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트 쿠튀르에 대한 지배적인 시선은 현실적인 방안의 절충으로 향했다. 하지만 장 폴 고티에와 빅터&롤프는 모든 힘을 쿠튀르의 창작 과정에 쏟아붓기 위해 레디투웨어를 중단했고, 칼 라거펠트는 펜디와의 50주년을 기리기 위해 첫 오트 푸뤼르 컬렉션을 선보였다. 그렇게 꿈과 환상의 동화 속으로 빠져든 쿠튀리에들은 패션이 품을 수 있는 판타지의 극점을 가리키는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위해 숭고한 예술혼을 불태웠다.

Fendi 

칼 라거펠트는 펜디와의 50주년을 기념해 첫 오트 푸뤼르 (Haute Fourrure) 컬렉션을 열었다. 이것은 단순히 기념일을 축하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업적이나 영광에 기대는 대신 창의성과 장인 정신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새롭고 혁신적이며 전위적인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자리였다. 쇼의 베뉴인 샹젤리제 극장 안에는 초현실주의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의 작품을 본뜬 세트가 마련되어 있었고, 칼 라거펠트가 50년 동안 일군 모피에 대한 총체라고 할 성대한 모피 행렬이 이어졌다. 펜디의 가장 정교한 전통적 모피 제작 기술에 금속 느낌을 주는 꽃 장식과 입체적인 비즈 등 경이로울 만큼 아름다운 손자수가 어우러졌고, 이제까지 본 적 없는 독특한 방식으로 밍크와 세이블, 링크스, 폭스, 페르시안 램 등을 디자인해 시선을 끌었다. 칼 라거펠트는 오트 푸뤼르 쇼를 통해 모피를 은빛으로 빛나게 해 우아하고 현대적인 느낌을 자아내면서도 부드러운 감촉을 유지하는 특별 공정인 ‘실버 퍼 효과’를 최초로 공개했는데, 이는 마치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가벼운 모피를 구현해 찬탄을 불러일으켰다. 그뿐 일까. 선형적이고 날렵한 선이 물결을 이루며 광학적 효과를 준 호화롭고 독창적인 모피 디자인은 펜디 아틀리에의 대체 불가 한 정통성을 입증했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타입의 여성을 위한 다양한 종류의 모피가 런웨이 위에 화려하게 피어났다. 클래식하고 전형적인 고전주의가 이 쇼의 전부인가 싶어질 즈음, 런웨이는 밍크 팬츠와 화려한 보아뱀 가죽이 녹아든 에로틱한 무드로 이어졌고, 부드러운 파스텔 색감의 밍크 코트를 통해 로맨틱한 분위기로 전환 되었다. ‘나에게 모피는 펜디, 펜디는 모피 이며, 모피는 유쾌하다!(Fur is Fendi and Fendi is Fur, Fun Furs!)’고 밝힌 칼 라거펠트의 이야기처럼 극강의 기술력과 아름다운 품격으로 무장한 모피는 펜디 메종이 1925년부터 고수해온 최고의 창조 정신과 장인 정신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Dior 

디올의 베뉴인 로댕 미술관 입구로 들어서는 이들에게서 일제히 탄성이 터져나왔다. 점묘법을 이용해 하나하나 손으로 직접 색칠한 365개의 판유리 구조물과 보라색의 풀밭 카펫은 매혹적일 만큼 아름다웠으며, 한편으론 기묘하게 환각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라프 시몬스는 이번 무대에 대해 ‘교회와 정원, 그리고 스페인 이비사 섬의 나이트클럽’이라고 묘사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디올 정원이란 단순히 꽃들이 만발한 정원이 아니라 성적인 향기를 뿜어내는 향락의 정원입니다. 이번 컬렉션의 영감의 원천은 플랑드르의 거장들과 그들의 회화 예술 접근 방식에서 비롯 되었습니다.” 라프는 이번 시즌 파라다이스와 지옥의 대조가 담긴 보쉬의 <쾌락의 정원>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고, 마약 후의 환각 상태를 의미하는 보라색 런웨이에 그가 금단의 열매라고 상상한 아름다운 물체들을 흩뿌려놓았다. 단단한 것과 부드러운 것, 어둠과 빛, 천사와 성적인 이미지의 대조는 정교하게 드러났는데, 흰색 시폰과 깃털 장식 드레스, 점잖게 움켜쥔 벨벳 코트 (시몬스의 마지막 질 샌더 컬렉션을 연상하게 만 든!)에서는 순결함이 돋보였고, 양옆이 완전히 트인 코트와 드레스는 성적인 면을 강력하게 부각시켰다. 플랑드르의 영향은 입체적으로 묘사 된 환상적인 드레이프와 점묘주의 기술을 연상 시키는 모티프로 창조되어 감탄을 자아냈다. 관능적이고도 순수한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탐구 해온 라프 시몬스는 아마 근원적인 깨달음에 다다르지 않았을까? 금지된 열매가 가장 달콤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Chanel 

