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적이 여자라는 이야기는 틀렸다. 여자들도 여자에게 반하고, 동경하고, 사랑한다. 이렇게 멋지고 아름답고 강하며 매혹적인 여성의 경우에는 충분히 치명적으로.

성실함이 새겨진 몸 클라이밍 선수 김자인

성적 지향을 칼로 자르듯 나눌 수는 없지만, 상대적인 이성애자로서 나는 아무래도 동성보다는 이성의 신체에 ‘매혹된다’는 경험을 더 자주 하는 걸까 생각해보았다. 물론 여성으로서 여성의 신체에 감탄하는 일은 매일 일어난다. 전지현, 소유, 빅토리아 시크릿 에인절들을 매일 만날 수 있다(물론 현실적 가능성은 슬프니까 말하지 않겠다). 이 감탄에는 어떤 지향점으로서 동경에 가까운 것, 즉 ‘되고 싶다’는 마음을 어느 정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성의 육체에는 될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아예 없으므로 매혹적이라고 느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신체적 매혹에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여성도 있다. 동성으로서의 부러움도 아니고, 이성으로서의 끌림도 아닌 그 사이, 혹은 그 이상의 감탄을 일으키는 여성의 신체. 김자인 선수를 처음 본 것은 2013년, 그녀가 출연한 아침 뉴스에서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팔에 잡힌 잔근육이었다. 걸그룹처럼 미끈하고 가는 팔이 아니라 운동선수답게 단단하면서도 확실한 선이 보이는 팔이었다. 작지만 강한 외모의 그녀는 내가 있는지조차 몰랐던 클라이밍이라는 종목의 선수였다. 나중에 찾아보니, 2013 프랑스 발랑스 IFSC 클라이밍 월드컵 대회 우승 직후의 인터뷰였다. 그녀의 클라이밍 경력의 상승기기도 했다. 공식 홈페이지의 소개에 따르면 153㎝에 43㎏인 김자인 선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스포츠 클라이밍을 접하고 6학년 때부터 정식으로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1988년생이니 15년 가까이 암벽을 타고 올랐다. 처음 암벽을 오르기 전에 고개를 들어 그 높이를 가늠하고, 한 점 한 점 짚어가며 오른다, 목표 지점을 찍고 훅 내려온다. 그 과정의 몰입이 좋아서 클라이밍을 한다는 김자인 선수에게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성실하게 올라간 사람으로부터 느껴지는 힘이 있다. 김자인 선수를 좋아하는 다른 친구는 “끈기와 근성, 그리고 그로 인해 만들어진 몸” 에 김자인 선수의 최고 매력이 있다고 했다. 남자들이 주로 눈에 뜨이는 익스트림 스포츠 분야에서 남녀의 체력 구분까지 뛰어넘는 선수이다. 우리가 한 사람에게 반할 때는 처음에 는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신체에 대한 끌림으로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그의 삶에 대한 존경이 없으면 유지되지 않는다. 모든 운동 경기가 다 그렇지만 혹사에 가까울 정도로 매일 자기 몸과 싸워야 이를 수 있는 높이가 있다. 치밀한 설계로 가꾼 것보다 꾸준한 자기 훈련의 성실함이 배어 있는 몸이 매혹적이다. 아름다운 여자, 아름다운 인간이다. 내가 반한 여자, 김자인 선수가 최근 오랜 부상을 극복하고 2015년 시즌 첫 우승을 거뒀다고 한다. 앞으로도 성실한 높이를 기다린다.

글 | 박현주(번역가)

