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20, 30대 여성들에게 그 시간에 관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책을 통해 페미니스트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남성과 싸워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공격적인 페미니즘이 아닌, 여성의 순수한 권리를 주장하는 진정한 페미니즘 말이다. 내가 말하는 페미니즘은 작업복을 입고 차의 타이어를 직접 갈겠다고 주장하는 류의 것이 아니다(웃음). 나는 여전히 미니스커트와 하이힐을 즐기고, 문 잡아주는 남자를 좋아하지만, 스커트와 팬츠 중 무엇을 입을 것이냐는 순전히 내 의지에 의해 결정된다. 나의 페미니즘은 바로 이런 것이다. 파리지엔들에게서 맹목적인 허영심보다 이런 페미니스트적 독립심이 자연스레 느껴지는 이유는 이토록 당연한 여성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파리 거리를 행진했던 우리의 할머니와 어머니 덕분이다. 물론 파리지엔 중에도 허영기 넘치는 여자들이 많다. 하지만 차이점이라면, 그걸 남들에게 들키기 싫어한다는 점이 아닐까(웃음). 책을 읽을 한국 여성들에게 ‘게으름과 친해지지 말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인생은 짧고, 그 시간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기에는 너무 아깝다. 세상에는 다양한 책과 전시장, 똑똑한 사람이 수없이 많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남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그래야 칼 라거펠트 같은 비범한 인물을 갑작스레 마주한 순간에도 어려움없이 대화를 이어가고, 그를 통해서 더 많은 세상을 볼 수 있을 테니까. 또한 편안한 범주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나 역시 오랫동안 잘할 수 있을지 두려워했으면서도 결국 나의 책을 완성한 것처럼. 눈앞에 펼쳐진 의외의 기회에 “Yes!”를 외치는 순간부터, 인생은 달라질 것이다.

에디터
이경은
포토그래퍼
김희준(Kim Hee J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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