지난 시즌 인류 최초의 복식이 탄생한 아담과 이브의 신비한 정원으로 변신 했던 그랑팔레는 아르데코풍의 모던한 카지노 ‘르 서클 프리베(Le Cercle Privé)’로 재탄생했다. 무대 중앙에는 룰렛과 블랙잭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줄리앤 무어를 비롯해 크리스틴 스튜어트, 리타 오라, 바네사 파라디, 라라 스톤, 지드래곤 등으로 구성된 20명의 글래머러스한 갬블러들 (이번 쇼를 위해 특별 제작된 쿠튀르 드레스와 턱시도로 차려입었고, 1932년 마드무아젤 샤넬이 선보인 ‘비주 드 디아망(Bijoux de Diamants)’ 컬렉션을 재해석한 플래티넘과 다이아몬드 에디션을 착용했다!) 이 속속 도착해 진줏빛 벨벳 의자 에 자리해 게임을 즐기는 것으로 쇼는 시작되었다. 헬무트 뉴튼 화보 속의 여 인을 떠올리게 하는 보브컷 헤어스타일을 한 모델들은 카드 게임과 룰렛 테 이블, 슬롯 머신 사이로 걸어 나왔고, 그래픽 실루엣의 룩과 종이 비행기처 럼 생긴 기하학적인 디자인의 슬링백 부티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번 시즌 칼 라거펠트는 수공예의 전통 기법과 최신 3D 프린팅 기술을 접목한 3D 수트를 탄생시켰는데, 그 는 이에 대해 “20세기를 대표하는 재킷을, 당시에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던 21세기 버전으로 재탄생시키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섬세한 레이스와 튤, 오간자와 더치 새틴, 시폰 소재와 어우러져 은은하게 빛나는 스팽글과 비즈 장식, 3D 자수는 꿈 결처럼 아름다웠고, 드라마틱한 튤 베일을 쓰고 흰 새틴 턱시도를 입은 채 남성적인 매력을 풍기며 등장한 모델 켄달 제너의 피날레는 드라마틱한 샤넬 카지노 로열의 대미를 장식했다

Valentino 

파올로 피치올리와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 듀오는 이번 시즌 하우스의 고향이자 영감의 원천인 로마로 관객을 초대했다. 발렌티노의 본사와 새로운 플래그십 스토어가 위치한 역사적인 미냐렐리 광장 앞에 세워진 무대에서는 눈부시게 아름답고 시적인 로마 여신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모델들의 드레스에는 검은색 팔레트를 기본으로 로마의 바닥 타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짙은 붉은색과 녹색이 곁들여졌고, 중세시대와 고대 토가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글래디에이터 샌들과 가운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 알렉산드로 가기오의 골드 주얼리, 로마 제국을 상징하는 독수리 문양이 더해져 신화적인 오라를 뿜어냈다. 이렇게 파올로&마리아 듀오가 이야기한 발렌티노식 ‘뉴 르네상 스’는 도시의 역사적 이미지와 어우러져 극적인 드라마를 완성했다. “로마는 한편으론 침울하고 절망적인 분위기를 안고 있지요.” 파올로 피치올리는 시그너처 컬러로 레드가 아닌 블랙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렇 게 설명했다. 로마를 상징하는 블랙은 칠흑처럼 어두운 벨벳과 슬프도록 아름다운 튤과 시폰, 콜로세움의 벽면을 연상시키는 패턴 이 담긴 새틴 등의 소재로 사용됐고, 후반부를 수놓은 골드 컬러는 찬란하게 빛나는 로마의 위대한 유산을 대변하는 듯했다. 천 년의 시간 동안 쇼가 열린 그 거리를 오갔을 로마의 여인들에 대한 환영을 집약시킨 이번 컬렉션은 아름다움을 넘어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Givenchy 

리카르도 티시는 3년 만에 2016 S/S 멘즈 컬렉션을 통해 11벌의 오트 쿠튀르 룩을 깜짝 공개했 다. 티시의 음산하고 음울한 ‘고 딕 로맨스’는 이번 시즌 예수와 죄수의 대조적인 모티프로 발현 되었고, 강렬하고도 낭만적인 관능미를 뿜어냈다. 철망으로 둘러싸인 감옥을 연상시키는 런웨이에는 티시가 창조한 쿨한 죄수들이 걸어 나왔고, 중간중간 ‘배드걸’이라 명명된 그들의 애인들(나오미 캠벨, 켄달 제너, 마리아 칼라 보스코노 등이 포함된!)이 매혹적인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파스텔 색감이 밴 레이스 드레스에 장식된 깃털과 프린지 장식은 은은하게 일렁였고, 죄수복을 떠올리게 하는 줄무늬는 크리스털이 촘촘히 박힌 팬츠 수트로 승화됐다. 남성복의 주된 아이템인 워크웨어와 오버올, 성조기와 체인 등의 요소는 섹시하고 매혹적인 갱의 룩에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Giambattista Valli 

어느덧 10년을 맞이한 지암바티스타 발리의 드라마틱하고 환상적인 드레스는 60년대의 쿠튀르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화려한 태피스트리 장식과 대담하리만치 풍성한 꽃잎 실루엣이 특징이다. 이번 시즌 그는 탈리타게티, 페기 구겐하임 같은 뮤즈들과의 상상 속 대화를 모티프로 쇼를 풀어갔다. 그의 판타지는 사랑스러운 3D 오간자 폼폼이 장식된 세련되고 말끔한 팬츠 수트를 시작으로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이 반짝이는 60년대풍의 패턴으로 연결됐는데, 크리스털이 장식된 커다랗고 동그란 프레임의 선글라스를 쓰고 반짝이는 플랫폼 슈즈를 신은 채 걷는 모델에게서는 페기 구겐 하임의 환영이 보이는 듯했고, 잔꽃무늬 프린트 가 담긴 풍성한 실루엣의 드레스에서는 탈리타 게티 특유의 히피적인 나른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에 크리스털의 차가운 반짝임과 인공적인 산성 색상, 간결한 실루엣 그리고 테크노풍의 배경 음악을 더해 동시대적 패션에 대한 비전을 드러내며 과거와 현재에 대한 아이디어를 균형감 있게 펼쳤다. 피날레에 등장한 경이로울 정도로 거대한 튤 장식의 볼 가운은 황홀경 그 자체였고, 이 시대의 진정한 쿠튀리에라는 찬사를 받는 그의 재능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