미녀이자 야수인 <배트맨> 미셸 파이퍼

언젠가 친구가 뜬금없이, 가장 좋아하는 남녀 배우가 누구냐고 내게 물은 적이 있다. 남자배우를 꼽을 땐 한참을 생각해보고도 확신 없이 대답했던 것 같다. 하지만 여자 배우는 단호히 대답할 수 있었는데, 바로 미셸 파이퍼였다. 나는 우선 그녀의 외모를 아주, 아주 좋아한다. 눈부신 금발과 푸른 눈보다도, 아찔한 각도의 눈썹뼈와 드라마틱한 광대뼈가 이루어내는 예민하면서도 풍부한 선을 보는 것이 즐겁다. 날카로운 콧날과 입술선, 격앙되었을 때 곤두서는 핏줄까지도 이 배우의 얼굴을 대단한 볼거리로 만든다. 또한 나는 바람이 많이 섞인 그녀의 발성과 한없이 유연한 몸짓도 좋아한다. 미셸 파이퍼는 내가 좋아해서 보고 또 보는 여러 영화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연기를 펼쳤으므로 나는 그녀를 몇몇 다른 이름으로도 기억한다. 엘렌 올렌스카 (<순수의 시대>), 마담 드 투르벨(<위험한 관계>), 수지 다이 아몬드(<사랑의 행로>), 그리고 셀리나 카일 등. 셀리나카일이 누구냐? 바로 오늘 얘기할 내 걸크러시의 주인공, ‘캣우먼’의 본래 이름이다. 지금껏 캣우먼을 연기한 여러 배우들이 있지만 아무도 미셸 파이퍼의 캣우먼을 결코 따라가지 못했다. 그 불가사의한 캣우먼은 팀 버튼이 감독한 1992년 작 영화 <배트맨 리턴즈>에 등장한다. 높은 빌딩에서 떠밀려 떨어진 셀리나 카일은 목숨을 잃는 대신 길고양이들에 의해 알 수 없는 이유로 오히려 아홉 개의 목숨을 지닌 캣우먼으로 다시 태어난다. 반짝이는 가죽 전신 타이츠에 채찍, 날카로운 발톱, 스틸레토 힐에 완전히 바뀐 중저음의 목소리까지, 캣우먼이 탄생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짜릿하다. 고양잇과 캐릭터는 선과 악을 미로 초월하고, 뷰티와 비스트를 한 몸에 지닌 느낌 때문에 저항할 수 없이 매혹적이다. 어렸을 때부터 개를 좋아했고 고양이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내가, 9년 전부터 암컷 길고양이 새끼를 키우게 되었다. 예민함과 까칠함이 가느다란 뼈대에 휘감긴 이 조그만 캣우먼은 9년간 나에게 무수한 손톱자국과 핏자국을 남겼지만, 또 그만큼 무수한 기쁨과 감탄을 안겨주기도 했다. 뷰티와 비스트. 나는 이제 잘 알고 있다. 고양잇과 여성만큼 압도적으로 매력적인 존재는, 세상에 흔치 않다는 것을.

글 | 김하나(카피라이터)

예쁨 대신 자유를 얻은 여자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 크리스틴 스튜어트

지난 1월,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머리를 아주 짧게 잘랐을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 않은 여자들 없었을 거다. ‘여자 제임스 ’이란 언론의 호들갑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전 남자친구 로버트 패틴슨보다 더 잘생기고 섹시해 보였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당당히 드러내며 누가 보건 말건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을 고수하고 여자와 데이트를 하는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스스로 할리우드 여배우 사이에서 가슴 크기 경쟁을 하는 그저 그런 배우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서 보여준 것처럼 ‘눈을 깜빡 하며 머리를 쓸어 넘기고 어깨를 으쓱하다가 오한에 떠는’ 발 연기를 계속했다면 그렇게까지 그녀를 좋아하진 못했을 거다. 2011년과 2012년 골든 라즈베리상 ‘최악의 여배우’ 후보에 오르다가 마침내 2013년 ‘최악의 여배우상’을 받은 바 있는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영화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로 2015년 세자르 영화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연기를 너무 못해 미국 코미디언의 놀림감이 되곤 하던 그녀가 갑자기 의식 있는 여배우가 된 것이다. 이 영화에서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줄리에트 비노슈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녀가 연기한 어시스턴트 발렌틴 역은 전설적인 여배우 마리아 앤더스(줄리에트 비노슈)에게 비위 맞출 생각이 전혀 없는 똑똑하고 매력적인 여자였다. 그녀는 자신을 고용한 여배우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면 짜증낼 줄도 알며 어떤 상황 에서도 자기 의견을 얘기하고 절대 굽실거리지 않는다. 그녀가 주저 없이 일을 관둘 땐, 지금껏 수많은 여자 배우들이 악당에게 발차기를 했을 때보다 더 통쾌했다. 세상에서 제일 한심한 여주인공 벨라를 연기한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이제 올리비에 아사야스, 이안, 우디 앨런 감독과 영화를 찍으며 “할리우드는 역겨울 정도로 성차별적이에요”라고 말하는 여배우가 됐다. 게다가 이제 그녀는 머리를 쓸어 넘기는 대신 두 손을 바지에 찔러 넣는다. 그러니 그런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 배길 사람이 있겠는가? 아, 물론 로버트 패틴슨은 빼고.

글 | 나지언(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