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 묘사되는 음식은 하나의 캐릭터처럼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을 때가 많다. 그려질 듯 선명한 맛을 지닌 문장을 열여덟 권의 책에서 발견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윤성원 옮김, 문학사상)

쥐가 좋아하는 음식은 갓 구운 핫케이크다. 그는 그것을 바닥이 깊은 접시에 몇 장 포개놓고 나이프로 꼼꼼히 네 조각으로 자른 후, 그 위에 코카콜라를 한 병 붓는다. 내가 처음으로 쥐의 집에 갔을 때 그는 5월의 화사한 햇살 아래에서 테이블을 끌어내 놓고 그 끔찍한 음식을 위 속에 쑤셔 넣고 있었다.

하루키의 장편 데뷔작에는 상당히 튼튼한 비위를 갖춘 캐릭터가 등장한다. ‘나’의 친구인 쥐는 갓 구운 핫케이크에 콜라 한 병을 부어서 해치우곤 한다. 그러고는 이것이야말로 ‘식사와 음료가 일체화’ 된 메뉴라고 말한다. 굳이 선택을 해야 한다면, 차라리 나는 나무 주위를 맴돌다 녹아서 버터가 된 호랑이로 구운 꼬마 삼보의 팬케이크를 한 조각 맛보겠다.

애거서 크리스티 <핼러윈 파티> (왕수민 옮김, 황금가지)

“익사래요, 익사. 고작 물이 가득 든 아연 도금 양동이 속에서 말이에요. 무릎을 꿇어 사과를 물려고 하다가 그런 거예요. 이제 사과라면 끔찍해요”.

핼러윈 파티 중 한 소녀가 언젠가 살인을 목격한 적이 있노라고 떠들어댄다. 그리고 얼마 뒤,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고 만다. 사과 건지기 게임을 위해 준비해둔 양동이에 머리를 처박힌 채 익사한 것이다. 미식가 탐정인 에르큘 푸아로가 등장하는 애거서 크리스트의 작품에는 음식에 관한 묘사가 심심찮게 삽입되는 편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처럼 살인을 위한 장치로 활용되는 경우는 아무래도 드물다.

폴라 호킨스 <걸 온 더 트레인> (이영아 옮김, 북폴리오)

키니네의 쌉쌀하게 톡 쏘는 맛, 이 맛 때문에 차가운 진토닉을 좋아한다. 토닉워터는 슈웹스 것으로, 플라스틱 병이 아니라 유리병에 든 것을 써야 한다. 이렇게 진과 토닉을 미리 섞어서 파는 캔들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니지만, 급할 땐 별수 없다.

레이첼은 한 젊은 여성의 실종(혹은 살인) 사건에 중요한 단서가 될 만한 장면을 목격(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가 심각한 알코올의존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다른 사람은 물론 레이첼 자신조차도 그날의 기억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주인공의 상태가 이렇다 보니 독자 역시 그의 사건 진술보다는 진토닉 레시피에 관한 꼼꼼한 조언을 더욱 귀담아듣게 된다. 토닉워터 특유의 쌉싸래한 맛은 한때 말라리아 치료제로 쓰였던 키니네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 브랜드 제품은 대체로 평균보다 더 달고 덜 쓴 편이니, 슈거보이 백종원보다 레이첼에 가까운 입맛이라면 토닉워터를 고를 때도 신중해야 할 것이다.

오드리 니페네거 <시간 여행자의 아내> (변용란 옮김, 미토스북스)

“있잖아 클레어, 혹시 일회용 반창고 같은 거 없니? 아니면 먹을 거라도. 시간 여행을 하면 몹시 배가 고파지거든”. 클레어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러더니 치마 주머니에서 한 입 베어 먹은 허시 초콜릿을 꺼내 나에게 던진다. “고마워. 나도 이거 좋아하거든.”

36살의 헨리가 6살의 클레어를 만난다. 소녀에게는 이게 첫 번째 만남이지만 다른 시간대를 끝없이 옮겨 다니는 남자는 이미 몇십 년 뒤의 그녀와 사랑에 빠진 상태다. 시간 여행으로 혈당이 떨어진 헨리는 클레어가 건네준 초콜릿을 허겁지겁 해치운다. 그러고 보면 영화 <E.T.>에서도 아이들은 낯선 외계인에게 M&M 한 봉지를 건넸다. 다른 시간대, 혹은 다른 은하계에서 불쑥 찾아올 인연을 위해 오늘부터 가방에 뽀로로 초콜릿이라도 챙겨둬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