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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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존재, 사랑 또는 연구의 대상, 가장 소박하거나 화려한 실내 장식. 그 의미는 각자에게 다르지만 식물을 곁에 두고 즐기는 삶의 방식이 스타일리시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루이 비통 시리즈2– 과거, 현재, 미래> 전시에서 의상이나 프레젠테이션 방식만큼이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간을 채운 거대한 선인장들이었다. 반려동물이 아니라 반려식물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는 시대, 식물은 현대인의 감수성을 판별하는 리트머스지, 취향을 드러내는 방식이자 삶을 즐기는 여유의 지표가 되었다. 한편 손이 덜 가는 선인장이나 다육식물이 각광받는 트렌드는 적은 노력으로 큰 보상을 얻으려는 요즘 사람들의 성향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렇게 이기적인 인간들에게, 이렇듯 식물들은 아낌없이 준다. 휴식을, 평화를, 기쁨을, 그리고 고요를. 자연과 가구를 독특하게 어레인지해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을 제안하는 베리띵즈, 정갈하고 모던한 화기를 만드는 디자인 스튜디오 에떼, 생활 속에서 손쉽게 키울 수 있는 작은 식물 키트를 제안하는 가든하다, 식물 표본을 기록하는 과학 일러스트레이터 이소영까지, 식물에 독특한 시각과 부지런한 손길을 더하는 젊은 크리에이터 네 팀을 소개한다. 

VERYTHINGS 베리띵즈 

베리띵즈는 자연과 음식을 주제로 신선한 비주얼을 제안하는 크리에이터 그룹이다. aA 디자인 뮤지엄이나 아르코 미술관, 대림미술관 구슬모아 당구장에서 펼쳐온 전시나 베니건스, 샘표 등의 기업 컨설팅 및 스타일링 작업 등에서 베리띵스가 일관된 철학으로 삼아온 모토는 ‘모던 유토피아 리빙’. 도시 속에 자연의 공기를, 상업 공간 속에 예술의 방법론을 영리하게 불어넣는 그들에게 식물은 가장 중요한 재료이자 영감이다. 조만간 옥수동에 음식과 농업, 조경을 아우르는 국내외 서적을 큐레이팅한 서점을 오픈할 계획이다. 

www.verythings.org 

ÉTÉ STUDIOS 에떼스튜디오 

‘무엇을’ 대신에 ‘어떻게’에 새롭게 접근한 결과물이 에떼스튜디오의 화기다. 각자 패션과 일러스트를 전공한 오랜 두 친구는, 식물에 대한 관심의 교집합을 발전시키며 리빙 디자인 스튜디오를 함께 냈다. 구리 화분과 유리 화병 제품인 이들의 ‘Project 01’은 일반적인 도자기나 토분 대신 발상을 전환한 소재가 특이하다. 세균 증식을 억제하는 구리 소재는 식물이 자라는 데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며, 배수 구멍이 없이도 물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선인장이나 다육식물에 적합하다. 루밍, 플러스82 프로젝트를 비롯한 여러 인테리어 셀렉트 숍에도 입점해 있지만 식물의 종류를 직접 고르고 싶은 고객이 주로 연희동의 스튜디오를 방문한다. 곧 조명과 거울을 결합한 신제품인 ‘Project 002’를 출시할 예정이다. 

www.etestudios.com 

GARDENHADA 가든하다 

‘다루기에 가볍고 간편하거나 손쉽다’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과 ‘정원을 가꾼다’는 영어 단어가 절묘하게 만났다. 통의동 대림미술관 근처에 숍을 낸 ‘가든하다’는 사람들이 동네 꽃집에 기대하는 서정적인 친절함과 스마트한 상품을 개발하고 제안하는 영민함을 두루 갖췄다. 꽃 한 송이도 이름을 정확하게 알고 부를 수 있도록 영수증에 인쇄하여 전달하고, 화분 하나를 사더라도 기르는 법의 매뉴얼을 제공하는 이곳은 실내에서 키우다가 죽이고 마는 경험이 쌓여 식물과 멀어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환경의 제약을 덜 받는 실내 식물을 어레인지한 테라리움을 전파하기도 했다. 인스타그램에서 #마리모 해시태그로 검색하면 녹조식물 사진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듯, 가든하다는 식물과 함께하는 소소한 즐거움을 널리 전파하는 중이다.

www.gardenhada.com

LEE SO YOUNG 식물 세밀화가 이소영 

이소영은 그림 그리는 사람이지만 미술이 아니라 원예학을 전공했다. 그저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식물의 종을 식별하여 기록을 남기는 과학 일러스트인 그의 그림은 국립표본관에 국가 데이터베이스 구축용으로 소장되어 있다. 사진 기술도 충분히 발전했지만, 환경에 의해 조금씩 형태가 변해가는 식물을 연구하고 종의 특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현미경 데이터보다 식물 세밀화가 더 정확하기 때문이다. 1년에 걸쳐 표본을 수집하고 미세한 표현을 위해 현미경을 수없이 들여다보는 과정은 안으로 안으로 파고드는 고단한 작업이지만, 그렇게 들어갈수록 역설적으로 더 넓고 큰 세계와 만나게 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식물을 잘 돌보기 위해서도 예뻐하는 마음만이 아니라 각 개체의 이름을 알고 차이를 구분하는 학습이 필요하다. 이소영의 식물 세밀화는 그런 정밀한 시선 속에 정확한 사랑의 방법이 있음을 알려준다.

www.soyoung.kr 

에디터
황선우
포토그래퍼
엄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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