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트 쿠튀르에 대한 지배적인 시선은 현실적인 방안의 절충으로 향했다. 하지만 장 폴 고티에와 빅터&롤프는 모든 힘을 쿠튀르의 창작 과정에 쏟아붓기 위해 레디투웨어를 중단했고, 칼 라거펠트는 펜디와의 50주년을 기리기 위해 첫 오트 푸뤼르 컬렉션을 선보였다. 그렇게 꿈과 환상의 동화 속으로 빠져든 쿠튀리에들은 패션이 품을 수 있는 판타지의 극점을 가리키는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위해 숭고한 예술혼을 불태웠다.

Schiaparelli 

마르코 자니니가 갑자기 브랜드를 떠난 후 스키아 파렐리의 디자인 디렉터 로 데뷔한 베르트랑 기용 은 발렌티노와 알렉산더 매퀸, 존 갈리아노와 같은 최고의 쿠튀리에들과 함께하 며 다년간 숙련된 기술을 쌓은 디자이너다. “엘자 스키아 파렐리가 아직도 살아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지 고민해봤 어요. 그녀의 성향을 이해하기 위해 관련 서적을 많이 읽 었지요.” 하우스의 뿌리에 대해 고민한 그의 영감 보드에 는 30년대의 파리 극장과 런던 거리에서 미니멀한 분위기 를 연출한 스키아파렐리, 스키아파렐리의 모델이었던 리 밀러(Lee Miller), 그리고 패션과 예술 사이의 기묘한 부분 에 서 있었던 행위예술가 레이 보워리(Lei Bowery)의 사진 이 걸려 있었다. 런웨이에는 물이 흐르는 듯 섬세한 오간 자 소재의 바이커 재킷부터 마르셀 버티스(Marcel Vertes) 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프린트를 수작업으로 그려넣은 드레스, 패치워크한 모피 코트, 모헤어 미디스커트와 케 이프까지, 다채로운 의상이 등장했다. 환상적이고 강인 한 여성성과 대담한 매력이 돋보이는 룩들은 창립자가 하우스를 위해 쏟은 열정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Jean Paul Gaultier 

크레페의 버터 향기만큼 프랑스 북서 해안 에 위치한 브르타뉴 지방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요소가 또 있을까? 쇼 시작 전 관객들 에게 크레페의 달콤한 맛을 선사한 장 폴 고티에는 뱃고동과 갈매기 소리가 울려 퍼 지는 가운데 무대를 열었다. 그랑팔레에서 펼쳐진 쇼는 고티에의 숙련된 기술과 빛나 는 재능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는데, 그의 아이콘이자 브르타뉴의 상징인 마린 모티 프로 시작된 쇼는 옐로 골드로 수놓은 호화 로운 자수와 브로케이드, 무아레 실크 등 민속적인 요소로 이어졌다. 고티에는 독특 한 지역색을 갖춘 브르타뉴의 전통 의상 중 장례식 의복과 앞치마 장식, 머리에 쓰는 원통형 두건과 같은 아이템을 컬렉션에 접목했 고, 톱니 모양으로 된 어깨 라인, 오리가미 페플럼, 네모난 모양의 톱 등으로 실험적인 룩을 창조했다. 철판 위에서 접기 전 크레페 모 양을 형상화한 동그란 형태의 스커트는 그의 위트와 유머를 확인 할 수 있었던 대목. 브레톤 파이프 밴드의 웅장하고 활기찬 연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사슴가죽과 레 이스로 치장한 브르타뉴의 신부가 화려한 피날레를 알리며 고티에의 브르타뉴 여행은 막을 내렸다.

Maison Margiela 

천재라는 수식어만으로 존 갈리아노를 설명할 수 있을까? 광기 어린 천재성이 번뜩이는 아름답고도 기묘한 여자들이 다시 한번 그의 런웨 이에 부활했다. 그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서 영향을 받기도 했고, 신 비롭고 다채로운 나라에서 영감을 얻기도 했다. 중국의 머드 실크 라 이닝과 아란 식의 니트, 마다가스카르의 라피아, 프렌치 태피스트리, 영국식 트위드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채집한 요소들을 경이로운 기술력을 통해 조합시켰다. 그가 보여준 옷들은 야누스적 모순을 포 용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증명과도 같았다. 재킷으로 변한 남 성용 팬츠, 거울 조각으로 만든 장미덩굴 장식, 피자 커터 같은 굽이 부착된 구두, 이브 클랭 식의 페이스 페인팅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것은 없었다. 이질적인 충돌에서 오는 기괴한 아름다움은 메종 마르지엘라의 눈부신 미래를 약속했다.

Viktor&Rolf 

‘패션이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오랜 기간 고루하고 진부한 논쟁거 리가 되었던 이 주제에 대해 빅터&롤프는 이번 쇼를 통해 명확한 답변을 내놓았다. ‘입을 수 있는 예술(Wearable Art)’이라는 주제 에서도 알 수 있듯 모델이 입고 나온 드레스가 그림과 조각물이 되 는 기발하고 창의력 넘치는 쇼를 펼쳤다. 모델들은 흰색 캔버스가 변형된 듯한 특이한 구조의 스커트와 드레스, 코트를 입고 등장했 고, 디자이너들은 무대 위에 올라가 모델들에게서 질서정연하게 그들의 작품을 해체시킨 후 이것을 무대 전면에 세워진 흰 벽에 하 나씩 걸었다. 첫 줄에 포진한 아트 컬렉터들은 천재적인 듀오가 펼 치는 마법과도 같은 퍼포먼스에 눈빛을 반짝였다. 쇼가 끝났을 때 무대에는 5개의 예술 작품이 걸려 있었 고, 쇼장은 단숨에 갤러리로 변했다. 모든 사물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그들의 믿음 은 현실이 됐다. 아트 컬렉터 한 네프컨스 는 빅터&롤프의 예술적인 피스의 구매 의사를 약속했고, 보에이만스 판 뵈닝언 뮤지엄에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Armani Privé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그리는 여성은 바람같 이 유연하며 모든 것을 수용하는 대지와 같다. 그는 과장되거나 위협적이며 날카로운 것 그 리고 허황된 판타지를 지양했고, 차분한 선과 실루엣 속에서 중립적이고 편안한 아름다움 을 노래해왔다. “이번만큼은 내 고객들의 요 구를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대신 나의 창조 력에 귀 기울이기로 했죠.” 무언가 확고한 결 심이 느껴지는 아르마니의 말처럼 이번 시즌 그는 용기와 대담함에 자신을 맡겼다. ‘감정은 색이 되고, 색은 패션을 대하는 애티튜드가 될 수 있다.’ 그가 쇼 노트에서 밝힌 대로 색은 이 번 컬렉션의 핵심이었고, 그 주인공은 다름 아 닌 스키아파렐리의 눈부신 ‘쇼킹 핑크’였다. 펑크 밴드 수지 앤 더 밴시스의 보컬 수지 수 를 연상시키는 펑키한 모델들에게 입힌 핑크 컬러는 루렉스, 실크처럼 반짝이는 소재와 강 렬한 실루엣의 이브닝 룩에 녹아들었다. 후반 부에는 잉크 블루, 투르말린 그린, 블랙 같은 컬러들과 조화롭게 어우 러졌고, 신비로운 북극광 처럼 찬연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